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킹 리차드' 이야기는 실화를 어떻게, 얼마나 그려내는가?
'킹 리차드' 이야기는 실화를 어떻게, 얼마나 그려내는가?
  • 선민혁
  • 승인 2022.04.07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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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잘 맞춰진 밸런스로 전달하는 '감동 실화'"

<킹 리차드>가 어떤 소재를 다룬 영화인가에 대해서는 이것이 실존 인물과 실화를 기반으로 한 만큼, 꽤 명확하게 알려진 편이다. 세계적인 테니스 선수를 키워낸 한 아버지의 이야기.

그러나 영화를 보고 나면, 의외로 '<킹 리차드>는 어떤 이야기를 담은 영화인가'에 대해서 간단하게 이야기하기가 어려워진다.

ⓒ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

<킹 리차드>는 영화 <기생충>(2019)에 나오는 대사처럼 '다 계획이 있는' 한 남자 리차드(윌 스미스)의 이야기이기도 하고, 흑인 최초의 프로 테니스 선수로 시작해 세계적인 자리에까지 오르는 비너스 윌리엄스(사니야 시드니)의 이야기이기도 하며, 그녀와 같은 길을 걸어가지만 자신보다 먼저 월등한 성과를 내는 언니를 보며 경외심과 경쟁심, 열등감 등이 포함된 복잡한 감정과 함께 성장하는 세레나 윌리엄스(데미 싱글턴)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또한, 딸들을 키우며 자신이 할 수 있는 역할에 최선을 다하지만 남편과 갈등하기도 하는 리차드의 아내 오라신(언제뉴 엘리스)의 이야기이기도 하고, 자매의 재능을 알아보고 일반적이지 않은 리차드의 요구 사항을 수용하며 자매를 지도한 코치 릭 마치(존 번달)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이처럼 <킹 치차드>는 꽤나 여러 인물의 입장에서 이야기를 전개해 나아가다 보니, 관객인 우린 이 영화를 낯설게 느낄 수도 있다.

주인공이 고난과 역경을 이겨내고 결국 목표를 이루는 스토리에서 자연스럽게 예상되는 발단-전개-위기-절정-결말이 <킹 리차드>에서는 명확히 드러나지 않는다. 이 때문에 주인공이 무시 받던 과거를 이겨내고 찬란한 현재를 맞이했음에도, 그 과정이 그다지 극적으로 드러나지는 않아 관객들이 스토리 자체에서 카타르시스를 느끼기 어려울 수 있다. 하지만 영화가 취한 이러한 선택이 실패했다고 말할 수는 없다. 이 영화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확실히 관객에게 울림을 전달한다. 

 

ⓒ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
ⓒ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

효과적인 전달을 위한 합리적인 선택

<킹 리차드>와 마찬가지로 실화를 기반으로 한 영화 중 작년에 개봉한 프랜시스 아난 연출의 <프리즌 이스케이프>(2020)는 극단적인 인종차별 정책인 아파르트헤이트가 시행되던 시절의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인권운동을 하다가 투옥된 백인 주인공들이 탈옥을 하는 이야기를 다룬다. 이 영화는 매우 흥미로운 소재를 가지고 있음에도, 당시의 사회적 배경이나 인물들에 대해서 자세히 이야기하는 대신, 인물들의 탈옥 그 자체에 집중하여 '탈출 스릴러'의 장르적 재미를 극대화한다.

<프리즌 이스케이프>가 이미 존재하는 실화의 특정 부분에 포커스를 맞추는 방식으로 만들어진 영화라면, <킹 리차드>가 실화를 대하는 시선의 범위는 조금 더 넓어 보인다.

<킹 리차드>는 소재로 삼은 실화의 최대한 많은 부분을 담아내고자 한다. 리차드가 살아온 환경과 그가 가지고 있는 삶에 대한 신념, 자녀들에 대한 교육관, 성공에 거의 다다랐을 때 그에게 찾아온 변화와 그것을 극복하는 과정, 전문 코치 없이 아버지와 훈련하던 시절의 비너스, 세레나 자매와 최고의 코치 릭 마치의 트레이닝을 받으며 프로에 성공적으로 데뷔하는 비너스의 모습 등 영화는 시간적 배경의 범위 자체가 넓기도 하고, 주인공 리차드 이외의 여러 인물들을 조명한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영화의 런닝타임은 길어진다. 

 

ⓒ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
ⓒ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

그러나 2시간 24분의 러닝타임이 길게 느껴지지 않는다. <킹 리차드>의 스토리가 극적으로 전개되지 않더라도 지루하지 않고, 이 영화는 많은 이야기를 하려고 하지만 산만하지가 않다. 이는 영화를 구성하는 방식에 있어서 영화가 취한 선택들이 합리적이었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주인공이 역경을 헤치고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서사를 가지고 있는데, 리차드에게 존재하는 역경에는 실물이 없다. 리차드와 자매가 연습하는 코트에서 그들을 방해하고 리차드에게 폭력을 가하는 인물이 등장하긴 하나, 그는 이야기에서 금방 사라져버리며 리차드가 이루고자 하는 목표에 결정적인 장애물이 되는 메인 빌런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킹 리차드>의 서사에서 리차드와 자매가 나아가고자 하는 길을 방해하는 주된 빌런은 특정한 인물이나 세력이라기보다는, 그들이 살아가고 있는 세계에 존재하는 '인식'이다. 실물이 없는 이것은 어디에서나 주인공을 따라붙어 그를 방해한다. 백인 위주의 스포츠였던 테니스를 딸들에게 시키며 받는 선입견, 리차드 부부의 교육관을 좋지 않게 바라보는 주위 부모들의 시선, 그리고 이외에도 흑인이기 때문에 타인으로부터 받게 되는 편견 등 리차드가 목표를 위해 극복해 나가야 하는 역경들은 그와 가족들이 살아가야 하는 세계 곳곳에 있다.

레이날도 마르쿠스 그린 감독은 이를 하나의 상징물로 형상화하여 관객들에게 쉽게 전달하는 대신, '최대한 있는 그대로 전달하는 것'을 선택한다. 이러한 방식은 위기를 점차 고조시키고 결국엔 해소함으로써 관객들에게 카타르시스를 주는 것에는 약하지만, 인물과 그의 삶을 이해하게 만드는 데에는 더 효과적으로 작용한다.

주인공 리차드에게만 집중하지 않고, 다른 인물들 또한 조명한 것 역시 같은 맥락에서의 선택인 것으로 보인다. 리차드뿐만 아닌 비너스와 세레나, 오라신, 그리고 릭 마치의 내면까지 다룸으로써 '영화가 다루는 실화가 어떤 상호작용을 통해 탄생하게 되었는가'를 관객들에게 알려주려는 듯하다. <킹 리차드>는 여러 인물을 다루면서도 서사를 이끌어가는 주인공인 리차드에게 집중하는 것을 놓치지 않음으로써 마치 훌륭한 테니스 선수처럼 밸런스를 유지한다. 당연하게도 그것이 던진 공(이야기)은 '이 이야기가 탄생한 배경과 그것이 각 인물에게 어떤 의미였는지'에 대한 이해로 향한다. 엔딩 크레딧과 함께 실존 인물들을 담은 영상이 나올 때, 단지 놀라운 것이 아니라 감동할 수 있는 것은 이러한 선택들에 의한 결과라고 생각한다.

[글 선민혁, sunpool2@ccoart.com]

 

ⓒ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

킹 리차드
King Richard
감독
레이날도 마르쿠스 그린
Reinaldo Marcus GREEN

 

출연
윌 스미스
Will Smith
언자누 엘리스Aunjanue Ellis
사니야 시드니Saniyya Sidney
데미 싱글턴Demi Singleton
존 번탈Jon Bernthal
토니 골드윈Tony Goldwyn
앤디 빈Andy Bean
케빈 던Kevin Dunn

 

수입|배급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
제작연도 2022
상영시간 144분
등급 12세 관람가
개봉 2022.0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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