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이라 부르기 어색할 만큼 좁고 누추한 방. 하지만 그 어떤 모자람도 없어 보이는 곳. <우리들의 공화국>의 주인공 에량의 '공화국'은 몽상가들의 공산주의적 이상이 실천되는 무정부적 장소이자, 음악에 영혼을 맡긴 룸펜들의 소우주다. 이곳을 자유로이 오가는 청년들은 인간 사회와 우주의 질서를 주제로 열띠게 토론하지만, 때로는 어떠한 말도 행동도 없이 그저 공간을 점유한 채 청춘의 시간을 소진한다. 그러나 외부와 내부가 서로의 대립 항 없이 존립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방증하듯, 어느새 '바깥'의 논리가 '공화국' 안에 스며들어 이곳만의 질서에 균열을 가한다. 공산주의를 찬양하던 주인공이 끝내 자본주의적 신용의 원리를 내면화하기까지.
<우리들의 공화국>은 인물이 겪은 내면의 변화에 따라 변모하는 장소의 풍경을 섬세하게 포착한 다큐멘터리다. 이 영화는 장면 저변의 사정을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지만, 대상이 뿜어내는 별난 개성 속에서 오늘날 중국 사회의 초상에 관한 날카로운 질문을 끄집어낸다.
지난 10월 5일, 제28회 부산국제영화제 와이드앵글 다큐멘터리 경쟁 부문에 초청된 <우리들의 공화국>의 '진지앙' 감독을 만났다. 나긋하지만 단단한 어조로 자신만의 영화관을 말하는 그의 모습에서 다큐멘터리스트로서의 앞으로 행보를 더욱 기대하게 된 시간이었다. 무엇보다, "영화를 창작하는 사람은 삶의 모든 장소에서 영화를 '발견'한다"는 말이 깊은 울림을 주었다. 그가 '공화국'에서 발견한 수많은 영화의 총체인 <우리들의 공화국>은 과연 올해 부산국제영화제의 귀중한 발견이다. 아동-청년-중년-노년으로 이어지는 인생의 시기를 사계절로 표현한다면, 그의 첫 그리고 두 번째 영화는 각각 봄과 겨울을 담고 있다. 청년기 인물을 내세운 여름의 영화로 올해 부산국제영화제를 찾은 그가, 언젠가 가을의 영화로 다시 한번 부산의 가을을 물들이길.
함윤정
DJ와 사운드 엔지니어로 일하며 회화, 사진, 조각, 설치, 퍼포먼스 아트 비디오 등 다양한 장르의 창작 활동을 했다고 들었다. 2013년 현대미술 개인전을 시작으로 예술가로서의 경력을 시작했는데, 이후 영화에 입문한 특별한 계기가 있나. 그중에서도 다큐멘터리 작업을 택한 이유가 있다면.
진지앙
나는 중국의 허난성 뤄양에서 태어났고, 고등학교를 중퇴한 후 생계를 위해 여러 일을 했다. 사진을 찍거나 조각을 만드는 등의 작업이 생계의 일환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무언가를 표현하고자 하는 욕망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 같다. 2011년부터 본격적으로 다양한 장르를 시도하기 시작했고, 2013년도에서 고향에서 전시회를 열었다. 그런데 이 소도시에서는 발전 가능성이 적겠더라. 그래서 2014년에 베이징으로 거주지를 옮겼고, 어떤 중국계 미국인을 만났다. 그는 20년 정도 미국에 살다 중국에 와서 다큐멘터리 작업을 준비하던 사람이었다. 당시만 해도 나는 사진밖에 찍지 않았는데, 그가 작업물을 보더니 나를 다큐멘터리 촬영감독으로 쓰고 싶다고 하더라. 생계를 유지하기 위함도 있었지만, 새로운 장르에 도전해 보겠다는 생각으로 도전했다. 그렇게 2015년부터 2016년 중반까지 그와 함께 다큐멘터리를 찍다, 이후에 비로소 나의 첫 작품을 만들었다.
사실 그와 협업하기 전까지는 영화라는 장르를 접한 적도, 공부한 적도 없었다. 그러다보니 나는 다분히 실천의 과정에서 다큐멘터리를 접하게 된 사람이다. 촬영 일을 하며 국내외의 독립영화를 많이 봤다. 특히, 왕빙 감독님의 작품을 보며 많은 영감을 받았는데, 그의 작품을 보며 나도 다큐멘터리를 찍을 수 있겠구나 싶어 이에 뛰어들었다.
함윤정
올해 아이콘 섹션에 왕빙 감독의 <청춘(봄)>이 초청되지 않았나. 존경하는 감독의 작품과 해외 무대에 함께 오른 셈인데.
진지앙
그래서 감독님을 만나 뵙고 싶다. 사실 예전에도 뵌 적이 있긴 한데, 왕빙 감독님을 보면 굉장히 떨리고 긴장된다. (웃음)
함윤정
<우리들의 공화국>의 주인공을 발견한 계기와, 그의 '공화국'에서 촬영을 결심한 당시의 이야기가 궁금하다. 전작 <끊어진 능선>(2020)의 경우, 촬영지에 여섯 번째 방문했을 때 비로소 촬영을 결심했다고 들었다. 작품의 대상을 정하는 본인만의 기준이 뚜렷한 것 같다.
진지앙
데뷔작 <Shang'ajia>(2017)은 미얀마와의 국경 인근의 원난성에 사는 아이들에 관한 영화다. 그리고 두 번째 작품 <끊어진 능선>은 산시라는 산간벽지가 배경이고, 노인에 관한 영화다. 한 작품을 완성하고 공개적으로 상영을 하면, 곧바로 다음 작품을 구상하는 습관이 있다. 2020년에 차기작을 고민하다 이전에 아이와 노인에 한 이야기를 했으니, 이번에는 청년에 대해 말해야 하지 않을까 싶었다. 다큐멘터리를 찍으며 소외된 사람들의 삶에 관심을 갖게 됐는데, 국경 지역과 산속 깊은 곳을 배경으로 택한 적이 있어서, 이번엔 도심에 살면서도 소외된 누군가를 찍고 싶었다. 그러나 이를 영화적으로 구현할 수 있는 사람을 어떻게 찾을지 갈피를 잡지 못하겠더라. 그래서 주변의 친구들에게 나의 아이디어를 소문내고 다녔다.
그때 한 친구가 베이징에 '공화국'이란 게 있다며 소개를 해줬다. 이를 듣자마자 굉장히 재밌었고, 의미가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무엇보다 흥미로웠던 것은 '공화국'에서는 절대 문을 잠그지 않고, 누구나 이곳에 마음대로 들어갈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이 이야기를 전해들은 당일 바로 그곳에 갔다. 사람들이 매우 많았지만, 정작 공간의 주인은 타지에 가고 없었다. 그래서 사람들과 수다를 떨며 그가 언제 돌아오는지 알아냈다. 주인이 돌아오던 날 '공화국'에 다시 방문했는데, 침대에 누워서 대마초를 피우던 그가 대마초 하나를 툭 던져주는 게 아닌가. 내가 누군지도 모르면서도 말이다. 일단 그 대마초를 받고는 이곳에 왜 왔는지, 독립 영화가 어떤 건지 설명했는데, 다행히도 그가 내 영화를 본 적이 있다고 하더라. 자기 삶과 공간을 기록으로 남기고 싶다는 기획에 흔쾌히 동의해서 그날로 곧바로 촬영에 들어갔다.
함윤정
장편 다큐멘터리인 두 편의 전작에 이어 <우리들의 공화국>에서도 독창적인 리듬과 템포로 살아가는 인물이 등장한다. 특히, 그들의 삶의 방식에는 무엇보다 삶의 터전이 제공하는 '장소성'이 중요하게 작용하는 것 같다. 영화의 배경이기도 한 인물의 거주지가 높은 곳에 있든 낮은 곳에 있든, 변두리든 중심가든, 공간의 폭이 넓든 좁든, 모두가 외부와 '단절'되어 있다는 점에서 같은 테마를 공유하는데. 이를 영화라는 형식으로 구현하는 일에 관한 생각이 궁금하다.
진지앙
내 영화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중점을 잘 포착한 것 같다. 사실 '공화국'은 베이징 안에서도 매우 중심가에 위치한다. 하지만 동시에 세상과 완전히 격리된 곳이기도 하다. <끊어진 능선>의 주인공이 언젠가 내게 했던 말이 있다. 나를 묻어줄 이 하나 없어도 상관없고, 어딘가 묻힐 생각도 없다고. 자신은 그저 이렇게 살다가 아무데서나 죽어가겠다고. 나는 이처럼 극단적으로 외부와 단절된 삶이 있다고 할지라도, 반드시 '보편성'을 갖는다고 생각한다. 모든 사람과 그들의 삶은 가치를 갖는다. 그리고 이를 기록할 가치가 있다는 게 나의 생각이다.
이쯤에서 내 영화 작업의 전반적인 논리를 설명하고 싶다. 지금껏 총 세 작품을 통해 아동, 노인, 청년을 찍지 않았나. 다음 작품은 중년에 관한 영화가 될 예정이다. 중국의 중년 세대가 보편적으로 갖고 있는 곤혹스러움과 그들이 맞는 위기를 다루는 거다. 그렇게 네 편의 작품이 하나로 연결되면, 중국의 각 세대가 어떤 길을 가고있고, 어떤 어려움을 겪는지 하나의 인생을 펼치듯 볼 수 있을 테다. 중요한 점은 중국의 주류 매체에서 이들에게 전혀 관심을 두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현재 중국에는 지어지다가 만, 창문도 없이 시멘트 틀만 남아 버려진 집이 많은데, 상당히 많은 중년층들이 이곳에 거주하고 있다. 그들의 삶이 보편적이지 않아서 중국의 매체가 이들에 대해 관심을 두지 않는 게 아니다. 부동산 관련 법의 피해자가 되어 이런 방식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중국에 수천만 명이나 있다. 나는 이런 부분에 대해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고, 네 편의 작품을 통해 일련의 그림을 연결해 네 가지로 분기된 인생의 시기를 엮을 계획이다.
다시 <우리들의 공화국> 이야기로 돌아간다면, 중국에서는 '공화국'에서 살아가는 청년을 사람 취급하지 않는다. 그야말로 하류 문화의 일부이고, 버려진 사람들이다. 부모나 학교, 사회, 심지어 주변의 이웃마저도 이들을 기피한다. 이들은 절대 주류 사회에 되돌아갈 수 없다. 그런데 CCTV 등의 중국 매체들은 이들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 항상 열심히 일하고, 진취적인 청년들만을 보도할 뿐이다. 그래서 내가 이를 기록해 배척당하는 청년들의 존재 사실을 알리겠다고 다짐했다.
함윤정
영화의 장소에 관한 이야기를 주로 나눴는데, <우리들의 공화국>에서 시간의 흐름을 다루는 방식 또한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아침이 밝아오고 밤이 어두워지는, '하루'라는 시간 단위의 순환이 거듭되긴 하나, 이것이 인물들의 삶에 유의미한 변화로 보이지는 않는다. 역설적인 표현이겠지만, 그래서 오히려 '부지런히 시간을 낭비하는 청춘 군상'을 표현하기에 적합한 흐름처럼 느껴졌다. 그러다 후반부에서 주인공이 '부채'라는 현실적 압박을 받으며 삽시간에 계절의 변화가 일어난다. 사실상 무엇이 먼저랄 것도 없이, 인물과 계절의 변화가 동시에 제시되는 방식이 매우 흥미롭다. 그래서인지 주인공이 좁은 공간에 쭈그려 앉아 요리하는 모습이 일견 낭만적으로 보였던 초반부와 달리, 후반부에 재등장하는 요리 장면에서는 궁핍하고 초라한 분위기가 극대화된다. 작품 속 시간 변화에 대한 연출자로서의 생각과 실제 촬영 기간이 얼마나 소요되었는지 궁금하다.
진지앙
나의 모든 영화는 아침부터 밤까지 그리고 일 년 사시사철을 보여준다. 사실 두 번째 작품을 찍을 때부터, 향후 인생을 네 단계로 나눈 각각의 작품을 만들어 이들을 연결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각 작품에 반드시 사시사철을 담겠다는 다짐도 그때 했다. 시간의 흐름에 관해서는, 최대한 영화와 현실의 시간이 일치할 수 있도록 노력한다. 누군가의 삶의 방식을 보여주는 일은 그가 누구이고, 어디서 왔고, 뭘 하는 사람이고, 어떻게 살 것인지를 모두 담아내는 것이다. 나는 이것이 무엇보다 수다를 떨고 밥을 짓는 등 일상의 자질구레한 모습을 통해 드러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영화의 인물들이 열심히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는 당신의 말에 굉장히 감동을 받았다. 너무나 마음에 드는 표현이다. 촬영할 때, 인물들이 미국의 5~60년대 히피의 삶을 모방하고 있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젊음이란 끊임없이 자신을 불태우며 시간을 낭비하는 것이 아닐까. 그렇게 시간을 보내는 게 청춘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들의 공화국>은 2020년도 8월에 촬영을 시작해 2022년 2월에 마지막 숏을 찍었다. 전체 분량으로 치면 총 400시간짜리이고, 나의 모든 영화를 통틀어 가장 많은 시간을 들인 영화다. 인물의 삶의 질이 급격하게 떨어지면서 계절의 변화가 드러나는 대목은 자연스럽게 발생한 거다. 나는 영화를 찍으며 어떤 스토리도 의도적으로 손을 대지 않는다. 모든 삶의 방식과 사건이 자연스럽게 그 안에서 녹아져서 변화를 끌어내는 것이고, 유일하게 손을 대는 것이 있다면 어쨌든 내가 직접 편집을 한다는 것뿐이다.
함윤정
물론 그랬을 거라 생각했다. 다만, 그런 삶의 시간의 흐름이 영화적인 효과로서 큰 울림을 준다는 점이 감명 깊었다고 말하고 싶었다.
진지앙
나는 삶의 모든 장소가 곧 영화라고 생각한다. 영화를 창작하는 사람은 바로 그 영화를 '발견'하는 사람이다. 당신의 말처럼 갑자기 주인공이 몰락하면서 오히려 영화적인 요소를 살려줬는데, 어쩌면 우리의 삶이 원래 그런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함윤정
5제곱미터도 되지 않는 좁은 공간에 빼곡히 모여 앉은 인물들을 직접 촬영하기 쉽지 않았을 것 같다. 카메라가 영화의 초반에는 대상을 관찰하는 입장에 가깝다면, 후반으로 갈수록 마치 '공화국'의 일원으로서 공간을 점유하는 인상을 준다. 감독 본인이 주인공과 단둘이 대화하기도 하고, 외출한 그를 따라가지 않고 이곳에 남기도 하지 않나. 실제로 촬영 회차가 거듭될수록 모종의 소속감을 느끼기도 했는지.
진지앙
확실히 그렇다. 카메라가 공간에 들어간다는 것 자체가 명백히 침략적인 행위이기 때문에, 처음에는 내가 상황에 관여하거나 간섭할 수 있는 부분을 최소화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매우 조심스러웠고, '공화국'의 인물들과도 거리감이 있는 관계였다. 그런데 오랜 시간 동안 촬영을 거듭하다 보니, 마치 내가 그들의 일원인 것처럼 변해가더라. 나는 꽤 오랫동안 그 방에서 한 자리를 차지하지 않았나. 그래서 방세를 일부 내기도 했다. 그들과 굉장히 친해졌고 소속감도 느꼈다.
'공화국'에 관해 보충하자면, 이곳은 아주 작은 한 칸의 방이지만 무한한 자유를 갖고 있는 공간이기도 하다. 주인공의 말에 따르면 이 작은 공간 안에서는 법도, 하늘도, 제도도 아무것도 없다. 반면 외부의 세계, 즉 현재의 중국은 어떠한 말과 행동도 함부로 해선 안 되는 곳이다. 나 역시 늘 조바심을 내고 긴장 상태로 살아야 한다. 이런 영화제에 오는 일조차 두려움이 되는, 그런 세상이 외부에 펼쳐져 있다고 할 수 있다. 촬영을 시작했을 때는 분명 '공화국'에 무한한 자유가 있다는 느낌을 받았고, 그래서 영화를 제대로 촬영할 수 있겠다는 믿음이 있었다. 그런데 촬영 과정에서 현재 중국의 청년들이 겪는 생존의 문제가 이 공간에 고스란히 녹아있다는 생각이 들더라. 인터넷 신용 대출, 카드 사기 등의 문제로 결국 '공화국'은 와해되었다. 외부 현실의 문제로 인해 이토록 작은 공간의 자유마저 몰락했다는 사실을 <우리들의 공화국>이 보여줄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함윤정
영화에서 카메라가 '공화국' 밖을 나간 경우는 두어 번에 불과하다. 그마저도 바로 앞 골목을 잠시 비추는 데 그치다 보니, 이 작은 세계 바깥의 풍경을 전혀 알 수 없다. 실제로 인물의 외출을 따라나선 적이 없나.
진지앙
총 400시간을 촬영했다고 했는데, 사실 그 중 절반은 '공화국' 밖에서 찍었다. 사실 이 장소를 처음 방문했던 날 한 가지 결심을 했었다. 절대 밖으로 나가지 않겠다고. 모든 촬영은 내부에서, 모든 이야기도 이곳에서 나와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여기를 오가는 사람들이 갖고 있는 재밌는 이야기가 너무 많았다. 그래서 참지 못하고 인물들을 따라 나갈 수밖에 없었다. 사실 이 영화에는 한 가지 버전이 더 있다. 바로 '공화국' 안팎의 이야기가 두루 담긴 버전이다. 그러나 초지일관해야 한다는 최초의 결심을 지키기 위해, '공화국' 내부만을 찍은 버전을 영화제에 제출한 거다.
함윤정
촬영과 녹음뿐 아니라 편집과 색보정 등 후반 작업까지 혼자 하고 있다. 앞으로도 혼자만의 작업 방식을 유지할 생각인가. 마지막으로 주인공을 비롯한 '공화국'의 일원들이 완성된 영화를 보았는지 궁금하다.
진지앙
다큐멘터리에 한해서는 혼자 제작하는 방식을 이어갈 예정이다. <우리들의 공화국>을 촬영할 때 다른 이를 써보기도 했는데, 역시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그래서 적어도 차기작까지는 혼자 만들 계획이다. 주인공을 비롯한 '공화국'의 몇몇 일원은 영화를 봤다. 하지만 '공화국'이 해체된 후로 사람들이 흩어졌고, 외국에 나간 이들도 있어서 아직 영화를 못 본 사람도 있다. 주인공이 10월 8일에 한국을 방문하니, 관객들이 직접 과거의 자신과 마주한 그의 소감을 물어도 좋겠다.
끝으로 덧붙이고 싶은 말이 있다. 중국에서 온 영화에 대해 어느 정도 이념적인 기대가 있다는 걸 알고 있다. 중국 정부하에서 통일된 가치와 차별된 작품이기 때문에 이는 피할 수 없는 일이다. 당연하고 어쩔 수 없다. 하지만 이것이 내가 영화를 만들고 싶었던 이유는 아니다. 나는 단지 카메라로 다양한 사람들의 삶을 기록하고, 삶의 방식에서 그들의 내면세계로 진입하려 한다. 그리고 관객들이 스크린에 펼쳐진 그들의 내면을 어떠한 방해 없이 받아들이게 하고 싶다. 내가 그러하듯이 말이다. 나는 이야말로 영화에서 가장 가치 있는 부분일 뿐 아니라, 다큐멘터리의 가장 큰 보람이라 생각한다.
[인터뷰 함윤정 영화평론가, badasal2@ccoart.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