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거스트 버진' 에릭 로메르의 물감을 들고
'어거스트 버진' 에릭 로메르의 물감을 들고
  • 이현동
  • 승인 2022.03.29 11: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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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일상에서 정처 없이 표류하고 있는 이들을 위해"
ⓒ 엠엔엠인터내셔널

<어거스트 버진>(2019)을 보고 단연 프랑스 영화감독 에릭 로메르가 떠올랐다. 영화 제목이 그러하듯 마찬가지로 여름을 배경으로 한 로메르의 《사계절 이야기》 중 <여름이야기>(1996)를 비롯해 <해변의 폴린느>(1983)와 같은 영화들이 그 사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 에릭 로메르를 계승하는 기욤 브락의 <다함께 여름>(2020)의 경우, 여름의 풍광과 인물들이 서로 교류하면서 선사하는 계절의 에너지들을 떠올릴 때, 우린 영화에 매료될 뿐만 아니라 그로 인해 회상되는 기억들에 매료된다.

계절의 느낌을 감정으로 환원한 그 유연함 속에서 전개되는 건 다름 아닌 관계들의 교집합에서 발생하는 일상의 신비일 것이다. 우연한 계기로 파생되는 만남의 연장은 인물들의 감정을 고조시키거나 환기시키는 도구로 사용되고, 여행의 목적과 의도가 변주되면서 내러티브는 서서히 일상의 기억을 재현하고 전시한다.

이러한 내용을 수용하는 관객들은 에릭 로메르의 영화미학의 본질이자 도구로 활용되는 '대화'라는 액션이 차지하는 기묘한 힘에 사로잡히기 마련이다. 누군가에게 대화는 환영처럼 즉시 삭제되는 것이기도 하고, 반복적으로 현상되는 계절의 물성처럼 은연중에 닥쳐오는 것이기도 하다. 누군가는 이러한 대화만으로 소급되는 방식의 정태적인 영화가 지루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의 영화에서 발견할 수 있는 건 대화라는 사건이 쉴 새 없이 발생한다는 것과 미세하게 변화하는 풍경의 잔재들이 탄력적으로 프레임을 지탱하는 것임을 자각할 때, 이런 부류의 영화는 카메라 앵글이 포착하는 쇼트의 길이와는 무관하게 동태적으로 각인된다.

 

ⓒ 엠엔엠인터내셔널

여성이 주체라는 풍광으로 이르기까지

호나스 트루에바 감독이 "<어거스트 버진>(2019)은 에릭 로메르의 <녹색 광선>(1986)을 오마주 했다"고 밝히는 지점에서, '에릭 로메르의 영화가 생각난다'는 필자를 비롯한 대중들의 감상은 실상 모종의 의문들을 남기기 십상이다. 먼저는 에릭 로메르의 그림자의 깊이 때문에 이런 종류의 영화가 그의 아류에서 벗어나기는 쉽지 않다는 점을 인정해야 할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거스트 버진>이 <녹색 광선>의 공통점 혹은 차이점뿐만 아니라 개성적인 작품으로 도출되기 위해 부과된 고유한 특징은, 이 영화가 기존에 에릭 로메르의 영화에서 관측할 수 있었던 인물관계가 형성되는 과정이 서사의 중추적인 역할로 대두되는 것이 아닌, 화자를 중심으로 모델링 된 다른 차원의 이야기, 즉 주체적인 이야기로 변용되고 있다는 것이다.

특별히 에릭 로메르, 기욤 브락, 그리고 이와 유사한 장르라고 분류할 수 있는 홍상수의 영화가 주로 남녀관계로부터 행위의 동인이 발화되었다고 한다면, <어거스트 버진>에는 에바(잇사소 아리나)가 3개월 전에 교제했던 연인과 잠시 마주치거나 후반부에 우연히 만나 성관계를 맺게 되는 아구스(비토 산즈)의 장면만이 희미하게 그 형태를 유지할 뿐, 유일한 서사의 주체는 에바 자신이다. 결국에 그녀를 마주하는 인물들의 우발적인 난입이 끊임없이 교차하는 건 에릭 로메르의 영화와는 사뭇 다른 점으로 지목된다. 특정한 관계가 초반부터 후반부까지 지시되는 에릭 로메르의 영화와는 달리 <어거스트 버진>은 온전히 에바의 정체성을 발견하는데 주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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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거스트 버진>이라는 제목의 의미가 8월의 처녀, 혹은 자연 그대로의 순결함을 상징하고 있다는 점이, 주인공 에바가 어떤 존재인지를 강조하는데 일조한다. 그녀는 이렇게 읊조린다. "여름은 나 자신으로 존재하기 완벽한 계절이 아닐까" "진정한 자신이 된다는 것이 무엇이며 무엇인지를 고민한다"라는 대사와 내레이션에는 공통적으로 '자신'이 포함되어 있다. 종반부에 아구스의 딸인 비올레타에게 에바는 자신이 임신했음을 밝힌다. 아빠가 누구냐는 비올레타의 말에 에바는 "아빠는 없어"라고 답한다. 남성의 사정없이 잉태된 에바의 몸은 마치 동정녀 마리아를 연상시키며, 이 대답은 종교 혹은 신화적인 세계관에서 여성의 지위에 관한 또 다른 해명으로 진술된다.

남성이 여성을 추격하는 전통적인 이미지를 전복하는 장면으로 삽입된 에바가 아구스를 향한 적극적인 태도는 <어거스트 버진>이 집약하고 있는 여성 이미지의 변곡점으로 재구축된다. 전통과 관습이 박제되어 있는 시공간 속에서 이유를 종잡을 수 없는 그녀의 임신은 에릭 로메르의 형상을 넘어 본질적인 차원으로 도약하는 영화로 정착한다.

 

여름휴가 동안 풍경으로 일기 쓰기

일기의 형식을 갖춘 <어거스트 버진>은 2주의 시간의 경과를 기록한다. 통상적으로 일기의 형식이 날로 끊어지는 반면에 이 영화는 날로 끊어지는 구성을 취하지 않고 자정(밤)을 기점으로 날이 다음날로 지연되면서 그 형식을 대담하게 파괴한다. 일기는 하루하루를 규정하지 않고 에바를 중심으로 하루라는 페이지는 그 자정을 넘어 다음날에도 연속된다. 8월에 도래하는 뜨거운 태양을 피해 휴가를 떠나는 일반적인 마드리드 사람들과는 다르게 주인공인 에바는 지인의 집을 빌려 남아 나름의 방식으로 그곳에 남아 휴가를 보낸다.

 

ⓒ 엠엔엠인터내셔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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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 광선>에선 휴가를 함께 떠날 사람이 없기 때문에 도시에 머무르지만, <어거스트 버진>에서 에바는 주도적으로 도시에 머물면서 삶의 의미에 대해서 찾아 나선다. 그녀는 계속해서 무엇인가를 하고, 특별한 계획 없이 자신만의 시간을 보낸다. 또 그녀는 여름이 자아내는 더위와 주변 인물들과의 만남에서 불평과 불만을 토로하지 않고 흘러가는 모든 상황들을 받아들인다. 그녀는 8월에 진행되는 축제에 열광하며, 풀밭에 누워 독서를 하기도 하고, 시티 버스를 타고 도시를 관광하며 지인들과 함께 계곡에서 피크닉을 즐기기도 한다.

이러한 모든 풍경들은 여름에만 감응할 수 있는 것들이며, 매일 교체되는 의상들은 색감은 생기로운 기운을 파생시킨다. 더 나아가 <어거스틴 버진>의 풍경은 단순히 계절의 풍광들로만 프레임을 채색하지 않는다. 이 작품에서 관객은 언제나 소리를 듣는다. 여름의 성질을 규정하는 축제의 경쾌한 사운드와 자연을 매개로 한 새의 지저귐과 바람에 일렁이는 풀 사이로 마찰되는 미세한 소리, 때로는 밤의 침묵 속에 속삭이는 연인들의 소리, 도로 위를 달리는 차 소리 등은 여름이란 기호와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사운드는 풍경 속에 생생하게 침투하여 여름을 재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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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거스트 버진>은 여름의 생명력이 전략적으로 구술되는 환락의 영화이다. 이 영화를 통해서 우리는 그 생동하는 풍광들을 체험하며 여름의 감각들을 소환해낸다. 클럽에서 조우한 에바와 아구스가 "연기란 현실에서 다른 곳으로 뛰어넘는 것"이라는 말을 하고 스크린에서 잠시 자취를 감추었다가, 다시 등장해서 서로의 빰을 때리는 장면을 상기해 보면, 이는 영화 밖의 세계인 외화면(off-screen space)에 종속된 평범한 일상을 영화라는 매개로 탈취하려는 시도로 점철된다. 연기를 '영화'로 수정한다면 더욱 적확하게 그 의도가 분명해질 수 있을 것이다.

호나스 트루에바는 "낭만주의는 도달할 수 없는 이상이지만, 그것은 삶을 예술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예술적인 삶을 만들도록 나를 어떤 방식으로 지시하는 것"이라 말했다. <어거스트 버진>이 착색한 예술의 재료가 '일상'이라는 점은 점진적으로 예술이란 윤곽을 포착하기 위한 시도들에 안착하고 있기 때문일까. 나는 그의 영화가 '예술'이 아니라 '예술적'이라는 말의 의미를 가늠하면서 일상으로 돌아가 주변의 풍광을 관찰해본다. 주변에서 찾을 수 있는 예술의 흔적들을 이번 영화에서도 찾으면서.

[글 이현동, Horizonte@ccoart.com]

 

ⓒ 엠엔엠인터내셔널

어거스트 버진
The August Virgin
감독
호나스 트루에바
Jonas Trueba

 

출연
잇사소 아라나
Itsaso Arana
비토 산즈Vito Sanz
이사벨 스토펠Isabelle Stoffel
조 만혼Joe Manjon
미켈레 우로스Mikele Urroz

 

수입|배급 엠엔엠인터내셔널
제작연도 2019
상영시간 129분
등급 15세 관람가
개봉 2022.03.24

 

이현동
이현동
 영화는 무엇인가가 아닌 무엇이 아닌가를 질문하는 사람. 그 가운데서 영화의 종말의 조건을 찾는다. 이미지의 반역 가능성을 탐구하는 동시에 영화 안에서 매몰된 담론의 유적들을 발굴하는 작업을 한다. 매일 스크린 앞에 앉아 희망과 절망 사이를 배회하는 나그네 같은 삶을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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