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FF 2022] '썸머, 필름을 타고!' 사라지는 빛을 붙잡는다는 마음으로
[JFF 2022] '썸머, 필름을 타고!' 사라지는 빛을 붙잡는다는 마음으로
  • 김민세
  • 승인 2022.02.23 11: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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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영화한다'는 것을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이유"

정성일 평론가가 트뤼포의 말을 재구성해 이렇게 말했다. "영화를 사랑하는 세 가지 방법은 같은 영화를 여러 번 보고, 영화에 대한 글을 쓰고, 결국 영화를 만드는 것이다."

시네필들에게는 익숙한 문장일 것이다. 그리고 이 문장을 본 적이 없더라도 좋아하는 영화를 여러 번 보는 것, 영화 글을 쓰는 것, 영화를 만드는 것은 영화를 사랑하는 이들에게 가장 큰 의미이며 꿈일 것이다. 이 세 가지 행위는 각각 독립적인 것으로 여겨질 수 있다. 왜냐하면 정성일이 트뤼포의 말을 구체적인 동사로 재구성했기 때문이다.  원문에서 트뤼포는 영화에 빠져드는 3단계를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영화를 많이 보고, 감독의 이름을 기록하고, 같은 영화를 다시 보면서 머릿속에서 스스로 감독이 되어 보는 것."

이러한 언급은 정성일이 트뤼포의 말을 과장 해석했다는 등의 사실 여부를 따지고자 하는 것이 아닌, 원문에서 '머릿속에서'라는 말에 방점을 찍고 싶기 때문이다. 다시 정성일의 말로 돌아와 트뤼포의 원문을 겹쳐볼 수 있겠다. 같은 영화를 여러 번 보는 것-영화를 많이 보는 것-은 현실의 재현을 현재로서 지각하는 것이다. 영화에 대한 글을 쓰는 것-감독의 이름을 기록하는 것-은 우리에게 도달했던 영화, 과거라는 기억을 붙잡는 것이다. 그리고 영화를 만드는 것-스스로 감독이 되어보는 것-은 미래를 상상하고 살아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영화를 사랑하는 세 가지 방법은 독립적인 것이 아니라 한 사람의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연속적 과정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지각하고 기억하고 상상하는 것. 현재와 과거와 미래가 만나는 놀라운 합일의 순간. 이 일련의 과정을 통틀어서 필자는 '영화한다'라고 말하고 싶다.

 

ⓒ It's a Summer Film production committee

청소년 드라마, 타임슬립 SF, 로맨틱 코미디. 다양한 수식어들이 붙을 수 있겠지만 <썸머, 필름을 타고!>는 결국 '영화한다'는 것에 대한 영화이다. 단순히 영화광 학생들의 영화촬영기를 소재로 하고 있기 때문이 아니다. 이 영화는 다소 억지스럽지만 매력적인 방법으로 현재, 과거, 미래를 겹쳐둔다. 그리고 각각에 상응하듯이 영화를 보는 것, 영화를 기억하는 것, 영화를 만드는 것에 대해 이야기한다.

주인공 하다시는 고전 사무라이 영화에 빠진 고등학생 소녀이다. 자신이 기획한 영화가 학교 영화부에 거절당하자 그녀는 스스로 팀을 모아 영화를 제작하기 시작한다. <썸머, 필름을 타고!>는 이러한 주요 서사를 진행시키는 동시에, '하다시가 시네필로서 어떻게 영화하기를 실천하는지'를 다각도로 보여준다. 그녀는 자신의 아지트에 있는 브라운관 텔레비전으로 비디오테이프 영화를 보고, 극장에서 고전 흑백 영화가 스크린에 맺히는 순간을 경험한다. 자신이 좋아하는 영화들의 리스트들을 나열하고 각종 포스터들을 수집하는 방법으로 영화를 기억한다. 나뭇가지와 우산을 칼 삼아 휘두르며 자신만의 사무라이 영화를 상상하기도 한다.

그리고 영화가 끝난 극장에서 자신의 시나리오 주인공으로 완벽하게 어울리는 린타로를 발견한다. 이 장면이 의미심장한 이유는 현재의 하다시가 미래에서 온 린타로와 마주하는 첫 장면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둘의 첫 만남이 일어난 장소가 고전 영화 극장이기 때문이다. 현재와 과거와 미래가 조우하는 순간. 또는 서로 다른 시간을 잇는 극장이라는 공간, 영화라는 시간. 이 순간은 각자의 자리에서 함께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갖고 하나의 스크린을 바라보는 영화적 체험의 은유인 것이나 다름없다.

 

ⓒ It's a Summer Film production committee

우리는 <썸머, 필름을 타고!>의 본격적인 시작이 되는 린타로의 등장에 대해 다시 살펴봐야 한다. 사실 그는 영화가 끝나고 나서 등장한 것이 아니다. 그는 고전 영화 극장에서 영화 상영이 시작할 즈음에 등장했었다. 그렇기 때문에 본격적인 시작은 하다시가 린타로를 지각하면서 일어났다고 말하는 것이 옳다. 그렇다면 하다시는 왜 등장과 동시에 린타로를 보지 못했을까. 영화가 상영 중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다시의 지각은 영화가 끝난 후에 린타로로 옮겨간 셈이다.

영화를 본다는 것은 무엇인가. 영화는 빛이다. 동시에 (유한한) 시간의 예술이다. 영화는 빛에서 시작해서 어둠으로 끝난다. 우리가 영화를 본다는 것은 결국 사라질 것이 분명한 그 빛을 붙잡는다는 마음으로 순간을 새기고 기억하는 것이다. 하다시가 극장에서 영화를 본 것은, 그리고 영화가 끝났음에도 자리에서 쉬이 일어나지 못하는 것은, 어둠이 도래한 뒤에도 어떻게든 영화를 붙잡고 싶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영화에 대한 의지가 린타로에게로 옮겨간다. 하다시가 린타로를 붙잡기 위해 안간힘을 다해 뛰는 것은 이미 끝난 영화를 이어나가고 싶은 욕망의 발현이다. 린타로가 연기하지 않는다면 영화를 찍지 않겠다고 말하는 것에서 볼 수 있듯이, 하다시에게 린타로는 영화 그 자체이다.

 

ⓒ It's a Summer Film production committee

린타로가 미래에서 온 것이 밝혀진 뒤, 또다시 하다시에게는 사라진다는 것에 대한 문제가 닥친다. 미래에 영화가 사라질 운명이라면. 그리고 자신이 만든 첫 번째 영화가 한 번의 상영 이후 사라져야 할 운명이라면. <썸머, 필름을 타고!>는 이 두 가지 전제로 영화의 본질에 대해 질문한다.

먼저, 전자를 통해서 영화는 무엇인가라는 질문. 하다시는 미래에 영화가 사라질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영화 만들기의 의지를 상실한다. 하지만 '영화가 사라진다'는 말은 어딘가 이상하다. 미래에는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영화가 사라진다는 말일까. 린타로가 미래에서 하다시의 영화를 봤다고 말했기 때문에 이는 틀린 말이다. <썸머, 필름을 타고!>에서 영화가 사라진다는 전제는, 더 이상 사람들이 극장에서 2시간의 영화를 보지 않고, 영화를 만들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이 말은 곧 영화는 관객이 있어야, 그리고 계속해서 만들어져야 존재할 수 있다고 역설한다.

 

ⓒ It's a Summer Film production committee

그리고 후자를 통해서 영화를 사랑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자신이 만든 영화가, 또는 자신이 좋아하는 영화가 한 번의 상영 이후에 사라진다면. 그렇다면 우리는 이것만으로 그 영화가 존재한다고 할 수 있을까. 어떻게든 관객과 만남이 이루어졌으므로 존재한다고 (또는 존재했다고) 할 수 있다면, 과연 우리는 그 사라짐을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마음이 무너져 내릴 것이다. 영화를 사랑한다는 것은 같은 영화를 반복해서 보고, 기억하고, 무엇보다 다른 사람들과 나누는 것이기 때문이다.

만약 어떤 영화가 단 한 번의 상영으로 사라진다면, 그 영화를 다른 사람들에게 소개하는 것이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렇기 때문에 끝까지 영화를 만들고, 린타로라는 미래와 정면으로 마주 보고 결투하는 하나시의 선택은 무모하지만 위대하다. 사라짐을 알고도 영화한다는 것. 사라지는 빛을 붙잡는다는 마음으로. <썸머, 필름을 타고!>는 이 시대에 '영화하는' 사람들에게 전하는 위로이며 응원이다. 이 영화를 보고 나면 어떻게든 자신의 위치에서 영화에 대한 사랑을 이어나가고 싶을 것이다.

[글 김민세, minsemunji@ccoart.com]

 

ⓒ It's a Summer Film production committee

썸머, 필름을 타고!
It's a Summer Film!
감독
마츠모토 소우시
MATSUMOTO Soushi

 

출연
이토 마리카
Itou Marika
카네코 다이치Kaneko Daich
카와이 유미Kawai Yuumi
이노리 키라라Inori Kirara
이타바시 슌야Shunya Itabashi
코히나타 세이이치Seiichi Kohinata
시노다 료Ryo Shinoda
유타로Yutaro
시노하라 유신Yushin Shinohara

 

제공

일본국제교류기금

JAPANESE FILM FESTIVAL ONLINE 2022
 

제작연도 2020
상영시간 97분
공개 2022.02.14-27

김민세
김민세
 고등학생 시절, 장건재, 박정범 등의 한국영화를 보며 영화를 시작했다. 한양대학교 연극영화학과 영화부에 재학하며 한 편의 단편 영화를 연출했고, 종종 학생영화에 참여하곤 한다.
 평론은 경기씨네 영화관 공모전 영화평론 부문에 수상하며 시작했다. 현재, 한국 독립영화 작가들에 대한 작업을 이어가고 있으며, 그와 관련한 단행본을 준비 중이다. 비평가의 자아와 창작자의 자아 사이를 부단하게 진동하며 영화를 보려 노력한다. 그럴 때마다 누벨바그를 이끌던 작가들의 이름을 하염없이 떠올리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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