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워 오브 도그>(2021)란 제목을 상고할 때 누구든지 이 영화의 제목에 대한 의문점을 제기할 수밖에 없다. 성서에 기록된 시편 22편 20절('내 생명을 칼에서 건지시며 내 유일한 것을 개의 세력에서 구하소서')를 인용한 이 구절은 선과 악이라는 담론을 붕괴하는 이중적인 이미지가 중첩되어 의도적인 구술로 발화된다. 성서에서 '개'의 존재가 '악'을 대표적으로 상징하고 있는 것과는 별개로, 영화 속에서 개를 바라보는 필 버뱅크(베네딕트 컴버배치)와 피터(코디 스밋 맥피)의 관점이 다르게 해석되고 있다는 지점에서 성서의 담론은 시공간을 관통하여 또 다른 지향성을 갖게 된다.

<파워 오브 도그>의 영화적 파괴력은 인물과 세계와의 갈등을 시대상과 결부 시켜 강렬한 은유와 상징을 갖는다는 측면에 있다. 특히 필과 피터의 관계가 형성하는 일련의 서스펜스는 그 자체로 교란되어 그들이 폭주하기 전까지의 감정의 상태를 능동적이며 다층적으로 풀이하는 것에서 그 특징을 발견할 수 있다. 즉, 이 영화의 서사는 고전 회화가 아니라 뒤틀린 현대미술이 된다. 회화에서 찾을 수 없는 영화라는 가능성을 측량하게끔 유도하는 건 바로 '빛'이 운행하는 그림자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필과 피터의 사정

아빠가 돌아가신 후에 엄마의 행복을 바란다는 피터의 보이스오버는 '공허'함으로 아무것도 관측할 수 없는 검은 화면으로 시작된다. 어떠한 감정도 없이 냉각된 상태로 읊조리는 피터의 보이스에는 <파워 오브 도그>의 서늘하고도 음울한 정체성이 고스란히 묻어 있다. 무엇보다 이 영화의 서사를 입체적으로 세공하는 역할을 감당하는 건 필이 가진 성향과 연관된다. 대규모 농장을 감독하는 카우보이이자 압도적인 카리스마로 리더의 역할을 맡고 있는 필은 그의 마초적인 외향과는 달리 그는 기타를 다루는 섬세함을 갖고 있으며, 남동생인 조지 버뱅크(제시 플레먼스)와 함께 잠을 자기도 한다. 필에게 조지란 존재는 자신의 젠더 성향을 은연중에 투영하는 대상이기도 하다. 또한 예일대 고전학을 전공할 정도로 엘리트인 필은 학력과는 무관하게도 자신의 전형적인 방식으로 치장하지 않는다. 그는 자신을 타자들에게 지속해서 은폐한다. 심지어 가족조차도 그의 성향이 어디서 태생하였는지를 인식하지 못한다. 돌발적으로 필이 자신의 육체에 집착하는 경향을 목도하게 되는 순간이 있다. 그가 다른 남성들이 물가에서 벌거벗는 모습을 지나쳐 행적이 드문 곳에 홀로 나체로 은밀하게 몸을 씻는 장면을 떠올려보면 그렇다. 그때에 이러한 질문이 돌연 추동된다.

이 장면을 병렬하는 대상은 그가 지속적으로 언급하는 브롱코 헨리라는 인물이다. 필이 성인이 되기 전에 추운 겨울에 같은 침낭에서 몸을 뒤섞였던 동성의 기묘하고 어쩌면 짜릿할 수 있었던 체험은 그의 인생을 바꾼 사건으로 기억되고 있었다. 이러한 동성애적 성향이 부각되는 힌트들은 도처에서 필의 외피를 벗겨내면서 나아간다. 그의 외피를 유일하게 목격하는 인물은 피터다. 필과 피터는 함께 언덕 위에 인장처럼 새겨져 있는 입을 커다랗게 벌리고 있는 개의 형상을 본다. 브롱코 헨리말고 아무도 인식할 수 없었던 개의 의미는 밀봉되어 있었던 시대적 편견에 대한 보편적인 두려움으로 점철된다. 결과적으로 빛과 자연을 조명하며 드러내는 건 내면의 불안을 형상화하는 이미지로 작동하고, 그것은 시대의 시선들이 계속해서 편재함을 의미한다.(서두에 언급하지 않았지만, '개의 세력'이란 번역 말고도 다른 번역본에 보면 '개의 입'이라는 번역이 있는데, 이는 개의 이미지가 더욱 그들을 향해 진격하는 어떤 강렬한 이미지를 전달하기 위한 의도로 보인다)

반면에 피터는 아버지가 자살했다는 꼬리표와 주정뱅이가 되어가는 엄마의 불행이 그를 시대적으로나 개인적으로 그를 괴롭혀왔음을 알 수 있다. 피터의 외모 때문인지, 이전에 필에게 조롱을 받았기 때문인지 명확하게 분간할 수 없지만, 조지와 로즈가 결혼하고 나서 필의 무리에게 조롱받는 피터의 처연한 걸음 속에는 은폐되어 있는 필의 내면과는 다른 움직임과 감정의 이미지가 응축되어 있다. 이것은 분명한 대비로 작용한다. 피터는 분명 필의 신체적 조건과는 다른 연약한 외향을 갖고 있지만, 목적의식이 분명하고, 냉철한 인물로 그려진다.. 잡은 토끼를 아무런 미동도 없이 해부하는 장면과 필을 살해하기 위해 철두철미하게 계획하고 의도적으로 접근하는 일련의 과정들은 자신의 엄마인 로즈를 향한 애정을 드러내는 행위이자 <파워 오브 도그>를 드러내는 최종적인 목적지이다.

또 한 가지의 주요한 상징성으로 대두되는 건 바로 '밧줄'이다. 필에게 밧줄이란 건 브롱코 헨리를 기억하는 장치이자 파멸의 결과를 초래하게 되는 원인을 제공하는 지점에서 흥미롭다. 이는 어떤 도식적인 결과를 유출하게 되는데, 브롱코 헨리와 필의 관계가 필과 피터의 관계를 이미지화하는 연결고리이며 그 종국에는 '죽음'이 존재하며 이것은 '선과 악'이 대비되지 않는 인과관계를 지시하는 원인이 된다. 토머스 새비지의 원작 소설인 『파워 오브 도그』에서 출판 당시 비평가들은 내용 전개에서 필과 피터의 관계가 선악을 뚜렷하게 구분된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영화에서는 그 구분이 모호해지고, 현대의 시선과 접합해 보면 사회과학적인 담론을 논의할 수 있다는 지점에서 <파워 오브 도그>는 퀴어적이면서도 프로이트적이기까지 한 다층적인 영화가 된다. 한편으로 필이 가죽을 다룰 때 장갑을 착용하지 않는다는 것도 참으로 오묘하다. 마치 브롱코의 살결과 필의 살결이 닿는 것을 회상하는 듯한 밧줄을 다루는 손길들을 유심히 관찰하는 피터에게 밧줄은 증오와 분노로 축적된 과거를 파괴하는 동력으로 활용된다.

<파워 오브 도그>는 인물들과의 관계를 채색하는 방식과 더불어, 빛으로 생동하는 감정의 움직임을 포착하는 에너지들과 목가적인 풍경들이 발산하는 영화적 톤이 인상적이다. 광활한 황무지와도 같은 공간에서 빛은 표정을 내내 찌푸리게 만들고, 흙먼지들이 난무하며 혼란스러움을 가중시키는 시각적인 이미지는 앞으로 출몰하게 될 결말을 예고하는 듯하다. 오염되어 있던 토양과 동물로부터 감염을 일으키는 탄저균은 당시의 시대와 배경과 인물들의 심리를 조율하는 반동적인 실체와도 같다. 결국 위험 속에 노출되어 있는 인간은 정체를 알 수 없는 개의 그림자만을 오롯이 응시하고 있을 뿐이다. 제인 캠피온은 비평가들의 높은 평가와 국제 영화제의 수상 경력에 비해 한국 대중들에게 많이 알려지지 않은 감독이다. 현재 왓챠에서 감상할 수 있는 <피아노>(1993)를 제외하곤 다른 작품들을 감상할 수 없다. <파워 오브 도그>가 넷플릭스로 독점 스트리밍이 되는 만큼, 그녀의 첫 번째 장편 데뷔작인 <스위티>(1989)와 베니스 국제 영화제에서 첫 번째 수상 경력을 안겨준 <내 책상 위의 천사>(1990) 같은 작품들이 수입되어 대중들에게 널리 공개되길 바란다.

[글 이현동, Horizonte@ccoart.com]

이현동

Horizonte@ccoa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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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는 무엇인가가 아닌 무엇이 아닌가를 질문하는 사람. 그 가운데서 영화의 종말의 조건을 찾는다. 이미지의 반역 가능성을 탐구하는 동시에 영화 안에서 매몰된 담론의 유적들을 발굴하는 작업을 한다. 매일 스크린 앞에 앉아 희망과 절망 사이를 배회하는 나그네 같은 삶을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