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상호 감독의 세계 - <염력> 비극에서 희극으로 그리고 조소로
연상호 감독의 세계 - <염력> 비극에서 희극으로 그리고 조소로
  • 배명현
  • 승인 2020.07.23 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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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염력'(Psychokinesis, 한국, 2017, 101분)
감독 '연상호'(Yeon Sangho)
사진 ⓒ(주)N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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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력에 대한 소고

내가 이 영화에대해 어떤 말을 할 수 있을까. 안타깝지만 이미 <염력>은 비판과 비난을 함께 받은 영화이다. 심지어 2년이 지난 상황이기에 지금 <염력>을 말하는 것은 무용한 것일 수도 있다. 그렇기에 영화에 대한 평이 끝났다고 까지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영화를 보며 생각해보았다. <반도>(2020)가 이제 막 개봉한 지금, 그의 전작을 통해 어떤 이야기를 할 수 있을지를 말이다.

<염력>은 한국에서 잘 보이지 않았던 초능력물이다. 그동안 초능력을 이용한 영화는 히어로물이 대부분인 경우를 생각해보았을 경우, 해외 프렌차이즈 영화가 대부분이었다. 엑스맨, 마블, DC, 대부분 영웅적 인물들이 대표적일 것이다. <모두가 초능력자>(2015)같은 영화도 있다. 어두운 영웅이 되려한 <크로니클>(2012)도 있다.

그렇기에 초능력물이 자연스레 히어로로 귀결된다고 생각해보면, <염력>은 한국형 히어로를 기대하게 한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영화의 초점은 다른 곳에 맞춰져 있었다. 한국형 히어로보다는 '부성애' 코드와 '사회비판'이었다. 물론 연상호의 필모를 보았을 때, 사회에 대한 불만을 드러내는 건 전혀 이상한 게 아니다. 오히려 그의 염세주의적 시각을 통해 바라본 사회 때문에 이름을 알렸다. 부성애는 그의 전작인 <부산행>(2016)에서 보여준 코드였다. 하지만 문제가 있다면 이 두 코드가 전작에서 보다 매끄럽지 않았다는 것이다. 

 

사진 ⓒ(주)N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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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끌고가는 큰 이야기는 재개발로 인해 발생되는 갈등이다. 이전 연상호가 그러하듯 사회에 대한 비판의 시각이 보이는 소재선택이다. 명백하게 '용상참사'를 재현한 감독은 자신만의 무언가를 보여주려 한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두 가지 악이 등장한다. 첫 번째는 용역 깡패이다. 실질적 폭력을 휘두르는 이들만 막으면 재개발에 저항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게 한다. 하지만 이 순간 주인공 '석현'(류승룡)이 염력이란 초월적 능력을 가지게 되면서 첫 번째 악은 희화화된다. 더 이상 악으로서의 기능을 상살한다.

이때 두 번째 악이 등장한다. '홍 상무'(정유미)이다. 재력을 기반으로 한 권력자인 홍 상무는 더 큰 시위진압대를 몰고 온다. 시위대는 이 권력과 파괴적 힘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게 된다. '용산참사'가 그러했듯, 초월적 힘이 존재하지 않다면 이길 수 없는 게임이다. 용산 참사를 복기하듯 시위대는 옥상으로 올라가는 수순을 밟게 된다. 그리고 이 때, 모든 히어로 서사가 그렇듯 석현이 다시 등장한다. 물론 개인의 '내적 갈등'을 겪은 후 이다. 외부적으로 얻은 힘이 아닌 본래의 인물의 모습으로 성장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아이언 맨도 그렇지 않은가. 수트를 입지 않은 상태에서 존재론적 고민을 경유 한 뒤 더 강한 모습으로 등장한다.

석현은 이전에 보여준 힘 그 이상을 보여준다. 초월적 힘으로 시위 현장은 순식간에 정리된다. 하지만 그는 시위를 초토화시키지 않는다. 순순히 경찰에게 자신의 손을 내밀고 수갑을 찬다. 여기서 이긴 사람은 아무도 없다. 석현이 감옥에 가있는 4년 동안, 시위대에 속했던 사람들은 어떻게 되었는지 모른다. 그들이 제대로 된 보상을 받았을 리는 절대 없다. 홍 상무 또한 무리한 사업 진행으로 재개발 진행에 실패했다. 그녀가 석현을 앞에 두고 떠들어댄 말 속엔 이에 대한 복선이 있다.

 

사진 ⓒ(주)N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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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저씨, 진짜 능력을 가진 사람들은 나도 아니고 아저씨도 아니고, 처음부터 이기도록 태어난 사람들 꺼라구요.

 

그사람들 능력이 뭔지 아세요? 에너러기파? 아니에요. 그냥, 한국! 대한민국, 국가 그 자체가 능력인 사람들이라구요. 나나, 아저씨나 다 이 사회의 노예라구요"

그렇다. 감독이 설정한 악은 용역업체도 아니고 홍 상무도 아니다. 영화에서 등장하지도 않은 '능력자들'이다. 그들은 영화에서 등장하지도 않은 채 승리하였다. 그들은 재개발도 공터도 시위도 그 어떤 것과도 무관하게, 그냥 존재하고 있다는 것만으로 승리하였다. 그렇다면 의문이 생긴다. 감독은 왜 이기지도 못할 싸움을 그려놓고 영화를 만든 것일까.

우리는 엔딩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감옥에서 나온 석현을 시위대의 대변자(그러나 무능했던) 변호사 '정현'(박정민)이 데리러 나온다. 정현이 '루미'(심은경)와 결혼하게 되었음을 알린다. 그리고 '초능력 치킨'이란 가게를 차린 모습을 보여준다(이 때 잠시 시위에 참가했던 이들의 모습이 나타나긴 한다). 마치 이 새로운 '터'에서 새 희망을 말하듯 하는 뉘앙스의 신이다. 심지어 깔리는 음악조자 명량하다.

하지만 이건 절대 해피엔딩이 아니다. 영화는 지금까지 '사회 구조' 그러니까 자본주의에 대한 이야기를 중심으로 해왔다. 영화 속에서는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다. '자본주의'가 전쟁이라면 '초능력 치킨'은 일종의 방공호다.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고 언제라도 전쟁은 재발발할 것이다.

여기서 느낄 수 있는 것은 '냉소'이다. 감독은 분명 알 것이다. 자신의 영화가 어떻게 보여질 것인지. 이 엔딩의 의미가 무엇인지. 초능력을 가지고도 바꾸지 못한 사회시스템을 전달하기 위함이었을까? 홍 상무가 석현에게 던진 제안 중 하나는 이것이다. 쿠데타를 일으킨다. 석현이 왕이 되고 하고 싶은 것 다 한다. 지금까지 이 영화의 초점이 비판과 부성애로 작동한다는 사실만을 너무나 강조한 것 같다. 이 영화는 '히어로 영화'이다. 히어로는 세상을 바꾸지 않는다. 세상을 유지하고 수호하기 위해 존재한다.

 

사진 ⓒ(주)N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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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아르CoAR 배명현 에디터, yey12345@ccoa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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