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트메어 앨리' 이렇게 될 줄 알면서도
'나이트메어 앨리' 이렇게 될 줄 알면서도
  • 선민혁
  • 승인 2022.03.10 11: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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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정해진 소멸을 향해 갈 뿐인 이야기가 주는 충격"

과거의 시대를 배경으로 하여 펼쳐지는 고전풍의 스토리, 몽환적이고 어둡고 습한 이미지의 미쟝센, 풍부한 모티프, 순환형의 플롯 등 기예르모 델 토로의 영화는 늘 또렷한 특색이 있다. 분명 자신만의 스타일을 가지고 있다는 점만으로 좋은 감독이라고 할 만하다. 꾸준히 작품을 찾아보는 이유가 되기 때문. 그러나 그의 신작 <나이트메어 앨리>가 주는 흥미를 단지 이러한 맥락으로 설명하기에는 부족하다.

<나이트메어 앨리>는 기예르모 델 토로의 전작들 보다 충격적이다. <셰이프 오브 워터>(2017)에서 인간 여성과 환상적인 존재가 사랑을 하는 모습도, <크림슨 피크>(2015)에서 반전의 요소로 나오는 남매의 비밀에 대해서도 물론 '충격적이다'라고 표현할 수 있겠으나, <나이트메어 앨리>에서의 그것이 주는 임팩트는 훨씬 강하다. 포스터에 나오는 문구대로, '지난 10년 영화 역사상 가장 충격적인 엔딩'을 가지고 있기 때문일까. 이 문구는 영화가 결말부에 큰 반전을 가지고 있을 것이라고 예상하게 하는데, <나이트메어 앨리>가 의외의 결말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 오히려 영화의 엔딩은 예상대로다.

엔딩뿐만 아니라 영화의 전반적인 스토리 자체가 관객의 예상 범위 내에서 흘러가는 편이다. 영화는 관객에게 복선을 성실하게 드러내고, 주인공의 미래를 직접적으로 예언해주는 인물이 등장하기도 한다. 흥미로운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정직한 전개가 <나이트메어 앨리>를 충격적으로 만드는 데에 기여한다는 점이다. 영화가 관객들에게 단서를 주는 것을 게을리하지 않기 때문에 관객들은 이 이야기가 어떻게 전개될지에 대해 예상하게 되고, 직선형의 스토리가 진행됨에 따라 예상이 맞음을 확인하는 과정을 반복하게 된다. 그런데 이야기의 미래를 알고 있는 것은 관객들뿐만이 아닌 듯하다. <나이트메어 앨리>의 주인공 스탠(브래들리 쿠퍼) 또한 자신의 운명을 알고 있다.

 

ⓒ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기예르모 델 토로의 최근작 <셰이프 오브 워터>가 물의 이미지를 통해 사랑에 대해 이야기한다면, <나이트메어 앨리>는 불의 이미지를 활용한다. 이는 영화의 오프닝에서부터 드러난다. 담배를 문 스탠턴은 집 안에서 시체를 옮기고 있다. 시체를 목표한 지점으로 옮긴 그는 담배 한 대를 다시 물고 성냥을 이용해 불을 붙인다. 그리고는 성냥을 바닥에 던지고, 미리 기름이 뿌려져 있던 집은 불길에 휩싸인다. 타오르는 집을 뒤로하고 스탠턴은 길을 떠난다. 이 장면은 스탠턴의 플래시백을 통해 영화의 스토리가 진행되는 동안 반복적으로 다시 등장한다. 불의 이미지는 오프닝 장면 이외에서도 지속해서 나타난다. 스탠턴이 담배를 태우는 장면이 매우 자주 등장하며 어두운 밤 속에 피워진 모닥불, 창밖으로 거센 눈보라가 치는 상담실의 벽난로 등 대비를 통해 선명히 강조되기도 한다.

<셰이프 오브 워터>에서 엘레이자와 환상적 존재가 서로를 품는 물과 같은 사랑을 한다면, <나이트메어 앨리>의 스탠턴이 맹목적으로 쫓는 욕망은 불과 같다. 물은 어디론가 계속해서 흘러간다지만, 불의 운명은 정해져 있다. 태우고 사라지는 것이다. 스탠턴에게 정해진 운명 또한 다르지 않다는 것을 관객들은 알고 있다. 영화의 초반에서부터 그가 누군가를 살해한 악행을 저지른 적이 있다는 정보를 접한 관객들은 권선징악적 결말에 대한 예상을 자연스럽게 하게 된다. 게다가 자신에게 정말 초월적 능력이 있다고 믿으면 몰락하게 될 것이라는 독심술 스승 피트(데이빗 스트라탄)의 경고와, 지금 하는 무리한 일을 그만두지 않으면 파멸적 결말을 맞이할 것이라는 지나(토니 콜렛)의 경고를 모두 거스르는 스탠턴의 모습을 보며 그의 몰락에 대해 점점 확신하게 된다.

영화는 사건의 전개에 앞서 관객들에게 꽤나 친절한 방식으로 복선을 제시하여 스토리의 방향을 예상하게 만들고, 이후의 스토리는 예상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욕망을 쫓는 스탠턴은 몰락을 향해 간다. 일부러 몰락을 찾아가는 사람이 어디 있겠냐마는, 스탠턴이 자신이 맞게 될 결말을 전혀 모르고 있는 것은 아니다. 거짓말을 하면 사람들을 다치게 할 것이라는 경고를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스탠턴은 개인 상담을 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깬 뒤 킴벌 부부를 속이고, 이는 킴벌 부부가 목숨을 잃는 결과로 이어진다. 릴리스(케이트 블란쳇)는 스탠턴에게 에즈라(리차드 젠틴스)와 엮이면 끝이 안 좋다고 경고하고 스탠턴 또한 그가 쉬운 상대가 아니라는 것을 느끼지만 에즈라에게 '작업을 치는' 것을 멈추지 못하며 이는 스탠턴의 몰락에 대한 결정적인 계기가 된다.

 

ⓒ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욕망에 매몰된 스탠턴은 그가 뱉은 말 대로 선을 넘고서야 선을 보게 된다. 이는 <크림슨 피크>에서 어머니의 유령이 경고했던 '크림슨 피크'에 도착하고 나서야 그곳의 지명이 '크림슨 피크'인지 알게 되는 이디스의 모습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스탠턴은 잘못된 선택을 한다. 그러나 그러한 선택들로 인하여 그의 결말이 결정되었다고 이야기하기는 어렵다. 그렇게 선택할 것이 이미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출세에, 금전에, 릴리스에 그리고 또다른 어떤 것들에 강하게 이끌리는 듯한 스탠턴에게는 선택에 앞서 고민을 하는 모습이 보이지 않고 스토리가 전개될수록 더욱 그렇다.

이에 따라 영화의 템포 또한 후반부로 갈수록 빨라진다. 또 스탠턴은 자신이 저지른 친족살해라는 악행에 대한 죄의식을 가지고 있다. 아버지를 죽였던 날의 장면은 스탠턴이 3류 카니발에 있을 때도, 고급 호텔에서 공연을 하고 상류층들과 만날 때에도 그의 기억 속에 반복해서 재현된다. 그는 자신이 벌을 받을 만한 행동을 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과거를 청산하고 새로운 삶을 향해 나아가려는 욕망을 가지고 있는 그는, 과거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그의 입에 물린 궐련을 태우는 담뱃불처럼 정해진 소멸을 향해 갈 뿐이다.

 

ⓒ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영화의 결말부에서는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 특유의 수미상관형 구조의 효과가 극대화된다. 영화의 초반부에서 아버지를 죽인 뒤 도망쳐 버스에 탑승했던 스탠턴은 '종착지'에서 카니발을 발견한다. 살아있는 닭을 잡아먹으며 관객들의 구경거리로 살아가는 기인의 공연을 보던 중 클렘(윌렘 데포)의 눈에 띄어 카니발에서 일하게 된다. 이 고용은 스탠턴 스토리의 시작점이 되는데, '이 스토리의 종착지' 또한 카니발이다. 에즈라와 그의 경호원을 죽인 뒤 도망자 생활을 하다, 어느 날 기차에서 내렸는데 한 카니발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스탠턴은 카니발의 리더에게 독심술 공연 경력을 어필하며 자신을 채용할 것을 요청하기 위해 사무실에 방문하는데, 그곳에는 클렘에게 자신이 팔았던 라디오와 클렘의 수집품 '에녹'이 놓여있다. 카니발 리더는 스탠턴에게 독심술사 대신 기인으로 일할 것을 제안한다.

카니발 리더는 스탠턴이 오래전 클렘에게 들었던 '기인 구하기'를 위한 멘트를 그대로 하고, 관객들의 머리속에는 스탠이 기인에게 담배를 권하는 등 흥미를 가졌던 모습과 도망친 기인을 찾으러 유령의 집에 간 스탠턴이 '죄인이여, 자신을 비춰보라'라는 문구를 발견한 뒤 기인을 마주친 순간 등 이러한 결말을 암시하는 장면들이 스쳐 지나간다. 그러자 기인으로 일하라는 제안에 대해 "그런 거라면 타고났습니다"라고 말하는 스탠턴의 우는 듯 웃는 듯한 얼굴이 묘하게 다가온다. 예정된 결말을 알고도 무언가에 이끌리듯 그것을 향해 달려간 스탠턴처럼, 스토리 전개에 대한 예상이 맞아 들어가는 경험을 하면서도 이 이야기에 몰입된 관객들에게 영화의 초반부에서부터 정해진 듯한 이 엔딩은 충격적이다. 그리고 스탠턴이 몰락하는 서사를 흥미롭게 보았다는 생각이 들 때쯤, 기인을 보러 온 관객들에 대해 클렘이 이야기하는 대사가 선명해진다.

"저들은 우월감 느끼려고 우리 쇼를 보러 와"

[글 선민혁, sunpool2@ccoart.com]

 

ⓒ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나이트메어 앨리
Nightmare Alley
감독
기예르모 델 토로
Guillermo Del Toro

 

출연
브래들리 쿠퍼
Bradley Coope
케이트 블란쳇Cate Blanchett
토니 콜렛Toni Collette
윌렘 대포Willem Dafoe
리차드 젠킨스Richard Jenkins
루니 마라Rooney Mara
론 펄먼Ron Perlman
메리 스틴버겐Mary Steenburgen

 

수입 |배급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제작연도 2020
상영시간 150분
등급 15세 관람가
개봉 2022.0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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