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영화를 통해 한 사람의 생명이라도 더 구하고 싶다."
[Interview] "영화를 통해 한 사람의 생명이라도 더 구하고 싶다."
  • 함윤정
  • 승인 2023.10.16 11: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제28회 부산국제영화제 <아프간 리스트> 하나 마흐말바프 감독

이란 뉴웨이브의 거장 '모흐센 마흐말바프'의 막내딸 '하나 마흐말바프'가 <아프간 리스트>로 제28회 부산국제영화제를 찾았다. 와이드앵글 다큐멘터리 쇼케이스 부문에 초청된 그의 작품은 아버지의 영화 <강가에서>와 부산에서의 일정을 같이했다. 아버지의 영화가 이란과 아프가니스탄의 역사와 공명하는 마흐말바프 일가족의 영화 계보를 그린다면, 딸의 영화는 영화보다 영화 같아 참혹하기 그지없는 동시대 풍경 속으로 뛰어든다. 영화제 기간 중 세 차례에 걸쳐 함께 상영된 두 작품의 끝과 시작은 2021년, 미군의 철수 직후 아수라장이 된 아프가니스탄의 상황으로 연결된다.

두 부녀 감독이 부산을 찾은 이유는 단순히 그들의 새로운 작품을 선보이기 위함이 아니다. 언제나 그랬듯, 마흐말바프 일가에게 '삶을 구원하는 예술'이란 테제는 은유적인 표현에 그치지 않는다. 그들에게 영화는 삶의 태도이자 의식이며, 투쟁으로서의 실천이다. 때때로 두 감독의 영화는 매우 시적인 정취를 드러내면서도, 일순간 스크린 위 광경으로서의 대상과 이를 목격하는 관람자 간 거리를 좁혀놓는다. 그렇게 이들의 영화는 세계의 변화를 촉구하는 물음이 되어, 또 하나의 현실로서 우리 앞에 도착한다.

지난 10월 6일, 부산 영화의전당에서 하나 마흐말바프 감독을 만났다. <아프간 리스트> 제작 당시의 이야기와 아프가니스탄의 현주소, 영화를 만드는 일에 관한 연출자로서의 생각을 들을 수 있었다. 자신의 영화가 역사적 기록물로서 널리 알려지길, 그 노력을 통해 단 하나의 생명이라도 더 구할 수 있길 바라는 그의 마음이 무겁게 전해진 시간이었다.

 

하나 마흐말바프 감독 ⓒ 부산국제영화제

함윤정

14세의 나이에 데뷔작 <광기의 즐거움>(2003)으로 제8회 부산국제영화제에 초청되었다. 故김지석 프로그래머 생전에 가족과 함께 부산을 방문하기도 했으나, 본인이 연출한 작품으로 초청된 건 20년 만의 일이다. 이곳을 다시 찾은 감회가 어떤가.

하나 마흐말바프

나는 부산을 정말 좋아한다. 부산국제영화제에 올 때마다 영화에 대한 열정과 사랑이 아름답다고 느낀다. 특히 이곳의 사람들이 좋다. 김지석 프로그래머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는데, 그는 내게 천사이자 삼촌 같은 존재다. 그의 이름을 들을 때마다 너무나 슬프고 눈물이 차오른다. 여전히 여기저기서 그의 존재를 느끼며 살아가고 있다.

함윤정

<아프간 리스트>에는 카불 공항에서 촬영된 영상 클립이 삽입되어 있다. 그 중에서도 이륙하는 비행기에 매달렸다 떨어지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형용할 수 없는 충격을 받았다. '뉴스'를 통해 아프가니스탄의 상황을 전해 들었으나, '영화'를 통해 이를 접하는 일은 완전히 다른 차원이라 느꼈다.

하나 마흐말바프

동의한다. 우리는 일상적으로 수많은 뉴스를 보고 듣는다. 하지만 뉴스는 단순히 정보를 전하는 매체일 뿐이다. 반면에 영화는 그보다 더 깊은 차원의 매체다. 언급된 장면은 내게도 굉장히 충격적이었다. 미군이 아프가니스탄에서 철수한 후의 광경은 '세계의 종말' 같은 장면을 연출했다. 비행기에서 떨어져 생을 달리한 이들은 아프가니스탄에서 굉장히 교육받은 사람들이다. 그들 중에는 의사도 있었고, 축구선수도 있었다. 어떤 국가에서 이토록 잘 교육된 사람들이, 그저 살기 위해 비행기에 매달리는 모습을 상상해보라. 정말 놀랄 수밖에 없을 거다.

 

영화 <아프간 리스트> ⓒ 부산국제영화제

<아프간 리스트>는 단순히 사람을 구하는 나의 가족에 대한 영화가 아니라, 하나의 창으로서 아프가니스탄이라는 장소를 보여주는 영화다. 

나는 언제나 카메라를 들고 다닌다. 그래서 해당 영상은 내게 더욱 기이한 느낌을 줬다. 내가 다른 무언갈 촬영하고 있을 때, 미국 뿐 아니라 전 세계의 정부들이 아프가니스탄을 빠져나가고 있었던 거다. 20년 전, 미국은 민주주의를 확립하겠다는 명목으로 아프가니스탄을 공격했다. 그러나 지난 세월 동안 그곳에 머무르며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을 알려주지도, 시민들의 안전을 보장하지도 않았다. 그랬던 미군이 아프가니스탄을 떠나는 모습이 아주 참혹하기도 했지만, 사실상 미군이 그곳에 도착해 머무르다 떠난 과정 전체가 재앙의 연속이다.

나는 내 가족과 친구들을 포함해, 누구보다 '힘없는 사람들'이 아프가니스탄의 사람들을 구했다고 생각한다. 결국 아프가니스탄의 사람들을 구하려 애쓴 건 어떤 국가도 정부도 아닌, NGO나 일반 개인들이다. 구조의 과정을 거치며 이렇게 힘이 없는 우리도 그들을 구할 수 있다면, 다른 누군가도 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됐다. 미군 철수 당시, 미국과 다른 정부들은 어떻게 하면 자기 사람들만 안전히 빼갈 수 있을지 생각했다. 다른 모든 사람을 적군인 탈레반에게 내버려 둔 채 말이다.

우리는 예술가를 비롯해 그들의 가족까지 총 385명의 사람을 구했지만, 너무나도 많은 이들이 아직 아프가니스탄에 남아있다. <아프간 리스트>의 장면들은 모두 2년 전에 촬영되었고, 나는 이 영상들을 하드디스크 드라이브에 넣어뒀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도 상황이 나아지질 않더라. 무엇보다 중요한 건 누구도 하나의 생명이라도 더 구하려 노력하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아프가니스탄에서 일어난 일을 잊고사는 이들에게 이 사실을 다시 알려주기 위해 영상을 다시 꺼내 편집을 시작했다. 무엇보다 이 영화가 하나의 역사적 기록물로써 사용되는 게 어떨지 싶었다.

 

영화 <아프간 리스트> ⓒ 부산국제영화제

함윤정

명단을 만들고 전화나 메시지로 도움을 요청하는 등 집 내부에서 구조 활동을 펼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당신의 표현대로 '힘없는 이들'의 작은 힘이 실로 큰 힘이 된 과정이 영화에 빼곡히 담겼다. 영화가 끝났다 해서 당신과 마흐말바프 일가의 실천 또한 끝나지는 않았을 텐데. 이후의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을지.

하나 마흐말바프

아프가니스탄이 재앙에 휩싸인 당시, 우리는 수많은 영화제에 연락을 취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영화제로부터 미안하지만 도와줄 수 없다는 답을 받았다. 아프가니스탄에 대사관이 없고, 그곳에서 영화제를 개최하지도 않는 이유였다. 다만, 두 곳의 영화제에서 도움을 받았다. 만하임 영화제에서 68명을, 외질 영화제에서 1명을 도와주었다. 영화제는 아니지만, 하버드 대학교에서도 16인의 예술가와 그들의 가족을 구했다. 프랑스 마크롱 정부에서 애초에 총 275명을 도와줄 수 있다고 했는데, 리스트를 꾸리는 과정에서 인원이 추가되어 더 많은 사람을 구할 수 있었다. 사실 지금도 계속해서 이런 노력을 하고 있지만, 전 세계가 남겨진 이들을 잊어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로 그 이유로 영화를 다시 편집하기 시작한 거다. 영화를 통해 많은 이들에게 이 사실을 상기시켜 준다면 단 한 명의 사람, 단 하나의 생명이라도 더 구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서.

우리가 '예술가'를 먼저 구한 이유는 단순히 우리 가족 모두가 영화인이기 때문이라서가 아니다. 아무리 탈레반이라도 모든 아프가니스탄 국민을 죽일 순 없지 않겠나. 그러니 가장 표면에 있는 사람들, 즉 미디어에 노출된 이들이 탈레반의 희생양이 될 위험도가 가장 높다고 판단했다. 안타깝게도 그 예상은 실제로 들어맞았다. 이런 이유로 언론인과 예술가들을 가장 먼저 구하기로 결심한 거다. 물론 판사나 인권 활동가 등 위험에 처해있는 이들이 여전히 수없이 많다. 그만큼 아프가니스탄이라는 곳의 상황 자체가 매우 심각한 실정이다. 미군의 철수 직후 이러한 상황이 발생할 거란 걸 전 세계 모두가 알고 있었다. 사람들이 아프가니스탄을 떠나는 모습만 봐도 상황의 심각성을 알 수 있다. 그들은 무엇도 챙기지 않고, 그저 이 국가를 떠나야겠다는 마음 하나만으로 필사적으로 몸부림친다. 아프가니스탄의 여자아이들은 더 이상 초등학교 이상의 교육 기관에 진학할 수 없다. 이전에는 대학까지 갈 수 있었거든. 일자리도 없어서 여성들은 두세 살 난 자기 자식을 내다 팔고 있다.

함윤정

당신의 두 번째 장편 영화 <학교 가는 길>(2007)에는 학교에 가고 싶어하는 한 소녀가 등장한다. 성차별과 전쟁이라는 현실이 배움에 대한 어린 주인공의 의지를 꺾으려는 장면이 반복 되는데. 16년 전 작품이니 길다면 긴 세월 아닌가. 그런데 당신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해당 장면들이 단순히 과거의 일은 아닌 것 같다.

하나 마흐말바프

당신 말대로, <학교 가는 길>이란 영화가 보여준 현실이 지금까지도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다. 그동안 아프가니스탄에서는 수많은 폭력이 자행되어 왔다. 독립을 주고 떠날 거라는 사고방식 역시 폭력이며, 민주주의를 선사하겠다는 것 역시 폭력이다. 이번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나의 아버지 모흐센 마흐말바프가 만든 영화 <강가에서>가 상영되는데, 이 작품을 보면 한국의 관객들이 아프가니스탄의 역사에 대해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함윤정

<아프간 리스트>의 장면 곳곳에는 천진난만한 아이의 모습이 삽입되어 있다. 특히 슬퍼하는 엄마에게 웃음을 주려는 아이의 모습이 사랑스러우면서도 애잔했다. 비탄의 상황 속에서 누군가를 구하려는 순수한 마음을 보고, 과연 마흐말바프 집안의 피가 흐른다고 생각했다.

하나 마흐말바프

촬영 당시 상황에 내 아들이 함께 있긴 했지만, 영화에 아이를 등장시킨 또 다른 이유가 있다. 아들이 평화롭게 생활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아프가니스탄에 있는 아이들 역시 이러한 삶을 보장받을 권리가 있다는 생각을 전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만약 아이의 모습을 영화에 넣지 않았다면 너무 슬픈 영화가 되어서, 누구라도 이 작품을 끝까지 볼 수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영화 속 아이의 모습은 '희망'의 상징이자 미래에 대한 긍정적 전망을 담으려는 의도의 일환이다.

 

영화 <아프간 리스트> ⓒ 부산국제영화제

함윤정

당신과 당신의 가족 모두 영화와 예술에 대해 확고한 가치관을 갖고 있다. 그 근원에 무엇이 있다고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하나 마흐말바프

이 질문에 답이 될 만한 좋은 일례가 있다. 바로 내 아버지가 영화를 이야기할 때 항상 하시는 말씀이다. 어떤 화가가 평화롭고 아름다운 바다의 풍경을 그리는 모습을 상상해 보자. 그런데 누군가 갑자기 바다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다. 이때 화가는 어떤 행동을 취해야 할까. 계속해서 바다를 그려야 할까, 혹은 작품을 버리고 사람을 살리러 뛰어들어야 할까. 확실한 것은 화가가 어떤 선택을 하든, 이 상황 이후로 그는 바다를 이전과 같은 방식으로 보거나 그릴 수 없다는 사실이다. 그에게 바다는 더 이상 평화롭고 고요한 바다가 아닌, 다른 무언가가 되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예술가이자 한 사람의 인간이라면 외부 상황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고, 이로부터 어떤 경험을 하게 되기 마련이다.

내 삶에서 영화는 결코 뗄 수 없는 존재다. 대개의 부모는 어린 자녀에게 장난감을 준다. 내가 자란 곳에서는 총을 건네받는 아이들도 있다. 그러나 감사하게도, 내 아버지는 내 손에 카메라를 쥐여주셨다. 그렇게 카메라는 내 삶의 큰 부분이 되었다. 사실 영화의 출연진인 나의 가족들은 내가 <아프간 리스트> 속 장면을 촬영하는 와중에도, 영화가 만들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몰랐을 것이다. 내가 누군가와 연락을 주고받는 등 다른 일을 하다가도, 어느 순간 또 영상을 촬영하곤 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모두 현재 디지털 혁명 시대에 살고 있다. 누구나 자신만의 카메라를 갖고 있고, 무엇이든 자유롭게 촬영할 수 있다. 나는 어떤 사람이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이 그가 카메라로 촬영하는 것과 서로 닮아있다고 생각한다. 누군가는 눈앞의 음식을 찍기도 하고, 이와는 또 다른 일상의 요소를 찍을 수도 있다. 그리고 나 또한 내가 삶을 바라보는 방식을 찍으며 살아간다.

함윤정

당신의 영화에서 사람의 얼굴이 곧 풍경이 되는 이유를 알 것만 같다. 구상해둔 다음 프로젝트가 있을까. 영화가 아니더라도, 준비 중인 작품이 있는지 묻고 싶다.

하나 마흐말바프

물론 여러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지만, 요즘은 주로 사람들을 구하는 일에 전념하고 있다. 그리고 아버지가 어린 내게 그러셨던 것처럼 나 또한 내 아들과 많은 시간을 보내려 하는 편이다. 물론 내 카메라는 늘 켜져 있기 때문에, 어떤 일이 일어나 또 어떤 프로젝트가 완성될지 지금으로서는 정확히 알 수 없다. 분명한 사실은 나는 '작품을 만들어야겠다'는 목적하에 영화를 만드는 사람이 아니다. 나는 내가 무언가 세상에 외치고 싶을 때, 개선이 필요한 상황이 있다고 여길 때, 또 어떤 감동이 있어야만 영화를 만들 수 있다. <아프간 리스트>가 완성될 수 있었던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영화감독으로서 세상에 어떤 것을 보여주고, 또 심느냐가 중요하다는 게 내 생각이다. 전 세계에서 해마다 수십만 편의 영화가 쏟아져 나오지 않나. 한 편의 영화가 각 한 시간이라 생각해도, 오만 편의 작품이 있다면 총 오만 시간이다. 이들 작품이 개별 관객으로서의 사람들의 시간을 뺏는다고 생각하면, 영화를 만드는 일에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그래서 나는 영화 제작 과정에서 어떤 것을 관객에게 보여줄 것인지 매우 조심스럽고도 깊게 고민한다.

나는 작품으로 어떤 메시지를 전하고 싶은 마음이 없다. 그저 내 영화가 하나의 역사적 기록물이 되길 바란다. 그 옛날의 '히틀러'를 떠올려 보자. 탈레반이 곧 이 시대의 히틀러다. 이 모든 일이 실제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서 동시대적으로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전하고 싶다. 나는 정치가가 아니기 때문에 문제 상황을 완전히 해결하진 못하지만, 영화를 통해 한 사람의 생명이라도 더 구하고 싶다.

[인터뷰 함윤정 영화평론가, badasal2@ccoart.com]

함윤정
함윤정
부산 가덕도에서 생활하며 영화와 바다에 대해 생각하고, 극장 ‘카이로의 붉은 장미’를 운영하는 꿈을 꾼다. 미학을 공부하러 간 대학에서 영화를 찍은 후로 좋은 관객이 되면 나은 삶을 살게 되리란 이상한 믿음을 갖게 됐다. ‘좋은 관객’이란 무엇일까? 나의 글과 말은 늘 이 물음에서 출발한다. 좋은 관객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을 만날 때 영화를 더 아끼게 되고, 지난밤 꿈에서 본 영화에 대해 말할 때 가장 즐겁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