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트로덕션' 불안을 안아주는 따뜻함
'인트로덕션' 불안을 안아주는 따뜻함
  • 선민혁
  • 승인 2021.06.11 1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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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상수 감독의 영화가 개봉하면, 꼭 보는 편이다. 그의 영화를 좋아한다. 그러나 왜 그의 영화를 좋아하느냐는 질문을 받을 때면, 그냥 재미있다는 대답 외에는 딱히 할 말이 없다. 그의 영화가 다 비슷비슷하지 않으냐고 누군가가 이야기한다면, 이견을 제시하지 못할 것이다. 필자 역시도 불현듯 떠오른 장면이나 대사가 <우리 선희>(2013)에 나온 것인지, <옥희의 영화>(2010)에 나온 것인지 두 영화에 모두 등장하는지 알아내지 못할 때가 많기 때문이다. 그래도 '홍상수 영화'를 보는 것을 멈추지 않는다.

현실을 그대로 보는 것 같으면서도 그렇다고 하기에는 무언가 어색한 장면들, 꿈과 실제, 무의식과 의식이라는 소재 등 홍상수 영화가 가진 특유의 스타일을 좋아하기 때문에 새로 나온 그의 영화를 보러 간다는 것은 매번 즐거운 일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신작에 대해 큰 기대를 가지고 극장으로 향하지는 않는다. 새롭게 보게 될 작품이 그의 기존 작품들과 큰 차이가 있지는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있기 때문이다. <인트로덕션>을 보러 가는 마음 또한 다르지 않았다. 그의 최근 작품들의 분위기가 그대로 이번 작품에서도 그대로 이어질 것으로 생각했다.

 

ⓒ (주) 영화제작전원사 , (주)NEW

<인트로덕션>에서도 여전히 인물들은 '홍상수식'대로 대화했고, 고정된 카메라가 롱테이크로 씬을 담았으며, 자연물이 인서트로 나왔다. 시간적 간격이 있는 3가지의 이야기가 나온다는 점도 '홍상수 영화'스러웠다. 그러나 영화가 끝난 뒤에는 놀랐다. 형식적인 부분에서는 이전의 작품들과 유사한 점이 많았지만, 이 작품은 그의 다른 영화들과 특히, 최근작들과는 확실히 다르다고 생각했다.

영화는 3부로 나뉘어서 진행된다. 한 남자가 절실한 기도를 하는 모습으로 시작하는 1부는, 아버지(김영호)를 찾아온 아들 영호(신석호)의 이야기이다. 아버지는 영화의 첫 장면에서 기도를 하고 있던 인물인데, 기도의 내용으로 미루어 보아 새로운 마음으로 무언가를 시작하려는 듯하다. 아들 역시 단지 가벼운 마음으로 아버지를 만나러 온 것이 아닌 것으로 보이며 이들은 오랫동안 서로 만나지 않은 듯하다. 어떤 마음을 먹은 아버지는 아들을 불렀고, 아들은 그에 응했지만 만남은 미뤄진다. 아버지의 지인(기주봉)이 갑작스럽게 한의원에 방문했기 때문이다. 아들은 병원의 대기실에서 아버지를 기다리며 대신 다른 이와 재회한다. 한의원의 간호사(예지원)이다. 쌍화차를 챙겨주는 그녀와 과거의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 눈이 내리는 모습을 바라보기도 한다. 이 둘이 포옹하는 장면을 마지막으로 1부는 끝이 난다.

2부는 딸 주원(박미소)과 어머니(서영화)의 이야기이다. 딸은 의상 공부를 하기 위해 독일에 가기로 했고, 어머니는 그런 딸의 거처를 마련해주기 위해 독일로 동행했다. 어머니는 딸에게 독일에 살고 있는 자신의 지인인 화가(김민희)를 소개해주며, 그녀의 집에서 지낼 수 있게 해준다. 어머니는 딸을 위해 큰일을 하는 것인데, 이 모자관계가 다정해 보이지는 않는다. 어머니는 딸에게 딱딱하게 말하는 편이며 딸은 어머니의 눈치를 자주 보는 것 같다. 어머니와 딸, 화가가 하천을 산책하던 중, 딸은 전화를 받는다. 그녀 연인인 영호가 그녀를 보러 독일에 왔다는 것이었다. 딸은 어머니의 허락을 받은 뒤 영호를 만나러 간다. 이들은 재회한다. 영호는 주원과 함께 있고 싶어 자신도 독일에 공부하러 오면 어떻겠냐는 이야기를 하지만, 현실적으로 어려운 상황이다. 돈이 없기 때문이다. 영호에게도, 함께 살고 있는 어머니에게도. 그런데 한의원을 하는 아버지는 돈이 많다고 이야기한다. 아버지가 도와줄 수도 있을 것이라며 희망적인 대화를 나눈 뒤 주원과 영호는 포옹한다.

 

ⓒ (주) 영화제작전원사 , (주)NEW

3부는 영호의 어머니(조윤희)가 '아주 유명한 연극배우'(기주봉)를 영호에게 소개해주는 이야기이다. 어머니는 영호를 바닷가의 한 식당으로 부르고 영호는 친구(하성국)를 데리고 그곳으로 향한다. 이들은 술을 마시기 시작하고, 어머니가 영호에게 배우를 소개해준 이유가 드러난다. 연기를 하던 영호가 그것을 그만두게 된 이유를 어머니는 이해할 수가 없었고, 이에 관련해서 영호가 배우의 조언을 받게 하고자 했던 것이다. 영호는 키스신 촬영에 대한 부담감으로 연기를 그만뒀다. 여자친구에게 미안했던 것이다. 가짜로 누군가를 안는 행위란, 하면 안 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한다. 배우는 화를 낸다. 그게 얼마나 좋은 일인데 그런 소리를 하느냐며.

배우의 격한 조언을 들은 영호는 그것에 동의하는 대신, 차 안에서 잠들어 꾼 꿈에서 연인 주원을 만난다. 그녀와 반갑게 재회하는 꿈에서 깬 뒤, 영호는 충동적으로 바다에 뛰어들고, 물에 젖어서 나온 그를 친구가 안아주며 영화는 끝이 난다.

<인트로덕션>은 따뜻하다. 직접적으로 그러한 느낌을 주는 것은 각 에피소드를 마무리하는 '포옹'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 포옹이 따뜻할 수 있는 것은 안아줄 불안이 존재하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영호는 정말 그렇게 생각했느냐는 배우의 질문에 그렇다고 대답하지 않고 '그랬던 것 같습니다'라고 이야기한다. 마음을 확실히 알고 있는 것이 아니다. 영호는 자신의 마음을 정확히 몰라 방황하지만, 충동을 느끼고 기꺼이 행동한다. 그동안 해오던 연기를 관둬버리고, 타국으로 멀리 떠난 여자친구를 불쑥 찾아가며 겨울날 파도가 치는 바다에 뛰어들기도 한다. '요즘 애들은 충동적이다.'라는 주원 모친의 판단을 만족시킨다. 

'홍상수 영화'의 가장 흥미로운 부분 중 하나는 '인물을 들여다보는 재미'이다. 기존의 작품에서도 자기 자신의 마음을 모른 채 방황하는 인물은 여럿 등장했지만, 이름 대신 '아들'과 '딸'로 표현되는 방황하는 인물들의 등장은 '홍상수 영화'의 새로운 시작을 기대하게 만든다.

[글 선민혁, sunpool2@ccoart.com]

 

ⓒ (주) 영화제작전원사 , (주)N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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