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탄' 신체는 실존의 거울이다
'티탄' 신체는 실존의 거울이다
  • 이현동
  • 승인 2021.12.15 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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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연대가 가족이란 연대로 변형되기까지"

"그러나 성은 표상과 반사의 혼합이 아니라 지향성이다."(『메를로-퐁티의 지각현상학 읽기』, 류의근, 세방미디어, 2016, p.69) 이성이 서로의 신체를 탐닉하는 과정은 단순히 가시적인 지각으로만 결속되지 않는다. 인간의 실존은 자신의 처한 현존이란 미명 아래에서 그 형태를 형성하고 유지하며 그리고 지향한다. 쥘리아 뒤쿠르노 감독의 <티탄>(2021)은 메를로-퐁티의 테제를 인용할 수 있는 대표적인 사례가 될 것이다.

<티탄>은 관습적으로 치부되는 이성적 결합에 반역하는 저항의 영화다. 뒤쿠르노 감독은 인디와이어의 인터뷰에서 "하늘의 신인 우라누스와 대지의 신인 가이아가 만나 티탄이 탄생하는 것을 통해 새로운 세상을 만들고 싶었다"라고 밝힌 바 있다. 이를 종합해 보면 <티탄>이란 단어는 두 가지의 의미를 창출하는 장치로 활용된다. 신화적인 '티탄'과 물질적인 원소인 '티탄'이 인간의 허물을 탈각하면서 새로운 타입의 생명체가 탄생하는 것임을 가리키는 것이다. 알렉시아/아드리앵(아가사 루셀)과 자동차와의 충동적으로 이뤄진 '성'적인 관계는 물리적으로 식별할 수 없는 가능성, 그로 인해 발생하는 도덕성의 결여를 바탕으로 괴멸적인 형상을 만들어낸다.

 

ⓒ (주)영화특별시SMC

<티탄>과 대비되는 형태를 지닌 영화가 있다면 폴 버호벤의 <로보캅>(1987)일 것이다. 죽음을 맞이한 후에 새로운 생명으로 다시 태어난 로보캅은 봉사, 무고한 시민 보호, 법질서 수호의 3원칙으로 사회의 질서를 지키는 슈퍼 히어로적인 인물인 반면에 사고 이후 뇌를 티탄으로 대체한 알렉시아는 통념적인 사회의 질서뿐 아니라 도덕법에 해당하는 '살인하지 말라'라는 법을 아무런 거리낌 없이 저지르는 극단에 선 인물로 묘사된다. 이유 없이 벌어지는 살인의 현장과 그녀를 실종된 아들로 착각하는 뱅상 르그랑(뱅상 랭동)의 모호한 관계 속에서 관객은 피안적인 영화를 목도하게 된다.

그렇다면 뒤쿠르노 영화 뒤편에는 무엇이 존재하는 것인가?

 

신체의 무조건적 반사작용

뒤쿠르노의 영화에서 주체는 신체가 가진 즉물성과도 밀접한 연관이 있다. 신체는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변형된다. 키와 몸무게가 늘어가고, 특별히 여자는 특별히 초경이라는 시기를 겪으면서 자신의 성적 정체성을 인식하기도 한다. 뒤쿠르노 감독은 자신이 의도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영화는 그녀에게 있어 자신을 성장시키는 동력처럼 관측된다. 청소년기를 대상으로 했던 첫 번째 단편영화인 <주니어>(2011), 대학교 생활을 배경으로 한 <로우>(2016), 그리고 임신을 하여 아이를 출산하는 <티탄>에 이르기까지의 일련의 과정들은 뒤쿠르노의 영화적인 성장에 기인한 것이 아닐까 짐작하게 한다. 더 나아가 신체는 실존을 반사하는 거울과 같다. 왜냐하면 내밀한 신체 상황에 따라 생각과 행동이 끊임없이 조정되기 때문이다.

또 뒤쿠르노 감독 영화에서 인물들의 변화를 추동하는 계기는 굉장히 직설적이며 시각적이라는 점을 먼저 염두에 두고 볼 필요가 있다. 가령 <로우>에서 채식주의자인 쥐스틴(가랑스 마릴리에)이 식인 본능에 눈을 뜨게 된 사건은 수의 학교에서 토끼 간을 먹게 되면서 발생하게 되었다는 점과 <티탄>에서 알렉시아가 자신을 뒤쫓아 오는 남자와 키스 후에 머리핀으로 살해하는 장면을 지나 곧바로 이어지는 자동차와의 섹스 시퀀스들이 함의하는 것은 봉인되어 있던 주체가 각성되는 순간이라는 지점에서 그녀의 영화는 정신 분석학적, 병리학적 한계를 넘어선 기괴한 영화로 위치한다. 그 행위가 구조화되어 있는지 명확히 판명할 수 없기 때문에 우리는 영화를 감상하면서 슬픔, 고통, 분노, 환희와도 같은 즉각적인 느낌으로만 반응하게 된다.

 

ⓒ (주)영화특별시SMC

뒤쿠르노 감독의 모든 작품이 그렇다. 프레임에 해체되거나 왜곡된 신체들의 부위가 외화면을 찢고 우리의 감각에 지속해서 침투할 때, 생각은 끊임없이 교란되고 분열되며 그 느낌의 의미에 대하여 촉각을 곤두세우게 되는 것이다. 지속적으로 묘사되는 출혈, 멍, 흉터, 그리고 볼록해지는 배를 붕대로 감는 알렉시아의 모습 속에서 <티탄>은 호러 영화의 문법을 전략적으로 채택한다. 단순히 그녀의 영화에서 신체로부터 발생하는 섹스와 살인 등은 맹목적인 감정의 형태로 남는 것을 거부한다. 신체는 뒤쿠르노 감독에게 있어 '인간이 무엇인지', '인간이 누구와 연대하는지'를 지시하는 주된 테마이자 물음으로 고양된다.

 

퀴어 영화를 전복하는 가족 영화

<티탄>은 퀴어를 전복한 영화다. 일반적으로 퀴어 영화가 성소수자를 주제로 사회와 투쟁하는 방식으로 등장했다면, <티탄>은 남성도 여성도 아닌 자동차라는 기계와의 섹스를 통해서 아이를 잉태하게 된다는 점에서 퀴어 영화의 관습을 파괴한다. 또한 동성과 이성관계, 즉 인간과의 결합이 폭력으로 드러난다는 점에서 성적 관계는 다소 휘발되는 모양새로 묘사된다. 알렉시아를 뒤쫓았던 남성과 동성애의 대상이었던 쥐스틴과의 '키스'가 폭력의 동기가 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것은 여성이란 주체가 일탈되는 과정이자 주체를 발견하게 되는 여정으로 전환되면서 <티탄>의 주제가 연대의식으로 향하고 있음을 주지하게 된다.

알렉시아는 곳곳마다 개시된 몽타주와 검문하는 경찰들을 피해 자신의 신체를 강제로 변형 시켜 실종된 아이로 변장한 채 그 가족의 품에 들어가 생활하기 시작한다. 아드리앵이란 이름을 가진 17세 아이를 끔찍하게도 사랑하는 아버지 뱅상 르그랑은, 그가 아들이라 믿고 여자라는 사실을 눈치채지 못한 채 애정을 쏟는다. 그녀는 소방관인 아버지와 그의 대원들이 거주하는 소방서, 즉 전부 다 마초적인 성향을 가진 전형적인 남성들의 생활환경에서 자신의 정체를 은폐하기 위해 애를 쓴다. 서두에 등장했던 알렉시아가 교태스러운 자태로 차위에 올라가 스트립쇼를 하는 그녀의 젠더 정체성은 결국, 은폐되지 못한 채 신체의 변화에 의해 발각된다.

 

ⓒ (주)영화특별시SMC

뱅상 르그랑은 화장실에서 알렌시아가 여자라는 사실을 확인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알렌시아를 자신의 가족으로 받아들인다. 이것은 규범적이거나 도덕적인 연대가 아니다. 나는 이것을 도덕을 넘어선 순수한 연대로 정의하고 싶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영화 <어느 가족>(2018)에서 쇼타 시바타(죠 카이리)가 마지막 버스를 타고 떠나는 순간에 오사무 시바타(릴리 프랭키)를 보며 아빠라고 읊조렸던 음성에서 채취할 수 있는 것은 시간을 관통하여 가족이란 관계가 형성됨을 볼 수 있듯이 <티탄>에서 알렌시아가 가족으로 인정되는 건 <어느 가족>에 메시지와 동일하게 작동한다는 점에서 이 영화는 퀴어 문법을 빗나가는 가족 영화가 되기도 한다.

뒤쿠르노 감독의 영화는 감정을 곤고하게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이러한 비밀스러운 연대에 함께 동참하게 한다. <로우>의 결말에서 아버지가 보여준 상처가 그러했고, 잉태한 아이를 안고 있는 뱅상 르그랑의 표정이 그러했다. 결국 난 메를로-퐁티가 말한 것으로 되돌아가 성의 의미와 가족의 의미에 대한 지향성의 문제는 시간의 맥락아래에서 재해석된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글 이현동, Horizonte@ccoart.com]

 

ⓒ (주)영화특별시SMC

티탄
TITANE
감독
쥘리아 뒤쿠르노
Julia Ducournau

 

출연
벵상 링던
Vincent Lindon
아가트 루셀Agathe Rousselle
가랑스 마릴리에Garance Marillier
디옹-케바 타추Diong-Keba Tacu
미리엄 아케디우Myriem Akheddiou
베르트랑 보넬로Bertrand Bonello
도미니크 프로트Dominique Frot
라민 시소코Lamine Cissokho
플로랑스 자나스Florence Janas
프레데릭 쟈댕Frederic Jardin

 

수입 왓챠
배급 왓챠|영화특별시SMC
제작연도 2021
상영시간 108분
등급 청소년 관람불가
개봉 2021.12.09

이현동
이현동
 영화는 무엇인가가 아닌 무엇이 아닌가를 질문하는 사람. 그 가운데서 영화의 종말의 조건을 찾는다. 이미지의 반역 가능성을 탐구하는 동시에 영화 안에서 매몰된 담론의 유적들을 발굴하는 작업을 한다. 매일 스크린 앞에 앉아 희망과 절망 사이를 배회하는 나그네 같은 삶을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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