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3대 영화제 중 가장 일찍 개막하는 '베를린 영화제'는 칸과 베니스와는 다른 다양성 영화를 추구해 왔다. 지난번 이상용 평론가가 쓴 제80회 베니스 영화제에서도 관련 글에서 언급한 바 있듯이, 경쟁 부문에서 올드보이들의 얼굴을 내민 것을 생각해보면, 베를린 영화제는 반대로 젊고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은 감독들이 대거 포진해 있다. 2023년이 총 영화 편수가 287편이었던 것에 반해 올해는 200편으로 하향 조정되었지만, 경쟁 작품은 19편에서 20편으로 약간 상향되었다. 먼저 경쟁 부문을 한정해서 다른 영화제와의 차이점을 이야기해 보자면, 상대적으로 나이가 젊은 감독들이 대거 포진해 있다는 것이다. '마티 디옵', '마르게리타 비카리오', '베흐타시 사내에하', '넬슨 카를로 드 로스 산토스 아리아스', '민 바하두르 밤', 스베린 피알라, 구스타브 몰러가 80년대생이다. 물론 '젊다'라는 것이 우연한 시류에 의한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다양한 국가의 감독들이 장르를 불문하고 경쟁에 올랐다는 점은 역시 베를린 영화제 답다.
더 흥미로운 점은 심사위원장인데, 영화 <노예 12년>(2013), <블랙 팬서>(2018)를 통해 아카데미 상을 받은 배우 '루피타 뇽오'가 지난해 크리스틴 스튜어트에 이어서 경쟁 부문의 심사위원장직을 수행한다. 그녀는 영화 <어스>(2019)에서도 그러했지만, 아프리카 디아스포라와 인종이란 주제를 불러일으키는 영화에 출연하면서 아티스트로 입지를 다졌다. 뇽오는 83년생으로 앞으로 있을 77회 칸 영화제 경쟁 부문 심사위원장으로 선정된 '그레타 거윅'하고도 나이가 같다. 지난번 80회 베니스 영화제에서도 '데미언 샤젤'이 그랬던 것처럼 나이가 적은 이들을 심사위원장으로 위촉하는 것이 평균적인 일이 되고 있다. 집행위원장인 '마리에트 리센벡'과 '카를로 샤트리안'은 다양한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관객을 수용할 수 있는 다재다능한 능력, 캐릭터의 일관성을 이야기하면서 선정 이유를 밝혔다. 그러나 여기에는 할리우드라는 거대한 자본을 의탁하는 현실, 그리고 정치적인 선택이라는 평가를 피할 수는 없다. 작년과 올해도 역시 미국에서 왕성한 활동을 하는 배우라는 점을 지목해 보면 그렇다. <노예 12년>이 미국을 반성하는 역사를 연기한 흑인 배우가 정치적 올바름이라는 테마를 영화제라는 공간을 향해 넓게 발화할 수 있다는 이점 때문일까.
경쟁 부문을 심사하는 인원은 7명으로 작년과 동일하다. '브레이디 코뱃', '허안화', '크리스티안 페촐트', '알베르 세라', '자스민 트린카', '옥사나 자부즈코' 등이 황금곰상과 은곰상을 심사하기 위해 국제심사위원단으로 선정됐다. 작년 베니스와 칸이 9명이었던 것에 비해 적은 인원이다. 이는 작품 규모가 상대적으로 적다는 것을 의미한다. 작품을 선정하는 기준은 매번 다르겠지만, 베를린은 중복되는 국적을 지닌 심사위원 없이 심사가 진행된다는 점에서 유의미한 지점이 있는 건 사실이다. 여기서 돋보이는 이름이 있는데 영화계에서 종사하지 않는 우크라이나 작가 '옥사나 자부즈코'다. 과연 2023년 BBC에서 여성 100인에 선정할 정도로 영향력 있는 그녀가 영화를 어떤 방식으로 평가할지 사뭇 기대된다. 작년 역시 올드보이가 장악했던 베니스와 칸에 비해서 비교적 알려지지 않은 작가들이 수상하면서, 베를린 영화제가 독자성을 지닌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올해 역시 영화제를 통해 유입된 작품 말고도 한국에 잘 알려지지 않는 감독이 많다. 토속적이며 과거의 유산들을 살펴볼 수 있는 다큐멘터리와 독창적인 호러, 심리 스릴러 SF 영화까지 다채로운 시도와 감독의 특성들이 고스란히 잘 반영되는 작품들이다.
새로운 시도, 새로운 영화
먼저, 개막작으로 선정된 작품은 킬리언 머피, 에밀리 왓슨, 에일린 윌시, 미셸 페어리 등의 유명한 배우가 출동하는 아일랜드-벨기에 합작 영화 <이처럼 사소한 것들>(Small Things Like These, 2024)이다. 이 영화는 1985년 크리스마스 기간에 아버지와 석탄 판매원 빌 펄롱(킬리언 머피)가 마을 수녀원의 끔찍한 비밀을 규명하면서 충격적인 진실과 마주한다는 이야기를 그린다. 가톨릭 기관이 '타락한 젊은 여성'을 교화한다는 명목으로 운영한 기관인 정신병원 아일랜드 막달레나 세탁소의 폭로를 조명한다. 특히, 벤 애플렉이 제작에 총괄 프로듀서를 맡고, 각본에 엔다 월시, 맷 데이먼, 드류 빈튼 등이 제작에 참여했다.
이번 경쟁작 중 가장 많은 국적의 감독이 포진해 있는 나라는 프랑스다. 브루노 뒤몽, 올리비에 아사야스라는 거장에 이어 클레르 뷔르게의 작품이 관객을 기다린다.
브루노 뒤몽은 초기 작품에 비해 수상경력이 부재하고, 올리비에 아사야스는 그에 비해 수상 성적이 꾸준하다. 브루노 뒤몽은 무명 배우를 고집했던 초기 작품과는 다르게 대중들에게 잘 알려진 줄리엣 비노쉬, 레아 세두를 기용한 <까미유 끌로델>(2013), <프랑스>(2021)와 같은 작품을 선보이면서 나름대로의 파격적인 변신을 해왔다. 이번 작품 <제국>(The Empire, 2024)은 그가 처음 시도해보는 사이파이 영화로 오팔 해안 어촌 주민들의 평범한 삶이 행성 간 제국 기사들로 인해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는 영화다. 그의 영화가 대부분 정적인 반면에, 이 영화가 가진 거대한 스케일과 시네마틱 유니버스는 뒤몽에겐 새로운 도전임은 틀림없어 보인다. 하지만 필자는 여전히 그를 단번에 떠올리는 작품은 고독과 공허가 절규하는 실존주의 영화인 <휴머니티>(1999)같은 초기작이다. 과연 이번 작품에서 이를 넘는 인상을 심어줄 수 있을까.
작년 올리비에 아사야스가 <퍼스널 쇼퍼>(2016) 이후 크리스틴 스튜어트와 함께 프로젝트를 진행한다고 밝히기도 했지만, 이번 영화는 아닌 걸로 밝혀졌다. "펜데믹을 배경으로 한 코미디"로 묘사되는 이번 <정지된 시간>(Suspended Time, 2024)은 영화 감독인 에티엔느와 음악 저널리스트 폴이 새로운 파트너인 모르간과 캐롤과 함께 어린 시절 살던 집에 갇히게 되면서 펼쳐지는 이야기다. 사물을 통해 기억을 소생시키고 그들을 갈라놓는 원인을 추적해나가는 이 영화는 비현실과 불안이 난입하면서 일상을 침범하면서 묘한 광경을 목격하게 된다. 꿈과 현실, 영적인 세계를 다루던 그의 기존 작품과 연결하는 소재인 만큼 주목하기에 충분해 보인다.
경력이 길진 않지만 클레르 뷔르게는 단편 영화부터 자신의 커리어를 꾸준히 쌓아올린 감독이다. 2010년 세자르에서 <이츠 프리 포 걸스>(2009)로 최고 단편 영화상을 받기도 하였고, 2014년에는 첫 장편 영화 <파티 걸>(2014)를 통해 칸 영화제에서 황금 카메라상을 거머쥐면서 이름이 알려졌다. 그다음으로 수상을 노리는 올해 베를린 경쟁작인 <외국어>(Langue Étrangère, 2024)는 프랑스에서 독일로 어학연수를 떠나는 10대 소녀 패니가 우연히 정치에 관심 많은 펜팔 친구 레나를 만나면서 전개된다. 패니는 레나를 유혹하기 위해 거짓말을 하게 되면서 자신의 삶을 부풀려내면서 펼쳐지는 이야기다. 과연 이번 작품에서도 <파티 걸>과 같이 뛰어난 미장센을 보여줄 수 있을지 사뭇 기대된다.
베를린영화제 단골이자 <어 캅 무비>(2021), <박물관 도적단>(2018)으로 은곰상을 두 번 수상한 멕시코 감독 '알론소 루이즈팔라시오스'가 영어 장편 데뷔작인 <라 코치나>(La Cocina, 2024)로 돌아온다. 뉴욕의 번화가 레스토랑에서 하루 동안 일어나는 이야기인 이 영화는 <어 캅 무비>에서 열연을 펼쳤던 라울 브리오네스가 불법체류자로 미국인 웨이트리스 줄리아와 관계를 맺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해프닝을 담았다. 이 감독이 캐릭터 특성을 강조한 블랙코미디로 비평가와 대중에게 사랑을 골고루 받았듯이 미국으로 넘어온 그의 작품 세계가 어떻게 확장될지 주목해 보자.
넬슨 카를로 드 로스 산토스 아리아스의 영화 <페페>(Pepe, 2024)는 영화와 드라마의 소재로 자주 쓰인 메데인 카르텔의 수장인 마약왕 파블로 에스코바르의 개인 동물원에서 살고 있는 하마에 관한 이야기다. 아프리카에서 콜롬비아로 운송된 이 하마는 동물이 내레이터로 직접 등장하여 자신의 삶을 이야기한다. 다큐멘터리 장르와 카메라 트랩, 이미지 영상 등의 스타일이 혼합된 이 작품이 가진 특성을 영화제 예술 감독인 카를로 차트리안은 "경쟁 작품 중 가장 분류할 수 없는 작품"이라 언급하기도 했다.
네팔 감독 '민 바하두르 밤'은 84년생 젊은 나이임에도 계속해서 국제 영화제에서 가능성을 보여준 작가다. <플루트>(2012)로 네팔 최초 베니스국제영화제에 초청된 데 이어 <검은 닭>(2015)을 통해 베니스 비평가 주간 최초 최우수 작품상이라는 영예를 얻기도 했다. 30년 만에 베를린 영화제 본선 경쟁 부문에 최초 진출한 남아시아 영화 <샴발라>(Shambhala, 2024)는 네팔의 히말라야 다인종 마을을 배경으로 한다. 결혼한 지 얼마 안 되는 여성 페마가 새로운 삶을 살고자 고군분투하는 이 이야기는 남편 타시가 사라지고 나서 그를 찾아 스님과 함께 여행을 떠나면서 시작된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정착촌의 풍경을 담은 이 영화는 지정학적 특징과 전통을 넘어선 강인한 현대적 여성을 통해 그 여정을 강렬하게 묘사한다.
러시아 다큐멘터리 감독 '빅토르 코사코프스키'는 시와 현실의 영화를 만들겠다고 공언하며 지금까지 인간의 죽음, 광활한 대자연, 일상의 숭고함 등을 끊임없이 기록해 왔다. 이번 경쟁에 오른 <아키텍톤>(Architecton, 2024)은 시간을 능숙하게 조율하며 명상적 이미지에 도달하려는 그의 노력이 가장 돋보이는 전작인 <군다>(2020)와 <아쿠아렐라>(2018)를 조합한 작품처럼 보인다. 이번 작품은 건축을 무대로 하여 고대 과거 건축물의 설계와 건설이 인류의 파괴를 드러내는 동시에 어떻게 하면 희망을 전망할 수 있을지를 우리에게 알려준다.
2006년 베를린 영화제에서 <프리 윌>로 은곰상을 수상한 마티아스 글라스너의 이번 작품 <죽음>(Dying, 2024)은 오랫동안 가족으로 지내지 못한 구성원 개개인들을 따라가며 펼쳐지는 이야기다. 치매에 걸린 남편을 보며 기뻐하는 아내도 암으로 인해 죽음을 앞두고, 아들은 전 여자 친구의 대리 아빠로, 딸은 불륜을 하며 살아간다. 죽음을 통해 다시 가족이 만나게 되는 이 이야기가 가진 힘은 <프리 윌>에서 보여주었던 정신 병리학적 측면과 감독이 말하듯, 자신을 깊게 돌아볼 수 있는 내면의 시선에 있다. 현대인에게 주어지는 죽음이란 가족에게 어떤 의미일지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이 될 것이다.
'홍상수'의 <여행의 필요>(A Traveler’s Needs, 2024)는 <클레어의 카메라>(2017)에서 연기했던 이자벨 위페르가 다시금 출연하여 자기를 온전히 부양하기 위해 두 여자의 프랑스어 선생님이 되면서 펼쳐지는 에피소드를 다룬다. 구조적으로 몽타주를 구성하여 자신만의 영역을 건축하고 있는 미니멀리스트 홍상수가 보여 줄 이번 영화는 자신을 투영한 자서전일까. 아니면 또 다른 측면을 보여줄 수 있는 영화일까. 작년 <물 안에서>가 인카운터 부문으로 올라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긴 했지만, 2022년 은곰상을 수상한 <소설가의 영화>에 비해 아쉬운 평을 받은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유일하게 한국 감독 중 홍상수가 베를린 영화제에서 심사위원 대상과 감독상, 각본상을 받은 경력이 있는 만큼 이번 경쟁에 오른 <여행의 필요>는 황금곰상의 가능성을 점쳐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파올로 소렌티노의 조감독 출신인 '피에로 메시나'는 장편 데뷔작 <당신을 기다리는 시간>(2016)으로 평단에 주목받은 바 있다. 정교한 미장센, 줄리엣 비노쉬의 뛰어난 연기가 절묘하게 합을 이뤘다는 평이었다. 경쟁에 오른 이탈리아, 프랑스, 영국이 공동 제작한 <어나더 엔드>(Another End, 2024)는 세계적인 배우인 가엘 가르시아 베르날, 레나테 라인제브, 베레니스 베조 등을 섭외해 그 장점들을 이어나갈 예정이다. 이별의 슬픔을 덜어주기 위해 죽은 사람의 의식을 산 사람의 몸으로 되돌리는 신기술이 개발된 근 미래를 배경으로 한다. 이 공상과학 영화는 다른 사람의 몸을 입은 연인을 계속 사랑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에서 시작되었다. 죽은 사람의 얼굴과 제스처, 음성을 복원하는 현대 시대에 이 영화는 얼마 남지 않은 미래에 우리에게 주어지는 현실을 생각하게 만든다.
경쟁 부문에 오른 이들 중 가장 나이가 어린 1988년생인 '마르게리타 비카리오'는 싱어송라이터, 배우, 영화 제작자라는 독특한 이력을 갖고 있다. 그녀는 대중음악과 브레히트 정치 연극을 접목한 학사 논문을 쓸 정도로 다방면에 관심이 많다는 사실을 볼 수 있다. <글로리아!>(Gloria!, 2024)는 그녀가 감독과 시나리오 작가로 만든 장편 영화 데뷔작이자 경쟁 부문에 선정된 영광스러운 작품이다. 베니스에 한 여자 기숙학교를 배경으로 한 이 영화는 테레사라는 한 여성을 주목한다. 여성 음악가들이 현대 음악을 개발하면서 나아가는 유쾌한 이 영화는 시대를 가로질러 체제에 대항하는 자주적 힘에 대한 뛰어난 논설로 보인다.
압데라만 시사코는 말리와 프랑스에서 활동하면서 아프리카 출신 세계 최고의 영화 제작자로 손꼽히는 감독 중 한 명이다. 사하라 사막에 있는 작은 도시 팀북투를 침범한 이슬람 근본주의자와 함께 살아가는 이야기를 그린 전작 <팀북투>(2014) 이후 좀처럼 소식이 없었던 그가 10년 만에 다시 <홍차>(Blakc Tea, 2024)로 돌아왔다. 영화의 이야기는 코트디부아르 출신의 젊은 여성 아야가 결혼식 날 청혼을 거절하고 광저우로 이주하여 45세 중국인 차이와 차 상점에서 함께 일하며 전개된다. 둘은 사랑에 빠지지만, 과거의 기억과 사람들의 편견을 이겨내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 중국과 아프리카의 관계에 대한 갈등과 통찰을 드러내는 이 영화는 보편적인 사랑 이야기로 현시대에 희망을 전망한다.
제23회 부천판타스틱영화제에서 공개된 적이 있는 작품인 <영원한 족쇄>(2018)를 통해 가능성을 보여주었던 아론 스킴버그의 신작 <디퍼런트 맨>(A Different Man, 2024)이 경쟁 부문에 올랐다. 현실과 상상의 영역을 오가며 장애와 비장애, 혐오라는 시선의 문제를 재고하기를 요청하는 그의 작품은 이번에도 동일한 메타포로 등장한다. 신경섬유종증이라는 안면 장애를 가진 배우 지망생이 시술을 통해 잠깐 새로운 삶을 살게 된다는 이 이야기는 <미녀와 야수>, <얼굴 없는 눈>(1961), <엘리펀트 맨>(1980)과 같은 욕망과 혐오의 우화를 경유해 기술이 온전히 치유할 수 없는 현대 산업의 한계를 가리킨다.
한국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안드레아스 드레센'은 독일에서 베테랑 감독 중 하나다. 그가 다큐멘터리와 픽션 사이를 줄다리기하는 특성을 이번 작품 <사랑을 담아, 힐데로부터>(From Hilde, with Love, 2024)에서도 펼쳐 보인다. 1942년 베를린을 배경으로 한 커플의 사랑 이야기는 나치에게 저항운동을 벌어지는 암울한 역사를 토대로 한다. 몇몇 심사위원들은 이번에 그가 황금곰상을 탈 것이라 너스레를 떨기도 했는데 이는 과언은 아니다. 또한 많은 작품이 독일 영화상을 수상할 정도로 자국민에게 사랑받는 감독이다. 아주 예전이지만 <그릴 포인트>(2002)로 베를린 영화제에서 심사위원 대상을 받은 전적이 있는 만큼 경력으로는 황금곰상의 수상 여부가 점쳐지는 후보이자 작품이다.
71회 베를린영화제에 <흰 암소의 발라드>로 경쟁 부문에 명함을 내 민적이 있는 베흐타시 사내에하, 마리암 모그하담도 이번 경쟁에 다시 참여한다. 그러나 현재 이란 당국이 자국 영화 감독들에게 출국금지를 내리면서 자파르 파나히와 같이 앞으로의 활동을 확신할 수 없게 됐다. 베를린영화제 측은 이란 당국에 그들의 영화제 참석을 허용할 것을 촉구하기도 했다. 전작에서 정권에 대한 선전과 국가 안보를 반한다는 기소되었고 자국민에게 공개되지 않았던 것을 보면 이번 작품과 다음 작품을 과연 어떻게 제작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이번 작품 <내가 가장 좋아하는 케이크>(My Favourite Cake, 2024)는 70살 미망인이 홀로 고독한 삶을 살던 도중 예상치 못한 만남을 통해 연애를 시작하면서 펼쳐지는 로맨스다. 여성의 삶을 다룬 이 영화가 이란에 부여하는 의미는 무엇일까.
프랑스와 세네갈이라는 초국가적인 성향을 가진 '마티 디옵'은 <애틀랜틱스>(2019)로 칸 영화제 심사위원 대상을 받을 정도로 촉망받는 배우 겸 감독이다. 이번 작품 <다호메이>(Dahomey, 2024)는 아프리카 국가가 다호메이 왕국으로 불렀을 시기에서 1892년 프랑스 지배자들에게 예술품 26점이 도난당한 후 에 2021년 11월에 세네갈 베냉으로 돌아오는 과정을 그린 다큐멘터리다. 어머니가 미술품 바이어로일하는 만큼 자문을 많이 구했을 거라 여겨진다. 과연 인간이 아닌 사물에 부여된 시간성은 나라와 개인에게 어떤 방식으로 기억될 수 있을까.
튀니지 출신 캐나다 감독 '메리암 주보르'는 극 영화와 다큐멘터리를 오가며 작품 활동을 해온 작가다. 단편 영화로 아카데미 후보에 오를 정도로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디아스포라 감수성이 있는 영화들로 전쟁을 이유로 떠난 이들이 다시 돌아올 때 발생하는 가족의 갈등을 잘 드러냈다는 평가가 있다. 이번 그녀의 첫 장편 영화인 <나는 누구에게 속하는 가>(Who Do I Belong To, 2024)는 꿈과 환상을 예언할 수 있는 한 어머니의 이야기를 다룬다. 시리아에서 전쟁을 치르고 돌아온 아들의 갑작스러운 복귀와 함께 마을에 기묘한 실종 사건이 겹치면서 어머니 살하의 모성애는 시험대에 오르게 된다. 모성과 진실 사이에서 우리 모두를 시험하는 영화다.
'베로니카 프랜즈'는 영화 작가로 경력을 쌓기 전에는 독일 Kurier에서 기자로 일한 경력이 있고, '스베린 피알라'는 이모인 베로니카를 따라 함께 영화 제작의 꿈을 키워왔다. 인간의 내면에 관심이 많았던 이 두 제작자는 다시금 심리스릴러, 호러에 도전한다. 이번 경쟁에 오른 <데빌즈 베스>(The Devil’s Bath, 2024)는 1750년 오스트리아를 배경으로 한 여성이 아기를 살해한 혐의로 사형 선고를 받는 것으로 시작한다. 여성의 자유가 없던 시기에 아그네스는 남편의 시어머니로부터 착취를 당한다. 이를 이겨낼 수 있는 그녀의 선택은 점차 자기 내면에 있는 악한 길로 떠나는 것뿐이다. 참혹했던 역사의 흔적들을 조망하는 이 영화는 강인한 여성상과 차가운 시대상을 소환해 내며 현재를 상기하게 한다.
심리 스릴러인 <더 길티>(2018)로 이름을 알린 '구스타브 뮐러'는 이 작품을 통해 수 많은 해외 영화제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 이후 TV드라마 <더 다크 하트>(2022)의 작업에도 참여하면서 자신의 입지를 확장한 덴마크 출신의 스웨덴 감독이다. 이번 경쟁에 오른 <아들들>(Sons, 2024)은 이상주의인 교도관 에바가 과거의 연인이었던 청년이 교도소로 이송되면서 겪는 도덕적 딜레마를 다루는 휴먼드라마다. 에바는 과거를 밝히지 않은 채 폭력적인 청년을 병동으로 옮길 것을 요청하면서 이때부터 그녀의 정의와 도덕성은 위태로워지기 시작한다. <더 길티>를 통해 보여주었던 덴마크 특유의 제한적인 앵글, 핸드헬드 카메라, 장르적 요소 제거 등이 어떻게 발휘될지 기대된다.
경쟁 부문을 강조해서 다뤘지만, 젊은 감독들이 주로 포진해 있다는 사실은 베를린 영화제가 갖고 있는 감각이란 굉장히 젊고 도전적이라는 사실을 다시금 떠올리게 한다.
한편으로, 베를리날레 특별부문영 부문 눈에 띄는 아시아 감독들이 있다. 베를린날레 특별 상영 부문은 영화적 형식을 넘어 또 다른 차원의 성찰을 하기 위해 마련되었다. 과거와 현재가 함께 혼합되어 있는 이 부문에서 차이밍량과 구로사와 기요시가 모습을 드러낸다. 에드워드 양이 죽고, 그리고 허우샤오시엔이 건강상의 문제로 은퇴하고 대만 뉴웨이브는 차이밍량과 동시대 감독인 구로사와 기요시는 여전히 현재에 남아 영화를 들려준다.
어쩌면 영화란 과거의 유산과 현재가 교차하고 있는 장소를 끊임없이 탐구하는 자들의 다른 차원의 공간으로 보인다. 누가 경쟁에서 승리를 차지할까도 유효하겠지만 베를린에서만큼은 유심히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면서 그것을 뚫고 비상하는 영화와 아티스트들을 찾아보는 시간이 필요하지 않을까. 아벨 강스의 말처럼 모든 것이 영화로 부활할 수 있다는 예언은 여전히 연료가 되어시간과 공간을 관객에게 끌어온다. 그 사이에서 현존하는 영화, 봄을 알리는 영화를 대중들에게 전달할 그날을 나 또한 소원해 본다.
[글 이현동 영화평론가, Horizonte@ccoart.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