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친 능력' 마지막 컷의 부재는 니콜라스를 위한 것이다
'미친 능력' 마지막 컷의 부재는 니콜라스를 위한 것이다
  • 변해빈
  • 승인 2022.07.11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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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서드 '하는' 캐릭터, 액션 '되는' 배우"

'액션'과 메서드

<미친 능력>에서 배우 '니콜라스 케이지'(이하 니콜라스)는 주인공 '닉 케이지'(이하 닉)를 연기한다. 닉은 니콜라스의 90년대 전성기 시절과 흥행 부진을 앓는 최근의 입지를 덧입힌 캐릭터로, 이를테면 페이크 다큐멘터리와 유사한 요소가 가미된 셈이다. 캐릭터와 배우의 유사성과 달리, 영화의 이야기는 실제 배우의 상황과 역방향을 그리는데, 몰락한 중년 배우 닉 케이지가 무비 스타로 귀환하며 전성기를 되찾는 식이다. 닉을 캐스팅 순위에서 밀어낸 업계 관계자들을 악역으로 치부하기엔 미약했는지, 여기에 납치된 딸을 구하는 영화 <테이큰>(2008) 속 아버지 정체성이 더해지니 전형적인 영웅 서사 속 클리셰를 따라 예상대로 흘러간다.

 

ⓒ ㈜제이앤씨미디어그룹

<미친 능력>의 클리셰는 장르와 캐릭터 외에도 배우의 메서드 속에 개입돼 있다. 배우를 직업으로 한 배역을 다룬 영화에선 메서드(method)를 위한 고행이 발견된다. 예컨대 줄리안 무어가 연기한 <맵 투더 스타>(데이비드 크로넨버그, 2014)의 '하바나'는 메서드에 과잉 집착하는 인물이다. 생활과 일정을 배역에 맞춰 살아가는 하바나는 테라피 요법까지 배역에 필요한 방식으로 설계하는데, 신체의 강박적인 직접 접촉(마사지사의 손과 고스트의 기운)을 통한 트라우마의 재현이 메서드의 미로로 제시된다. 하바나의 메서드는 배우와 배역의 두 신체를 접합하는 방식이며, 줄리안 무어는 이중 프레임 사이에서 두 종류의 연기술, 두 번의 '액션과 컷'(연기의 시작과 끝)을 겪는다.

닉에게도 메서드를 위해 '액션'이 외쳐지는 장면이 있다. 닉은 카르텔 조직원을 소탕하려는 CIA의 가짜 스파이로 투입된 상태다. 그러다 마비를 유발하는 독극물에 접촉해 목숨이 위태로워지는데, 이때 CIA 요원(티파니 해디쉬)의 "액션"이라는 외침이 닉에게 일종의 경련을 일으켜 해독제를 스스로 주입하게 만든다. 영화의 액션은 닉의 '액션'에 대한 육체의 자동 반사된 리액션으로 벌어진다. 인질극과 총격전에 놓인 닉이 궁지를 벗어나는 방법 역시 역할극에 놓인 배우로서의 자기 육체에 대한 상상이다. 닉의 탁월한 연기력은 심리전이 아니라 스파이 분장을 한 채 총과 칼을 든 육체전에 편중되어 있다. 소름 돋게 닮은 마네킹 얼굴과 특정한 도구의 동형성이 감정 모델로서, 실제 니콜라스라는 배우의 90년대 시절의 이미지로 기호화된다.

극 중 닉의 연기력이 길거리 오디션이나 하비(페드로 파스칼)와의 즉흥 역할극에서 발휘되는 점도 흥미롭다. 하바나가 한없이 리얼리티에 가까워지려다(심지어 어린 시절 자신에게 트라우마를 안긴 존재에 몰입해야 하는 고행을 욕망한다) 환영에 시달린다면, 닉은 영화 속 영화, 곧 허구적 설정을 덧입는 방식으로 자기 자신을 재현한다. 따라서 CIA가 닉을 스파이로 위장시키기 위해 언급한 '납치된 딸을 향한 부성애'는 메서드가 아니라, 하바나의 테라피 요법과 같은 '메서드를 위한 환경'이다. '미친 능력', 즉 메서드는 니콜라스가 액션하는 기계적인 몸의 시뮬라시옹 혹은 전설적인 배우에 대한 관객의 기억이 접합되길 바라는 '영화의 권능' 같다.

 

ⓒ ㈜제이앤씨미디어그룹
ⓒ ㈜제이앤씨미디어그룹

'컷'이라는 박수 소리

닉은 영화의 허구성을 누릴 수 있지만 현실로 되돌아갈 수 없는 존재이기도 하다. 하비의 생일 파티가 벌어지는 외딴 공간은 닉을 위한 호사스러운 휴양지이면서 카르텔 조직 소탕 작전을 완수해야만 하는 탈출 서사의 퀘스트로 작동한다. 이는 실화로 알려진 연이은 흥행 실패나 빚더미, 톱스타의 삶이 주는 속박에서 더할 나위 없는 '무비 스타'로 부활하는 영화의 허상을 누려보지만, 실재는 그렇지 않다는 괴리를 자조하는 위치에 선 니콜라스를 떠올리게 한다. 역설적으로 영화의 오락성이 추구한 웃음은 90년대 니콜라스에 관한 연상 작용에 의한 것이지만, 영화라는 허상을 걷어내자 드러나는 자조적 웃음은 상이한 두 개체(배우와 캐릭터)와의 괴리감이 좁혀질 때가 아니라, 괴리감이 증량될 때 가능해진다.

결과적으로, 하비의 휴양지에서 벌인 닉의 우스꽝스러운 역할극은 스크린 위의 액션 영화로 재탄생한다. 영화제 극장을 가득 메운 관객들의 박수 소리는 '몰락한 배우'라는 굴욕적인 타이틀을 불식시킨다. 서로를 이해할 수 없던 가족들의 따뜻한 응원과 지지 속에서 닉은 남 부러운 것 없는 미소도 지어보게 된다. 그러나 이 박수 소리는 닉을 아니, 니콜라스를 메서드 속에서 빼내는 장치이기도 하다. 국내 개봉 당시 '참을 수 없는 무게의'(The Unbearable Weight of)라는 원제의 수식은 생략되었지만, 스크린 속엔 그대로 남아 있었다. '미친 능력'이 영화제의 박수 소리에 둘러싸인 닉을 향한 말이라면, '참을 수 없는 무게'란 그런 능력에서 끊임없이 자신을 분리해야 했던 니콜라스를 위한 말이다.

<미친 능력>에서 "액션"(CIA 요원의 대사)은 외쳐졌지만, '컷'은 들리지 않았다. 그러니 다시 묻게 된다. 배우 니콜라스는 누구를 메서드 하는가. 환영에 시달리며 위태롭게 버티는 중년 배우, '미친 능력'에 대한 믿음으로 화려하게 귀환한 무비 스타, 혹은 시시한 속편 영화의 감동을 알아보는 유일한 한 사람의 취향 속에 안착한 남자. 니콜라스 케이지는 닉 케이지의 세계에서 스스로 '컷'을 외칠 수 있었을까.

[글 변해빈, limbohb@ccoart.com]

 

ⓒ ㈜제이앤씨미디어그룹

미친 능력
The Unbearable Weight of Massive Talent
감독
톰 고미칸
Tom Gormican

 

출연
니콜라스 케이지
Nicolas Cage
페드로 파스칼Pedro Pascal
닐 패트릭 해리스Neil Patrick Harris
티파니 해디쉬Tiffany Haddish

 

수입 조이앤시네마
배급 (주)제이앤씨미디어그룹
제작연도 2022
상영시간 107분
등급 15세 관람가
개봉 22.06.29

변해빈
변해빈
 몸과 영화의 접촉 가능성에 대해 고민한다. 면밀하게 구성된 언어를 해체해서 겉면에 드러나지 않는 본질을 알아내고 싶다. 2020 제1회 박인환상 영화평론부문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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