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썬다운' 일몰의 저편
'썬다운' 일몰의 저편
  • 이현동
  • 승인 2022.09.06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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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몰도 인간도 없는 실존의 빛"

미셸 프랑코의 카메라 앵글에는 일정한 거리가 주어진다. 주로 리얼리즘을 나타낼 때 사용되는 롱 쇼트로, 구현된 그의 영화세계는 실로 무심한 갈등을 표기한다. 그의 영화에서 익스트림 클로즈업과 같은 정밀 묘사는 거의 없다. 가령 그의 초기작인 <애프터 루시아>(2013)나 <크로닉>(2016), 그리고 <에이프릴의 딸>(2019)에서 일관적으로 관찰되는 엔딩 프레임이 그 예이다. 전부 유사한 시점 쇼트로 인물의 감정과 배경이 결합하여 탄생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이를 뒷받침하기에 충분한 <애프터 루시아>의 마지막 롱테이크(long take)는 딸의 복수를 성공한 로베르트(헤르난 멘도자)의 무표정과 그를 반사하는 푸른빛의 바다와 하늘, 그리고 디제시스 사운드로 이와 공명하는 기계 사운드인 엔진으로 그 감정이 각인된다. 이때 감정의 변화를 체감할 수 없을 정도로 무심하고도 공허한 이미지를 관객에게 전달할 때, 그의 영화는 무엇보다 실존적인 영화가 된다. 사르트르의 "타인은 지옥이다"라는 명제가 성립하는 그의 영화는 개인과 타자 사이의 인식이 어떠한 결과를 초래하는지를 처연하게 다룬다.

또한, 미셸 프랑코는 계급이나 위계와 같은 국가 혹은 사회 문제를 표방하지 않는다. 거시적 갈등으로부터 착상되기보다 개인적인 갈등이 영화 내내 축적되며 파멸로 인도한다. 윤리적, 교훈적인 메시지를 제시하지 않는 그의 작품은 갈등의 원인이 개인의 선택을 통해 그 방향성이 강하게 결정된다는 지점에서 실존적인 경향이 강하다. 구조화되거나 메타적인 의미에서 언표되는 담론의 기원들도 해명되지 않고 별 근거가 없다. 그저 부딪히는 상황에 따라 선택하는 인간만 존재할 뿐이다. 선택이라는 실존적인 의무가 그의 영화 안에서 회전할 때 몽타주는 천천히 움직인다. <뉴 오더>(2020)가 프랑코 작품에 있어 가장 급진적인 움직임을 제조했던 사례라는 점을 제외한다면, 많은 쇼트를 활용하지 않는 그의 영화의 리듬감은 대체로 정체되어 있다. <뉴 오더>가 그의 영화의 역량을 리듬과 속력으로 피력하고 있다면, <썬다운>(2021)은 초현실적인 환영, 일몰이라는 메타포를 이용해 또 다른 영화적 가능성을 공언한다. 이번 <썬다운>의 주연배우인 팀 로스는 <크로닉> 때와 같이 속도를 다시금 재조정한다.

 

ⓒ 엠엔엠인터내셔널

일몰의 부재

노년의 후반전을 상징하는 듯한 일몰의 의미는 작품에서 발산하는 위치와 속도를 배열하는 역할을 감당한다. 영화의 제목과는 무관하게 일몰이 부재하다는 시점에서 모든 이야기의 총체는 잠재하고 있는 메타포에 대한 의문으로 집약된다. 일몰의 직접적인 등장은 초반에 해먹에 누워 휴가를 누리는 닐 베넷(팀 로스)의 모습을 제외하고는 없다. 도살장 운영으로 성공한 사업가 집안인 닐 베넷과 동생 엘리스 베넷(샤를로트 갱스부르)은 잠시 휴가를 나와 한적한 시간을 보낸다. 고급 리조트에서의 휴가는 그들의 위치를 대변한다. 높은 고도에 위치한 리조트의 주변부는 하늘, 바다로 연결된 파라다이스다. 이곳은 무엇이든 가능한 무한한 장소이자 그들의 직위를 나타내는 상징이기도 하다. 마음껏 수영을 할 수 있는 환경, 새소리를 들으며 받는 야외 마시지, 고요한 분위기에서 잠을 청하기도 하고, 다이빙 쇼를 감상할 수 있는 상류층의 삶은 이런 모든 위치적 형상을 포괄한다.

그러나 한 사건으로 인해 닐이 가진 친족성은 모두 뭉개져 버린다. 갑작스러운 그의 어머니의 사망소식을 들은 엘리스는 황급히 비행기를 타기 위해 리조트를 '내려'간다. 이 하강은 삶의 일몰처럼 잠입한다. 여권이 분실되었다는 닐의 거짓말로 시작되는 가족의 분란은 관객에게 당혹감을 주지시킨다. 이상하게도 여권을 찾으려는 일말의 행동도 하지 않는 닐은 오히려 리조트가 아닌 해변가 근방에 있는 초라한 호텔에 장기 투숙을 한다. 이곳은 멕시코 서쪽에 위치한 아카풀코(Acapulco)해변으로 화려한 장소로 유명하다. 하지만 미셸 프랑코는 이 지역에서도 화려하지 않고 소탈한 인상을 주는 곳을 의도적으로 선정해 고급 리조트와의 차이를 두려고 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후 닐은 해변에 떡하니 앉아 홀로 맥주를 마신다. 그러나 그의 표정에는 행복감과 기쁨보다 피로가 역력하다. 그는 엘리스의 전화와 메시지를 답변하지 않고, 계속해서 자신의 반복적인 일상을 살아간다. 그러다 베레너스(아주아 라리오스)라는 여인과 사랑에 빠진 닐은 마을의 일상에서 결국 도주할 수 없게 된다. 그의 일상을 빈번히 지시하는 태양은 마치 일몰이 오지 않도록 계속해서 유보되는 욕망의 형태로 관측된다. 일몰이 오지 않도록, 아니 관객에게 그 일몰을 허용하지 않도록 밤마다 호텔 방에서 붉고 푸른 조명으로 이를 은폐한다. 결국 끝까지 일몰은 영상으로 기록되지 않는다.

닐의 삶이란 엘리스가 살해되는 사건을 기점으로 그가 과감히 포기했던 상속금과 친족관계와도 관계없이 삶을 투철하게 비추는 태양만으로도 충만했던 것일까. 다만 고급리조트에서 하강한 그가 마을로 내려와 마을의 전경이 보이는 가장 높은 호텔의 거주했던 것은 그의 무의식에 자리한 시선의 높은 방향 때문일까. 어쨌든 닐은 영화 내내 일몰이 아닌 태양을 본다.

 

ⓒ 엠엔엠인터내셔널

환각의 출현

정신의학에서 익숙지 못해 발생하는 환각 증세를 '썬다운'이라는 동사로도 사용된다는 측면에서 위에 상술했던 내용과 더불어 의식과 무의식이라는 이중적인 요소를 부가한다. 그의 공감할 수 없는 행위가 이런 질병으로부터 촉발되었다고 한다면 이 시점으로부터 서사는 불분명한 채로 머물 것이다. 그럼에도 환각의 출현은 의식을 추적할 수 있는 수단으로 점철된다. 그의 상태를 암시하는 윙윙거리는 비디제시스 사운드와 태양은 그의 감정과 신체 상태를 포착할 수 있는 추가적인 힌트이기도 하다.

영화의 도입부, 중 후반부에는 각각의 생선과 조개와 같은 해산물과 돼지의 존재를 응시하는 닐 베넷의 모습이 등장한다. 아가미만 뻐끔거리는 생선, 해체되어 뼈만 남은 생선, 먹힐 준비를 하는 조개들, 해변을 서성거리는 돼지 무리와 닐 앞에 도살당한 돼지 등이 실제와 환각을 넘나들며 프레임을 채운다. 이 동물은 삶에 억류된 인간의 실존을 반사하는 장면으로 회귀하면서도 닐이 갖고 있는 선택으로서 다시금 촉구된다. 전두엽에 위중한 질병을 앓고 있던 닐은 병원에서 자신을 지키는 사랑하는 베러너스를 떠난다. 그의 걸음이 당도한 것이 어디인지, 그는 무엇을 의도하고 있는 것인지와 같은 물음은 어둠으로 인해 생략된다.

어떠한 빛도 보이지 않는 심연 뒤에 그다음 쇼트는 태양, 해변, 그리고 집이 프레임에 걸쳐진다. 그가 선택한 건 이 세 가지다. 어둠이 없는 세계, 그의 실존에는 일몰이 없다.

헤겔의 법철학에서 언급되는 유명한 문구가 있다.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황혼 녘에 날아오른다"는 말이다. 먼저는 아침부터 낮까지 활발하게 움직이는 사람들을 관찰하더라도 그들을 적확하게 알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일이 끝난 '황혼 녘'이 될 때 현명한 평가가 가능해진다는 이 어구에는 <썬 다운>, '일말'의 묘한 소격효과가 병치 된다. 우리는 그의 황혼 녘을 볼 수 없었다. 또한 우리는 날의 행위의 의도를 끝까지 알 수도 없었다. 오로지 그의 일상에서 유일하게 남긴 건 돼지와 같이 해체된 껍데기인 셔츠 하나뿐이었다. <크로닉>에서도 팀 로스가 차에 치인 이후에 그의 행방이 직접적으로 묘사되지 않듯이 <썬 다운>에서도 그는 유령이 되었다.

[글 이현동, Horizonte@ccoart.com]

 

ⓒ 엠엔엠인터내셔널

썬다운
sundown
감독
미셸 프랑코
Michel Franco

 

출연
팀 로스
Tim Roth
샤를로뜨 갱스부르Charlotte Gainsbourg
헨리 굿맨Henry Goodman
아주아 라리오스Iazua Larios
사무엘 보텀리Samuel Bottomley

 

배급|수입 엠엔엠인터내셔널
제작연도 2021
상영시간 82분
등급 15세 관람가
개봉 2022.08.31

이현동
이현동
 영화는 무엇인가가 아닌 무엇이 아닌가를 질문하는 사람. 그 가운데서 영화의 종말의 조건을 찾는다. 이미지의 반역 가능성을 탐구하는 동시에 영화 안에서 매몰된 담론의 유적들을 발굴하는 작업을 한다. 매일 스크린 앞에 앉아 희망과 절망 사이를 배회하는 나그네 같은 삶을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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