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드 카운터' 잃어버린 장르를 찾아서
'카드 카운터' 잃어버린 장르를 찾아서
  • 이현동
  • 승인 2022.02.28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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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이 영화의 주제는 인과성인가 확률인가"

마틴 스콜세지의 <택시 드라이버>(1976), <성난 황소>(1980)의 각본가로 활동하며 명성을 얻은 폴 슈레이더의 영화 <카드 카운터>는 마틴 스콜세지 영화에서 주로 발견할 수 있었던 내레이션으로 시작한다. 윌리엄 텔(오스카 아이작)의 내레이션과 함께 레븐 워스 군 감옥과 카지노라는 두 종류의 공간을 무대로 비추며 과거와 현재를 배회하며 이야기가 전개된다.

우선, <카드 카운터>는 장르를 논구하기 어렵다. 일반적으로 돈이 오고 가는 카지노가 범죄의 현장으로 통용되는 것을 고려한다면, 이 영화에서 규정할 수 있는 장르적 범주는 범죄 또는 누아르 영화로 간단하게 정의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논점을 빗나가는 <카드 카운터>의 특징은 주요 무대로 설정된 카지노를 횡행하는 주인공인 윌리엄 텔이 돈을 얻는 일상적인 쾌락이나 승리에 대한 성취 등이 전혀 묘사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조직의 이야기가 아닌 개인의 이야기로부터 촉발되는 이 이야기의 행방은 그의 어떠한 욕망의 추구도 드러나지 않는다는 점에서 관습을 이탈한다. 윌리엄 텔은 오프닝 장면에서 이렇게 읊조린다.

"블랙잭과 여타 게임의 차이점은 인과성이 있다는 것이다. 과거의 일이 미래의 확률에 영향을 미친다는 뜻이다"

 

영화 전체를 조율하는 듯한 이 '인과성'이라는 문구는 <카드 카운터>의 표면적인 정체성을 드러내는 것 같지만 이보다 더 강조되는 건 '확률'로 보여진다. 잠재적으로 기능하는 확률은 관계 가능성을 더불어 암시한다. 혼재되어 있는 상황 속에서 이 영화는 서사가 드문드문 생략되어 있는 듯한 인상을 받는다. 왜일까? 후에 상술하겠지만 이 이야기의 축이 되는 관계인 커크(타이 세리던)과 린다(티파니 해디시)의 접점은 서사를 형성하는 과정에 있어서 대중들에 설득이 어려운 장면들이 많다. 아마도 이 영화를 감상하는 모든 이들이 장점보다 단점을 언급하는 이유는, 아이러니하게도 주인공이 언급하는 '확률'이 아니라 '인과성'의 결여 때문일 것이다. 유독 서사에서 드러나는 구조적인 문제는 관객들에게 능동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시간을 허용하지 않는다. 영화를 보는 내내 드는 질문은 이 영화는 어떤 영화일까 하는 것이다.

 

<카드 카운터>는 어떤 영화인가

직관적인 소제목의 질문은 영화가 어떤 이야기인지를 일목요연하게 설명할 때 사용되는 물음이다. 우선은 필자는 <카드 카운터>는 스릴러로 둔갑한 가족 영화 혹은 러브 스토리라고 분류하고자 한다. 서스펜스적인 완력은 주로 사운드트랙을 통해 그 위력을 과시하고, 반대로 주인공인 윌리엄 텔이 차가운 면을 전환시키는 극적인 장면들에서는 도리어 사랑이라는 주제 의식을 부각함으로 이 영화는 예상을 벗어난다.

<카드 카운터>의 주인공 윌리엄 텔은 어떠한 욕망에도 요동하지 않는 인물이다. 그 이유는 10년의 반복적인 수감 생활에서 비롯된 것이며, 그는 오히려 그곳에서 자신의 삶을 찾았다고 고백한다. 양가적인 이유로부터 기획된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그의 삶의 패턴을 상징화하는 배경으로 모텔에 존재하는 모든 사물들을 순백의 천으로 포장하는 행위는 수감 생활이 여전히 그의 삶을 장악하고 있음을 암시한다. 이는 언제든지 그 일상을 탈주할 수 있는 일련의 가능성에 관한 이미지이기도 하다.

 

ⓒ Focus Features

또한, 윌리엄 텔의 사생활에 변화를 주는 두 명의 인물은 한 편의 가족 영화의 시선에서도 해석된다. 보안 제품 컴퍼런스를 찾아간 그에게 명함을 전달해 주는 커크와의 운명적 조우는, 이야기의 궤적을 연결하면서도 그와의 동일성을 지목한다. 커크는 자신의 아버지가 윌리엄 텔과 고문관으로 활동하면서 겪은 고통스러운 경험이 자살로 이어졌다는 것을 밝히는데, 이 사건에서 동기를 제공한 상관인 존 고르도(윌렘 데포)를 향한 복수를 하겠다는 강렬한 열망은 둘의 관계를 이어가는 동력이자 아버지의 역할을 대체하는 롤플레잉의 요소로 관찰된다. 대표적으로 윌리엄 텔과 린다가 진심으로 커크의 장래를 염려하고 그를 도와주고 싶다는 의사를 피력하는 장면은 흡사 부부 사이의 대화로 관철될 법하다.

가족 영화에 이어서 또 다른 장르인 러브스토리가 진전되는 과정에서 유독 <카드 카운터>의 단점이 급격하게 드러난다. 수감 생활을 마치고 나와 카지노를 전전긍긍하는 윌리엄 텔에게 조금 더 큰돈을 걸고 하는 것이 어떻냐고 말하는 린다의 제안을 받아들이면서 전개되는 러브스토리의 핵심은 린다가 오로지 성적인 매력으로 윌리엄 텔을 유혹하는 '여자'만으로 존재한다는 것이다. 린다를 규정하는 피부색은 이 영화에서 별다른 의미를 내포하지 않으며, 그 성적 매혹을 응답하는 윌리엄 텔과 이뤄지는 갑작스러운 성관계는 상투적인 연출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이와 연결해서 마지막 엔딩 장면도 그러한데, 윌리엄 텔이 존 고르도를 살해하고 다시 들어간 수감소에서 둘의 사랑이 손가락으로 접촉되는 장면에서 감독의 의도한 치유와 회복이라는 메시지가 발견되지 않는다. 오히려 관습적이지 않은 캐릭터였던 윌리엄 텔이 마침내 사랑하는 대상을 만나 사랑이 성취되는 관습적인 형국으로 종결된다. 누군가는 이 장면을 로베르 브레송의 <소매치기>(1959)에서 손을 클로즈업함으로써 절묘하게 주제를 가시화하는 것으로 평가하기도 했지만, 필자는 <카드 카운터>가 서사를 축조하는 과정에서 그 의미를 담아내는 데 분명히 실패했다고 본다.

 

ⓒ Focus Features

추가로 필자가 방금 언급했던 <카드 카운터>의 궁극적인 메시지가 치유와 회복이라고 말하고 싶은 것은 아부 그라이브 교도소의 존재 때문이다. 중간에 등장하는 아부 그라이브 교도소의 아카이브와 광각 렌즈를 통한 프레임의 확장과 초현실적인 앵글을 구현하는 시퀀스는 그 잔혹성을 시각화하는 동시에 정치적인 담론을 이끌어내는 장치로 위치한다. 후세인 정권이 무너진 후에 미군은 이 교도소를 장악했고, 이곳을 포로수용소로 사용되면서 발생한 미군의 학대 행위가 전 세계적으로 발각되면서 수많은 언론들이 일제히 비판의 목소리를 내었던 것은 누구에게도 잊지 못할 기억임은 틀림없다. 이 지점에서 영화에서 그 행위를 지도했던 대표적인 인물인 존 고르도의 죽음과 다시 돌아간 수감소에서 흑인과 백인의 만남은 미국의 회복과 치유의 메시지로 발화한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카드 카운터>는 아픈 역사를 갖고 있는 아부 그라이브 교도소라는 배경은 장르적인 측면에서 그 거시적인 주제를 세밀하게 표현하지 못했으며 이 영화가 갖고 있는 잠재적인 담론을 단순하게 치환시켜버린 아쉬움이 남는다. 결정적으로 앞에서 언급한 가족 영화라든지 러브스토리라는지 하는 장르적인 인상은 필자뿐만 아니라 이 영화를 처음으로 맞닥뜨린 대중들에게도 깊이 있게 도달하지 못한다. 결국 <카드 카운터>는 인과성(서사)도 확률(의미)도 아닌 정체를 알 수 없는 영화로 잔재한다.

[글 이현동, Horizonte@ccoart.com]

 

ⓒ Focus Features

카드 카운터
THE CARD COUNTER
감독
폴 슈레이더
Paul Schrader

 

출연
오스카 아이삭
Oscar Isaac
티파니 하디쉬Tiffany Haddish
타이 쉐리던Tye Sheridan
윌렘 데포Willem Dafoe
에카테리나 베이커Ekaterina Baker


제작 Focus Features

제작연도 2021
상영시간 112분
등급 청소년 관람불가

이현동
이현동
 영화는 무엇인가가 아닌 무엇이 아닌가를 질문하는 사람. 그 가운데서 영화의 종말의 조건을 찾는다. 이미지의 반역 가능성을 탐구하는 동시에 영화 안에서 매몰된 담론의 유적들을 발굴하는 작업을 한다. 매일 스크린 앞에 앉아 희망과 절망 사이를 배회하는 나그네 같은 삶을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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