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드가 라이트] 밤으로 걸어가기
[에드가 라이트] 밤으로 걸어가기
  • 배명현
  • 승인 2021.12.14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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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스트 나이트 인 소호>(2021)로 가기까지
'에드가 라이트' 감독 ⓒ 영화 '라스트 나이트 인 소호' 스틸컷
'에드가 라이트' 감독, 안야 테일러 조이 ⓒ 영화 '라스트 나이트 인 소호' 스틸컷

본 글은 에드가 라이트 감독의 개봉 예정작인 <라스트 나이트 인 소호>(2021)로 다가가기 위한 첫 발자국과 같다. 그가 지금까지 걸어온 길을 복기하는 동시에 <라스트 나이트 인 소호>에서 참고한 작품이라 말한 3개의 영화를 함께 이야기하려 한다. 앞으로 나올 한 편의 글을 포함, 두 편의 글은 감독론이라기보단 이해를 돕고자 하는 간략한 맛보기쯤으로 생각해주었으면 좋겠다.

 

1.

에드가 라이트의 신작 <라스트 나이트 인 소호>의 개봉이 미국 기준 10월 22일로 정해졌다. 그의 영화 중 유일하게 코미디가 아닌 정적인 호러가 될 거라고 한다. '코르네토 3부작'인 <새벽의 황당한 저주>(2004), <뜨거운 녀석들>(2007), <지구가 끝장나는 날>(2013)이 그가 자신의 방향을 선회해 공포라는 정직한 장르로 다가올 줄은 그의 팬인 나조차 예상치 못했다. 그러나 어쩌면 이 일은 미리부터 예견된 일이었을지 모르겠다. 그가 지속적으로 보여준 장르적 기원이 공포임과 동시에, 공포영화에 얼마나 광적인 사람인지 반복해서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일단 그의 작품목록를 간단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의 첫 장편인<새벽의 황당한 저주>(Shaun of the Dead)>는 조지 A. 로메로 감독의 <시체들의 새벽>(Dawn of the Dead)를 패더리한 제목에서도 드러나듯 좀비를 적극적으로 이용했다. 이때 장르를 뒤틀 때 가장 적극적으로 사용한 무기는 시나리오보다 편집이었다. 창의적이며 타고난 리듬감이 돋보이는 편집. 음악과 쇼트를 함께 엮어낸 씬은 따로 떼어내 보자면 스토리와의 연결보다는 그 장면 자체로 생동감을 가지는 하나의 소작품이었다. 이러한 이 무기는 그가 감독으로 데뷔하기 이전 뮤직비디오를 연출할 때 가장 적극적으로 이용하던 무기이자 장기였다.

 

해당 영상을 보자. 눈치챈 사람도 있겠지만 이 시퀀스는 베이비 드라이버의 오프닝 시퀀스와 거의 비슷하다. 2003년에 촬영한 시퀀스가 미래에 다시 등장해 베이비 드라이버의 시작이 되었다는 건, 어쩌면 그의 영화가 이미 과거에 완성되어 있었다는 건 아닐까. 

이러한 비범함은 창의성으로도 드러난다. 예를 들자면, 장소를 이동할 때 대부분의 감독이 사용하는 차를 타고 이동-프레임 밖으로 차가 나감-중간중간 차가 다시 이동-표지판을 보여줌- 공간에 도착, 과 같은 게으르고 판에 박힌 연출이 아닌. 그만의 독특한 이동법을 개발해냈다. 아래 영상을 확인해보자. 

 

재미있는 건 그가 이러한 편집으로 자신만의 세계관을 구축하려 했다는 데 방점이 찍혀있다. 그는 편집의 시간성을 극단으로 밀고 나가 시간의 흐름을 연결하는 것이 아닌, 이미지의 연결을 통한 하나의 문장으로 만들어 놓았다. 일종의 만화의 기법과 비슷한 문법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스콧 필그림>(2010)를 만들어낸 감독답다고 생각하게 만든다.

시간성을 계속 이야기해보자. 그는 이 극단적으로 압축한 시간의 합을 '반복하는 행위를 반복'한다. 한 영화 안에서 연이어 보여주기는 물론이며 자신의 영화 안에서 계속 변주하여 보여준다. 특히 이 장면이 '유머'를 목적으로 보여줄 때, 그의 스타일이 중요해진다. 유머는 한 번 본 장면에 다시 반응하지 않기 때문이다. 웃음을 늘 예상을 뛰어넘을 때 일어난다. 하지만 그는 그 반복을 다른 맥락에 끼워 넣으며 다시 한번 관객의 예상을 뛰어넘는다.

그런데 이 유머를 위한 반복이 이번 <라스트 나이트 인 소호>와 무슨 관련이 있단 말인가. 그건 유머와 공포가 얼핏 반대편에 있는 반응인듯 하지만 둘은 친족관계라고 할 수 있을 만큼 가까운 관계이기 때문이다. 헬무트 플레스너는 웃음과 울음을 한계를 넘어서는 것과 조우하였을 때 나타나는 심리적 현상이라고 정의한 바가 있다. 그는 이것을 '한계반응'이라 말했다. 인간은 자신이 수용할 수 있는 감정의 역치를 넘어가게 되면 표면으로 드러나는 '반응'을 보이게 된다는 것이다. 관습이나 일반적인 기대 지평이 한계에 부딪히고 그걸 받아들일 수밖에 없을 때, 웃음과 울음은 발생한다. 이 두 개의 상반되는―것으로 보이는―웃음과 울음은 같은 뿌리를 가지고 있다.

에드가 라이트는 이 지점을 명확하게 인지한 것으로 보이고 또 이를 이용하는 듯하다. 특히나 그가 그라인드 하우스에서 보여준 단편 광고(혹은 영화) <Don't>에서 보여준 반복되는 스토리와 사운드를 통해 웃음을 유발하지만, 마지막에서 그는 미묘한 그로테스크를 이용해 약간의 공포를 유발하는 것을 놓치지 않았다.

 

위의 영상은 긴장- 웃음-반복-광기를 통해 1분 17초라는 시간 안에 그는 반복을 통한 새로운 맥락을 만들어 낸 것이다. 그리고 감히 예상해 보건대 그는 단편영화 <Don't>(2007)에서 보여준 반복을 통해 관객에게 광기적 두려움을 유발하지 않을까 예측해본다. 하지만 이건 그가 지금까지 해왔던 작업과 전혀 다르지 않다. 웃음과 울음이 같은 맥락하에 있다면 그는 공포를 통한 울음을 유발할 것이기 때문이다.

다른 영화에서도 이와 같은 맥락을 찾아볼 수 있다. 그가 반복과 차이를 적극적으로 이용한 영화는 <지구가 끝장나는 날>이 아닐까. 에드가 라이트는 목숨이 걸린 급박한 상황에서조차 12개의 펍을 돌아다니며 술판을 벌이는 기괴한 스토리를 이끌어 가면서도 절대 두려워하지 않는다. 부조리극과 사실이 뒤섞인 설정을 이끌어가면서 12개의 펍을 모두 보여준다. 심지어 펍의 이름과 그 펍 안에서 일어나는 사건을 연결시키기까지 한다. 그리고 마침내 12개의 반복되는 장소를 거쳐 지나가면서 떡밥과 디테일을 회수한다.

그러나 여기에서 유발되는 웃음은 이전의 영화들과 다른 냉소에 가깝다. 인간을 향한 냉소. 독일 철학자 '오도 마르크바르'는 웃음에는 웃음과 냉소가 존재한다고 말했다. 유머의 웃음은 자기 자신과의 거리를 유지한 채 한계를 열어젖히며 이를 통해 새로운 현실에 미소를 보낼 때, 냉소는 한계를 긋고 현실을 조롱하며 배제한다고. 웃음의 기능 중 하나는 포용이고 하나는 배제이다. 이 상반되는 두 가지 역할을 웃음은 가지고 있다. 그리고 마르크바르가 말한 이 두 가지 기능을 에드가 라이트의 영화는 모두 포함하고 있다. 단순히 웃기기 위한 영화가 아닌, 블랙유머로 현실을 감각하게 하는 것. 그리고 그 블랙유머를 너머 감각과 현실에 한계를 긋고 다시 한번 지금의 지구인들에게 냉소를 보낼 수 있게 하는 것, 그리고 이를 통해 인간의 존재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 에드가 라이트의 기막힌 웃음 감각이 유발하는 기능이다. 그의 새로운 영화에 이 감각이 다시 들어간다면 어떤 방식으로 등장할까. 특히 공포 영화에서 두 가지가 동시에 발휘될 수 있을까? 나는 그것이 가장 궁금하다.

 

2.

그의 재능과 유머감각 그리고 독보적인 편집은 이미 완성되어 있던 것이다. 그렇다면 그의 장르적 뿌리는 어디에서 유래한 것일까. 유튜브 채널인 'criterioncollection'에서 감독에게 DVD 4장을 골라 가져가게 하는 'DVD pick'을 보면 얼핏 그의 뿌리를 알 수 있을 것만 같다. 그가 고른 영화 중 특히 주목해야 하는 작품은 두 개다. 첫 번째는 조르주 프랑주의 <얼굴 없는 눈>(1960)이었다. 그는 이 영화를 호러 명작이라 말하며, 자신의 아버지가 이 영화에 대해 말했으나 그 제목은 기억하지 못했고 자신이 예술 대학에 다닐 때 이 영화를 보았다고 설명한다. 이 영화는 호러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대부분이 관람했을 유명한 영화이다. 하지만 어떤 맥락에서 보았는가 또한 살펴봐야 한다. 그는 이 영화를 아버지를 통해 알게 되었다. 이는 그가 이런 종류의 영화들을 어렸을 적부터 접했을 것이라는 예상에 대한 방증이 된다. 두 번째는 니콜라스 뢰그의 <쳐다보지 마라>(1973)이다. 그는 이 영화를 자신의 인생 영화 탑10에 뽑았으며 이 영화의 편집이 자신에게 영향을 끼쳤다고 설명한다. 또한 이 영화에 대해 설명하기를 최면을 거는 듯 하다라고 설명했다. 이 글의 후편에서도 서술하겠지만 <라스트 나이트 인 소호>를 만들 때 영향을 받은 영화 중 하나가 바로 이 <쳐다보지 마라>였다고 한다. 나는 이 대목에서 소름이 돋았다. "그에게 가장 깊은 영향을 준 영화를 이번 작품의 기조로 삼는다고!?" 분명 이번 영화는 독특한 공포가 될 것임을 나는 확신한다. 영화 역사상 가장 특이한 편집으로 이름을 남길만한 <쳐다보지 마라>를 에드가 라이트는 과연 어떻게 이용할까.

 

※ 영상출처

1) YouTube, 'Lower Back Pain Fan', Baby Driver Opening Scene/Mint Royale Blue Song

2) YouTube, 'Eevery Frame a Painting', 'Edgar Wright - How to Do Visual Comedy'

3) YouTube, 'Street Milk', Don't - Grindhouse trailer

[글 배명현, rhfemdnjf@ccoart.com]

 

ⓒ 영화 '라스트 나이트 인 소호' 포스터

 

배명현
배명현
 영화를 보며 밥을 먹었고 영화를 보다 잠에 들었다. 영화로 심정의 크기를 키웠고 살을 불렸다. 그렇기에 내 몸의 일부에는 영화가 속해있다. 이것은 체감되는 영화를 좋아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영화를 보다 문득 '아.' 하고 내뱉게 되는 영화. 나는 그런 영화를 사랑해왔고 앞으로도 그런 영화를 온몸으로 사랑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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