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집은 어디인가' 경계선 위의 삶, 그 진실을 찾아서
'나의 집은 어디인가' 경계선 위의 삶, 그 진실을 찾아서
  • 이지영
  • 승인 2022.04.11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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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난민의 삶과 연결되는 다큐-애니메이션, 현실과 재연의 경계"

요나스 포헤르 라스무센 감독의 <나의 집은 어디인가>는 아프가니스탄 난민 출신으로 덴마크에서 살아가는 '아민'(가명)과 그의 가족의 생존기를 다룬 고백록이다. 난민이란 누구인가? 이들은 어떤 환경이 갖춰졌을 때, 신변에 대한 걱정 없이 진실에 가장 가까운 증언을 할 수 있을까? 난민들은 경계 위에 있는 자들, 안전과 안보의 사각지대에 있는 사람들이다. 이들에게는 자신을 지켜주는 경계라는 것이 없다. 어느 곳보다 안전한 장소여야 하는 집은 낯선 무장 세력에게 침범당하고, 난민 보트의 컨테이너에는 죽음과 같은 바닷물이 넘실댄다.

이러한 난민들의 삶을 투영하기라도 하듯 <나의 집은 어디인가>는 형식적으로 다큐멘터리와 애니메이션이라는 장르의 경계를 유유히 넘나든다. 과거에 대한 모든 재연은 애니메이션으로 묘사되고, 그 위에서 성우들이 실제 인물을 연기한다.(인터뷰에 응해준 아민과 가족들의 신변을 안전하게 보장하기 위해 이들의 이름과 지역 설정을 일부 바꾸기도 한다.) 그러나 이 이야기가 엄연히 존재한 실화임을 상기하듯이, 중간마다 작은 화면비로 가장자리를 둥그렇게 궁글린 형태의 다큐 푸티지가 삽입되어 있다.

이렇듯 장르 혼종적인 특성은 인터뷰이를 향한 세심한 배려이자 이들의 진실에 접근하고자 하는 노력의 발로이다.

 

ⓒ Final Cut for Real, Sun Creature Studio 

아민이 회고하는 최초의 어린 시절은 1980년대 말로 거슬러 올라간다. 전쟁이 민중의 삶을 파괴하기 전, 80년대의 문화적 정서를 상징하는 밴드 A-ha의 음악 'Take on me'가 흘러나오며 카불의 대학생들이 동시대 여느 도시의 학생들처럼 활력 있게 걷고 있는 모습이 다큐 푸티지로 나온다. 이어서 애니메이션으로 화면이 전환되고, 해맑게 레이스 원피스를 입은 채 헤드셋으로 음악을 들으면서 거리를 활보하는 소년 시절의 아민이 등장한다. 그리고 어린 시절 추억의 중심에는 '카불의 고향 집'이 자리잡고 있다.

도입부에서 감독은 아민에게 '집의 의미가 무엇인지' 묻는다. 한 사람에게 집이 가지는 의미는 무엇인가? 선사시대부터 인류의 DNA 속에 각인되어 있듯이, 집은 외부의 위협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는 최후의 보루이며, 삶의 터전을 일구는 가장 기초적인 공간이다. 그리고 정신적으로는 언제든 환대받고 아무런 걱정 없이 쉴 수 있는 영원한 안식처일 것이다. 그러나 나지불라의 공산주의 정권이 아민의 아버지를 반동분자로 체포해 간 비극적인 날을 기점으로, 아민과 그의 가족에게 '집이 가지는 본연의 의미'는 무력화되기 시작한다. 그들에게 집은 경찰과 군대가 불시에 들이닥칠 수 있는 취약한 사면의 벽에 지나지 않는다. 사회나 국가적으로도 안보의 경계선은 희미해진다.

언제까지나 건재하리라 믿었던 소련의 공산주의는 붕괴를 앞두고 있고, 장기화된 전쟁을 치른 소련군이 아프가니스탄에서 끝내 철수하게 된다. 이때 수도에 안보 공백이 생긴 틈을 타서 무자헤딘이 카불을 점령하고, 나지불라 정권의 군대와 대치하여 발발하게 된 것이 제1차 아프가니스탄 내전(1989-1992)이다. 정부와 반군을 가르는 전선이 계속해서 이동하면서 끔찍한 혼돈과 살상을 초래하게 된다. 이 1차 아프간 내전은 이후 2차 아프가니스탄 내전, 미국-아프가니스탄 전쟁, 가깝게는 2021년의 아프간 내전으로까지 이어지며 피로 얼룩진 아프간의 현대사로 이어진다.

 

ⓒ Final Cut for Real, Sun Creature Studio 

아민의 가족들은 테러리스트 세력이 수도를 점령하자, 고향 집을 떠나서 유럽으로 망명하기로 한다. 아민 가족이 처음 망명하는 곳은, 구소련 붕괴 직후 물가 상승과 물자 부족을 비롯하여 총체적인 사회 혼란을 겪고 있던 시기의 러시아였다. 가족들이 모스크바에서 임시로 거주한 아파트는 부패 경찰의 표적이 되기 마련이고, 추방되지 않기 위해서는 돈을 속수무책으로 갈취당할 수 밖에 없다.

이곳을 떠나 북유럽으로 망명하기 위해 가족들이 목숨을 걸고 국경을 넘는 장면은, 거친 필치의 애니메이션으로 묘사되었음에도 그 참혹함을 다 숨기지 못한다. 이동이 힘든 노인과 불이 들어오는 운동화를 신고 있는 어린아이는, 탈출에 도움이 되지 않으면 즉시 제거될 대상이 된다. 사람이 도망칠 수 없도록 질식할 정도로 폐쇄적인 컨테이너, 구조 장비도 하나 없이 바닷물이 그대로 들이치는 허술한 보트는, 삶보다 죽음에 더 가까워 보인다. 그렇게 버텨낸 삶의 끄트머리에서 구원의 손길이 아니라 차가운 카메라 플래시만 터지는 상황 역시도 부조리함의 극치다.

우여곡절 끝에 덴마크로의 망명에 성공한 아민은 러시아 밀입국자가 일러준 시나리오대로 아프가니스탄에서 피난 중에 일가족이 몰살당했다고 증언한다. 말로써 살아있는 가족의 존재를 죽여버려야 하는 잔인한 통과 의례를 치르고 나서야 소년은 사회의 새로운 구성원으로 받아들여진다. 이를 묘사한 장면이 우리가 영화 시작에서 보았던 달리기 장면인데, 실은 이것은 아민이 실제로 목격한 것이 아니라 타의로 조작된 기억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이 장면은 평생에 걸쳐서 아민의 정신을 지배하며 그가 새롭게 맺는 관계에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

가족들이 살아있냐는 감독의 질문에 그는 긴 주저 끝에 그렇다고 답한다. 그러자, 인터뷰어인 감독은 다행이라고 말한다. 이러한 행운, 다행스럽고 단순한 진실을 입 밖으로 내기까지, 우리는 그가 누군가에게 진실을 말했을 때 도리어 약점을 잡히고 추방될 수 있다는 죽음과 같은 공포에 시달렸음을 또한 알게 된다. 그는 아버지가 연행된 이후 누군가 문을 두드릴 때 두려움에 떤 것처럼, 일련의 사건을 겪고는 마음의 문을 두드리는 누구도 믿지 못하고 모든 것을 걸어 잠그고 살아왔던 것이다.

 

ⓒ 왓챠

아민에게는 난민 출신으로 유럽 사회에 편입해야 하는 과업 외에도 자신의 정체성을 발견하고 정립해야 하는 숙제가 하나 더 있다. 스스로 동성애자임을 받아들이고, 가족들에게 인정받는 것이다. 남다른 의미로 장 클로드 반담을 좋아하고 격투기 선수를 선망하던 어린 소년은 자신의 성 정체성에 대해 깊게 고민할 새도 없이 가장 고난스러운 여정에 투입된다. 하지만 이 척박하고 위험한 환경 속에서도 기적처럼 그의 자아는 스스로 발아하고 꽃을 피운다.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두 장면이 있다.

아민은 러시아에서 아버지의 유품인 시계를 경찰에게 강탈당할 때 별다른 감정적인 동요를 느끼지 못한다.(강간당할 위기에 처할 소녀 앞에서 사지가 마비되어 굳듯이) 그러나 2번째 망명을 시도할 때, 아민의 감정은 이보다 훨씬 더 기민하게 반응한다. 그는 같이 망명길에 오른 동행인에게 끌림을 느끼고, 극도의 긴장 속에서도 서로 교감을 나눈다. 헤어지기 전 동행인이 선물해 준 목걸이를 현재시점까지 차고 있는 것으로 보아 이 인물은 아민에게 평생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고향에서 아버지가 남긴 정신적인 유산이나 그의 원래 뿌리는 이제 희미해지는 대신에, 그는 어디도 아닌 길 위에서 자신의 새로운 정체성을 발견하고, 누군가를 향한 유대감을 느끼게 되었음을 알 수 있다. 불안할 때마다 목걸이를 습관적으로 만지는 그의 행동은, 시계에서 목걸이로 상징되는 이러한 전환이, 아민이 새로운 사회에서 버티고 살아남기 위해 꼭 필요한 과정이었음을 항변해주고 있다.

 

ⓒ 왓챠

우여곡절 끝에 덴마크에 도착한 아민은 '동성애자’라는 단어조차도 없던 아프가니스탄에서 자랐기에, 초반에는 자신의 동성애적 성향을 약물로 치료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근본적으로는 어렵게 지켜낸 가족들에게 마저 외면당할 수 있다는 두려움이 기저에 깔려있음을 알 수 있다. 가족이 자신을 멀리할 수 있다는 걱정과 자신의 젠더 성향을 숨기고, 친구나 사랑하는 사람을 잃을 수 있다는 근심 탓에 살아 있는 가족의 이야기를 하지 못했던 그의 내면은 언제나 괴로운 방황 그 자체였을 것이다. 아민의 커밍아웃, 그리고 큰형의 손에 이끌려 게이 바에 가는 장면은 분명 전체 영화를 통틀어 몇 안 되는 커다란 자유와 해방의 순간이다.

형제들의 희생을 통해 자신이 살아남았다고 생각하는 그는 평생 큰 책임감을 느끼고 일과 공부에만 매진하여 커리어적으로 성공한 삶을 살 게 된다. 그러나 연인인 캐스퍼가 집을 사서 정착하자고 제안했을 때 그는 오랜 시간을 주저한다. 뉴욕 학회에서 성공적으로 발표를 마치고 호텔 방 안에 들어온 아민은, 삶의 선택지로부터 잠시 도망친 사람처럼 보인다. 어쩌면, 이 영화가 없었더라면 그의 삶은 끝까지 도망침의 연속이었을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유년기부터 현시점까지, 트라우마로 점철된 자신의 과거를 어딘가에 전부 털어놓은 그에게는 중요한 변화가 일어난다.

4개월 뒤, 연인들이 정착한 아름다운 집의 풍경이 우리 눈앞에 나타난다. 과거의 이야기는 그 실상이 너무 참혹하였기 때문에 애니메이션이나 삽화로 치환될 수 없었지만, 이제 모든 것이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다는 듯, 연인의 일상은 이제 애니메이션에서 다큐멘터리 영상으로 오버랩 된다. 하지만 여전히, 화면 속에 두 연인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앞마당의 산딸기밭을, 둘의 터전을 어떻게 가꿀 것인지 의논하는 음성만 들릴 뿐이다. 그토록 바랐던 평범한 일상이 다시 찾아온 순간, 우리는 아민이 수십 년의 방황을 마치고 자신의 집으로 돌아왔음을 직감할 수 있다.

[글 이지영, karenine@ccoart.com]

 

ⓒ 왓챠

나의 집은 어디인가
Flee
감독
요나스 포헤르 라스무센
Jonas Poher RASMUSSEN

 

출연(voice)
다니엘 카림야르Daniel Karimyar
파르딘 미즈자데Fardin Mijdzadeh
밀라드 에스칸다리Milad Eskandari
벨랄 파이즈Belal Faiz
엘라하 파이즈Elaha Faiz
자흐라 메르와르츠Zahra Mehrwarz
사디아 파이즈Sadia Faiz
라시드 아이투가노프Rashid Aitouganov

 

수입|배급 왓챠
제작연도 2021
상영시간 89분
등급 12세 관람가
개봉 2022.04.07

이지영
이지영
《코아르》 영화전문기자.
 평이한 문장이지만 사색을 담은 글을 씁니다. 투박하고 건조한 문장으로 읽는 이의 마음을 따뜻하게 만들고 싶습니다. 글을 통해, 삶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진실의 일면에 다가가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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