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램' 불편한 진실의 경계에서
'램' 불편한 진실의 경계에서
  • 이현동
  • 승인 2022.01.06 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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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메타포를 불분명하게 이야기하기"

먼저 <램>(2020)이 상징으로 도색되어 있다는 점을 의도적으로 고려한다면 입체적인 영화가 될 것이고, 아리 에스터의 <유전>(2017), <미드 소마>(2019)와 같은 리듬감을 기대했다면 다소 실망을 금치 못할지도 모른다. <램>이 매력적인 영화로 감상되기 위해서 수없이 교차되는 이미지의 의미들을 꿰뚫어야 하는데, 그것은 분명 쉬운 일이 아니다. 결국 이 점은 이 영화의 불친절한 측면으로 관객들로 하여금 난감해 하게 한다. 이 불편한 영화를 어떻게 보아야 할까.

 

ⓒ 오드 AUD

<램>이란 제목에서 먼저 상기할 수 있는 것은 이 영화의 정체성에 대한 논구일 것이다. 양과 염소를 연상시키는 뿔이 달린 아기 양인 아다와 염소를 상징하는 아버지의 존재가, 영화의 배경이 되는 아이슬란드 혹은 유럽에서 '어떠한 상징성을 갖는지'를 파악한다면 이 작품에 대한 접근은 묘한 기시감을 일으킬 것이다. 이 기시감이란 건 특정 이미지를 관성적으로 받아들이게 되는 선입견과 같은 것이다. 서양에서 이전부터 염소가 악마의 상징으로 묘사되었던 것은 대표적으로 서양 역사의 근간이 되는 성서가 이를 부정적으로 선언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 성서에서 염소는 영적인 의미에서 순결한 양과도 구별되며 더 나아가 죄악을 상징하는 동물이라는 측면과 아이슬란드의 국기인 십자가 문양에서 예상할 수 있듯이 그리스도교를 배경으로 탄생했던 국가라는 것을 대조해 볼 때 생성되는 에너지는 분명히 기이한 것이다.

<램>의 첫 장면은 이러한 괴상한 이미지와 분위기가 초래하게 될 형체를 알 수 없는 모호한 의미들의 연쇄들을 목격하게 한다. 눈보라가 몰아치는 장소에서 당나귀가 무리를 지어 어디론가 하강하는 장면과 뒤이어 메리 크리스마스를 기념하는 라디오로부터의 음성에서 유추할 수 있는 것은 구원을 상징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존재이다. 그러나 <램>에서 등장하는 염소는 아까 언급했듯이 성서에서의 긍정적인 의미와 간격을 두고 있으며, 이는 영화적 변용으로써 전복적인 역할을 수행할 것임을 예견한다. 필자는 우선 <램>에서 적극적으로 차용하고 있는 대비적인 관계들이 어떠한 인상적인 아우라를 발산하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램>이라는 영화를 흥미롭게 관측하기 위해 필요한 도구로 유의미한 비평이 될 수 있을 것이다.

 

ⓒ 오드 AUD
ⓒ 오드 AUD

결말을 암시하는 기호들

<램>에서 강력하게 엄습하는 대자연의 광활한 공간감과 형과 아우의 묘한 관계, 문명과 비문명, 그리고 반인반수인 양의 조합은 인상적인 오브제로 대비적이며 초현실적인 에너지를 생성한다. 영화의 외연을 확장하는 요소로 지속해서 등장하는 '초원의 익스트림 롱 숏'은 자연의 양면성을 불안하고 섬뜩한 방식으로 다룬다. 이를테면 아이슬란드 이름의 뜻은 문자 그대로 '얼음의 땅'이지만, 그 얼음의 땅에서 주로 등장하는 이미지인 '산록이 피어오르는 초원의 묘사'는 이 영화가 내포하는 이중성을 강조한다. 곳곳마다 교차되어 등장하는 이 공간은 등장인물들과 아다와의 모순적인 관계에서의 균열을 유도하는 장치 중 하나이다. 실상 자연의 웅대함 속에서 인간이 가진 가장 큰 욕망은 생존과 (자손) 번영인 셈이다.

마리아(누미 라파스)와 남편 잉그바르(힐미르 스나에르 구오나손)은 자신들의 아이를 잃고 그 상실의 아픔과 욕망의 대상을 반인반수로 태어난 아다에게 투영시킴으로 만족감을 얻으려 한다. 하지만 성서의 관점에서 본다면 이것은 이교들이 행해왔던 사탄숭배와도 상통한다는 지점에서 <램>의 내재된 자연이란 상징은 수많은 담론들을 증폭시키는 요소가 된다. 자연을 역행하는 인간의 태도는 마리아의 행위에서 유독 더 드러나는데, 자신의 아이를 찾아오는 어미 양을 쫓아내는 것도 모자라 총을 쏘아 살육하는 장면과 이후에 실체를 인식할 수 없는 무덤들 속에서 이뤄졌던 반복적인 마리아 부부의 모종의 행위는 결국 자연에 대한 반역이자 욕망의 결말이 야기하게 될 비극으로 그려진다.

<램>에서 형과 아우의 묘한 관계가 형성될 여지를 두는 것은 아이슬란드라는 나라의 특성이 사촌과도 결혼할 수 있다는 법적인 이유와도 직결된다. 아이슬란드의 자체의 인구가 적고, 외부인의 유입이 적었던 터라 '대부분의 관계가 친인척 관계'였다는 유념한다면 마치 성서에서도 기록되고 있는 세계의 창조와 파괴 이후 인류의 생존과 번성을 위해 필연적으로 요구됐던 '근친상간의 가능성' 또한 염두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것은 인간과 인간 사이뿐만 아니라 자연적으로도 양립 불가능한 금기가 초래할 결말에 대한 내러티브이다. 형인 피에튀르(비욘 흘리뉘르 하랄드손)은 끊임없이 마리아에게 추파를 던진다는 점에서 이를 예고한다. 마리아가 아다의 엄마 양을 죽이는 모습을 목격한 피에튀르는 이를 빌미로 그녀를 협박하기도 하지만 반면에 아다와의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아빠의 역할을 대신해주기도 한다.

 

ⓒ 오드 AUD

더불어 비문명과 문명과의 거리가 어떠한 의미로 작품에 관여하고 있는지를 살펴보면 이는 영화의 의미를 확장을 선언하는 추가적인 요소가 된다. 처음에 어떠한 시기인지 정확히 분간할 수 없는 상태에서 몇몇 장면에서 대중은 문명이라는 영역과 마주치게 된다. 부부는 '타임머신'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도 하고, 라디오를 통해 인간뿐만 아니라 양들도 크리스마스 소식을 전해 듣기도 한다. 또 그들 부부와 형, 양인 아다 모두 스포츠 경기를 시청하기도 한다. 아이슬란드의 지정학적 위치상 목축업이 발달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고려하면 문명사회를 상징하는 라디오와 TV와 같은 오브제는 동시대성을 반영하는 요소가 된다. 종합해 볼 때 <램>은 아이슬란드/그린란드(지정학적), 양/염소(종교적, 신화적), 형/아우(인류학적), 문명/비문명(시대적)인 요소들을 마찰시키면서 현재까지도 이어지는 욕망의 파국이 결국 비극의 메타포라는 사실을 증명해 내는 것이다.

<램>은 다층적으로 매설된 의미들의 혼잡한 경계들을 가로지르면서 후반부에 등장하는 아다의 아버지를 통해 그들 부부는 파멸에 이른다. 그 파멸은 자연을 거역한 인과응보에 해당하는 것이다. 분명 이 영화는 전체적으로 서사는 단순하고 직관적이지만, 그 안에 내포하고 있는 여러 상징들과 방향성들 때문에 불평과 피로함을 토로하게 만드는 것이 사실이다. 더군다나 영화의 리듬은 그 안에서 그들이 몰고 있는 트랙터처럼 느리다는 지점도 영화에 대한 접근성을 떨어뜨릴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번 첫 장편 영화인 이번 작품을 통해서 발디마르 요한손 감독은 장르영화의 관습을 벗어난 그 나름의 독창적인 스타일을 개척했다. 앞서 언급한 오컬트 장르에서 두각을 드러냈던 다양성 영화사인 A24가 감독의 다음 행방도 함께해 준다면 얼마든지 포텐을 터뜨릴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하게 된다.

[글 이현동, Horizonte@ccoart.com]

 

ⓒ 오드 AUD


Lamb
감독
발디마르 요한손
Valdimar Johannsson

 

출연
누미 라파스
Noomi Rapace
힐미르 스나에르 구오나손Hilmir Snaer Gudnason
비욘 흘리뉘르 하랄드손Bjorn Hlynur Haraldsson

 

제작 A24
수입|배급 오드 AUD
제작연도 2020
상영시간 106분
등급 15세 관람가
개봉 2021.12.29

이현동
이현동
 영화는 무엇인가가 아닌 무엇이 아닌가를 질문하는 사람. 그 가운데서 영화의 종말의 조건을 찾는다. 이미지의 반역 가능성을 탐구하는 동시에 영화 안에서 매몰된 담론의 유적들을 발굴하는 작업을 한다. 매일 스크린 앞에 앉아 희망과 절망 사이를 배회하는 나그네 같은 삶을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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