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우' 안드레아 아놀드의 동물농장과 인간
'카우' 안드레아 아놀드의 동물농장과 인간
  • 이현동
  • 승인 2022.08.17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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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균질한 눈빛을 순수하게 '봄'(see)은 가당한가"

'안드레아 아놀드'가 동물을 직접적인 제목으로 삼은 영화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첫 단편인 <밀크>(1998)에 이어 두 번째 단편 <도그>(2001)가 그 대표적인 사례인데, 이는 그녀가 세계를 측량하는 방식이 압축된 결과물로 인간과 동물의 알레고리 결합을 통해 사회구조, 남녀 사이의 갈등과 친족 관계의 불능성에 대한 어두운 이미지를 구현한다. <도그>에서는 불안정한 가정에서 학대당하는 여성이 들판에서 한 남성과 성관계를 하려는 도중 등장하는 강아지를 살해하는 남자와 이어지는 무상한 강아지의 눈빛은 여자의 감정과 연동된다. 이 모습을 지켜본 여성은 순간 남자를 뒤로한 채 집으로 돌아가 다시 한번 학대를 당한다. 그때 강아지가 짖는 소리를 흉내 내는 이 장면에서 체감되는 메시지의 감도는 함축적으로 그의 여성 서사의 시작을 알리는 표상적 이미지다.

이 표상은 종종 그녀의 영화에서 인간이 아닌 다른 생명체들이 등장하면서 여성과 남성의 불의한 관계를 배태하는 동기로 작동한다. 강아지, 말벌, 곰, 말, 거북이 등이 그 사례들이다. 먼저 첫 장편인 <레드 로드>(2006)에 이어 <피쉬 탱크>(2009), <폭풍의 언덕>(2011), <아메리칸 허니: 방황하는 별의 노래>(2017) 까지의 모든 서사는 어떤 방법이 되었든 남성의 폭력과 학대로 상처를 입은 '여성'이 등장한다. 그것은 흥미롭게도 <카우>에서도 마찬가지다. <카우>에서 유일하게 이름을 갖고 등장하는 루마도 '암소'라는 점에서 그렇다. 인간으로부터 착취당하는 루마의 형체는 무력하게도 어떠한 반항도, 어떠한 말도 발설하지 못한다.

늘 그렇듯 안드레아 아놀드가 세계를 바라보는 방식은 고유하게도 동물의 삶을 다룬 <카우>에서 역시 계승된다.

 

ⓒ 그린나래미디어

응시되고 응시하고

그녀가 주로 활용하는 촬영기법으로 핸드헬드와 클로즈업이 자주 사용된다는 지점에서 리얼리즘의 미학을 겨냥한다. 더군다나 <카우>는 스크립트가 없이 기획된 작품이기 때문에 리얼리즘은 필수불가결하게 서사를 견인하는 하나의 용법으로 통합된다. 영화는 주로 클로즈업을 통해 루마의 감정을 묘사한다. 감정의 눈높이를 맞추기 위한 앵글의 하강은 감독의 의도가 소의 얼굴에 담겨있음을 짐작하게 한다. 소의 행동이나 감정은 감독의 디렉션의 영향에서 자유하다는 점에서 번역되어야 하는 일종의 언어이기도 하다. 즉 관객에게 있어 루마의 감정은 추정의 영역으로 간주된다. 동물의 내면에서 진행되는 감정의 에너지를 포착한다는 건 불가분하게도 그의 행위의 언어를 번역할 수 없이 프레이밍된 시간의 흐름과 배경의 조작으로만 작동되는 파편이라는 지점에서 우린 직관을 활용하여 동물의 정서를 파악할 수밖에 없다.

안드레아 아놀드의 영화에서 생명체의 비애를 만드는 원천으로 클로즈업되는 카메라 앵글의 진행은 기이하게도 루마의 판별이 불가능한 표정과 동공을 모색한다. 그녀는 영화에서 암소 루마를 촬영할 때 느꼈던 지점에 대해 이렇게 표현했다. “I think her face was everything, her eyes were everything.”(Science and Film Interview) “나는 그녀의 얼굴과 눈이 전부라고 생각한다”라는 말은 감독이 도달한 이미지의 방식이 시선에 집약되어 있음을 선언한다. 그렇다면 이는 누구의 시선인가. 그것은 감독으로부터 응시된 시선이 결과적으로 그 시선을 응시하는 대중들에게 주체적 언어로 전송된다는 점에서 <카우>의 모든 레퍼런스는 유연한 기능성과 가능성으로 루마와 환경을 응시하게 한다.

 

ⓒ 그린나래미디어

루마가 당도하는 곳

이와 유사한 양식을 구사하는 션 베이커(Sean Baker)의 작품들, 그중 아이폰5S로 촬영된 <탠저린>(2015)과 같은 작품이 종국에 서사양식을 희망적으로 외부화하는 것과는 별개로 안드레아 아놀드는 어떠한 긍정적인 답변을 하지 않는다. 해갈되지 않은 서사의 연장은 그녀의 대표적인 초기 작품인 <레드 로드>에서 잘 드러낸다. 교통사고로 가족을 잃은 미망인 여성인 재키(케이트 딕키)는 그 사건의 원흉이 되는 클라이드(토니 커렌)에게 복수하기 위한 작전을 성공시키지만, 재키의 어떠한 긍정적인 제스처도 발견할 수 없는 엔딩에서 그녀는 현실의 배덕함과 쓸쓸함을 더욱 배가한다. 또한, 전작인 <아메리칸 허니>의 축제를 벌이는 역설적인 엔딩 장면도 짐작해보건대 거북이가 물로 서서히 전진하는 과정과 새벽의 은밀한 빛을 유지하는 공간적 이미지를 배경으로 희미한 실루엣만 남은 주인공 스타(사샤 레인)의 침식과 부활은 아메리칸이라는 허위 의식의 메타포를 강제하고 반대로 도약하기도 하는 왕복의 진행으로 이행된다.

이는 <카우>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카메라가 담는 젖소 루마의 행위와 루마를 기준으로 발화하는 패닝적 시선은 무한하게 이탈되는 프레임의 고상함을 단 한 번에 포착할 수 없게 설계된 지적 결과물이다. 특히 후반부에서 루마의 후경을 통해 발산되는 인상적인 카메라 무빙은 더 이상 착유가 불가능한 루마가 농장에 아무런 소도 없는 암울하고도 비참한 시선으로부터 무심하게 그 마지막이 묘사된다. 이용 가치가 완전히 소멸된 루마의 걸음이 끝내 당도한 장소는 동족들이 그녀의 죽음을 목격할 수 없이 설계된 무상의 장소이다. 곧이어 등장하는 마지막 시퀀스는 루마의 송아지가 다른 소들과 함께 끊임없이 벌판을 달음질하고 있는 모습이 포커스된다. 이는 이 영화의 장소는 끝나지 않고 반복될 루마의 장소를 예견하는 듯이 무한히 달린다.

 

ⓒ 그린나래미디어

기계가 잠입한 농장의 풍경

약 9년 전에 시작된 영화 <카우>는 그녀의 어린 시절 자연과의 강렬한 관계를 맺었던 기억을 회상하며 진행된 프로젝트다. 안드레아 아놀드는 4년의 촬영 동안 농장에 거주했던 것이 아니라 간헐적으로 머물면서 동물들의 자연적인 모습을 촬영했다.(가끔 소들은 기분에 따라 카메라를 머리로 박기도 했다고 한다) 시간의 흐름을 따라 출생과 짝짓기, 수유와 착유, 그리고 검진 등의 선형적인 일상의 이미지는 이야기의 직접적인 형체를 포착할 수 없도록 설계된 지적 이미지의 현현이다. 여기서 지적 이미지는 우리의 지성을 동원해야만 하는 불가항력적 요소를 대변한다면, <카우>는 전적으로 영원히 소멸되지 않을 것처럼 움직이는 삶의 현상학적 보고이다.

영화에서 착상하는 대부분의 이미지는 예측이 불가하다. 아까 언급했듯이 추정의 영역으로 이미지가 좌초될 때, 우리는 판단중지(epoché)를 통해 루마에 등장하는 자연 풍광과 농장이란 두 가지 이미지가 가진 잠재적인 코드를 번역할 수 있는 가능성이 투사된다. 소를 모는 오프닝 씬은 건조하게 움직이는 농장의 모습을 담는다. 어떠한 감정도 개입되지 않는 기계적 어조로 소들을 인솔하는 사람들의 얼굴은 정확하게 묘사되지 않는다. 초점이 맞춰지지 않는 흐릿한 앵글 속에서 점차 선명해지는 소의 얼굴과 양수가 뒤섞인 새끼를 출산하는 일련의 과정, 그리고 새끼의 몸을 청결하게 하는 암소의 혓바닥으로 전개되는 긴 롱테이크는 생명의 숭고함과는 별개로 아무런 극적인 효과도 주어지지 않는 일상일 뿐이다. 농장의 이미지는 바로 이런 이미지다.

생명의 숭고함이 추락된 세계, 이제는 인간의 손이 아닌 착유기를 이용한 기계적 착유, 검진을 통해 억지로 부여받은 건강성, 그리고 인공적으로 가공된 사료 등은 이런 공고화된 산업의 움직임들을 반복해서 보여준다. 사운드의 활용 또한 이 세계의 움직임을 재현하는 또 하나의 힌트이다. 곳곳마다 편집되지 않는 동시녹음으로부터 도입되는 사운드는 화면 속에 직접적으로 프레이밍되는 것이 아닌 외적으로 부과된 다른 차원의 음질로 인식된다. 이 팝스러운 음악은 작위적으로 소들의 착유나 짝짓기가 이뤄질 때 사용되는데, 이러한 양식은 오로지 인간의 위무(威武)를 비밀스럽게 선언하는 코드화된 양식이다. 소의 출산을 위해, 착유를 위한 규정된 이러한 양식은 <카우>에서 무차별적으로 중첩되고 은밀하게 우리의 의식에 침투한다.

소들에게 새겨진 번호는 불가피하게도 또다시 호명되고 그들이 시간으로부터 자유 할 수 없음을 예견한다. <카우>에서 유일하게 존재하는 루마의 이름도 결국 소거되어버린 자본의 세계에서 송아지들의 발걸음은 기어코 연장될 일상의 가치에 대한 물음을 우리에게 쥐여준다. <카우>는 안드레아 아놀드가 바라보는 세계의 어둠, 갈등이 감지되는 무심하고도 참혹한 일상이 깃든 현장을 추격할뿐더러 이 동물농장과 인간을 병치시키면서 우리는 그녀의 작품에서 설정된 동일한 결말을 본다.

[글 이현동, Horizonte@ccoart.com]

 

ⓒ 그린나래미디어

카우

COW
감독
안드레아 아놀드
Andrea Arnold

 

수입|배급 그린나래미디어
제작연도 2021
상영시간 94분
등급 12세 관람가
개봉 2022.08.11

이현동
이현동
 영화는 무엇인가가 아닌 무엇이 아닌가를 질문하는 사람. 그 가운데서 영화의 종말의 조건을 찾는다. 이미지의 반역 가능성을 탐구하는 동시에 영화 안에서 매몰된 담론의 유적들을 발굴하는 작업을 한다. 매일 스크린 앞에 앉아 희망과 절망 사이를 배회하는 나그네 같은 삶을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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