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쿠라우' 이제 시작일 뿐인 폭력
'바쿠라우' 이제 시작일 뿐인 폭력
  • 이현동
  • 승인 2021.09.07 10: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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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존재하지 않는 바쿠라우의 위치는 어디인가?"

클레버 멘돈사 필로 감독의 이전 작품들인 <네이버링 사운즈>(2012), <아쿠아리우스>(2016)와 유사한 주제의식을 함의하고 있는 <바쿠라우>(2019)는 그가 브라질에서 겪었던 계층 간의 불평등과 부조리를 범우주적이며 야만적인 방식으로 풍자한다. 사실 클레버 감독은 공공연히 자신의 정치적인 퍼포먼스를 노골적으로 피력해 왔다는 지점에서 어쩌면 영화의 의미는 동일한 사인으로 읽히기도 한다. 공상과학, 웨스턴, 슬래셔와 같은 장르적인 요소를 충만하게 대입하는 <바쿠라우>의 오락성은 즉물적으로 표상되어 있는 물신주의와 긴밀하게 접촉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또한 이 영화를 보고 있자니 타란티노의 <바스타드 : 거친 녀석들>(2009)와 같은 영화가 떠올랐다. 살인과 폭력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타란티노가 설계한 히틀러의 형상, 그리고 '나치'들을 능지처참하게 살해하는 장면에서의 대중들이 감응하는 어떤 카타르시스는 <바쿠라우>에서 작고 평화로운 마을을 점령하려 했던 마이클(우도 키어)의 일행의 파멸로 비견될 수 있을 것이다. 이 점은 마이클의 정체성과 밀접한 연관성이 있는데, 이것은 다음에 상술하고자 한다.

 

ⓒ 영화사 진진
ⓒ 영화사 진진

'바쿠라우'는 어떤 도시인가

<바쿠라우>의 모티브로 기획된 브라질 북동부 빈민 지역으로 대표되는 '세르타오'는 식민, 노예의 역사와 빈부격차, 가뭄 등의 부정적인 선입견들이 팽배한 장소다. 인종과 민족을 불문하고 소외된 자들이 주로 거주하였던 '세르타오'는 폭력과 침탈에 노출되어 있는 도시이며, 그러므로 마을을 보호하기 위해 조직된 저항군의 활약 또한 왕성했다고 한다. '밤에만 사냥하는 새'라는 제목을 가진 마을 바쿠라우는 한 번의 습격으로 승리를 거둔다는 의미로 그들이 타민족의 빈번한 수탈을 어떻게 극복했는지를 묘사한다. 클레버 감독은 바쿠라우를 언제든 타인들이 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장소로 설정했다. 언제든지 무너뜨릴 수 있을 것만 같은 존재로 설정된 바쿠라우는 보편적으로 소외된 공동체의 형상화이며, 인류 역사의 침울한 은유이다. 바쿠라우 그 자체로 표상되는 박물관은 피의 전시장으로 위치한다.

박물관에 배치된 무기들과 사진들은 치열했던 저항의 흔적이며 인간의 실체를 기록하는 장소이다. 반대로 박물관과 대비되는 장소가 있다. 초반부와 후반부에 박물관을 비춘 다음에 곧바로 다음 쇼트에 도밍가스(소냐 브라가)가 운영하는 병원이 등장하는데, 이는 단순히 '바쿠라우'라는 마을이 저항과 혁명으로만 점철된 곳이 아니라 성찰과 반성의 장소임을 동시에 드러낸다. 미래와 현재가 동시에 공존하는 '바쿠라우'에서 마을 사람들은 박물관에만 약탈의 증거를 기록하거나 배치하지 않고 개개인이 소지한 핸드폰으로 침략자들의 참수된 목을 영상으로 기록한다. 영원히 삭제되지 않을 실제가 된 가상의 공간인 바쿠라우는 현실에서 존재하지 않는 장소다. 그러나 그 증거와 기록은 어디에나 있다는 점에서 바쿠라우는 실제한다.

 

ⓒ 영화사 진진

마이클의 정체와 물신주의

미국적인 인물인 마이클은 기묘한 구석이 있는 인물이다. 왜 하필이면 미국일까? 그는 미국 웨스턴 무비를 상징하는 웨스턴 모자를 착용하고 있다. 독일 태생으로 추측되는 마이클이 자신의 정체성을 미국인이라 자처하는 모습에서 영화가 내재적으로 발화하고 있는 미국적인 장르 영화의 또 다른 전복적인 측면이 드러난다. 이전의 미국영화에서 주로 발견할 수 있었던 서사들을 생각해보자. 인종주의적 산물로 고착화된 서사들은 지나치게 평면적이고 관습적인 측면이 두드러지게 되는데, 가령 착한 백인이 악한 '인디언'과의 싸움에서 승리하는 형식의 영화들을 떠올린다는 지점에서 그렇다. 하지만 <바쿠라우>는 이를 뒤집는다. 후기 서부극에서 반대로 백인의 잔인성을 고발하는 영화가 활발하게 논의되었던 것을 한 번 더 비틀어 <바쿠라우>에서는 한층 더 진화된 형식, 즉 '피는 피로 갚는다'는 구호와 맞물려 과거에 존재했던 식민 지배에 대한 부채 의식을 미국이란 보편적인 장치를 통해 표출해낸다.

다만, 이것은 정치적인 요소로만 총체화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 근원에는 물신주의라는 진앙이 있기 때문이다. 물신주의를 상징화하는 시장 후보 토니(타델리 리마)는 바쿠라우를 장악하기 위해 마이클과 미국 용병을 고용한다. 그는 마을 사람들을 압박하거나 환심을 사기 위해 물을 끊거나 유통기한이 지난 음식과 손상된 책을 던지고 가는 등의 파렴치한 면모를 보인다. 곧 물욕은 인간의 '악마'화를 조장하고 있음을 보고한다. 토니가 마이클을 돈으로 고용했음이 발각되자 마을 사람들은 토니를 묶고 악마로 형상화된 마스크를 씌이고는 마을 밖으로 내보낸다. 반면에 마이클을 대하는 마을 사람들의 태도는 묘연하다. "한때는 좋은 사람이 될 수도 있었을 거야"라는 마을 여자의 말에 도밍가스는 "그도 어머니가 있었어"라고 대답한다. 과연 마이클은 좋은 사람이 될 수 있었을까. 지하 벙커로 들어간 마이클의 마지막은 이를 철저히 배반한다. "이건 시작일뿐이야"라는 울부짖음은 현재에도 미래에도 진행될 부조리에 대한 예고처럼 서늘하게 울려온다.

 

ⓒ 영화사 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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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재적인 모순이 의미하는 것

생각해 보면 각 시대의 인류가 감행했던 침탈의 역사는 타자를 온전히 식별할 수 없는 불가해한 상황 속에서 이루어졌다. 이러한 비가시적이며 내재적인 모순은 영화와 대중 사이의 충돌에도 강렬하게 접합한다. <바쿠라우>에 등장하는 사회, 역사적인 함의, 그리고 좋음과 선함의 구분이 명확하지 않다는 점이 바로 그렇다. 마을을 위해 범죄 행위를 자행하면서도 영웅으로 출현하는 룽가의 행위는 과연 올바른가? 바쿠라우는 과연 사람들을 품어줄 수 있는 안락한 공간인가? 아이를 살해한 후에 용병인 테리(조니 마스)가 그 행위를 강렬하게 비판한 것은 과연 옹호할 만한 일인가? 등등의 모호함은 등장인물과 배경의 역할을 평면적으로 소진시키지 아니하고 입체적인 요소를 이끌어낸다. 관객은 폭력의 현장에서 독재자와 용병들의 종말에 대해 어떤 짜릿한 통쾌함을 느끼면서도 동시에 이 이야기의 기원이 어디인지를 호기심을 갖게 될 것이다.

미국과 브라질 국기를 상징하는 듯한 우주, 별, 지구와 <바쿠라우>를 시종일관 감시하는 UFO 드론의 형상은 브라질이 갖고 있는 보편적인 문제의식을 모든 세계가 공유하고 있음을 강조한다. 필자는 <바쿠라우>를 통해 지난날의 어두웠던 인류의 역사들을 단번에 떠올렸다. 누군가의 가족으로 존재했던 누군가는 침략자였으며, 또 다른 누군가는 침략을 당하는 자였다. '나치'에겐 유대인이 그러했고, '미국'에겐 인디언이 그러했다. 바쿠라우를 감상 후 감탄을 금치 못할 기능적인 측면을 뒤로 한 채 역사라는 요소가 인생이란 상영관에 영사되고 있음을 인정하는 데 까지는 사실 얼마 걸리지 않았다. "이건 시작일뿐이야"의 마이클의 선언은 어디선가 준비를 마치고 모순의 형국으로 우리와 마주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악의 평범성」에서 한나 아렌트가 강조했듯 '시대의 명과 암을 직면하는 것은 인간의 과제'라는 선언이 <바쿠라우>에게도 유효한 적용이 될 것임을 상기한 채 또 하나의 책무가 시작되었다.

[코아르CoAR 이현동, Horizonte@ccoart.com]

 

ⓒ 영화사 진진
ⓒ 영화사 진진

바쿠라우
Bacurau
감독
클레버 멘돈사 필로
Kleber Mendonsa Filho
줄리아노 도르넬레스Juliano Dornelles

 

출연
우도 키어Udo Kier
소냐 브라가Sonia Braga
바르바라 콜린Barbara Colen
토마스 아퀴노Thomas Aquino
실베로 페레이라Silvero Pereira
카리네 텔레스Karine Teles
크리스 두벡Chris Doubek
조니 마스Jonny Mars

 

수입|배급 영화사 진진
제작연도 2019
상영시간 131분
등급 청소년관람불가
개봉 2021.09.02

이현동
이현동
 영화는 무엇인가가 아닌 무엇이 아닌가를 질문하는 사람. 그 가운데서 영화의 종말의 조건을 찾는다. 이미지의 반역 가능성을 탐구하는 동시에 영화 안에서 매몰된 담론의 유적들을 발굴하는 작업을 한다. 매일 스크린 앞에 앉아 희망과 절망 사이를 배회하는 나그네 같은 삶을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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