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영장으로 간 남자들' 유연하게 펼쳐낸 곡선의 태
'수영장으로 간 남자들' 유연하게 펼쳐낸 곡선의 태
  • 오세준
  • 승인 2019.07.26 08: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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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 나온 중년 남성들의 이야기에 왜 집중하여 보고 있는 것일까. 심지어 수중 발레를 하는 모습에!

물속에서 팔과 다리를 힘차게 움직이며 그들은 끊임없이 어떤 선을 만들고, 그 선들은 또 어떤 모양을 만든다. 그것은 마치 나이가 들면서 천천히 자리 잡은 얼굴의 주름과 같고, 하루하루 고단하게 살아 묵직하게 자리 잡은 몸의 살덩어리와 같다.

 

ⓒ 엣나인필름
ⓒ 엣나인필름

질 를르슈 감독의 영화 <수영장으로 간 남자들>은 제목 그대로 수중 발레에 도전하는 중년 남성들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과거로 자리 잡은 '청춘'과 가까운 미래에 자리한 '노년' 그 사이. 사회로부터, 직장으로부터, 가족으로부터 소외된 중년의 주인공 '베르트랑', '로랑', '마퀴스', '시몽', '티에리', 2년째 직장을 찾지 못했거나 여전히 데이빗 보위와 같은 록커를 꿈꾸거나 자신의 회사가 파산 직전까지 갔거나 등등. 서로 다른 이유를 가지고 있다. 이런 그들의 사정을 들어줄 친구는 언제나 수중 발레를 배우는 동년배 친구들로, 티격태격 싸우거나 합을 맞추지 못한 채 제각각 손과 발을 뻗기 일쑤이지만 함께 배우는 시간 동안은 적어도 근심 가득한 현실에서 벗어나 자유로워지는 순간이다.

네모와 동그라미. 두 도형은 주인공들이 겪는 상황이나 느끼는 감정 등을 나타내는 이 영화의 또 다른 언어이다. 집, 회사와 같이 공간의 형상을 하거나 아빠라면, 남편이라면, 아들이라면, 회사원이라면 등과 같이 사회가 암묵적으로 정해놓은 것들 속에 갇혀있는 모습을 나타내기도 한다. 그와 반대로 서로를 마주 보고선 얼굴, 눈동자, 물 위에서 모두가 손을 잡고 그려낸 원 등 동그라미는 서로가 이해하고 감정을 공유하는 모습들을 보여준다. 이런 상황을 담기 위해 카메라는 마스터 샷으로 인물과 배경 전체를 담아내거나 인물들이 화면 안에 모여 만들어낸 유연한 몸짓을 담기도 한다. 또 클로즈업을 통해 얼굴과 눈동자를 보여주며 이들의 감정선을 전달한다.

 

ⓒ 엣나인필름

직장 없는 남편, 아직도 유명한 가수가 되고 싶은 아빠, 엄마로부터 존중받지 못하는 아들, 파산 직전의 회사 사장 등 영화는 다양한 층위의 중년 남성들의 위치를 조명한다. 그러나 결코 '중년 남성'이라는 한정된 인물로 이야기를 끌고 가지 않는다. 그들을 가르치는 델핀과 아만다, 두 사람에게도 나름의 사정이 있다. 아만다는 휠체어를 타고 다녀야 하는 불행을 아만다는 그런 좋은 파트너이자 친구를 잃은 아픔과 동시에 우울증을 앓고 있다. 꽤 멀어진 두 사람의 거리는 오합지졸 주인공들의 훈련을 통해서 가까워진다. 그 이유는 결국 서로를 위해서. 아만다는 우울증으로 힘든 델핀을 대신하여 중년 남성들을 가르치는 한편 델핀 역시 아만다와 자신의 팀이 힘든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믿고 기다려 준 고마움에 다시 일어선다.

대회로 향하는 그들에게 이제는 다가올 내일이 더는 두렵지 않다. 아니. 설령 그들의 결과가 좋든 나쁘든 타인들이 바라보는 시선에 갇혀 있을 이유 따위는 없다. 익숙한 이야기. 어쩌면 안정적인 결말로 끝을 맺는 이 영화에 눈시울이 붉어질 수 밖에 없는 이유, 어두컴컴한 밤이 지나고 뜨겁게 떠오르는 동그란 태양을 '혼자'가 아닌 '모두'가 지켜보며 하나가 된 기분을 관객 역시 그들과 함께 하는 순간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다시 웃을 수 있다는 것은 말 자체로는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있지만, 정작 말할 수 없는 상황, 탈출하고 싶지만 그럴 수 없는 순간들의 나날을 겪고 있는 어떤 누군가에게 힘든 일이 될 수 있다. 수영장으로 간 그들의 사정만큼 그 어딘가로 한 발짝 내디딜 수 있는 '용기'는 뱃살 가득한 저 중년들이 수압을 버티며 한동작 그리고 멋진 피날레까지 보고 있자면 어느새 가슴 한 쪽에 가득 채워져 있을 것이다. 어쩌면 그들과 같이 수영장으로 향할 수도.

[글 오세준, yey12345@ccoart.com]

 

ⓒ 엣나인필름

수영장으로 간 남자들
Sink or Swim
감독
질 를르슈
Gilles Lellouche

 

출연
마티유 아말릭
Mathieu Amalric
기욤 까네Guillaume Canet
브누와 뽀엘부르드Benoit Poelvoorde
장 위그 앙글라드Jean-Hugues Anglade
비르지니 에피라Virginie Efira
레일라 벡티Leila Bekhti
마리나 포이스Marina Fois
필리프 카터린느Philippe Katerine

 

수입|배급 엣나인필름
제작연도 2018
상영시간 122분
등급 15세 관람가
개봉 2019.07.18

오세준
오세준
《코아르》 영화전문기자 및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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