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ritique] 20세기여 안녕!
[Critique] 20세기여 안녕!
  • 이상용
  • 승인 2022.09.18 13:0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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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뤽 고다르'의 유산들

2019년 3월 29일에 세상을 떠난 아녜스 바르다(Agnès Varda) 감독의 말년 작품 중 하나는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2017)이다. 바르다 감독은 사진작가 JR과 함께 여러 곳을 누비며 사람들의 얼굴을 촬영한다. 영화의 원제가 <Visages, Villages>, 영어로는 <Faces Places>이다. 우리말로 옮기면 <얼굴들 장소들(마을들)>이 된다.

아녜스 바르다는 JR과 함께 영화 만들기를 결정하고, 가보고 싶은 장소에서 만난 사람들의 얼굴은 물론이고, 자기 얼굴도 JR의 사진기에 담는다. 자신의 시력을 표현하기 위해 계단에 앉은 사람들이 알파벳을 위아래로 흔드는 이미지를 촬영하기도 한다. 바르다는 '자신의 눈에 세상이 어떻게 보이는지,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세상이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JR과 대화한다. 이를 통해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은 카메라에 담긴 장소와 얼굴들의 기록과 이야기인 동시에 장소와 얼굴을 단순히 담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바라보는가'에 관한 영화임이 드러난다.

그런데 이 영화의 마지막 에피소드는 기차를 탄 바르다가 JR과 함께하는 여정이다. 바르다는 태블릿 pc를 꺼내 오래전에 만든 단편 영화를 보여준다. 흑백 화면에는 젊은 장 뤽 고다르(Jean Luc Godard)가 있다. 아녜스는 이 단편을 고다르와 그의 아내이자 배우인 안나 카리나와 함께 했다고 설명한다. JR이 묻는다. "이분 댁에 가는 건가요?" 그의 표정에는 놀라움이 가득하다. 그는 고다르를 마지막으로 본 것이 언제인지를 묻는다. 바르다는 5년 전이라고 답한다.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의 제작 연도를 감안하면 2010년대 초반 어딘가에서 만남이 있었을 것이다.

그것은 누벨바그(nouvelle vague)를 대표했던 고다르와 아녜스의 현재를 바라보게 만든다. 지난 5년간의 세월 동안 바르다는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면 자신의 얼굴을 내밀고 영화를 만드는 방식을 택했고, 고다르는 스위스에 은둔한 채 실험적인 작품들을 내놓았다.

 

© Getty Image
프랑스 영화감독 장 뤽 고다르(1968) ⓒ The Image Gate/Getty Images

JR이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묻는다. "만나면 어떤 일이 생길까요?" 바르다가 생각에 잠긴 채 말한다.

"예측할 수 없는 사람이야. 아무도 몰라. 아주 고독하거든. 고독한 철학자야. 영화를 창조하고, 영화계를 바꿔 놨지. 작품들도 아름답고, 창조자이자 탐구자야. 영화계에는 그런 사람이 필요해."

고다르에 대한 바르다의 말은 무엇인가를 관통한다. '오래된' 아니 '길게 만난' 친구로서 바르다의 말은 너무나 적확하다. 어쩌면 이보다 더 정확하게 고다르를 말하기는 어려울지 모른다. 그것은 상투적 수사가 아니다. 장 뤽 고다르 자체가 새로운 물결(누벨바그)이었고, 고다르 이후의 영화는 비로소 현대 영화(modern cinema)가 되었다.

상투적인 평가들은 고다르의 창조자 역할, 즉 고다르를 누벨바그의 창시자쯤으로 언급하지만 바르다는 그가 탐구자였다는 사실을 또한 강조한다. 고다르의 최근작 목록(제목)을 살피는 것만으로도 짐작할 수 있다. <필름 소셜리즘>(Film Socialisme, 2010), <언어와의 작별>(Adieu Au Langage 3D, 2014), <이미지 북>(Le livre d'image, 2018)은 일정하게 향하는 방향이 있다. 고다르는 영화가 무엇인지를 묻는 철학자였고, 영화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궁리하는 탐구자였으며, 영화와 사회(필름 소셜리즘), 영화와 언어(언어와의 작별), 영화와 이미지의 사이(이미지 북)를 고민하는 고독한 예술가였다. 이 작품들은 스위스 시골에 은둔하면서 완성되었지만, 그의 은둔형 신작들은 매번 칸영화제를 통해 최초로 공개되었고, 그때마다 숨어 있는 영화가 아니라 영화의 최전선에 있음을 보여주었다.

 

누벨바그를 벗어나

고다르의 타계를 알리는 짧은 기사들은 1950년대 말과 60년대에 누벨바그의 선봉이었던 시절에 한정된다. 젊은 고다르다. 물론, 이 시기의 고다르는 1년에 여러 편을 만들기도 하면서 영화 만들기에 몰입해 있었다. 1960년에서 68년 사이에 제작한 장편 영화가 대략 14편 정도가 된다. 고다르를 유명하게 만든 것은 누가 뭐래도 <네 멋대로 해라>(1959)이다. 이후 <작은 병정>(1963), <여자는 여자이다>(1961)를 만들며 프랑스 누벨바그의 상징이 되었다. 연인이자 누벨바그의 여신 중 하나였던 안나 카리나와 함께(두 사람은 7편의 영화를 함께 했다) <비브르 사 비>(1962)를 통해 1960년대를 대표하는 시네아스트가 되었다.

고다르는 안나 카리나에게 데뷔작 〈네 멋대로 해라〉에 단역으로 출연해 달라고 부탁했지만, 안나 카리나는 라이방 안경을 쓴 감독이 보내온 제안을 거절한다.(아녜스 바르다의 말처럼 고다르는 선글라스 벗는 것을 싫어했다) 하지만, 스위스의 한 호텔에서의 시작된 두 사람의 만남은 〈작은 병정〉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이 작품은 정치적인 문제로 인해 3년간 상영이 금지되었고, 곧이어 제작한 <여자는 여자이다>(1961)가 먼저 개봉하면서 신화가 시작되었다. 무엇보다 〈비브르 사 비〉는 두 사람 혹은 고다르의 새로운 출발점이었다. 광고 모델이자 현대 여성을 대변하던 안나 카리나의 모습은 <여자는 여자이다>에서 고스란히 반영된다. 그런데 고다르가 새롭게 담아낸 <비브르 사 비>의 안나는 이전의 이미지에서는 찾을 수 없었던 새로운 안나, 영화의 주인공 '나나'였다. 자신의 인생을 새롭게 살아가는, 자기의 생을 살아가는 여인의 초상이었다.

상영금지로 인해 <비브르 사비> 다음으로 개봉한 <작은 병정>을 본 관객들은 분명히 알게 된다. 두 사람의 첫 영화는 단순한 연인 관계의 시작이 아니라 영화의 역사를 새롭게 써 내려가기 위한 만남이었다는 사실을."(『우리 시대의 시네아스트』, 난다, 2022, 출간 예정)

<네 멋대로 해라>를 재해석한 <미치광이 삐에로>(1965)로 두 사람이 함께한 영화 인생은 절정을 맞이했다. 이 작품은 파리의 극장가에서 1년이 넘게 상영되었다. 하지만 이 영화를 찍을 당시 두 사람의 관계는 파국으로 향하고 있었고, 이 영화의 주제 중 하나가 '권태로움'이기도 했다. 안나와 고다르는 <메이드 인 USA>(1966)를 마지막으로 다른 길을 걸어간다.

 

ⓒ 영화 <주말>(1967)

고다르는 누벨바그로부터 벗어난 길을 가고자 했다. 1967년에 선보인 두 편의 영화 <주말>과 <중국여인>은 부르주아의 세계와 자본주의의 현실을 비판하고, 정치적 선언문을 낭송하며 급진적인 입장을 표방하는 고다르가 시작된 작품이다. 그리고 1968년. 프랑스 68혁명을 기점으로 고다르는 장 피에르 고랭과 함께 '지가 베르토프 집단'을 결성한다. 비디오 작업을 시도하고, 영화의 제작과 접근 방식에 있어 감독 개인이 아니라 집단을 지향했다. <동풍>(1970)과 같은 영화를 만들며 노동자의 동참을 호소하며 정치적 입장을 적극적으로 표방한다. 지가베르토프 집단의 영화는 프랑스 68혁명에 대한 반향이기도 했다. 이들은 기존의 영화 배급 시스템을 거부할 뿐만 아니라 영화가 한 작가의 예술이라는 작가주의적 태도도 거부한다.

하지만 지가 베르토프의 활동은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었다. 이들의 영화를 본 노동자들이 쉽게 이해하기가 어려웠고, 영화 시스템(정확히는 배급 시스템) 바깥에서 내부를 공격하는 시도는 관객과 만나는 것을 제한했다. 프로젝트가 미완으로 끝나는 경우도 다반사였다. 무엇보다 프랑스 68혁명이 드골의 보수정권을 끌어내렸지만, 이듬해 선거에서 드골의 후계자라 할 수 있는 퐁피두가 집권하면서 보수적인 분위기는 다시 시작되어다. 68혁명은 실패한 혁명으로 자리매김 되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제작한 1972작 <만사형통>은 고다르의 고민과 관심사가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다. 이브 몽땅, 제인 폰다라는 프랑스와 할리우드의 스타를 등장시켜 한 식품(소시지) 공장의 파업 과정을 묘사한다. 언론인 수잔(제인 폰다)과 영화감독이었지만 현재 광고를 찍는 남편 자크(이브 몽땅)는 소시지 공장의 사장을 취재하러 갔다가 파업을 일으킨 노동자들에 의해 사장과 함께 감금되어 버린다. 이를 계기로 두 사람은 노동자들을 취재하게 되는데 자신들이 속한 언론계와 영화계를 돌아보면서 사회 전반을 향한 비판의 목소리를 낸다.

<만사형통> 이후 고다르는 집단창작의 방식, 파리에서의 생활을 모두 청산하고 새로운 연인이자 영화를 함께 한 안 마리 미에빌과 함께 알프스 지역에 머물며 비디오 작업에 몰두한다. 안 마리 미에벨은 <넘버 2>(1965)와 같은 아름다운 작품의 각본가 역할을 하였고, 이후에도 80년대와 90년대 그리고 21세기의 몇몇 작품에 편집과 각본가의 역할을 담당했다.

 

영화 <할 수 있는 자가 구하라: 인생>(1980) ⓒ MUBI·New Yorker Films

고다르를 다시 상업영화로 진용으로 끌어온 것은 미국의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였다. <대부> 시리즈의 성공 이후 야심 찬 시도를 계획했던 코폴라는 조이트로프 영화사를 설립하고, 고다르의 상업 영화를 기획하였다. 그런데 순조롭게 진행될 것만 같았던 고다르의 프로젝트는 코폴라가 <원 프롬 하트>(1982)를 추진하면서 밀려난다. 유럽으로 돌아온 고다르가 내놓은 작품은 자신을 말하는 것 같은 <할 수 있는 자가 구하라: 인생>(1980)이다.

주인공 폴 고다르의 대사를 빌리자면 "내가 영화를 만드는 이유는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다. 만약 아무것도 하지 않고 시간을 보낼 수 있다면, 나는 그렇게 할 것이다."라는 허무주의의 태도를 깔고 있지만, 고다르의 인생사를 집약하는 동시에 새로움을 찾는 시도를 보여주고 있다. 영화감독 폴과 그의 연인이자 편집자인 드니즈의 관계는 장 뤽 고다르와 안 마리 미에벨의 관계에서 가져온 것이기도 하다. 여기에 폴이 종종 만나는 창녀 이자벨 위페르가 가세하면서 삶의 여러 국면들이 파편적으로 묘사된다. 상상, 두려움, 상업, 음악으로 이루어진 네 개의 장을 두고 고다르 감독은 자막을 통해 연출이 아니라 구성이라는 표현을 쓴다(un film compose par Godard). 이미 살아온, 현재 살아가는 인생의 단면을 네 개의 장으로 구성하고, 그 가운데 자신이 그동안 해 왔던 이미지와 소리의 새로운 구성을 실험하면서, 화면을 정지하거나 사운드를 분리하기도 하거나 불일치시키며 인생의 장들을 구현하고 있다.

그 후 고다르는 실험적 스타일 속에서 자신의 관심사들을 녹여내는 방식을 본격적으로 활용했다. <미녀 갱 카르멘>(1983), <마리아께 경배를>(1986) 등의 작품에서 이미지와 사운드의 불일치는 빈번하게 일어나며, 은행을 터는 이야기와 베토벤 현악 사중주를 병치시키고(미녀 갱 카르멘), 종교는 무엇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한 물음 속에 성서의 수태고지를 재해석하는 등(마리아께 경배를) 친숙한 것을 낯설게 바라보는, 극과 현실의 경계를 흔들어 버리는, 예술과 음악 그리고 종교의 의미에 관한 물음을 채워놓는다.

 

ⓒ 영화 <영화의 역사(들)>(1989–1999)

<영화의 역사(들)>를 산책하면서

1980년대 말에서 최근에 이르는 작업은 한 마디로 영화의 역사(들)에 대한 고다르식의 재정립이다. 최근작 <이미지 북>(2018)을 칸영화제 경쟁 부문에 선보였을 때 공식 석상에 얼굴을 드러내지 않던 고다르가 기자 회견을 연 방식은 화상 통화였다. 스위스에 사는 고다르가 전화기로 질문을 받고, 스피커 폰을 통해 답했다. 별스럽다고 할 수 있지만 고다르에게는 이러한 기자 회견이 또 하나의 영화라고 생각했을지 모른다.

초기의 고다르는 리얼리즘의 오래된 입장인 '영화는 현실의 반영'이 아니라 '반영의 현실'이라는 뜻을 표명했으며, 이것은 영화가 현실을 고스란히 담는 것이 아니라 영화를 만드는 이들의 의식을 담는 장르임을 강조한 것이었다. 반영의 현실을 구현하기 위해서는 이미지들을 어떻게 구성하고, 만들어낼 것인가가 필수적이다. <이미지 북>에 등장하는 오손 웰즈의 <시민 케인>(1941)에서 묘사한 제너두성의 '출입금지'가 쓰인 담장과 나치 수용소의 철조망을 중첩시키는 이미지나 로셀리니의 <전화의 저편>에서 군인들이 포로를 죽이는 장면과 이슬람 원리주의 무장단체인 ISIS의 유튜브 처형 장면의 인용과 교차는 영화와 현실이 어떻게 중첩되는가를 증명하고 있다.

1988년에서 1998년 사이에 선보인 <영화의 역사(들)>은 영화의 현실에 대한 고다르의 입장을 집대성하는 작업이었고, 비평가 유세프 이샤그푸르와 대담을 나눈 『영화의 고고학』은 <영화의 역사(들)>의 작업에 몇몇 핵심을 풀어서 설명한다. 책으로 번역된 대화 내용의 일부를 생략하고 옮기면 다음과 같다.

이샤그푸르

나는 오직 영화만이 자신의 고유한 역사를 말할 수 있으며, 영화만이 2차 적인 권능으로 존재한다는 힘을 가지면서도 영화일 수 있고 영화로 남아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반면 회화나 음악 심지어 문학도 그렇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무엇보다 영화는 기록과 모방의 순간이기 때문이며, 이미지와 소리라는 두 개의 변별적 요소들 사이의 관계를 통해 구축되기 때문입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당신은 다른 영화들의 인용을 통해 영화사 전체를 통합하면서 당신의 작품을 만들 수 있었습니다.

고다르

당연합니다. 기존의 텍스트들만으로 이루어진 문학사는 최후의 순간에 더 이상 책이 아닙니다. 더 이상 읽을 수도 없습니다. 그것이 무엇을 말하는지조차 이해하지도 못할 것입니다. 인용을 통한 문학사는 단테로부터 세 개의 단어를 취하고, 이어서 프루스트를 인용하면서 동시에 자기만의 생각을 전개하는 일까지 하지는 못할 것입니다.(반면에 인용으로 이뤄진 영화사는 자기만의 생각을 전개하는 것을 가능케 합니다. 필자의 첨언.)

이샤그푸르

인용문은 원문의 연속성에서 벗어나 맥락에 따라 발췌되었고, 그 결과 훨씬 더 강력하면서도 다른 의미를 가지게 됩니다. 왜냐하면 하나의 이미지 혹은 불연속적이고 이질적인 요소들의 만남으로부터 발생하는 하나의 섬광을 창조하기 위해 인용문이 다른 요소들과 공명하는 관계로 들어가기 때문입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콜라주라고 부를 수 있는 이 불연속적인 이질적인 요소들은 자신들의 이질성과 독립성을 유지하면서 몽타주를 통해 다른 요소들과의 관계 속으로 들어갑니다.(이어지는 <백주의 결투>라는 영화에 대한 언급)

고다르

그 장면(<백주의 결투>)은 대단히 아름답습니다. 19세기로부터 온 어떤 것으로 생물학자 프랑수아 자콥이 쓴 '생명의 논리'라는 훌륭한 책에서 인용한 것입니다.

이샤그푸르

그렇군요. 영화와 기록영상만이 아니라 위대한 문장들도 당신에 의해 이미지가 되어 인용되었습니다.

― 『영화의 고고학』, 이모션북스, p.49-51

 

 

<영화의 역사(들)>의 기본 원리는 인용이다. 영화뿐만이 아니라 책, 음악, 회화, 생물학, 철학을 인용하고 결합하여 모든 것을 영화로 만들어 낸다. 영화와 영화, 영화와 역사, 영화와 현실, 영화와 문장을 결합하는 것이 몽타주이자 콜라주이며, 그것은 자기만의 생각을 지닌 하나의 영화가 된다.

두 사람의 대화는 자연스럽게 독일의 발터 벤야민이 남긴 『아케이드 프로젝트』 혹은 『파사젠베르크』로 불린 작업을 연상시킨다. 두 사람의 대화 중에도 벤야민이 자주 언급된다. 인용만으로 19세기 제2 재정기의 파리는 물론이고, 근대사를 새롭게 써보려고 했던 벤야민의 작업은 미완의 프로젝트로 남았지만, 고다르의 영화사는 밀도 높은 '영화의 파사젠베르크'를 향한다.

파사젠베르크는 파리 및 유럽의 대도시에 성행하였던 상가의 형태를 가리키는 말인데, 파사쥬 혹은 아케이드의 형태는(지금도 과거의 파사쥬 형태가 파리에 남아있다) 교회의 십자가를 연상시키는 십자형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곳을 걷는 것은 세계의 한 가운데를 통과하는 경험이 된다. 파사쥬를 채운 상가와 상가에 진열된 사물들(이미지들)의 하나의 알레고리가 되어 역사의 의미로 섬광처럼 떠오른다. 고다르의 영화사 작업을 조각보(patchwork)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이 또한 크게 다르지 않다. 조각보는 직물 조각을 더 큰 디자인으로 재봉하는 바늘 작업의 형태를 이르는 말이다. 조각들의 인용과 몽타주를 통해 하나의 역사과 그려진다. 그것은 기승전결의 역사가 아니라 파편화된 알레고리의 역사다.

고다르는 자신만의 영화사를 새롭게 완성(인용)하면서 이를 통해 영화의 새로운 역사가 쓰여지기를, 영화와 현실이 더 긴밀하고 직접적이기를 희망한다. 우리에게 탐구 과제로 던져진 <영화의 역사(들)>은 앞으로도 계속 탐독 될 아케이드 프로젝트일 것이다.

 

영화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 ⓒ 영화사 진진

부재로 채워지는 것(들)

아녜스 바르다의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을 돌아가 보자. JR과 함께 만든(바르다는 우리의 작품이라고 강조한다)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의 종착지는 고다르의 집 앞이다. 9시 반에 보기로 한 약속에 맞춰 바르다와 JR이 집 앞을 서성이지만 이름을 불러도 고다르는 끝내 나타나지 않는다. 대신 바르다에게 남긴 유리창에 쓰여진 글씨를 본다. "두아르네네즈에서"

바르다의 말에 따르면 이것은 고다르가 보낸 일종의 암호다. 두아르네네즈는 몽파르나스 대로에 있는 작은 식당이고, 자크 드미, 아녜스 바르다와 함께 고다르가 만남을 갖고는 했다. 심지어 자크가 죽었을 때도 고다르는 바르다에게 이 글자를 보냈다. "두아르네네즈에서"

그리고 새로운 암호가 있다. "해변에서" 바르다는 자신의 영화를 말하는 것 같다고 말한다. 바르다 영화의 관객이라면 <아녜스 바르다의 해변>에서 자신의 영화사 길거리에 해변처럼 모래를 깔고 촬영한 장면을 떠올릴 것이다. 해변은 바르다 감독이 사랑하는 장소이자 영감의 원천이다. 바르다의 유작 <아녜스가 말하는 바르다>에서도 이 점은 명확히 등장한다.

원망 섞인 표정으로 고다르를 만나지 못하고 돌아서던 바르다가 펜을 들고 돌아선다. 그리고 유리창에 답장을 쓴다. "편지를 쓰게 너의 펜을 빌려줘. 나의 친구 자코. 기억해 줘서 고마워, J.L.G. 하지만 문을 잠근 건 안 고마워. 그래도 하트는 그려줄게."

씁쓸하게 JR과 호수로 향한 바르다는 과거의 기억을 떠올린다. 고다르와 안나는 남프랑스 니스의 별장을 빌려 바르다와 자크 드미를 초대한 적이 있다. 장 뤽은 종일 책을 읽었고, 안나는 툴툴대며 말했다.

"난 뭘 해야 할까? 뭘 할 수 있지?" 자크와 바르다는 그 모습을 보고 유쾌하게 웃었다. 과거의 추억을 떠올리던 바르다가 울먹인다. 그 모습을 보며 JR이 말한다. "난 뭘 해야 할까요? 뭘 할 수 있죠?" 갑자기 JR이 선글라스를 벗는다. 흐릿한 바르다의 시선으로 사진작가 JR의 얼굴이 잡힌다.

 

영화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 ⓒ 영화사 진진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은 어떤 장소로 가서, 그곳에서 만난 사람의 얼굴을 찍는 것이 전부인 영화가 아니다. 고다르에 대한 언급은 영화 초반에도 등장하는데, 처음으로 JR의 작업실을 방문했을 때였다. 그가 선글라스 벗는 것을 싫어한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바르다는 '고다르'를 떠올린다.

"장 뤽 고다르가 생각났다. 선글라스가 얼굴에 붙어있다시피 했지만 언젠가 나를 위해 잠시 벗어준 적이 있다."

JR과의 만남은 고다르를 떠올리게 하였고, 여러 장소를 돌아다니며 촬영을 하다가 마지막에 이르러 고다르와의 기억을 찾기 위해 이 여정을 선택했다. 바르다가 생각한 장소들(places)은 물리적인 것만이 아니라 기억의 장소이며,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은 기억 속의 얼굴이기도 하다. JR의 선글라스는 고다르의 얼굴을 떠올리게 하였으며, JR은 고다르를 만나지 못한 채 울먹이는 바르다를 보며 선글라스를 벗는다. 그것은 아주 오래전 바르다의 단편 영화를 위해 선글라스를 벗어주었던 고다르의 모습과 겹쳐진다. JR의 선글라스를 벗는 모습은 고다르 혹은 고다르의 얼굴이 된다.

기차에서 잠깐 등장하는 바르다의 단편 <맥도날드 다리 위의 연인들>(1961)에는 고다르가 선글라스를 벗는 장면이 등장한다. 그는 안나와 헤어지자마자 선글라스를 쓴다. 그 덕분에 계단을 내려가는 한 흑인 여성을 안나로 오인하고, 그녀가 물을 뿌리던 호숫물에 맞아 죽는 모습을 목격한다. 슬픔에 찬 고다르는 선글라스를 쓴 채 장례식 화환을 산 후 수건을 구입한다. 그리고 흐르는 눈물을 닦기 위해 쓰고 있던 선글라스를 벗는다.

그제야 고다르는 선글라스 때문에 검은색과 흰색을 구별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하얀 옷을 입은 안나는 다리의 계단을 내려가며 손을 흔들어 주고 있었다. 고다르는 선글라스를 벗고 계단을 내려가 밧줄에 걸려 넘어진 안나를 구하고 다시금 올라온다. 그는 손에 들고 있던 선글라스를 강에 내던진 후 안나와 키스를 한다. 바르다는 고다르의 선글라스가 꼴 보기 싫었을지도 모른다. 이 짧은 단편에서 선글라스를 벗고 세상을 좀 똑바로 보라고 너스레를 떠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아무려나 무성 영화처럼 만들어진 바르다의 단편은 고다르와 버스터 키튼을 겹쳐지게 설정해 놓았다. 단편의 시작되는 장면은 <셜록 주니어(JR)>의 마지막을 패러디 한 것이다. 여기에 사진작가 JR의 이름도 연상이 된다. 셜록 주니어의 주니어, 즉 JR은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에서 '고다르'를 둘러싼 장면들을 얼마나 치밀하게 기획했는가를 생각하게 한다. 이 영화의 마지막은 고다르가 부재한 장소에서 고다르를 연기하는 JR을 통해 부재하는 현존을 기록하는 것이다. 고다르는 바르다의 단편에서 '셜록 JR'을 연기했다. 

또한 니스의 해안가에서 책을 읽던 고다르를 보며 투덜대던 안나의 "난 뭘 해야 할까? 뭘 할 수 있지?"는 고다르의 초기 걸작 <미치광이 삐에로>에서 권태로워진 안나가 반복하던 대사이기도 하다. 사진작가 JR은 울먹이는 바르다를 바라보며 안나가 했다는 그 말을 반복한 후 선글라스를 벗고 다가간다. 마치 위로하듯이, 영화를 통해 만나는 모든 것들이 초월 된다.

 

프랑스 영화감독 장 뤽 고다르(2010) ⓒ The Image Gate/Getty Images

아녜스 바르다는 2019년 3월에, 안나 카리나는 2019년 12월에, 고다르 초기 영화의 페르소나인 장 폴 벨몽도는 2021년 9월에 타계했다. 장 뤽 고다르는 2022년 9월 13일에 세상을 떠났다.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이들을 본다. 영화의 힘은 이들의 부재를 영화를 통해 현존시킨다는 것이다. 그것은 복잡한 연쇄작용이다. 아녜스 바르다는 부재하는 고다르를 소환하기 위해 영화 속에서 <맥도날드 다리 위의 연인들>을 꺼내 들었고, 관객들은 바르다의 영화를 보며 고다르의 얼굴을 떠올려 본다. 여기에 선글라스를 벗고 다가가는 JR이 또 다른 고다르로 가세한다.

무엇이 진짜이고, 무엇이 가짜인가. 무엇이 부재이고, 무엇이 존재인가. 영화는 항상 이러한 사이들을 종횡무진 누빈다.

최소한 고다르의 역사는 고다르의 영화를 통해 기억될 것이다. 고다르의 영화는 고다르가 만든 작품들로만 기억되는 것이 아니라 그의 영화를 인용하고 이어가는 무수한 영화들 속에서 덧씌어진다. 양피지 위에 쓰인 흐릿해지고, 덧씌어진 글씨처럼 본래의 고다르를 알아볼 수는 없을지라도 누군가는 새로운 고다르가 되어 영화사를 시작할 것이다. 그것은 계승이 아니어도 상관없다. 누군가 나타나 새롭게 영화를 바라보고 새로운 영화를 말한다면, 자연스럽게 고다르가 떠오를 것이이다. 그것이 창조자이자 탐구자였던 고다르의 유산이다. 우리는 고다르가 떠난 자리에서 새로운 영화를 기다린다.

 

※ 추신

1. 

바르다의 기억에 얹어 몇 가지 개인적인 기억을 덧씌우고자 한다. 대학 시절 영화의 충격을 줬던 작품은 칼 드레이어의 무성 영화와 오즈 그리고 고다르의 <미치광이 삐에로>였다.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서도(심지어 자막도 엉망이었고, 사투리 섞인 번역체는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이었다) 장 폴 벨몽도와 안나 카리나가 살인을 저지른 후 파리를 떠나 남쪽으로 향하는 장면의 인상과 영화의 마지막에 장 폴 벨몽도가 얼굴에 색을 칠하고 다이너마이트를 감다가 실수로 자살하는 장면은 지금도 선명하다. 또한 뮤지컬적인 장면 중 하나인 쓰러진 나무 등걸 사이를 오가며 '엉덩이 타령'을 하는 안나 카리나의 춤과 노래는 권태와 관능을 오가는 가장 아름다운 장면으로 남아있다. 수업 시간에 보았던 <중국여인>의 한 장면도 기억에 남는다. 모택동을 비롯한 여러 사상가와 이름을 칠판에 적다가 '브레히트'만을 남긴 채 지워버리는 장면은 영화가 철학사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2. 

한동안 잊었던 고다르의 영화에 다시 눈길이 끌린 것은 <아워뮤직>(2004)의 아름다움 때문이었다. 몇몇 국내 극장에서 개봉한 <아워뮤직>(2004)에는 사라예보에 간 고다르가 '유럽문학과의 만남'이라는 프로그램에 참여하여 영화의 원리를 설명하는 강연 장면이 등장한다. 이 장면은 이전과 이후의 영화들에서 무수히 반복하고 있는 이미지의 반복, 역사의 반복, 영화의 반복을 함축한다.

전쟁으로 폐허가 된 듯한 사진 한 장을 꺼내 들고 고다르는 이곳이 어디인지를 질문한다. "스탈린그라드, 바르샤바, 베이루트, 사라예보." 청중들은 각자가 생각하는 참상의 도시를 언급한다. 그러자 고다르는 모두 아니라면서 전혀 예상하지 못한 "1865년 버지니아주 리치몬드."라고 답한다. 미국 남북전쟁 때의 사진이었다. 역사의 이미지는 한번이 아니라 반복적으로 영원회귀 한다.

고다르는 하워드 혹스 영화의 한 장면 중 쇼트와 역쇼트(reverse shot)로 이뤄진 남자 주인공과 여자 주인공의 사진을 들고, 영화의 원리를 설명한다.

"쇼트와 역쇼트는 영화의 기본 원리죠. 하워드 혹스 영화의 쇼트를 보면 똑같은 이미지를 두 번씩 보게 됩니다. 하워드 혹스는 쇼트와 역쇼트로 등장하는 남녀의 차이를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죠." 그리고 진실에는 두 가지 측면이 있다면서 "예를 들어 1948년 유대인들은 바다를 건너 약속의 땅에 도착했고, 팔레스타인인들은 바닷속에 익사했어요." 이를 보여주는 유대인들의 사진과 팔레스타인인들의 사진을 꺼내 들며 쇼트와 역쇼트의 구성을 설명한다.

부연하자면 2차 세계대전 이후 시오니즘 운동을 한참 벌였던 유대인들은 영국을 비롯한 강대국들의 약속에 따라 팔레스타인 땅으로 향했고, 팔레스타인인들은 자신들이 살던 거주지에서 쫓겨나야 했다. 고다르의 설명이 이어진다. "유대인들은 픽션의 소재가 됐고, 팔레스타인인들은 다큐멘터리의 소재가 됐다."

흥미로운 지적이 아닐 수 없다. 홀로코스트 영화를 포함한 유대인 영화는 <쉰들러 리스트>(1994)처럼 극적인 장치를 넣은 영화의 소재로 활용되었고, 팔레스타인인들의 디아스포라는 참혹한 현실을 담아내는 다큐멘터리의 관심사였다.

고다르는 엘시노어 성으로 가던 덴마크의 두 과학자 우화를 이야기하면 이 성은 별로 특별한 것이 없다고 투덜대던 한 과학자의 말을 언급한다. 그러자 다른 과학자가 "'햄릿의 성'(세익스피어의 작품에서 햄릿은 덴마크의 왕자다.)이라고 부르면 특별해지지." 엘시노어 성은 현실(다큐멘터리)이고, 햇림의 성은 상상(허구)이다.

"엘시노어는 실체, 햄릿은 상상의 인물. 쇼트와 역쇼트. 상상은 확실성, 현실은 불확실성.영화의 원리는 우리의 밤과 우리의 음악을 빚으로 밝히는 것."

중요한 것은 영화와 현실을 바라보는 데 있어 상상, 허구, 극 영화야말로 '확실성'의 영역이고, 현실, 실체, 다큐야말로 불확실성의 영역이라는 지적이다. 영화는 이러한 모습을 카메라에 담기 위해 빛을 사용한다. 
고다르는 영화가 현실과는 '또 다른 현실'이라는 입장을 여러 차례 표명히였고, 이 점이야말로 그가 영화를 통해 평생을 탐구한 과제였다. <아워 뮤직>과 짝을 이루며 조금 먼저 제작된 <사랑의 찬가>(2001)는 영화감독 에드가가 세 커플의 이야기를 통해 만남, 열정, 이별, 화해라는 네 가지 순간을 묘사하려고 하는데, 엘란틴을 연기하는 배우에게 다음과 같이 주문한다.

"이건 엘란틴의 이야기가 아니라 엘란틴을 통해 흐르는 역사의 한순간에 관한 이야기라는 거죠. 이해해요?"

고다르가 보여주고자 하는 것은 영화의 이야기가 아니라 영화를 통해 흐르는 역사의 한순간, 사회의 한순간에 관한 이미지와 소리다. 그것은 결코 <쉰들러 리스트>와 같은 영화가 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클로드 란츠만의 <쇼아>(1985)와 같은 다큐멘터리도 될 수가 없다. <아워뮤직>은 천국, 연옥, 지옥이라는 단테의 신곡에서 모티브를 가져왔지만, 사라예보의 현실을 보여주면서, 극과 다큐가 혼재되어 나열되며, 고다르의 실제 강연 장면과 그 가운데 강연을 듣는 영화 속 인물 올가의 모습을 혼재시킨다.

스위스의 집으로 돌아온 고다르는 한 통의 전화를 받는데 다른 사람들을 통해 dvd를 건네주었던 러시아 혈통의 프랑스계 유대인 여성인 '올가'가 극장에서 사람들을 내보낸 후 가방을 열다가 경찰 저격수들에 의해 사살되었다는 소식이었다. 그녀는 자폭 테러를 시도했다. 하지만 경찰들이 그녀의 가방을 확인했을 때 가방 안에 들어있던 것은 책들뿐이었다. 아마 올가가 하고자 했던 것은 테러가 아니라 테러 행위를 통한 메시지였을 것이다. 올가의 소식은 <아워 뮤직> '연옥편'의 마지막 순간으로 등장한다.

이어지는 '천국'편은 아주 짧게 묘사된다. 죽었다는 소식이 전해진 올가의 과거 한때를 보여주는데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며 물가에 앉아 사과를 나눠먹는 장면으로 짧게 끝이 난다. 눈을 떴다가 감는 올가의 클로즈업된 얼굴. 근심과 수심이 보이지만 한편으로는 결심이 보이는 얼굴이 이 영화의 마지막 쇼트다.

어떤 것이 상상이고, 어떤 것이 현실일까? 그것을 쉽게 답할 수 있을까? 다만, 이러한 방식을 통해 영화의 역사를 밝히고, 동유럽의 현재를 밝히는 고다르의 영화가 있을 뿐이다. 고다르의 영화는 그렇게 존재하고자 했다. '우리의 영화'(아워 시네마)로.

3.

ⓒ 더숲 아트시네마

크리티크 코너에 소개된 '헤어진 결심' 때와는 달리, 이번에는 반대로 이 글의 내용을 어느 정도 토대로 삼는 강연 일정을 알리고자 한다. '더숲 아트시네마'에서 <비브르 사비> 상영 후 이 영화에 대한 이야기와 이후에 펼쳐진 고다르의 세계에 대한 것을 나누고자 한다. 물론, 앞에 쓴 글들의 내용이 꽤 포함되어 있다.

[글 이상용, poema@ccoart.com]

이상용
이상용
1997년 『씨네21』 2회 신인평론상을 수상하며 영화 비평을 시작했다. 부산국제영화제와 전주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를 역임했다. 지은 책으로 『봉준호의 영화 언어』, 『영화가 허락한 모든 것』, 공저로 『씨네쌍떼』 『30금 쌍담』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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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객1 2022-09-18 14:04:03
그렇군요... 제목처럼 고다르의 끝에서 20세기와 진정으로 이별을 하는 순간을 맞이하는 건가 싶습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