'3000년의 기다림' 만남에는 끝이 없다
'3000년의 기다림' 만남에는 끝이 없다
  • 이현동
  • 승인 2023.01.12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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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로 전승되는 무한의 세계"

조지 밀러의 <매드 맥스: 분노의 도로>(2015)는 세대를 초월하여 다시금 매드 맥스 시리즈의 클래식함과 감독의 역량을 다시 한번 증명한 작품이었다. 한국에서 392만 명이라는 관객 수를 동원한 것과 비평가들의 지지를 한 몸이 받은 이 작품은 단순한 요행이 아니었다. 36년이란 기다림 끝에 부활한 조지 밀러는 CG라는 현대 문물을 수용하지 않고, 질주하는 아날로그 감성으로 액션 영화의 기원을 다시금 복권해 냈다. 이것은 영화 매체가 관객에게 얼마나 체험의 영역으로 안내하는가에 대한 성찰과도 직결된다. 최근 <탑건: 매버릭>(2022)도 그렇듯이 흔히 말하듯 추억 보정과 크게 관련 없음을 지시하고 있기도 하다. 이것은 우리의 기다림이 CG와 같은 편의적인 방식이 아닌, 실제처럼 보이는 현실을 목도하기 위한 본유적인 기다림 일지 모르겠다.

 

ⓒ 디스테이션

이미 완성된 시나리오였던 <매드 맥스: 분노의 도로>는 2001년에 촬영을 하려고 했으나 10년이 지난 후에 진행되었다. 이것은 세기말 이후의 혼돈, 그리고 9.11 테러가 발생할 당시로 보면 언제든 평화가 무너질 수 있는 세계에 대한 고찰로도 그 기획의 의도를 추정할 수 있다. 이런 오랜 기다림이 점차 이야기를 숙성시킬 수 있는 동기를 제공했듯이, 이번 그의 신작 <3000년의 기다림>(2022)의 기획 과정은 이보다 더 한 1990년대 후반으로 거슬러 올라가 시작되었다. 먼저, 이 영화는 A.S. Byatt의 단편 『The Djinn in the Nightingale's Eye』에게 큰 영감을 얻게 되었다. 조지 밀러는 자신의 딸 어거스타 고어(Augusta Gore)와 함께 1990년대 후반부터 이 작품을 집필해 왔고, 오랜 시간 걸쳐 그 이야기를 영화의 형태로 완성했다.

<3000년의 기다림>은 <매드 맥스: 분노의 도로>에서 체감했던 즉발적인 자극과는 반대로, 천천히 과거를 플래시 백하며 과거와 현대를 로맨스 장르로써 연결한다.

서사학자를 대동하는 이 영화의 이야기의 중심에는 『천일야화』와 그 명맥을 잇는다. 『천일야화』는 알려지다시피 아랍 문화, 세계관과 신화의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다. 이교도적이며 반체제적, 서민적인 이야기를 주체로 하기 때문에 전승되는 과정에서도 온전하게 보관되기는 힘들었다고 전해진다. 이러한 정체성과 더불어 아랍, 이슬람에서 주로 언급되는 정령 진(이드리스 엘바)은 자칫하면 희석되거나 소멸할 수 있는 위기 상황에 봉착하기도 하지만, 시대의 기류 속에 생존하며 이야기를 축적해 낸다. 서사학자인 알리세아 비니(틸타 스윈튼)와 그의 운명적인 만남은 로맨스의 본질이 되는 '이야기'가 시간과 공간에 구애받지 않고 있음을 보여준다.

 

ⓒ 디스테이션

호텔 방에서 70여 분간 지속되는 영화의 이야기는 텍스트일 뿐만 아니라 이미지로 재구성되는 조지 밀러의 성향을 엿볼 수 있다. 밀러보다도 노장 감독이자 다큐멘터리 감독으로 명성이 자자한 프레드릭 와이즈먼의 <부부>(2022)가 픽션이라고는 하지만 텍스트와 이미지를 병치한 리얼리즘의 한 방편으로 연계되고 있다면, 밀러는 언제라도 이야기만 있다면 다른 방식으로 영화를 찍을 수 있는 유기적인 작가처럼 보인다.

전작 <매드 맥스: 분노의 도로>와 <3000년의 기다림>이 판이하게 다른 지점은 바로 CG를 많이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대중들에게도 많이 알려졌지만 크리스토퍼 놀란 같은 감독이 일관적으로 CG가 없이 아날로그 방식을 선호하고 있는 것과도 사뭇 대조적이다. 일정 부분(CG를 사용하지 않을 부분 또한)은 갑작스럽게 찾아온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 조정된 결정이었지만, 조지 밀러는 이를 내색하지 않고 이야기에 집중한다. <매드 맥스: 분노의 도로>가 액션을 동력으로 서사가 진행되었다면, <3000년 간의 기다림>은 오로지 이야기만으로 모든 것이 구현되는 세계다. 이야기는 이미지를 세공하고, 각각의 에피소드들은 점차 초월적인 존재인 진의 인간적인 사랑 이야기로 변모해 간다. 이것은 <매드 맥스: 분노의 도로>와 전혀 다른 속성의 것이다. 이 영화에서는 어떠한 애정행각이 드러나지 않고, 속옷을 방불케 하는 차림의 여성들의 몸매 또한 액션을 소묘하기 위해 사용된 장치로 등장한다. 감정이 배제되고, 대사가 소멸된 황폐한 장소에서 투사되는 건 사막의 풍광들과 맥스(톰하디) 일행을 쫓는 임모탄의 무리뿐이다. 흥미롭게도 공동체에서 개인으로 옮겨간 두 영화는 어떠한 공통분모도 없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촬영 방식과 서사 진행의 의도는 모두 그에게 '이야기'라는 요소를 올곧이 주행하기 위한 방편일 뿐이다.

<3000년의 기다림>이 공동체의 해방이 아닌 개인의 해방이라는 점에서 이 기다림의 방향은 보편적인 양식인 개인이 주도하는 로맨스로 변화를 꾀한다. 우린 여기서 익숙한 이름인 '진'을 보며 오래전 만화영화에서 만났던 디즈니 캐릭터인 알라딘의 '지니'를 연상해 보게 된다. 물론 그의 영화 중 <꼬마 돼지 베이브>(1995)와 <해피피트> 시리즈에 등장하는 아기자기한 캐릭터의 모습은 아니지만, 유리병 속에 갇힌 '지니'가 이 영화에서 등장하는 건 우화와 같은 이야기라는 사실을 강조하고 싶어서일 것이다. 초월적인 존재를 모티브한 신화 같은 존재인 진은 비니에게 설명할 수 없는 현상이 어떻게 가능한지를 묻는다. 비니는 "신화는 그 당시(과거)의 것이고 과학은 우리가 지금까지 알고 있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이 두 가지의 양립 가능성에 대한 감독의 탐구는 순수하게 이야기에 반응하는 비니를 통해 귀결된다. 유리병에서 나온 진이 최초에 '살인' 혹은 '죄를 사하여달라는 것' 이외에 총 세 가지의 소원을 들어줄 수 있다고 말하는데, 그의 소원의 한계는 시간과 공간의 유한성에서 던져진 존재임을 암시한다. 이때 비니는 세 가지 소원을 빌지 않고 그의 이야기를 듣고 진을 로맨스의 대상으로 선택한다.

결국, 과거의 이야기가 현재로 연동되는 이 우화는 단지 소원이라는 현재의 방식을 수용하지 않고, 기다림 속에서 사랑이라는 진실과 영원히 함께하고 싶은 그의 염원을 담은 영화다.

 

ⓒ 디스테이션

'조지 밀러'의 우화

『천일야화』와 같은 이 에피소드를 온전하게 품고 있는 존재인 진은 분명 초현실적인 에너지를 갖고 있지만, 자기 능력을 발휘하는 데 있어서 유용하게 보이는 마법적인 효과가 기술되지 않는다. 사실 '진'에 대한 여러 속설이 있고, 알라딘에서도 우리가 잘 알지 못하는 포악한 성질이 있다는 설정과는 사뭇 다른 묘사다. 연약하고 순수한 그리고 인간적인 이 정령의 형상은 여성과의 성적 결합을 통해서도 아이를 가질 수 있는 패러다임을 변용한 존재다. 이러한 이중적인 형상이 무한대로 세계를 탐험할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닌 존재라는 건 궁극적으로 그가 바라보는 인간의 이상적인 형상일지 모른다. 하늘의 정취를 감탄하고, 분노와 희락, 사랑이라는 감정을 가진 진은 오히려 인간에 가깝다. 또한 조지 밀러는 이러한 '신화' 사고관을 기능적으로 다루고 있음을 피력하는데, 그는 VULTURE와의 인터뷰에서 '이야기'에 대해서 이렇게 말한다.

"이야기의 기능은 닫힌 내러티브도 아니고, 무엇을 생각하는지를 알려주는 것이 아니다. 이야기의 경험을 통해 그것이 취해진다"

이 말은 <3000년의 기다림>이 그의 경험과도 맞닿아 있음을 우회적으로 설명하는 듯하다.(그는 이 인터뷰에서 2년 전에 돌아가신 100세가 된 어머니에 대한 에피소드 또한 이야기한다)

 

ⓒ 디스테이션
ⓒ 디스테이션

<3000년의 기다림>이 과거에 보낸 은유이자 편지는 아닐까 하는 짐작은 신기하게도 최근 개봉되었던 영화들에게 동일하게 포착된 현상이다. 최근에 개봉되었던 <아마겟돈 타임>(2022)이나 PTA의 <리코리쉬 피자>(2022), 파올로 소렌티노의 <신의 손>(2021) 등이 왜 그들의 과거를 회고하느냐는 의구심에 단지 감독 활동 중반쯤 겪는 갱년기가 아닐까 하는 불온하게 의심한 적이 있었다. 감독의 경험이란 과거를 기원으로 하지만 현재에서 머물지 않고, 삶으로 이어지기 마련이다.

그러나 누군가에게 이 무한히 연장되고 연장될 세계인 <3000년의 기다림>에서 나열되는 에피소드를 보며 별로 관심 없는 이야기를 늘려놓는다는 평가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얼마나 CG를 잘 사용하고, 레퍼런스들을 얼마나 잘 혼합하고 구현하였는지, 그리고 그들의 감정을 잘 표현하였는가는 중요한 요소다. 다만, '어떻게 모든 이야기가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는 통로가 될 수 있는지'가 더욱 주요한 감상 포인트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프랑스 영화감독 '아벨 강스'가 말했듯이 종교, 신화, 역사 이 모든 것, 즉 이야기들이 영화로 재현됨을 예언한 것은 너무나도 자명한 말이다. 하지만 여기서 그 재현은 과거가 아닌 현재의 시선으로 변용된다는 것에서 영화는 이야기의 무한성에서 끊임없이 움직인다. 더 나아가 이 영화는 코로나 상황에서 매몰되어 있는 우리 삶을 은유로 발판 삼은 작품으로도 추측된다.

외부의 이야기가 존재하지 않는 회전하지 않는 시공간에서 비니와 진의 관계가 맺어지는 과정을 생각해보자. 누군가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쏟아놓기가 힘들었던 시기에 그 둘은 어떠한 감염의 위기도 없이, 게다가 마스크의 필요 없는 둘의 세계(정령과 인간)에서 서로를 마주한다. 결국, 둘의 만남에는 끝이 없다. 우리는 코로나 시기에서 이야기를 하고, 이야기를 듣고, 이야기를 갈망하고 사랑하는 세계에 여전히 누군가와 이야기하고 있다는 사실을 이 기다림과 함께 성찰하게 된다.

[글 이현동, Horizonte@ccoart.com]

 

ⓒ 디스테이션

3000년의 기다림 
Three Thousand Years of Longing
감독
조지 밀러
George Miller

 

출연
틸다 스윈튼
Tilda Swinton
이드리스 엘바Idris Elba
알릴라 브라운Alyla Browne
피아 선더볼트Pia Thunderbolt
버크 오즈투르크Berk Ozturk

 

수입 엔케이컨텐츠
배급 디스테이션
제작연도 2022
상영시간 109분
등급 15세 관람가
개봉 2023.01.04

이현동
이현동
《코아르》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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