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부를 판 남자' 스크린 밖으로 나오지 못하는 예술의 의미
'피부를 판 남자' 스크린 밖으로 나오지 못하는 예술의 의미
  • 김민세
  • 승인 2022.01.04 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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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답해야 할 것에 답하지 않고 길을 잃는 비판의 메시지"
ⓒ 판씨네마

<피부를 판 남자>(2020)는 자유를 얻기 위해 예술가에게 자신의 몸을 팔기로 계약한 시리아 난민 '샘 알리'(야흐야 마하이니)에 대한 영화이다. 억울한 누명으로 자국 시리아에서 살 수 없는 도망자 신세가 된 알리는 초대받지 않은 예술 전시회에 갔다가 인기 예술가인 '제프리'(코엔 드 보우)의 눈에 들어 계약하게 된다. 제프리가 알리에게 유럽 여러 국가의 국경을 자유롭게 넘나들 수 있는 '솅겐 비자'를 선물하는 대신에 알리가 자신의 등을 제프리의 작품을 위한 캔버스로 내주는 것이 계약의 내용이다. 이 영화는 사람이 아닌 예술품으로 거듭남으로써 자유를 얻게 되는 아이러니한 상황을 통해 난민 문제와 엘리트들의 허위의식을 영화의 사회적 화두로 내세우고 있다.

이런 점에서 보았을 때 <피부를 판 남자>는 현대 사회에 아직까지 남아있는 식민주의적 사고를 고발하는 영화임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이 영화는 탈식민주의 영화인가. 이러한 물음에는 긍정적인 대답이 어려울 것 같다. 서구사회의 부조리를 비판하는 영화가 탈식민주의적 형식과 태도를 갖고 있어야만 하는 것은 당연히 아니다. 이 영화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자본주의라는 체제 안에서 물화된 도구적 인간을 서구사회가 만들어온 낭만적 결말로 포장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 필자의 주장이 무조건 옳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적어도 이 영화는 사회 비판의 영화로서 가져야 할 목적을 달성하는 데 실패하였고, 확실하게 대답해야 할 것을 회피해 버렸다는 것이 필자의 판단이다.

 

ⓒ 판씨네마

<피부를 판 남자>는 알리의 신체를 통해 체제 안에서 물화되는 개인을 그려낸다. 도망자 신세의 알리는 연인 아비르(데아 리앙)의 집에 가기 위해 트럭에 숨어 '화물'이 되고, 레바논으로 도주하기 위해 누나의 차에 숨어 '조수석'이 된다. 또는 레바논에서 병아리를 골라내는 공장에서 일하며 자본주의 체제하의 '노동 기계'로 전락한다. 그런 그에게 제프리가 자신의 '예술 작품'이 되어 달라는 제안을 하고 알리는 승낙 한다. 제프리의 지시에 따라 고개를 숙여 머리가 없는 몸으로만 존재하는 것 같은 그의 육체는 영화 곳곳에 등장하는 동물의 고깃덩이를 떠오르게 한다. 작은 피부 트러블도 작품 훼손이 되어버리는 상황에 처한 그는 사회적 인간으로서의 사망 선고를 받은 것이나 다름없다. 알리의 육체를 예술품으로 전시하는 프레임 속 프레임 또한 이 사실을 뒷받침한다. 영화는 시종일관 그의 육체를 문, 창문, 거울, 유리라는 프레임으로 잘라내고 분열시키며 그를 도구로써 정의하고 코드화한다. 그의 등에 새겨지는 문신이 비자라는 자격을 증명하는 '코드'라는 점도 일맥상통한다.

영화에서 반복적으로 드러나는 알리를 코드화하려는 시도는 시리아 난민이라는 구체적 맥락과 맞물려 식민주의라는 이데올로기를 떠오르게 한다. 나아가 그런 이데올로기적 맥락은 알리의 비극적인 삶에 주목하는 영화의 내러티브와 맞물려 현대인의 식민주의적 사고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된다. 이를 가장 효과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 알리가 경매장에서 이어폰을 들고 겁을 주는 퍼포먼스를 하는 장면이다. 시리아 난민이라는 이유로 그를 테러범으로 생각하는 대중들의 사고를 비판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피부를 판 남자>가 사회 비판 영화라면 그런 대중 또는 엘리트들의 식민주의적 사고를 직간접적으로 심판해야 할 의무가 있을 것이다. 또 그런 헤게모니 안에서 소외받는 인간들의 현실을 직시해야 할 것이다. 나아가 현실에 대한 어떠한 입장을 가져야 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 판씨네마
ⓒ 판씨네마

그러나 갑자기 영화는 알리를 아비르와 함께 고향에서 살 수 있는 해피엔딩을 만드는 데 집중하기 시작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들이 맞이한 행복한 삶에 가장 큰 기여를 한 것이 알리라는 주체가 아니라 자본을 등에 업고 있는 제프리, 극단적으로 표현하자면 제프리라는 자본주의의 환유라는 것이다. 제프리가 꾸며낸 알리의 가짜 죽음이라는 쇼를 통해 알리는 체제에서 '사라질' 수 있고, 제프리는 자신의 작품을 액자에 걸어 체제의 헤게모니를 '이어나갈' 수 있다. 이러한 결말이 영화 내내 비판해오던 자본주의 체제에 수긍하거나 굴복하여 버린다는 느낌을 필자는 부정할 수 없다. 지나친 낙관주의를 걷어내고 나면 알리는 결국 사회적으로 죽은 사람이 되었기 때문이다.

<피부를 판 남자>는 알리의 신체를 통해 자본주의 사회 안에서 물화되는 개인을 그려내지만 동시에 서구사회가 만들어온 낭만적 결말에 편승하여 사회 비판으로써의 힘을 잃어버린다.

이에 대해 제프리가 체제의 교묘한 빈틈을 이용해 알리에게 진정한 자유를 선물한 것이라는 반론이 존재할 수 있다. 그렇다면 그가 파인 아트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화이트 큐브에 전시하는 알리의 가짜 피부는 체제와 헤게모니를 향한 조롱의 상징이며, 기존 예술을 전복하는 새로운 예술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 가짜 쇼를 통해 '체제에 엿을 먹였다'라고 말하는 제프리처럼. 하지만 이는 반쪽만 맞는 말이다. 왜냐하면 영화적 세계 내에서 아무도 그 쇼의 진짜 의미를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 쇼가 진정한 예술이 되려면 세계 내의 누군가에게 닿아 정치적 목소리가 되어야 한다. 하지만 제프리의 예술(액자에 건 작품이 아니라 체제에 엿을 먹이는 행위 그 자체)은 사회 밖으로 의미를 만들어내지 못하는 그들만의 기념품이다. 그러므로 그의 예술은 비판은 하지만 수용은 되지 않은 실패한 예술이다.

물론 그 예술의 비판 의도가 수용자에게 전해지지 않았다는 것이 영화 자체의 실패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또한 이 영화가 제프리의 행위에 긍정적인 입장을 갖고 있지 않고 있다는 반론이 제기될 수도 있다. 하지만 필자는 앞서 말했듯이 <피부를 판 남자>가 사회 비판의 영화로서의 목적을 달성하는데 실패했다고 생각한다. 먼저 영화는 처음과 마지막에 반복되는 수미상관의 반전으로 제프리의 행위의 이면을 낭만적인 것처럼 그려놓고 있다. 이 부분은 앞선 반론에 대한 반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자연풍경을 배경으로 아치형의 건축물 프레임에 들어가는 알리의 모습은 그에 대한 코드화를 반복하고 있다는 인상을 주는 동시에, 프레임 안에 온전히 들어가 잘리지 않은 신체로 존재함으로써 진정한 자유를 갖게 되었다는 해피 엔딩을 암시하는 듯 보인다.

이 결말이 체제에서 벗어난 헤피 엔딩, 결국 체제의 힘에 굴복한 새드 엔딩 둘 중 하나를 택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부가적인 문제점들은 계속해서 따라올 것이다. 그러나 그런 점들을 제쳐두더라도 <피부를 판 남자>의 결말을 동의할 수 없는 이유는 모순적이고 양가적인 판단이 가능한 상황에 대해 가져야 할 입장을 확실하게 드러내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글 김민세, minsemunji@ccoart.com]

 

ⓒ 판씨네마

피부를 판 남자
The Man Who Sold His Skin
감독
카우타르 벤 하니야
Kaouther Ben Hania

 

출연
야흐야 마하이니
Yahya Mahayni
모니카 벨루치Monica Bellucci
코엔 드 보우Koen De Bouw
데아 리앙Dea Liane
후삼 차다트Husam Chadat
다리나 엘 준디Darina El Joundi
크리스티안 바딤Christian Vadim

 

수입|배급 판씨네마
제작연도 2020
상영시간 104분
등급 12세 관람가
개봉 2021.12.16

김민세
김민세
 고등학생 시절, 장건재, 박정범 등의 한국영화를 보며 영화를 시작했다. 한양대학교 연극영화학과 영화부에 재학하며 한 편의 단편 영화를 연출했고, 종종 학생영화에 참여하곤 한다.
 평론은 경기씨네 영화관 공모전 영화평론 부문에 수상하며 시작했다. 현재, 한국 독립영화 작가들에 대한 작업을 이어가고 있으며, 그와 관련한 단행본을 준비 중이다. 비평가의 자아와 창작자의 자아 사이를 부단하게 진동하며 영화를 보려 노력한다. 그럴 때마다 누벨바그를 이끌던 작가들의 이름을 하염없이 떠올리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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