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 이거 봄!] '투스카니의 태양' 20년이 흘러도 다가오는 풍경들
[넷플 이거 봄!] '투스카니의 태양' 20년이 흘러도 다가오는 풍경들
  • 이상용
  • 승인 2024.01.14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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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안 레인으로 시작했지만 풍경이 남는 영화"

넷플릭스(NETFLIX)에 있는 영화들이 영원히 소장되는 것은 아니다. 넷플릭스에서 제작한 작품이라면 존립하는 한 유지될 가능성이 크겠지만, 계약에 의해 이뤄진 작품은 기한이 지나면 사라진다. 대표적인 예가 <매트릭스> 시리즈가 아닐까 싶다. 하지만 가는 것이 있으면 오는 것도 있는 법. 반갑게 눈에 들어온 옛 작품 중의 하나가 등장하자마자 랭킹 10위 안에 있던 <투스카니의 태양>(2003)이다. 

어렴풋하지만 이 영화를 처음으로 다뤘던 것은 주간지의 비디오 코너를 쓸 때였다. 나중에 동명의 번역된 소설도 따로 읽었다. 이 무렵에 마음대로 정해 본 영화 장르가 하나 있는데, 미국인이나 영국인들이 자신의 로망을 따라 휴양지를 찾는 수준을 조금 넘어서 그곳에 정착하고 살아가는 이야기들이다. 크게 두 가지로 분류해 볼 수 있다.  자신의 조부 세대나 부모 세대가 있던 시골로 가는 이야기를 '귀향 서사'라고 할 수 있다면, 어느 순간 늘어난 것은 아무런 연고가 없지만 로망을 찾아간 '피난 서사'다. 도피적인 성격이 들어있지만, 낯선 곳에서의 하루는 모험적 성격도 강하다. 피난 서사 안에는 도피와 모험이 함께 뒤엉키면서 '세컨 라이프'를 만들어 간다.

처음에는 『프로방스에서의 1년』이라는 제목으로 번역 소개되었고, 출판사가 바뀌어 『나의 프로방스』로 새롭게 소개된 피터 메일의 책은 세계적인 프로방스 열풍을 불러온 에세이 중 하나다. 프로방스의 한 집을 사서 계약을 하고, 수리하고, 이웃들과 어울리는 과정이 꼼꼼하게 기록되어 있는데, 책을 읽다보면 프로방스의 와인은 물론이고 길가를 채우는 사이프러스가 눈에 선명하게 그려진다. 이 책을 쓴 피터 메일은 영국인이고, 광고 카피라이터로 15년간 근무한 이력이 있다. 하지만 그를 유명하게 만든 것은 프로방스의 체험담이었다. 

피터 메일의 지인 중 하나가 리들리 스콧 감독이다. 두 사람이 의기투합한 또 하나의 프로방스 이야기가 영화로 만들어졌다. 이 작품이 바로 <어느 멋진 순간>(2006)이다. 원제는 <A Good Year>인데, 이 말의 뜻은 포도 작황이 좋은 해를 가리킨다. 그러니까 'A Good Year'에 생산된 와인은 품질이 좋은 빈티지가 된다. 러셀 크로가 연기하는 주인공은 영국에서 일을 하지만 유산으로 남겨진 프로방스의 집과 포도농장을 확인하러 오게 된다. 유산을 둘러싼 귀향 서사로 시작하는 셈이다. 

처음에는 유산을 정리하여 넘길 생각이었지만 어느새 이곳에 정착하게 되고, 새로운 인연이 생겨난다. 프로방스의 여인으로 마리옹 꼬띠아르가 등장하니 거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녀와 만나는 장소 중 하나가 프로방스의 유명한 중세마을 '고흐드'다. 성으로 둘러쌓인 마을의 형태는 과거에 바다를 통해 공격이 있었음을 보여준다. 칸 영화제가 열리는 칸과 니스 사이에 위치한 '생 폴 드 방스'도 비슷한 느낌을 지니고 있는데 11세기에 형성된 고흐드만큼의 규모는 아니다. 

아무려나 피터 메일은 책의 인기를 바탕으로 다소 변형된 영화의 각본을 쓴 셈이다. 여전한 에세이의 인기를 따라 속편 격에 해당하는 여러 작품을 썼고, 국내에서도 번역 소개되었다. 프랑스에서 훈장도 탔다고 하니 이 정도면 프랑스 널리 알린 외국인으로 대접받은 셈이다.

 

ⓒ 영화 <투스카니의 태양>(2003)

개인적으로 읽어 본 피터 메일의 책 중에 『프로방스에서의 1년』을 능가하는 것은 없었다. 생전에 마지막으로 쓴 것으로 알려진 『프로방스에서의 25년』도 2019년에 국내에 출간된 모양인데, 이 작품을 마지막으로 타계하였다. 프로방스의 로망과 뗄레야 뗄 수 없었던 그의 마지막 생각들은 무엇인지 궁금해진다. 아무튼 영국인의 프로방스 정착기는 세컨 라이프를 꿈꾸는 이들을 위한 교향곡이 되었고, 이후 자신의 로망을 찾아 떠나는 이야기의 도화선이 되었다.

사정은 달라도 새로운 도피(피난)처를 찾아가는 이야기는 2000년대 한 흐름을 이루었다. 알렉산더 페인의 <사이드 웨이>(2004)는 캘리포니아의 와인 산지를 찾아다니는 중년 남자들의 로망이고, 영화 <투스카니의 태양>의 주인공은 이혼 후 이탈리아의 햇빛이 찬란한 투스카니를 찾아간다. 이들은 모두 청춘이 아니다. 세컨 라이프를 위해 알코올을 찾거나(퍼스트 라이프의 망각을 위하여!) 절망을 극복하기 위해 새로운 곳을 찾아 나선 세파를 경험한 인물들이다.

이 절망감을 메우는 지대한 역할을 하는 것이 '와인'이나 음식이라는 것은 새삼스럽지 않다. 캘리포니아 피노 누아 예찬으로 가득한 <사이드 웨이>나 술보다는 토마토와 바질향이 가득한 요리로 채워진 <투스카니의 태양>와 같은 작품들은 세컨 라이프의 '리틀 포레스트'인 셈이고, 이 목록에 <먹고, 마시고, 사랑하라>(2010), <부르고뉴, 와인에서 찾은 인생>(2017)까지도 포함할 수 있다. 줄리아 로버츠가 주연을 맡은 <먹고, 마시고, 사랑하라>의 시작이 이혼 후 인생을 새롭게 재정립할 그루를 찾아섰다가 시작되는 이야기임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피난 서사이기보다는 귀향 서사라고 할 수 있는 <부르고뉴, 와인에서 찾은 인생>은 부모들이 유산으로 남긴 와인 농장에 모여든 자식 세대의 이야기를 보여준다. 개인적으로 이 영화에 관한 에피소드가 있는데 수입사는 영문 제목을 따라 <백 투 더 버건디>라고 내놓았다. 국내에서 열린 감독과 배우가 참여한 행사의 진행을 하며 이 제목에 문제가 있음을 언급했다. 버건디는 부르고뉴의 영어식 표기인데, 한국에서는 당시 유행했던 '버건디색'을 떠올리지 '부르고뉴'라고 하는 지명을 상상하기가 어렵다고 지적했다. 이탈리아의 피렌체(Firenze)가 플로렌스(Florence)로 불리는 정도의 혼돈은 양호한 편이다. 부르고뉴와 버건디의 간격은 지금도 꽤 크다.

이후 제목을 수정한 것으로 알고 있다. 이 작품이 앞서 언급한 영화들과 좀 다른 점이 있다면 세드릭 클라피쉬 감독 영화의 주요 인물들은 항상 '청춘'이라는 점이다. 그래서 귀향 서사일 수 밖에 없다. 조만간 개봉할 영화 <라이즈>(2022)에서도 마찬가지다. 절망을 겪는 상황은 비슷하지만 청춘들이기에 금방 일어서는 에너지가 크다.

 

ⓒ 영화 <트립 투 이탈리아>(2014)

이러한 영화들의 붐 속에서 마이클 윈터 바텀은 "트립 투" 시리즈를 기획하면서 텔레비전 버전과 영화 편집 완성본을 소개하기 시작하였고, 국내에도 개봉이나 여러 루트를 통해 소개된 바 있다. 영화 버전을 기준으로는 <트립 투 잉글랜드>(2010), <트립 투 이탈리아>(2014), <트립 투 스페인>(2017), <트립 투 그리스>(2020)다. 이 중 국내에 처음으로 개봉한 것은 <트립 투 이탈리아>였는데, 개인적으로 윈터버텀의 영화에 대한 관심을 오래전부터 지니고 있었고, 영국인 두 명이 잡지 옵저버의 요청으로 이탈리아의 관광지를 다니면서 이탈리아 기행을 한 영국인들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장면들에 마음이 갔다. 덕분에 과감하게 수입을 시도했던 영화이기도 하다. 귀향도 아니고, 피난도 아니지만 누구나 지니고 있는 로망을 찾아다니는 두 남자의 이야기. 전형적이지만 어떤 풍경들은 전형성을 슬쩍 벗어나기도 한다. 

이외에도 오기가미 나오코 영화의 일부에서도 피난 서사의 특징을 찾아볼 수가 있고(대표적인 예가 핀란드에서 펼쳐지는 <카모메 식당>(2006)이다), 2018년 임순례 감독에 의해 다뤄진 <리틀 포레스트>의 2015년 일본 버전들이 있다. 사계절을 따라 특정한 장소에서 펼쳐지는 상황은 2010년대 이후 급부상한 힐링과 위로와 맞물리며 영화의 한 경향성을 이루었다. 

오늘날 이러한 '장르 아닌 장르 영화'들은 대부분 여행 유튜버들에게 자리를 내주었다. 정보적이고 사실적인 측면에서 한 편의 영화가 유튜버의 활동성을 따라잡기는 힘들 것이다. 여기에 가세한 것은 '삼시세끼'를 필두로 여러 변형 버전이 있는 나영석 사단의 텔레비전 프로그램이었다. 이 프로그램은 텔레비전 안에서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더 많은 소비의 형태는 유튜브를 통해 이뤄졌음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그럼에도, 풍경에 대한 인상을 잡아내거나 공간 속에 담긴 한 인간을 세밀하게 묘사하는 데 있어서, 영화의 인상은 여전히 강력한 무엇인가로 자리잡는다. 어쩌면 그것은 힐링과 위로라는 구호를 넘어설 수 있는 가능성 때문일 것이다. 힐링과 위로가 일시적인 시간과 공간의 향유에 가깝다면, 영화가 새로운 장소로 피난을 가거나 이전 세대의 장소로 귀향을 할 때 일어나는 장력은 한 세대를 넘어서는 공동체 의식을 건드린다. <투스카니의 태양>이 도달하는 지점도 여기에 있다. 유튜버의 영상이나 텔레비전 프로그램이 타지에서 누군가를 만나거나 요리를 해 주어도 그들만의 리그에 머물고 있다면 영화의 시작은 개인의 피난이었지만, 어느새 새로운 가족을 이루며 끝을 맺는 지속 가능성의 이야기다. 그것은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보다 긴 호흡의 인간을 건드린다. 

 

ⓒ 영화 <투스카니의 태양>(2003)

이탈리아 기행

피렌체의 베키오 다리 근처에 위치한 한 호텔 로비에서 괴테의 『이탈리아 기행』 영문판을 본 적이 있다. 구비된 책 중에는 괴테 것만이 아니라 여러 저자들이 쓴 이탈리아 기행이 있었다. 이 또한 괴테로부터 파생된, 모름지기 작가라면 한 번쯤 꿈꾸었을 로망일 것이다. 영국의 찰스 디킨스가 쓴 것도 있고, 프랑스의 스탕달이 쓴 것도 있다. 

<투스카니의 태양>도 일종의 '이탈리아 기행'이다. 한때 잘나갔던 작가였지만 이제 서평을 주로 쓰는 여주인공이 하루 아침에 이혼을 겪게 되고, 자신을 위로하려는 친구의 제안으로 게이들과 함께 하는 투스카니 여행에 참여한다. 그곳에서 프란시스는 운명처럼 투스카니 지역의 한 저택을 사들인다. 

저택의 이름은 브라마솔레. 이탈리아어로 'sole'는 태양이다. 충분히 이 집의 뜻을 짐작할 수 있다. 투스카니는 일조량이 좋기로 유명한 곳이다보니 집의 이름은 "태양을 동경하다"는 뜻을 가진다. 그래서 해바라기가 깔린 언덕의 장면도 볼 수가 있다. 햇빛이 좋은 지역이어서 투스카니 와인의 대명사인 '끼안티 클라시코'는 피렌체, 시에나 그리고 저택 브레마솔레가 있는 코르토나의 대명사 중 하나이기도 하다. 투스카니는 로마 위쪽에 위치한 구릉성 산지가 많은 지역이다. 

피렌체로부터 한 시간 거리 떨어진 코르토나를 가보지는 못했지만, 그 사이에 놓인 시에나와 끼안티 클라시코의 와이너리를 경험한 적은 있다. 투스카니는 프로방스와 짝을 이룰 정도의 지역이라고 할 수 있다. 피렌체는 워낙 유명하지만 아름다운 성당이 있는 시에나에 비해 코르토나는 덜 알려진 아틸라이의 도시인데, 이 영화로 인해 다소 유명세를 누리게 되었다. 안정환 선수의 유럽 진출팀인 페루자로부터도 멀지 않다. 

동쪽으로는 '펠리니 생각'에서 언급했던 펠리니의 고향 리미니를 금새 접할 수 있다. 그래서일까. 영화 속에서 펠리니를 만난 인물이 주요한 캐릭터로 등장한다. 16세 소녀 시절에 만난 펠리니를 두고 캐서린은 '페페'라고 부른다.(페데리코 펠리니의 약어인 셈이다). 심지어 술에 취한 그녀는 동네 분수대에서 <달콤한 인생>의 한 장면을 재현하기도 한다. 은근히 펠레니에 대한 기호가 깔려 있는 이 영화에서 언급되는 또 다른 작품은 <카리비아의 밤>이고, 다이안 레인이 연기하는 프란시스가 로마에 갔다가 한 남자에게 도움을 받게 되고, 그와 함께 대화를 나누는 영화가 바로 이 작품이다.

 

ⓒ 영화 <투스카니의 태양>(2003)

프란시스는 로마에서 우연히 도움을 받게 된 마르셀로를 따라 해안가 지역으로 가게 되는데, 이곳은  리미니가 아니고 한참 더 남쪽으로 내려와 접할 수 있는 아말피의 해변 도시 포지타노다. 장면만 놓고 보면 한국인들이 많이 찾는 친퀜테레를 연상할 수 도 있는데 같은 서해안이기는 하다. 하지만 북쪽과 남쪽의 다른 위치다. 아무려나 이 영화는 코르토나에서 로마를 잠깐 거쳐 포지타노가 보여지는 이탈리아 기행문을 프란시스의 동선을 따라 묘사한다. 또 한 명의 눈에 들어오는 인물은 프란시스의 절친으로 등장하는 패티인데, 그녀는 프란시스를 투스카니 여행으로 안내한 인물인 동시에 임신을 한 후 홀로 남게 되자 프란시스를 찾아와 저택 브마라솔레에 머무는 인물료 묘사된다. 프란시스와 친구인 동시에 새로운 가족으로 살아가는 패티 역을 맡은 인물인 산드라 오라는 국내에도 잘 알려진 배우다. 한때 알렉산더 페인의 아내이기도 하였고, <사이드 웨이>에서 좋은 와인을 만드는 인물로 등장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 영화를 발표한 이듬해에 두 사람은 이혼을 하였다.  

<투스카니의 태양>은 단순하게 말하면 고통을 겪게 된 이혼녀가 코르토나에서 여러 인물들을 만나고, 패티와 캐서린의 충고에 따라 새로운 사랑에 도전하고 모험하는 낭만적 영화임에 분명하다. 하지만 현실적인 장면들도 있다. 집을 고치는 과정에서 폴란드의 이주 노동자들이 온다는 설정은 흥미롭다. 이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이탈리아는 난민과 이주노동자의 문제로 여느 유럽 못지 않은 상황을 겪게 되는데, 이 영화 속에서 현실의 지층이 건드려지는 수준은 절대로 아니지만 변방 지역에 이들이 거주한다는 설정은 분명 흥미롭다. 몇 년 후 이들을 다루는 영화들은 이탈리아 작가 영화의 큰 줄기를 형성하게 되는데, 같은 이방인이라고 할지라도 영화 속에서 프란시스와 비교하면 처지가 사뭇 다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이안 레인이 보여주는 미국인의 기질과 로망 그리고 연기의 톤은 균형감을 잡고 있다. 프란시스는 따뜻한 태양만을 경험하는 것이 아니라 저택에서의 첫날 밤 폭우가 몰아치는 가운데 혹독한 자연을 홀로 견뎌내기도 하고, 낯선 이웃들을 대하는 데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 한때는 잘나가는 소설가였지만 더 이상 소설이 아니라 서평을 쓰는 중년의 인생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쓸 수 있을지를 경험한다. 여전히 삶은 쉽지 않다. 낯선 땅에서 새로운 사랑에 뜨거워지지만 어느새 차가운 이성으로 아침을 맞이하게 되는 과정이 균형감 있게 묘사된다.

 

ⓒ 영화 <투스카니의 태양>(2003)

어느새 프란시스는 깨닫는다. 이 집을 소유할 때 부동산 중개업자에게(그는 이후에도 프란시스를 도우러 자주 방문하는 이웃이 되었고, 두 사람에게는 묘한 감정이 싹트지만 다른 이탈리아 남성들과 달리 끝까지 감정의 유혹을 견디는 인물로 부동산 중개업자는 묘사된다.) 이 집에서 결혼식 올리는 것을 보고 싶고, 가족을 이루고 싶다고 말한다. 

프란시스의 소망은 자신에 대한 것이었지만 전혀 다른 방식으로 이뤄진다. 그는 폴란드 노동자 청년이 이탈리아 여성과 사랑에 빠져 결혼하는 것을 돕게 되고, 미국에 있던 패티가 찾아와 프란시스와 함께 아이를 낳고 새로운 가족을 이루게 된다. 자신의 몸을 통해 이뤄진 것은 아니었지만 자신의 집에서 맞이하는 일이기에 프란시스는 자신의 모든 로망이 타인을 통해,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이뤄졌음을 깨닫는다. 

<투스카니의 태양>의 철학적 성찰이 있다면 이러한 대목일 것이다. 나의 소망은 나로부터, 혹은 나이기에 이뤄지는 것만이 아니라 타인으로부터, 타인에 의해 얼마든지 이뤄질 수 있다는 것을. 어쩌면 그것이 세컨 라이프의 진정한 의미일 것이다(여전히 많은 자기계발서나 프로그램들은 이 모든 것이 나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것만을 신뢰하는 이들이라면 이 영화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태양을 동경하는 브레마솔레에 사는 프란시스의 깨달음은 따쓰한 축복은 나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라 저 멀리 태양으로부터 오거나 올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은 일상을 사는 이에게 은총과 기적의 순간이 되기도 한다. 

 

반복과 기적

<투스카니의 태양>의 기적과도 같은 또 하나의 장면은 매일 자신의 집 앞 담에 꽃을 가져다 놓는 노인을 바라보던 프란시스가 오랫동안 바라만 보다가 서로 인사를 나누는 모습이다. 프란시스는 노인의 행동을 궁금해한다. 어떤 사랑을 잊지 못하는 것인지, 이 반복적 행위가 어떤 의미를 가진 것인지. 프란시스는 노인을 향해 발코니에서 손짓을 하는 것이 전부다. 그런데 영화의 마지막에 노인은 손짓을 하는 프란시스를 향해 인사를 한다. 이 작품이 위대한 영화는 아닐지라도 최소한 타르코프스키의 유작 <희생>(1986)의 어떤 순간을 재현한다.

<희생>의 주인공 알렉산더는 수술을 한 탓에 말을 할 수 없던 어린 아들 고센에게 한 수도사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죽은 나무에 매일 같이 물을 주었더니 어느새 꽃을 피웠다는 이야기. 영화 전체는 이 메타포를 부여잡고 전개된다.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알렉산더는 스스로의 희생을 선택한다. 전작 <노스텔지어>(1983)와 연결되는 타르코프스키의 고민은 아무래도 인류의 구원이었나보다. 하지만 <노스텔지어>에는 이 구원을 두 명의 인물로 분리하여 보여준다. 한 명은 로마의 광장에서 스스로 분신 자살하는 광인의 사연과 이미지가 있고, 다른 하나는 온천의 끝과 끝을 촛불을 들고 옮기는 주인공이 있다. 정확한 비유는 아니지만 김동리의 단편 「등신불」에 나오는 큰 희생(분신)과 작은 희생(손가락의 생채기)과 유사하다. 크기는 달라도 동일한 희생일 수 있다는 두 인물, 두 이야기의 평행이론을 통해 타르코프스키는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서는 정치적인 결단과 같은 커다란 행위만이 아니라 작은 희생으로도 충분하다고 말한다. 그것이 <희생>에서 알렉산더가 보여주는 모습이다. 타르코프스키는 두 영화를 통해 구원과 희생의 이야기를 반복하고 있던 셈이었고, <희생>에서는 죽은 나무에 매일 같이 물을 주는 수도승의 일화를 통해 집약된다. 어떠한 반복은 죽은 것조차 되살릴 수 있는 희생이다.

<투스카니의 태양>은 한 미국 여성의 로망을 따라갈 뿐만 아니라 브레마솔레에서 행해지는 마리아 그림을 보며 기도하는 순간과 그것이 이뤄지는 기적과 함께 서로를 돌보는 순간으로 향하고 있다. 타르코프스키의 작품처럼 진지한 것은 아니지만 코미디의 감각 아래 그녀는 수많은 일꾼 중 이주노동자를 품었고, 폴란드 이주노동자 청년을 직접 나서서 돕게 되며, 애인과 결별한 후 찾아온 절친의 아이를 낳게 도와주는 등 한 개인이 머물기에는 너무나도 커다란 저택 브레마솔레를 채워나간다. 이 결단과 결론은 영화의 마지막에 이르러 '신비한 노인'이라고 부를 수 밖에 없는 한 타인과의 인사로 이어진다. 덧붙일 사실 중의 하나는 타르코프스키가 '희생'에 관해 직접적으로 언급한 시기는 러시아를 떠나 망명예술가로서 살아가던 시기였고, 그 첫 작품으로 <노스텔지어>를 선보인다. 망명한 러시아 작가 '안드레이 고르차코프'가 18세기에 이탈리아로 유학 온 노예 출신의 러시아 작곡가 파벨 소스노프스키의 생애를 연구하기 위해 찾아온 것은 이탈리아의 투스카니 지역이다. 타르코프스키에 의해서든, <투스카니의 태양>에 의해서든 이곳은 망명자들을 위한 향수 어린 새로운 고향이다.

아무려나 타인과의 관계가 변화하였다는 것은, 앞으로 얼마든지 프란시스가 이 낯선 땅에 충분히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산다는 것은 그런 일이다. 이웃의 괴물성을 두려워하며 거주하는 것이 아니라 이웃의 친밀성을 발견하고 살 수 있다면 어디든 자신의 집이 된다는 단순한 사실. 이것을 깨닫는데 프란시스에게는 시간이 필요했고, 그것은 영화를 경험하는 관객들에게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 영화 <투스카니의 태양>(2003)

끝으로 <투스카니의 태양>을 만든 감독에 대한 간단한 코멘트를 덧붙이고자 한다. 감독 오드리 웰스는 종종 영화를 만들었지만 각본가로서 역량을 보여왔다. 라세 할스트롬이 연출한 <베일리 어게인>(2017)이나 리메리크한 할리우드 버전 <쉘 위 댄스>(2004)의 각색을 했다. <조지 오브 정글>(1997)의 각본도 썼는데 <투스카니의 태양>에는 극장 장면에서 직접 이 영화가 등장하기도 한다. 그녀의 이름을 알린 각본은 <고양이와 개에 관한 진실>(1996)인데, 이때의 시선으로부터 크게 달라졌다고 하기는 어렵다. 최근작은 애니메이션인 <오버 더 문>(2020)이다. 

넷플릭스에 새롭게 부활한 <투스카니의 태양>을 보면서 많은 장면들을 잊고 살았지만 새로운 인생을 살기로 결심한 프란시스가 하얀 원피스를 입고 나타나 아말피 해안가에 서 있는 장면은 사람과 풍경이 어우러져 그곳이 바로, 그 사람이라는 인상을 준다. 종종 영화는 대단한 지성이나 성찰로만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이처럼 잘 어울리는 인상을 통해서 족적을 남긴다. 이미 보았던 이들이라도 다시금 찾아볼 만한 영화다.  

[글 이상용 영화평론가, poema@ccoart.com]

 

ⓒ 영화 <투스카니의 태양>(2003)

투스카니의 태양
Under The Tuscan Sun
감독
오드리 웰스
Audrey Wells

 

출연
다이안 레인
Diane Lane
라울 보바Raoul Bova
린제이 던칸Lindsay Duncan
산드라 오Sandra Oh

 

제작연도 2003
상영시간 112분
등급 15세 관람가
개봉 2004.04.23

이상용
이상용
 1997년 『씨네21』 2회 신인평론상을 수상하며 영화 비평을 시작했다. 부산국제영화제와 전주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를 역임했다. 지은 책으로 『봉준호의 영화 언어』, 『영화가 허락한 모든 것』, 공저로 『씨네쌍떼』 『30금 쌍담』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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