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호수' 흥미로운 극영화이자 다큐멘터리
'푸른 호수' 흥미로운 극영화이자 다큐멘터리
  • 선민혁
  • 승인 2021.10.25 12: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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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준수한 서사구조와 연출로 누군가는 알아야할 사실을 알린다."

안토니오 르블랑. 이 이름을 가진 미국인 남성은 동양인의 외모를 가지고 있다. 영화는 이 남자가 구직을 위한 면접을 보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안토니오(저스틴 전)는 곧 둘째 아이가 태어날 예정이라, 이직을 하려 한다. 본래는 타투이스트였으나, 자신의 장기를 살려 보다 안정적인 자동차 정비소에 취업하고자 한다. 그러나 정비소의 주인은 안토니오에게 호의적이지 않다. 안토니오에게 전과가 있기 때문이다. 안토니오는 비록 전과가 있지만 자신은 다른 사람을 절대 해치지 않았으며 이 일을 정말 잘할 수 있다고 말하지만, 결국 면접을 통과하지 못한다. 결과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안토니오는, 면접에 동행했던 어린 딸과 함께 어디론가 급히 향한다. 도착한 곳은 아내가 진료를 받고 있는 산부인과이다. 이들은 곧 태어날 아이를 초음파 영상을 통해 만난다.

 

ⓒ 유니버설 픽쳐스

러닝타임이 흘러감에 따라 안토니오의 사정은 점점 더 자세히 드러나는데, 이 인물의 삶은 단순, 평화, 안정 같은 것들과는 거리가 매우 멀다. 한국에서 태어난 안토니오는 미국의 한 가정으로 입양되었다. 친부모나 고향에 대한 기억은 친모가 자신을 죽이려 하는 어렴풋한 장면뿐이다. 미국에서의 삶이 평탄하지는 않았지만 그는 어떻게 해서든 살아남았고 사랑하는 이들과 가정을 이루기도 했다. 아내 캐시(알리시아 비칸데르)와 안토니오는 서로를 배려하며, 딸 제시(시드니 코왈스키)에게 안토니오는 새아빠이지만, 둘은 매우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그런데 우연한 한 사건으로 인해, 이 가정은 해체될 위기에 처한다. 안토니오는 억울한 일에 휘말려 경찰에게 붙잡히는데, 이로 인해 그는 자신에게 시민권이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아무런 기억도 없는 고향으로 추방될 위기에 처한다. 안토니오와 캐시는 추방을 막기 위해 노력하고, 이 과정에서 안토니오의 과거와 내면은 더 자세히 드러난다.

캐시를 만나기 전, 안토니오는 한 번도 제대로 된 사랑을 받아본 적이 없는 듯하다. 친부모는 그를 키울 수 없어 입양 보냈으며 그를 입양한 양부모는 그에게 폭력을 휘둘렀다. 마침내 캐시를 만나 가족을 꾸렸고 서로 사랑하며 지내고 있었으나 구성원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이 가족은 해체될 위기에 처한다. 그리고 안토니오의 방황은 다시 시작된다. 안토니오는 변호사를 선임하는 데에 필요한 비용을 구하기 위해 과거에 어울렸던 친구들과 함께 고가의 바이크를 훔치는 범죄를 저지르기도 하며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에 휩싸이기도 한다. 안토니오는 어렵게 찾은 사랑하는 사람들을 무사히 지킬 수 있을까? 

 

ⓒ 유니버설 픽쳐스
ⓒ 유니버설 픽쳐스

국제 입양아 문제를 다룬 <푸른 호수>는 상업영화로서도 꽤나 준수하다. 결말부에 감정이 폭발하는 장면을 불편하게 여기는 관객들도 있는 듯하나, 이 영화를 단지 ‘신파’ 중 하나로 여기기에는 근사한 요소들이 많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것 스토리가 전개되는 구조가 탄탄하다는 것이다. 영화는 기본에 충실한 스토리 전개 방식을 따르면서도 관객이 흥미를 유지하도록 한다. 도입부는 안토니오라는 인물과 그의 상황에 대한 기본적인 정보를 소개해주는 것으로 시작한다. 영화의 주된 갈등이 시작되는 사건이 터지며 이야기는 본론으로 넘어가고, 여러 갈등들을 봉합하며 사건을 마무리 지으려는 순간 이야기의 방향이 틀어지는 또 다른 사건이 일어난다. 영화는 결국 관객들이 자연스럽게 예상하던 것과는 다른 결말을 맞게 되지만, 이러한 결말은 영화의 주제의식이나 일관된 분위기를 해치지 않는다.

영화는 시각적으로도 꽤나 흥미롭다. 대교(大巧)가 보이는 풍경이나 안토니오의 비밀 장소인 호수 등 같은 장소를 담은 반복적인 장면이 나오는데, 이러한 장면은 특정한 주제를 과하게 주장하지 않으면서도 영화 전체의 일관된 분위기를 형성해 나가며 인물의 내면을 표현하는 데에 도움을 주기도 한다. 거친 질감으로 표현된 화면들과 헨즈헬드로 담은 인물의 모습은 그가 살아내는 혼란스러운 순간들과 어울리며 불안한 감정을 대변한다.

 

ⓒ 유니버설 픽쳐스

또한 <푸른 호수>에는 영화를 특별하게 만들어주는 결정적인 장면이 있다. 안토니오와 그의 가족은 우연히 만나 관계를 맺게 된 베트남 출신 이주민 파커(린당 팜)의 가족행사에 초대된다. 그곳에서 캐시는 행사를 진행하는 밴드 멤버의 권유로, 즉석에서 무대에 올라 노래를 하게 되는데, 이 노래의 가사는 고향을 떠난 이후로는 마음이 답답하고 외로워, 밤새도록 일해 한 푼 두 푼 아껴서 고향으로 가기만을 기다렸다는, 언젠가는 반드시 고향으로 돌아가겠다는 내용이다. 그저 즐겁게 캐시의 모습을 바라보던 안토니오는 생각에 잠긴 표정이 된다. 고향으로 쫓겨날 위기에 있는 안토니오가 그리워할 만한 진짜 고향은 어디에 있는가에 대한 아이러니가 이 장면에서 증폭된다.

영화가 마무리되고, 잘 만들어진 이야기를 보았다고 느끼는 순간, 화면에는 실존 인물들의 이야기가 소개된다. 추방되는 입양아들이 실제로 그렇게나 많을 것이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푸른 호수>는 많은 사람들이 알아야 할 무언가를 알리기 위한 다큐멘터리이기도 하다.

[글 선민혁, sunpool2@ccoart.com]

 

ⓒ 유니버설 픽쳐스

푸른 호수
Blue Bayou
감독
저스틴 전
Justin Chon

 

출연
저스틴 전
Justin Chon
알리시아 비칸데르Alicia Vikander
시드니 코왈스키Sydney Kowalske
마크 오브라이언Mark O'Brien

 

수입|배급 유니버설 픽쳐스
제작연도 2021
상영시간 117분
등급 12세 관람가
개봉 2021.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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