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FF 2022] '츠나구' 당신의 일상은 안녕하십니까
[JFF 2022] '츠나구' 당신의 일상은 안녕하십니까
  • 이현동
  • 승인 2022.03.01 11: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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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산 자와 죽은 자의 숭고한 만남으로부터"

영화비평가 미셸 무를레는 "영화는 우리의 시선의 자리에 우리의 욕망에 부응하는 세계를 대체해 놓는다"라고 말했다. 인간의 내면에 자리 잡고 있는 욕망의 언저리에는 삶과 죽음 속에 불현듯 찾아오며 그리운 대상을 보고 싶은 열망이 강렬하게 꿈틀거리곤 한다는 점에서 인간은 누군가를 하염없이 기다리고 갈망하는 존재이다. 하지만 죽음으로 떠나버린 이를 그리워하는 것은 온전히 산 자들의 몫이다. 그런 의미에서 <츠나구>(2012)는 기억에 잠재하고 있었던 죽음을 회상하게 한다. 츠나구(繫ぐ,つなぐ)의 사전적 의미는 연결하다, 묶다라는 뜻을 갖고 있다. 통속적인 제목이지만 이 제목은 직관적으로 영화의 내용을 끈끈하게 결속시키는 역할을 한다.

영화에서 '츠나구'는 산 자와 죽은 자를 연결하는 능력을 갖고 있는 사람이다. 여기서 전제는 일생에 단 한 번만 하루 동안 산 자가 죽은 자를 만날 수 있다는 것이며, 죽은 자는 산 자의 요청을 거절할 수 있다는 조건이 있다. 오직 단 하루에만 이뤄지는 이 기묘하고 신비로운 만남은 서사의 뼈대를 생성하고, 화면 밖에 존재하는 관객들은 자신이 경험했던 아득한 죽음의 서사를 상기한다. 이 이야기는 오로지 지상이란 무대에서 이뤄지는데, 사후세계에 대한 묘사가 전혀 등장하지 않는 <츠나구>는 결국 산 자들의 이야기로 진행된다. 죽은 자의 망령은 산 자로 인해 진정한 회복을 경험하고, 산 자는 일상을 살아가는 동력을 얻게 되는 이 영화의 서사는 우리 삶에 망각하고 있었던 소중한 기억을 복원하는 작품으로 자리한다.

 

ⓒ 2012 <TSUNAGU> Film Partners

에피소드가 연결하는 단 한 가지 점선들

츠나구의 역할을 하고 있는 할머니와 그로부터 그 임무를 전달받는 아유미(마츠자카 토리)는 3명의 의뢰인에게 죽은 자와의 만남을 중개하면서 내용이 진행된다. 첫 번째의 사연의 주인공이 되는 중년의 남자는 땅문서를 찾기 위해 어머니를 만나야 한다고 말한다. 지명을 당한 어머니는 자신이 불릴 줄 몰랐다며 기뻐하고, 둘은 땅문서의 이야기가 아닌 일상적인 대화를 나눈다. 츠나구가 거짓인 줄 알았던 그는 엄마를 불러줘서 고맙다며 자신의 명함을 주며 필요하면 연락하라고 말한다.

두 번째의 이야기는 동급 학생이자 친한 친구인 미소노(하시모토 아이)와 아라시(오오노 이토)가 연극 체호프의 『벚꽃 동산』의 주인공 라네프 스카야 자리를 놓고 펼쳐진다. 체호프의 이 이야기는 <츠나구>의 주제를 정확하게 관통하는 모티브로, 한 가족이 아끼고 사랑했던 벚꽃 동산이 팔려나가는 순간에도 비관적으로 이를 관망하지 않으며 도리어 희망을 말한다는 지점에서 그러하다. 그 주인공을 결국 미소노가 맡게 되면서 아라시는 골탕을 먹이려는 심산으로 미소노의 집 길가에 있는 수도꼭지를 틀어 땅을 얼게 한다. 자전거를 타는 중에 미끄러진 아라시는 그만 달려오는 차에 치이고 죽고 만다. 직접적인 죽음에 원인을 제공했다고 생각한 미소노는 상심하지만, 아유미를 통해 아라시가 자신을 만나고 싶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게 된다. 둘은 만나게 되고 아라시는 잘못을 미처 이야기하지 못하다가 미소노는 길은 얼지 않았다고 말하면서 둘의 오해가 풀리고 미소노가 좋아하던 아유미와 시간을 보내도록 자리를 내어준다.

 

ⓒ 2012 <TSUNAGU> Film Partners

세 번째 이야기의 주인공인 츠치야(사토 류타)는 결혼을 약속했던 여자인 키라리(키리타니 미레이)의 행방을 발견하지 못한 채 7년이란 세월을 기다리고 있는 남자다. 길을 걷다가 쓰러진 키라리를 츠치야가 도와주면서 시작되는 이 둘의 러브스토리는 <츠나구>에서 가장 극적인 만남이자 비중을 많이 둔 장면들로 구성되어 있다. 다른 에피소드의 구성이 일반적으로 회상 씬들이 생략되었다면 7년이란 어떠한 추억들과 물품들을 간직하고 그리워했는지를 절절하게 묘사한다. 츠치야의 그녀를 만나고자 하는 열망 속에 아유미는 키라리와의 중개에 성공하고 그녀가 결혼을 앞두고 집으로 돌아가는 여객선이 침몰하면서 사망했다는 속 사정을 듣게 되면서 이 에피소드는 츠치야가 소유하고 있었던 마음의 짐을 풀고 일상으로 나아가는 계기가 된다.

이렇게 모든 에피소드가 끝난 다음 마지막 장면에서 아유미는 할머니로부터 능력을 전수 받으면서 이렇게 말한다. "언젠가 내 츠나구의 능력을 물려주고, 새 츠나구한테 부탁해서 할머니를 만날 거예요" 이처럼 우리 삶과 죽음은 만남의 연장안에 있다. 이러한 대물림은 입과 입으로만 전승되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연결된다는 점에서 이 서사는 굴곡이 존재하지 않는다. 어쩌면 올해 재팬 필름 페스티벌에서 스트리밍되는 작품들이 공통으로 가볍고 단조로운 서사가 많은 것을 차지하는 이유는 앞으로 코로나부터 해방될 우리가 어떻게 일상에서 힘을 얻고 살아갈 수 있는지를 표본적으로 보여주고자 하는 의도가 있지 않았을까. 그런 의미에서 <츠나구>에서 가장 크게 각인되는 것은 죽음이 아닌 '일상'이다.

우린 과거에서 머물지 않고 나아간다. 극 속 모든 이들의 만남은 천상이 아닌, 가장 낭만적으로 이야기를 공유할 수 있는 호텔이라는 공간이다. 그렇기에 '일상'이란 미장센은 더욱 각별하게 이 영화를 채색한다.

 

ⓒ 2012 <TSUNAGU> Film Partners

필자는 이 영화의 소재를 다루는 방식이 동화 같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인물의 갈등 관계는 비교적 느슨하게 다루고 산 자와 죽은 자가 마주할 때 공명하는 감정은 폭발적으로 터지지 않는다. 그럼에도 4명의 의뢰인들이 반사적으로 우리의 감정을 이끄는 이유는 연출의 뛰어남과는 별개로 주제와 소재에서 채취되는 기억의 향기 때문일 것이다.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원더풀 라이프>(1998)는 천국으로 가기 전에 중간역인 림보라는 사후 세계에서 소중한 '기억'을 하나를 재현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는 지점에서 어쩌면 이 이야기는 한 세기를 지나 연출된 <츠나구>(2012)와의 주제적 동일성을 획득한다.

이는 종교적이면서 신화적인 부분에서 일본 영화의 주요한 형태 중에 하나로 관측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다. 두 영화에서 공간을 다루는 방식보다 더 유효하게 접합하는 건 이러한 초현실적인 만남이 특별한 것으로 다루지 않다는 것이다. <원더풀 라이프>에선 림보는 지상세계와 별다를 것 없이 묘사되고, <츠나구>에서의 호텔이란 장소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저장된 기억과 만나기 때문일까. 이전 세기와는 달리 우리는 저장되어 있던 사진들과 추억들을 사진과 영상으로 기록하고 촬영할 수 있다. 영화는 그렇게 새롭게 갱신되고 연결되는 지점 속에서 삶과 만난다. 우리의 욕망을, 우리의 일상을 투영하는 세계 한가운데서 누군가와 마주한다.

<츠나구>에서 가장 아쉬운 점은 주인공인 아유미가 부모님이 돌아가신 것을 비롯하여 에피소드를 거듭해갈수록 입체적으로 격동하는 감정들을 원작과는 달리 다소 기계적이며 소비되는 방식으로 배치하고 있다는 것이다. 연출의 완성도와 등장인물들의 사연은 다소 상투적이고 예측이 가능하다. 그럼에도 이 영화는 필자에게 큰 의미가 있었다. 왜냐하면 나의 과거의 기억에서 죽음을 맞이했던 이들을 만날 수 있다는 상상을 하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감정을 취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츠나구>를 감상하면서 그들을 만나 무슨 말을 할지 생각해볼 수 있는 시간을 가졌다. 이러한 에너지가 다른 이들에게 전달되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사랑하는 이를 잃은 누군가에게 <츠나구>를 통해 조금이나마 심적인 위로와 희망이 있기를 바라본다.

[글 이현동, Horizonte@ccoart.com]

 

ⓒ 2012 <TSUNAGU> Film Partners

츠나구
Tsunagu
감독
히라카와 유이치로
Hirakawa Yuichiro

 

출연
마츠자카 토리
Matsuzaka Tori
키키 키린Kirin Kiki
사토 류타Ryuta Sato
키리타니 미레이Kiritani Mirei
하시모토 아이Ai Hashimoto
오오노 이토Ito Ono
엔도 켄이치Endo Kenichi
베쇼 테츠야Tetsuya Bessho


제공

일본국제교류기금

JAPANESE FILM FESTIVAL ONLINE 2022
제작연도 2012
상영시간 129분
공개 2022.02.14-27

이현동
이현동
 영화는 무엇인가가 아닌 무엇이 아닌가를 질문하는 사람. 그 가운데서 영화의 종말의 조건을 찾는다. 이미지의 반역 가능성을 탐구하는 동시에 영화 안에서 매몰된 담론의 유적들을 발굴하는 작업을 한다. 매일 스크린 앞에 앉아 희망과 절망 사이를 배회하는 나그네 같은 삶을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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