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ritique] 너무 보통의 '하정우'
[Critique] 너무 보통의 '하정우'
  • 김경수
  • 승인 2023.10.12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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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정우스러움'에 대한 단상"

한국영화의 2000년대를 상징하는 남자 배우가 '송강호'와 '황정민'이라면, 2010년대를 상징하는 남배우는 하정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과장이 아니다. 분명 그는 한국영화사에 충분히 이름을 남길 만한 배우다.

데뷔한 지 벌써 20년이 된 중견 배우인 하정우는 송강호에 이어서 두 번째로 주연 누적 관객수 1억 명을 달성했다. (참고로 세 번째는 황정민이다.) 그는 우선 굵직한 목소리로 대표되는 남성적인 분위기로 관객의 이목을 사로잡는다. 무엇보다도 얼굴 곳곳에 투박한 여드름 자국은 그만의 개성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는 보통의 미남형 배우와는 다른 매력이다. 특히, 그는 드라마와 영화를 종횡무진으로 넘나들 수 있는 연기 스펙트럼을 자랑한다. 그가 막 데뷔할 즈음에 출연한 <프라하의 연인>(2005)과 <히트>(2007)는 그를 단번에 대중에게 각인시키는 데에 한몫했다. 또한, 그는 예술 영화와 상업 영화를 둘 다 소화할 수 있는 배우이기도 한데, 김기덕(<시간>(2006), <숨>(2007))과 홍상수(<잘 알지도 못하면서 >(2008)), 이윤기(<멋진 하루>(2008)) 감독의 영화에 출연하기도 했고, 박찬욱과 봉준호 이후의 루키인 윤종빈 감독의 페르소나이기도 하다. <추격자>(2008)를 시작으로 본격적으로 연기파 배우로 불리기 시작한 그는 <국가대표>(2009), <더 테러 라이브>(2013), <신과 함께> 시리즈(2017~18)로 흥행 배우로서의 입지도 굳히며, 평단과 대중 모두에게 호불호가 갈리지 않는 몇 안 되는 배우로 인식되었다.

 

<멋진 하루>(2008) ⓒ 롯데엔터테인먼트

하정우는 전방위적인 예술가이기도 하다. 지금껏 에세이를 두 권 출간했고, 두 권의 에세이 중 본인의 걷기 예찬론이 담긴 『걷는 사람, 하정우』는 베스트셀러가 되기도 했다. 여기에 2007년부터 바스키아 작품을 보고 취미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는 그는 2010년 첫 개인전을 열면서 화가로도 활동을 시작했다. 첫 에세이에서 배우로의 활동과 화가로의 활동이 상호보완적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배우가 쌀로 밥을 짓는 일이라면 화가는 그 찌꺼기로 술을 담그는 일 같다고 설명하면 어떨까. (...) 연기로는 해소되지 않는 무언가. 그것을 끄집어내어 그림을 그린다. 그러면 술과 같은 그림이 만들어진다. 그림이 나를 회복시키고 다시 연기에 정진하도록 고무하는 것이다" 물론, 그도 배우와 화가를 겸하는 아트테이너(연예인 화가)가 부딪힐 수밖에 없는 여러 논란에 부딪히기는 했다. 그는 화가나 작가에 머무르지 않고, 더 나아가 영화감독에도 도전했다. 2013년에는 본인이 각본까지 쓴 저예산 코미디 <롤러코스터>(2013)로 소소한 호평을 받았으며, 위화의 스테디셀러 『허삼관 매혈기』를 원작으로 한 영화 <허삼관>(2015)을 연출했다.

하정우는 '아티스트 하정우'의 이미지, '인간 김성훈'의 이미지를 착실히 그려나갔다. 여기까지 모두가 기억하는 2010년대까지의 배우 하정우다. 문제는 2020년 이후의 하정우다. 프로포폴 불법 투약 혐의를 시작으로 그는 3년 가까이 작품 활동이 뜸했다. 그 3년 사이에 한국영화의 지형은 달라졌다. 올해 그가 출연한 두 영화 <비공식작전>과 <1947 보스톤>을 보면, 두 영화 속 하정우의 연기는 그대로다. 다소 지친 인상이 역력해도 어느덧 40대 중후반을 보는 배우라는 것을 생각하면 볼 만하다. 문제는 하정우라는 배우의 영향력이 현저히 줄었다는 것이다. 플롯에서도 하정우스러움은 과거만큼의 파괴력을 지니지 않는다. 또한 연이은 흥행 실패는 그의 잘못에 대한 대중적인 심판이라고 보기에 다소 복잡한 문제라는 인상이 들었다. 어쩌면 하정우스러움이 더는 소비되지 않는 것이 아닐까.

 

영화 <국가대표>
<더 테러 라이브>(2013) ⓒ 롯데엔터테인먼트

하정우를 이야기하기 전에 '하정우스러움'을 이야기해야 할 듯하다. 영화에서 파생된 인터넷 밈은 영화 속 배우의 아우라를 잠시나마 빌려서 쓰는 일회용 페르소나다. 그만큼 그 배우의 아우라가 선명히 드러나는 장면이 채택된다. 이때, ­―스러움이라는 표현이 가능하다면, 그 ―스러움이 드러나는 셈이다. 일례로 황정민은 <신세계>(2013)와 <히말라야>(2015)가 인터넷에서 밈이 되었다. 이는<달콤한 인생>(2005)부터 이어진 암흑가의 잔혹한 악당의 이미지, <너는 내 운명>(2006)부터 이어진 순박한 이미지가 제각기 다른 영화에서 인터넷 밈이 된 셈이다. 마찬가지로 송강호는 <살인의 추억>(2003)에서의 "밥은 먹고 다니냐?"로 인터넷 밈이 되었다. 이는 그의 세속적이면서도 미니멀한 연기 스타일을 함축한다. 종종 성대모사개인기로 송강호나 유해진 등 배우가 자주 쓰인 것도 그의 –스러움이 강력해서일 것이다. 마찬가지로 하정우가 출연한 영화에서 파생된 인터넷 밈이야말로 배우 하정우의 이미지를 설명하기에 탁월한 사례일 것이다.

매 시기 감독은 그 시대의 남성상을 드러내는 배우를 발견하려고 한다. 예컨대 박찬욱과 봉준호의 페르소나로 선택된 송강호는 무능한 가장, 시골 경찰 등 다소 영웅의 이미지에서 먼 캐릭터는 물론, 뱀파이어 신부 등 연극적인 캐릭터를 소화할 때도 그는 최소한의 몸짓과 과장 없는 말투로 캐릭터를 그려낸다. 양식화된 연기 대신에 그는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동네 아저씨 같다는 인상을 만든다. 송강호가 2000년대 초반에 영화에 소환된 것은 그러한 남성상이 있어야 해서다. IMF라는 초국가적 사태로 전통적인 가부장제의 가장은 몰락했으며, X세대 청년은 그 자유분방함을 상실했다. 송강호스러움은 00년대의 남성을 재해석할 수 있는 이미지이자 정서에 가깝다. 데뷔 초기 하정우는 나홍진과 윤종빈의 페르소나로 선택되었다. 나홍진, 윤종빈 감독은 박찬욱과 봉준호의 뒤를 잇는 차세대 거장으로 이야기되는 감독이다. 마찬가지로 그 또한 한국영화의 르네상스 이후의 감독이 선택한 새로운 남성상으로 보인다.

하정우의 연기 중 인터넷 밈이 된 영화는 여럿이다. 하정우 인터넷 밈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바로 '극사실주의'다. 그의 데뷔작인 <용서받지 못한 자>(2005)에서 유태정(하정우)이 허지훈(윤종빈)을 혼내는 장면은 인스타그램 등에서 "진짜로 무서운 선임"이라는 제목으로 불펌되었다. 댓글에는 유태정과 같은 선임을 경험해보았다는 증언이 잇따라 생긴다. 이는 훗날 나홍진의 <황해>(2010)에서 파생된 인터넷 밈과도 일맥이 상통한다. 하정우는 이른바 사실감 넘치는 먹방으로 유명하다. 아내와 돈을 둘 다를 잃어버리고 악다구니로 살아가는 조선족 구남은 한국에 와 굶주린 삶을 이어간다. 하정우는 구남의 허기를 그려내고자 입에 음식을 양껏 먹는 연기를 펼친다. 밥에 김을 여러 장을 싸서 먹든, 핫바를 먹든지 간에 하정우가 만드는 먹방은 초유의 사실감을 만든다. 마찬가지로 <추격자>(2007)에서 지영민이 수줍게 웃으며 여자를 팔아넘긴 것이 아니라, 죽인 것이라고 뇌까리는 장면도 이와 같은 사실감을 반영한다. 이는 메소드 연기로 캐릭터와 그 캐릭터를 연기하는 배우가 혼연일체가 되어서 생기는 사실감이 아니다. 되려 픽션이 해체되면서 생기는 극사실감이다.

픽션의 틈새로 그 배우 본연의 몸짓으로 현실을 침투하게끔 하는 것이 하정우스러움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정우는 픽션의 영역에서 밀려난 보통의 남성을 영화로 되돌린다. 영화 곳곳을 낯설게 하고, 극적 긴장을 이완하는 역할을 한다.

 

나홍진과 윤종빈, 그와 또래인 남성 감독인 연상호는 이른바 헬조선이라 불리는, 엉망진창이 된 한국의 구조를 관찰하려는 욕망을 영화 곳곳에 내비친다. 윤종빈은 필모 전반에서 군대와 조직폭력배, 멀리는 조선 의적 등을 다루면서 한국의 남성성을 해부한다. 나홍진은 <추격자>(2007)와 <황해>(2010)에서는 생존주의와 신자유주의의 악몽을, <곡성>(2015)에서는 세월호 이후의 포스트-트루스 사회의 악몽을 그려내는 감독이었다. 연상호는 디스토피아적인 풍경으로 헬+조선을 직유로 그려낸다.

'하정우스러움'은 이 헬조선에 있어야 하는 청년의 이중성을 드러내는 데에 더없이 탁월하다. <추격자>에서 지영민이 살인으로 완성하려는 것이 겨우 십자가에 불과할 때, 우리는 그 십자가를 신성모독, 혹은 기성사회에 대한 상징적 반항으로 볼 수 있다. 되려 지영민은 잉여의 초상이다. 하정우가 그려내는 지영민의 리얼함은 리얼하다고 가정된 것이다. 사회 전반에 통용되는 싸이코패스의 스테레오타입을 하정우가 픽션에 기입한다. 한편, 여성혐오와 살인을 놀이로 소비하고, 잉여짓을 예술로 승화하려는 잉여 세대의 초상까지 함께 담긴다. 여기에는 어느 정도 하정우의 이미지를 구축하는 소년성이 깃들어 있다. 그가 아직 성장하지 않은 유년기에 머물러 있고, 고독에 몸부림치고 있다는 데에서 비롯한다. 하정우는 먹방과 잉여 등 청년의 동시대적 초상을 영화에 투영한다. 나홍진이 하정우를 쓰는 방식이 영리한 이유다. 프리드킨에게서 영향을 받은 나홍진의 다큐멘터리적 사실성은 현실을 삼투하는 하정우로 인해서 완성된다.

특히, 하정우의 리액션은 하정우스러움을 배가한다. 하정우가 연기하는 캐릭터는 두뇌나 말재간 등과는 거리가 멀다. 하정우의 리액션에는 어떤 허례허식이나 복잡한 작전, 규율에 얽매지 않겠다는 진정성이 드러난다. 진정성은 배우 본인의 이미지와 맞물린다. 배우 하정우는 자기계발적 인간상을 자처한다. 연습벌레이면서도 그는 보통의 사람이다. 다방면에서 노력을 기울이면서도 지치지 않고, 몇만 보씩 걸어 다닌다. 연기를 감정이 아니라 이성으로 한다는 그의 태도는 그야말로 모범적이다. 하정우는 플롯에 잔재미와 급작스러운 전환을 만드는 데에 유리한 배우인 이유다. "그딴 건 모르겠고" 등의 대사는 주위에 굴하지 않는 영웅적 인간을 현실에서 있을 법한 자기계발적 인간으로 만든다. 그를 둘러싼 상황과 맥락을 해체하고, 비효율적인 것으로 만드는 힘을 발한다.

하정우는 현실적이므로 픽션에서 비현실적이다. 그러므로 현실적이다. 하정우는 계속 전진하는 아마추어, 보통의 사람이되, 픽션이 성립되지 않게끔 하는 고유의 자장을 지니고 있다.

 

영화 <1947 보스톤> ⓒ 롯데엔터테인먼트

하지만 지금의 우리 사회는 픽션과 현실의 삼투를 더는 반기지 않는 듯하다. 마동석의 만화적 남성상이 유행하는 지금은 더욱이. <1947 보스톤>은 마라톤 영화가 아니었다. 한마디로 MZ신입사원에게 마라톤을 인수인계를 하는 듯한 SNL에 더욱 가까운 영화다. 임시완은 말 그대로 인터넷에서 낭설로 떠도는 MZ신입사원에 가까우며, 하정우는 어느덧 잉여나 생존주의에 치인 남성상으로 그려지지 않는다. 되려 따라서 MZ를 꾸짖는 젊은 꼰대에 더 가까운 인상이다. 그의 우악스러운 극사실주의는 단 한 번도 힘을 드러내지 못한다. <비공식작전>은 하정우의 극사실주의를 플롯의 도구로 삼고 실패했다. 하정우의 장기가 살아나나, 그 장기는 잔재미에 그친다.

생각해보니 하정우는 두 편의 천만 영화에서 비현실적인 캐릭터를 연기했다. 거기서 극사실주의를 연기할 수 있는 권한을 박탈당한 것은 아닐까. 극사실적이고, 우악스러운 연기 대신에 천만 배우로의 소임을 다 해야 한다. 천만 배우가 아니라 너무 보통의 하정우가 돌아오기만을 바랄 뿐이다.

[글 김경수 영화평론가, rohmereric123@ccoart.com]

김경수
김경수
 어릴 적에는 영화와는 거리가 먼 싸구려 이미지를 접하고 살았다. 인터넷 밈부터 스타크래프트 유즈맵 등 이제는 흔적도 없이 사라진 모든 것을 기억하되 동시에 부끄러워하는 중이다. 코아르에 연재 중인 『싸구려 이미지의 시대』는 그 기록이다. 해로운 이미지를 탐하는 습성이 아직도 남아 있는지 영화와 인터넷 밈을 중심으로 매체를 횡단하는 비평을 쓰는 중이다. 어울리지 않게 소설도 사랑한 나머지 문학과 영화의 상호성을 탐구하기도 한다. 인터넷에서의 이미지가 하나하나의 생명이라는 생각에 따라 생태학과 인류세 관련된 공부도 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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