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갓랜드' 식민주의자의 땅
'갓랜드' 식민주의자의 땅
  • 이현동
  • 승인 2024.03.12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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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에 스며든 죽음의 채취"

<갓랜드>(2022)는 덴마크 남동부 해안을 최초로 기록한 한 신부가 촬영한 7장의 역사적인 사진을 통해 영감을 받아 제작되었다. 이 영감은 감독의 자의식을 역추적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공한다. 먼저, 이 영화가 구현하는 역사적 배경에는 2차 세계대전 전까지 아이슬란드를 점령했던 덴마크인들의 눈에 비친 타자의 시선과도 결부되어 있다. 통치 방법의 일환으로 아이슬란드인을 개종하기 위한 교회 개척은 결국 이 땅을 정복했음을 드러내려는 방법과 표지로 기능하기에 무리가 없다.

 

ⓒ 엠엔엠인터내셔널

<갓랜드>는 종교가 가진 모순을 흡수하면서 대지에 매몰되어 있는 인류의 역사를 진술하는 영화이기도 하다. 루카스는 여기서 신부이자 사진작가로 등장하는데, 여기서 상기하게 되는 카메라의 존재는 그 물질성뿐 아니라 영적인 세계, 즉 죽음을 응시하면서도 보존하는 효력이 무엇인지를 연관 짓게 된다. 창작자의 기술을 발원지로 삼는 미술과 달리, 영화나 사진이 선언하는 대표적인 효과는 시간을 정지시키는 것이다. 이런 정지 효과에서 발출할 수 있는 기능은 그 시대를 파악할 수 있는 주변부 배경과 이 사진 속 현실이 영속할 것이라는 종교적 믿음에서 근원 한다. 어찌 보면 두 매체가 여전히 다른 방식으로 대체될 수 없는 이유는 종교적이기 때문이다.

삶을 보존하기 위해, 영면함을 부정하기 위해 이미지를 개발한 인간은 텍스트뿐만 아니라 온전히 자신의 세계를 반영하는 이미지가 필요했다. 레지스 드브레의 『이미지의 삶과 죽음』의 첫 챕터에서 말한 동굴 벽화가 새겨진 현실 재현은 영원한 삶에 대한 욕망과 죽음을 잊기 위한 사유를 연결하는 꼬리다. 이미지로부터 죽음의 흔적을 보관할 뿐만 아니라 부활하기를 갈망하는 인간은 종교적 존재로 사진을 남기고 싶어 한다. 이는 <갓랜드>에서 루카스가 생명의 위협 속에서도 무거운 카메라와 현상액, 장치를 매고 길을 나서는 모습을 통해 가시화된다. 마치 종교적 표식처럼 카메라를 운반하는 그는 십자가는 버려도 카메라는 절대 버리지 않는다. 종교와 개인의 욕망 앞에서 영화는 그들의 죽음을 영화로 사진으로 기록한다.

 

ⓒ 엠엔엠인터내셔널

또한, <갓랜드>의 화면비 1.33:1은 그간 감독이 차용해온 전략으로 사진과 카메라 구도를 연결 지어 보면 더욱 묵직한 의미를 지닌다. 영화는 카메라의 입체감을 제거하는 모험을 시도하면서, 카메라가 가진 원본의 구도인 평면성을 통해 사진으로 돌아가려는 시도를 거듭한다(이는 단편 <네스트>(2022)에서 더욱 전면적으로 드러나는 형식이기도 하다). 다각도의 구도와 몽타주, CG를 다채롭게 활용하는 현시대에서 이러한 효과를 의도적으로 방기하려는 시도에서 얻을 수 있는 효력이란. 결코 단순하지 않다. 이와 동시에 몇몇 영화들을 떠올릴 수 있는데, 평평한 구도로 배경과 인물을 사진처럼 묘사한 영화들, 후기 칼 데오도르 드레이어, 리산드로 알론소, 미구엘 고미쉬, 리타 아제베두 고메즈, 장 클로드 루소 등의 작가들 말이다.

패닝 등의 움직임이 유유하게 발동되고 있지만, 도무지 영화라 부르기보다 사진으로 부르고 싶은 <갓랜드>에서 고전 영화 혹은 사진의 재현보다도 현존을 보게 된다. 이는 현실의 현존을 즉각적으로 떠올리기보다 기원으로부터의 현존을 사유하는 방식에 관한 것이다. 몇몇 사진의 이미지가 영화로 변환되면서 움직이는 형상은 이러한 과정을 유연하게 사유하게 한다. 이 영화에서 유기적으로 동원되고 있는 자연 풍광과 종교, 식민주의 등의 주제는 현실을 반영하는 사진 안에 침투해 있다. 이러한 현존은 형식의 현존이면서 감각의 촉수를 자극하여 영화가 혹은 사진이 가진 의미를 찾는 시도를 거듭하게 한다. 다시 말해, <갓랜드>가 가진 영화적 힘은 죽음이 일으키는 토양의 변화가 포착하는 긴긴 순간을 고고하고 절제된 형태로 목격하는 데 있다.

 

ⓒ 엠엔엠인터내셔널

죽음의 항해

<갓랜드>는 덴마크의 루터교 신부이자 사진작가인 루카스(엘리오트 크로세트 호베)의 고된 여정으로부터 시작되는 이야기다. 영화의 챕터는 두 종류로 분리되어 있다. 교회를 개척하기 위해 아이슬란드를 횡단하는 이야기와 땅에 도착한 신부 루카스가 심경의 변화를 겪는 이야기다. 여기서 루카스는 아이슬란드어를 구사하는 덴마크 통역사와 아이슬란드 출신의 노년기로 추정되는 라그나르(잉바르 에거트 지그로슨)를 비롯한 일꾼들과 그 여정을 함께 한다.

먼저, 아이슬란드의 지형적 특징은 심미적으로 아름다운 장소이지만 특정 장소에는 추위가 왕성하고 화산 활동을 보이는 위험한 구역으로 나뉜다. 특히나 단 한 번 영화에 삽입되는 화산 폭발은 서서히 그들에게 다가오는 죽음의 그림자, 자연이 가진 강력한 화력에 대한 경고이자 아이슬란드와 덴마크의 관계를 암시하는 이미지다. 이것은 영화의 제목으로부터 표명하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본래 영화의 제목은 신의 땅이 아니라 마티아스 요큄손의 시에서 따온 제목으로 덴마크어와 아이슬란드어로 “비참한 땅”이라는 의미가 있다. 루카스가 아이슬란드인인 라그나르를 향해 적대적인 감정을 적극적으로 갖게 되는 것도 덴마크에서 아이슬란드로 넘어가는 순간이며 결국 이는 그 아이슬란드인인 감독의 자의식과 마찰하는 것이다.

극한의 기후를 동반하는 아이슬란드에서 진입하기 위해 루카스는 지름길을 선택하지 않고 사진을 찾기 위해 우회로를 선택한다. 동시에 아이슬란드 땅을 밟기 위해 호기롭게 선박에 탑승하여 처음 찍었던 사진 속 활달함과 초반의 평안한 분위기와는 달리 시간의 경과는 그들에게 점차 밀려오는 불안으로부터 자유할 수 없게 한다. 라그나르는 점차 쏟아지는 비로 인해 물이 깊어졌으므로 지금은 건너기 힘들다고 만류한다. 루카스는 이에 불응하고 무리하게 건너면서 그가 아끼던 통역사가 그만 말에서 떨어져 물살에 휘말리면서 죽게 된다. 여기서 언어가 삭제된 루카스와 라그나르의 갈등은 소통의 불화로 확장된다.

이때 라그나르의 말을 경청하지 않는 루카스의 행동에서 묘하게 간추릴 수 있는 태도 중 하나는 식민주의적 태도다. 지배층인 정복자와 피지배층인 원주민을 연상시키는 이 관계는 언어라는 서로를 조율할 수 있는 장치가 사라지자 다시금 이러한 관계로 돌아가게 되는 것이다. 오랜 여정에 지친 루카스는 자신을 구원해달라며 하나님께 애원한다. 그러나 구덩이에 빠져 자기 몸을 가눌 수 없는 상태가 되어 버린 루카스를 버려둔 채 반대로 전진한다. 카메라는 아이슬란드인들을 천천히 패닝 하다가 다시 360도를 돌아 루카스를 조명한다. 그리고 영화는 화산 폭발 장면과 함께 아이슬란드에 도착해 겨우 의식을 차린 루카스를 보여준다.

 

ⓒ 엠엔엠인터내셔널

이는 새로운 챕터를 연결하는 배경 전환이면서 루카스의 변화를 명확하게 관측할 수 있는 장면이기도 하다. 우여곡절 끝에 아이슬란드에 도착한 루카스는 교회 건축에 착수한다. 분명 그가 사명을 완수할 가능성은 높아졌지만, 사명감에 대한 환희는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다. 그 땅을 다스리는 상위 계층인 덴마크인 카를(야곱 울힉 로만)의 딸들과 함께 처음 식사하는 자리에서 받은 기도 요청을 우물쭈물하며 기도하는 그의 모습에는 신앙심은 느껴지지 않는다.

루카스의 변화가 주요하게 드러나는 장면은 결혼식 장면에서이다. 그는 피로연과 함께 진행되던 레슬링 장면에서 기존에 보여주지 않았던 자신의 남성성을 뿜어낸다. 덴마크를 떠날 때만 해도 통역가에게 의존하며 늘 불안하고 병약해 보였던 루카스는 완전히 다른 존재로 변모한다. 그는 동시에 결혼 적령기인 카를의 첫째 딸 안나(빅토리아 카르멘 손느)와 밀회를 나누면서 도덕률을 위반하는 최초의 행위인 살인을 저지르게 된다. 루카스는 사진을 찍어달라는 라그나르의 말을 못 알아듣겠다며 무시한다. 그리고 이어지는 라그나르의 고해성사에서 루카스를 아이슬란드까지 인도했던 말을 죽였다는 이야기를 듣고 격분하여 달려가 그를 죽인다. 라그나르를 말보다 못한 존재로 여기는 이 식민주의적 형상은 인류가 통속적으로 전승해온 보편적인 탐구와 맞닿아 있다. 유사한 예시로 베르너 헤어조크의 영화인 <아귀레, 신의 분노>(1972)에서 인디언 원주민에게 성경을 소개하면서 이를 이해하지 못하는 원주민을 바로 죽이는 우스꽝스러운 장면은 루카스가 라그나르를 대하는 태도와도 무관하지 않다. 그리고 루크레시아 마르텔의 <자마>(2021)의 초월적이며 환상성 안에서 보여주었던 식민주의에 관한 이념을 정직하게 전달하려는 팔메이슨은 도리어 자연으로 돌아간 인간의 죽음을 초연하게 바라본다.

마지막으로 욕망이 얽힌 이 이야기는 루카스의 죽음으로 이어진다. 교회 건축 후 첫 번째 예배를 위해 마을 주민들이 모이고 이를 인도하기 위해 루카스는 중앙에 선다. 그러나 무슨 일인지 밖에서 들리는 비명소리를 듣고 루카스는 죄책감인지 모를 감정에 휩싸여 예배 도중 몰래 떠난다. 평소 그의 행실과 딸과의 관계를 미심쩍어하던 카를은 그를 추적한다. 이때 카를은 라그나르의 시신을 발견하고 루카스가 그를 죽였음을 확신하게 된다. 루카스를 만난 카를은 칼로 그를 찌른다. 이후 영화는 자연 풍광을 주체로 시간의 경과가 주는 변화를 영화의 무대로 삼는다. 계절에 따라 암석과 덤불이 초록과 하얀색으로 물들기 시작하는 풍경 속에 시신은 점차 소멸한다. 이는 식민주의를 자연으로 치환하려는 실존주의와도 접촉되어 있다. 인간의 실존을 무심하게 응시하는 감독의 태도는 결국 땅의 채취로 묻어 있는 죽음을 보게 하는 것이다.

피부가 문드러지고, 앙상하게 뼈만 남아 점차 땅의 일부로 변하는 동물과 인간의 모습을 보여주었던 <갓랜드>는 가장 현실과 필연에 가까운 사진과 죽음을 통해 새로운 영화를 발명한다. 식민주의자 또한 죽는다는 명증한 사실 앞을 생각해 보면 감독은 영화 안에서 아이슬란드인이자 덴마크인이기도 하지만 분명히 ‘인간’이기도 하다.

[글 이현동 영화평론가, Horizonte@ccoart.com]

 

ⓒ 엠엔엠인터내셔널

갓랜드
GODLAND
감독
흘리뉘르 팔메이슨
Hlynur Palmason

 

출연
엘리엇 크로세트 호브
Elliott Crosset Hove
잉바르 에거트 지거드슨Ingvar Eggert Sigurdsson
야코브 로만Jacob Lohmann
와지 산도Waage Sando

 

배급 엠엔엠인터내셔널
제작연도 2023
상영시간 143분
등급 15세 관람가
개봉 2024.02.28.

이현동
이현동
 영화는 무엇인가가 아닌 무엇이 아닌가를 질문하는 사람. 그 가운데서 영화의 종말의 조건을 찾는다. 이미지의 반역 가능성을 탐구하는 동시에 영화 안에서 매몰된 담론의 유적들을 발굴하는 작업을 한다. 매일 스크린 앞에 앉아 희망과 절망 사이를 배회하는 나그네 같은 삶을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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