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작인가요? '놉' 망작인가요? '놉'
걸작인가요? '놉' 망작인가요? '놉'
  • 배명현
  • 승인 2022.09.14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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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릭터로 쌓아올린 윤리의 모래성"

작품의 세계가 현실과 멀리 동떨어져 있을 때 작품은 오히려 현실을 이야기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많은 SF가 그렇고 부조리극이 그렇다. 비현실의 이야기가 발화(發話)되며 (필연적으로) 생성되는 현실과의 공통점은 다시 한번 현실을 인지하도록 만든다. 그리고 우리는 이러한 이야기를 '우화'라고 부르기로 했다. 

우화는 대게 풍자의 방식으로 윤리성을 전달한다. 과거의 우화도 그랬고 현재의 우화도 그렇다. 아마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다만 차이라면 전달 이후에 있다. 과거에는 전달한 윤리를 바탕으로 행동 방향과 양식을 함께 전달했다면, 현대의 우화는 전달에서 멈춘다. 이솝 우화 중 하나인 『양치기 소년』과 프란츠 카프카의 『변신』을 떠올려보자. 전자의 이야기에선 거짓말을 하지 말자는 교훈(행동의 방향성)을 얻을 수 있지만, 후자에선 주인공 그레고르 잠자의 비극적 최후에서 우리가 얻어갈 교훈이란 쉽게 보이지 않는다. 그가 벌레로 변하여 버림받아 죽었다는데 뭘 어쩌란 말인가.

왜인가. 과거의 이야기꾼들이 이미 보편적 윤리를 상정해 놓았기 때문에? 아니면 현대의 작가들이 현실에 무능력해서? 물론 그렇진 않다. 답은 너무나 당연하게도 현대 사회가 너무나 복잡해졌기 때문이다. 과거의 사회는 개인의 삶이 크게 다르지 않았고 그 덕분에 보편적 윤리가 존재할 수 있었으나, 현대는 그렇지 않다. 개인이라는 존재는 너무나 복잡한 맥락으로 얽혀있고, 이 개인은 어디에 어떻게 배치되는가에 따라 또다시 새로운 존재로 드러나기 때문에 세계는 그 개개인을 곱해서 나온 경우의 수보다 복잡하다. 그리고 <놉>은 바로 이 부분과 연결되어 있다.

 

ⓒ 유니버설 픽쳐스

조던 필의 필모그래피에서는 늘 '공포'라는 장르를 유지해 왔다. '인종차별'이라는 주제도 마찬가지이다. 그렇기에 이번 그의 신작인 <놉>이 공포 영화인 동시에 인종차별에 대한 영화인 것은 전혀 새삼스러울 게 없다. 하지만 그가 더욱 무게를 싣고 있는 부분은 아무래도 후자인 것 같다. 그가 일전 인터뷰를 통해 "앞으로 인종차별에 대한 영화를 만들 것"이라는 말이, 그의 창작 전반을 지배하는 대표적인 동기이자 주제를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자면 그에게 인종의 문제(핵심)를 제기하는데 있어, 공포영화는 형식(스타일)인 것이다. 이는 그에게 스타일보다 핵심이 더 중요하다 의미하기도 한다. 물론 이것이 문제가 되진 않는다. 장르나 서사는 전달하고자 하는 바의 수단이 될 수도 있으며, 작품 자체를 목적으로 대해야 한다는 주장은 그 말 자체로 허무하다. 다만, 이때 전달하고자하는 핵심이 설득력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 그래야 그 주위를 감싸고 있는 스타일에도 동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 영화 <놉>이 건드리고 있는 지점은 고개를 갸웃거리게 한다. 이 지점을 설명하기 위해 영화를 캐릭터 중심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영화는 '고디가 왔다'라는 가상의 프로그램으로 시작한다. 미국의 전형적인 중산층―이라기에는 다문화적인 동시에 인종초월적인 모양새를 한―가족이 침팬지에게 끔찍하게 살해당한다. 여기서 '주프'(스티븐 연)만이 유일하게 신체적 손상을 입지 않는다. 침팬지가 소음으로부터 안정을 되찾았기 때문이다. 이 사건 때문인지 확신할 순 없지만, 주프는 방 한구석을 고디 굿즈로 채워 넣는 뒤틀린 인간이 되었다. 그는 카우보이 놀이공원을 꾸리며 생계를 이어나가며 계속해서 사람들의 이목을 끌고자 한다. 이 욕망은 영화 중반에 일어나는 UFO(UAP)참사로 연결되고, 자신 또한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정말 죽었는지는 확인할 수 없지만 스크린 밖으로 추방당했으므로 이는 죽음과 동일하다 볼 수 있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그는 우연히 살아남았지만, 오만함으로 죽음을 맞이한다. 그를 죽인 것은 그 자신이다.

 

ⓒ 유니버설 픽쳐스

반면 'OJ'(대니얼 칼루야)는 이와 대비되는 인물로 보인다. 그는 그저 영화에 출연할 말을 키운다. 촬영 현장에서 동물을 대하는 그의 태도는 백인들과 대비되며, 이 영화에서 의미를 구축하는 핵심 기둥을 만들어낸다. 인간은 인간이 아닌 존재를 온전히 이해할 수 없다는 점을 말이다. 말을 잘 듣던 침팬지가 돌변하고 침착하게 서 있던 말이 갑자기 뒷발질하는 것. 촬영장에서 보여준 백인들의 태도는 그야말로 비즈니스적이다. 자본의 움직임을 따라 필요에 따라 움직인다. 이 논리 안에 동물은 그저 촬영용 소품으로 기능한다. 반면 보다 자연친화적인 OJ는 외계물체에게도 다른 관점을 제시한다. 저것은 생물이며 보면 안 된다는 점을. 어떻게 그가 이 '사실'을 알게 되었는지 알 수 없지만, 결과적으로 그의 가설은 들어맞는다. 영화의 후반 외계 생물체와 대치하기 위해 얼굴이 프린트된 풍선을 사용한 이유도 여기서 찾을 수 있다. 그는 인간을 넘어 생명이라는 것, 그러니까 자연을 이해하고 있는 걸로 보인다.

이 이해의 바통을 넘겨받은 '에메랄드'(키키 파머)가 러닝타임의 후반부를 전담한다. 그녀는 말을 타고 들판을 질주한다. 마치 자기 조상이 그랬던 것처럼. 공교롭게도 그녀는 카우보이를 연상시키는 의상까지 입고 있다. 하지만 이는 주프의 그것과 다르다. 주프는 고전적인 카우보이 의상(진 자켓)을 그대로 착용하고 있으나, 에메랄드는 흑인의 아이템(힙합스러운 럭비 유니폼, 비비드한 컬러의 두건)을 그대로 고수하면서 이미지만을 가지고 온다. 영화 속에서 등장한 흑인에 대한 의미와 상징을 휘감은 그녀는 외계생물체를 포착하는데 성공하고, 거대한 풍선으로 물리친다. 여기서 외계생물체에 붙인 이름인 '진 재킷'이 고전 서부극에서 자주 사용된 의상임을 생각했을 때, 이 명칭의 의미를 인종적으로 해석하길 요청해보는 바이다.

 

ⓒ 유니버설 픽쳐스
ⓒ 유니버설 픽쳐스

이처럼 캐릭터를 통해 인종에 대해 구축하고 있는 만큼 쉽게 도식적 은유를 끄집어낼 수 있다. 주프가 테이블 아래서 온순해진 고디와 마주 보았을 때 고디는 주먹인사를 내민다. 킹콩이 20세기 초 흑인에 대한 공포를 은유했다는 지배적 해석과 주먹인사라는 문화적 상징을 겹쳐놓았을 때, 고디는 흑인에 대한 은유로 볼 수 있다. 그런 고디가 주프와 친분을 확인하는 주먹인사를 내민다. 이를 현실에 녹여 본다면 유색인종의 연대를 의미할 것이다. 다만, 이 연대는 결실을 보지 못했다. 총으로 고디를 쏜 외부인(아마도 백인 공권력)이 순간을 망쳐버렸다. 그리고 여기서 92년의 LA 흑인 폭동을 떠올리는 건 그리 어렵지 않다. 그리고 영화는 다시 오늘의 주프를 보여준다. 그는 백인의 옷을 입고 나타나 백인의 문화를 파는 바나나가 되어 버렸다.

OJ는 인간의 세계뿐만 아닌 그 밖을 느낄 줄 아는 인간이다. 문제는 바로 여기서 발생한다. <놉>은 인간이 이해할 수 없는 존재가 나타났을 때 마주하는 '미지에 대한 공포'를 다룬다. 이는 H. P. 러브크래프트(Lovecraft)의 세계관을 의미한다. 이 세계관은 인간에 대한 어떤 대답을 요구한다. 예기치 못한 것(The Thing)으로부터 살아남으려는 인간은 생존을 욕망을 발현하지만, 자꾸만 미끄러질 때 인간은 어떻게 행동하는가. 그리고 이 실패로부터 발생한 무력감이 공포라는 감정으로 모습을 바꿀 때 인간은 어떤 존재가 되는가. 영화는 이 질문에 어떤 답을 제시했어야만 했다. 영화 초반에 보여주었던 OJ라는 인물과 그 이외의 인물의 대치를 통해 부각시키려 했던 부분이기도 하다. 또 <놉>이 중반까지 공포로 작동할 수 있었던 이유이기도하다. 하지만 OJ가 해결 방법을 찾고부터 공포는 그 자취를 감춘다. 그 이후 영화에서 두드러지는 부분은 인간의 의지이다. 살아남으려는 인간의 고투와 지혜 그리고 세계에 대한 저항심 같은 것들 말이다.

OJ를 통해 '이 세계는 인간이 온전히 파악할 수 있다'는 비판을 길어 올리고자 했던 캐릭터가 결국은 인간적인 방식으로 인간 외부의 힘을 파괴한다는 건, 스스로 쌓아 올린 논리를 차버리는 것과 같다.

에메랄드는 어떠한가. 그녀는 카우걸 패션과 후반부에 급격하게 비중이 상승하는 여성 캐릭터라는 점에서 <쟈니 기타(니콜라스 레이)>를 떠올리게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사막, 이동, 포착, 사냥이라는 서부극의 핵심 요소를 가져와 현대적으로 풀어 놓는 모습이 두드러지기에 놓치기 힘들 정도이다. 그녀를 통해 느껴지는 건 서부극을 소수자의 성취로 재서술하겠다는 조던필의 야심이다. 그녀가 흑인-여성-퀴어라는 정체성을 가졌다는 것 그리고 말을 타고 달리는 OJ와 극명하게 대비되는 바이크를 타는 모습. 그리고 엔딩에서 유머의 방식으로 등장하는 간판의 문장까지. 저항을 종결시키는 주체적 인물인 동시에 인종, 젠더 전복적인 인물이다. 하지만 작가의 의도대로 보았을 때 그렇다. 그녀의 퀴어성은 대사 한 마디를 통해 드러나며, 그녀가 퀴어이기에 발생하는 그 어떤 서사도 등장하지 않는다. 거기에 외계인과 맞짱을 뜨기 전 그녀가 얼마나 주체적인 인물이었던가.

유일하게 비중 있는 여성 캐릭터가 더 살아있는 인물처럼 느껴지지 못한 것은 분명 어딘가 석연치 못한 부분이 있다. 이전 영화인 <어스>에서만 보더라도 그는 작품적 성취와는 별개로 여성 캐릭터를 살리는 작가이자 감독이었다. <놉>의 결말이 편의적으로 보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크툴루 신화와 서부극, 흑인과 동양인, 섹스와 젠더 그리고 영화에 대한 메타까지. 이번 영화는 너무 많은 걸 한 번에 담으려는 욕심이 컸던 것 같다. 그리고 또 그렇기에 <놉>이라는 우화는 현대의 복잡한 윤리성을 다시금 생각하게끔 한다. 흑인이라는 감독의 정체성이 작품 창작의 원동력인 동시에 당사자성을 띨 때 우리는 이 영화를 정말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것인가. 어떤 문제를 어떤 시점에서 어떻게, 어떤 방식으로 드러낼 것인가가 중요한 문제지만 동시에, 그가 삶을 통해 바라본 이 세계는 어떤 모양새였는지 어렴풋하게나마 짐작해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글 배명현, rhfemdnjf@ccoart.com]

 

ⓒ 유니버설 픽쳐스


NOPE
감독
조던 필
Jordan Peele

 

출연
다니엘 칼루야
Daniel Kaluuya
케케 파머Keke Palmer
스티븐 연Steven Yeun
마이클 윈콧Michael Wincott
브랜든 페레아Brandon Perea
바비 페레이라Barbie Ferreira

 

수입|배급 유니버설 픽쳐스
제작연도 2022
상영시간 130분
등급 12세 관람가
개봉 2022.08.17

배명현
배명현
 영화를 보며 밥을 먹었고 영화를 보다 잠에 들었다. 영화로 심정의 크기를 키웠고 살을 불렸다. 그렇기에 내 몸의 일부에는 영화가 속해있다. 이것은 체감되는 영화를 좋아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영화를 보다 문득 '아.' 하고 내뱉게 되는 영화. 나는 그런 영화를 사랑해왔고 앞으로도 그런 영화를 온몸으로 사랑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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