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의 포스터에는 얼굴을 뒤덮을 정도로 문신을 한 브라이언(제이미 벨)이 있다. 문신들은 그가 속한 백인우월주의 조직의 우월성을 표현하거나 그가 조직을 위해 행한 일들을 기록한 것으로 조직에서 일종의 훈장인 셈이다. 그의 얼굴을 뒤덮은 문신만큼, 브라이언은 조직을 위한 일들에 열심이었다. 가정폭력을 일삼는 아버지로부터 벗어나고 싶던 어린 시절, 빈랜더스라는 이름의 이 조직에 들어오게 되었고 먹여주고 키워준 그들을 가족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백인우월주의라는 이념을 행동의 근거로 삼고 살아가던 브라이언은 우연히 만난 줄리(다니엘 맥도날드)를 사랑하게 된다. 브라이언은 백인우월주의자가 아닌 평범한 사람인 줄리와, 그녀의 세 딸들과 함께 교감하며 점점 이념을 걷어낸 인간적인 면모들을 회복하게 된다. 이념에 대한 맹목이 사라진 자리에는 사랑, 죄의식, 책임감 같은 것들이 있었다.
이제 브라이언은 이념 대신 사랑, 죄의식, 책임감 같은 가치에 근거하여 삶을 살아가려고 한다. 그러나 브라이언이 속해 있던 빈랜더스는 그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브라이언과 그가 사랑하는 사람들의 생명에 지속적으로 위협을 가하며, 브라이언에게 다시 조직으로 돌아올 것을 강요한다.
그런데 굳이 강요하지 않아도, 브라이언은 조직으로 다시 돌아가기가 매우 쉬운 상황이다. 조직을 벗어난 삶을 살아가는 것이 그에게는 매우 어렵다. 그의 온몸을 뒤덮은 문신 때문이다. 그가 정식으로 고용될 수 있는 일자리는 없다. 빈랜더스에서 인정받는 영웅인 브라이언은 현실 세계에서는 FBI의 감시대상자일 뿐이다. 그의 문신들은 현실에서 범죄자의 낙인에 불과하다.
이것이 빈랜더스에 문신이 필요한 이유이다. 빈랜더스 안에서 훈장처럼 보이는 문신은 조직의 구성원들이 조직에서 벗어날 수 없게 하는 것을 목적으로 기획된, 지도자의 권력 유지를 위한 도구일 뿐이다. 빈랜더스의 지도자 프레드(빌 캠프)의 얼굴에는 문신이 없다.
빈랜더스에 백인우월주의라는 이념이 필요한 이유 또한 같다. 조국의 번영이나, 백인을 위해서가 아니다. 빈랜더스에서 백인우월주의는 프레드가 그의 왕국을 유지하는 데에 필요한 헌법이다. 조직 내에서 갈등이 발생했을 때, 프레드는 '바이킹 전사가 할 만한 행동이냐'라는 기준에 따라 그것을 해결하려고 하고, 이것은 매우 잘 먹힌다. 빈랜더스의 '우월주의'는 프레드를 우월하게 만들어줄 뿐 조직의 구성원들에게는 아무런 이로움이 되지 않는다.
빈랜더스로부터 도망친 브라이언의 문신은 훈장에서 낙인이 되었고 브라이언은 차라리 빈랜더스로 돌아가는 것이 더 살아가기 쉬울 수도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브라이언은 빈랜더스로 돌아가지 않았고 살해당하지도 않았으며 사랑하는 진정한 가족인 줄리, 딸들과 함께 살 수 있게 되었다. 문신을 지웠기 때문이다.
브라이언이 문신을 지울 수 있었던 건 흑인 인권단체의 지도자인 대릴(마이크 콜터)의 도움 덕분이다. 브라이언은 수없이 많은 흑인 혐오범죄를 저지른 전력이 있고 KKK중에서도 악행을 많이 저지른 핵심 인물에 속한다. 브라이언 이전에도 많은 KKK의 주요 인물들을 전향하게 만든 적이 있는 대릴은 브라이언을 적이나 증오의 대상으로 여기지 않았고 구원의 대상으로 여겨 연대의 손길을 내밀었다. 그 결과 브라이언은 더 이상 프레드를 위해서가 아닌 자신을 위해서 살아갈 수 있게 되었다.
이념은 악이 아니다. 그것이 때때로 맹목과 혐오를 불러일으키기도 하고, 특정 집단만을 위해 작동하기도 하지만 인간을 이롭게 해줄 때가 많다. 대릴이 브라이언에게 연대의 손길을 내밀어 줄 수 있었던 이유는 대릴의 마음씨가 따뜻했기 때문이 아니라 그가 속한 단체의 이익과 그가 추구하는 이념에 따라 행동했기 때문이다. 대릴의 행동은 결국 한 인간이 스스로를 위해 제대로 살아갈 수 있게 해준 '구원'이라고 할 만한 긍정적인 결과가 되었다.
그러나 우리는 자주 이념의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을 하기가 어렵다. 맹목에 빠지기가 너무나도 쉽기 때문이다. 이념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기 어려운 세계일 때, 스스로를 지키며 제대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할까. 이념을 걷어내고 행동하는 것이 방법일지도 모른다. 브라이언이 이념에서 벗어나 순수한 감정을 느꼈을 때 그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알게 되고, 옳은 행동을 하게 되었던 것처럼 말이다. 우리는 이념을 문신으로 새겨선 안된다.
[글 선민혁, sunpool1347@gmail.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