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연 '시동'을 걸 수 있을까
과연 '시동'을 걸 수 있을까
  • 오세준
  • 승인 2019.12.21 0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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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주)N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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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일'(박정민)의 오토바이가 시동이 걸리지 않는다. 그러자 친구 '상필'(정해인)은 “야 그냥 환불해”라고 말한다. 택일은 성질을 내며 “중고나라에서 샀는데 뭘 환불해!”, 그 순간 오토바이에 시동이 걸린다. 그리고 두 사람은 시원하게 도시의 도로 위를 질주한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오토바이는 오르막길에서 영 속력을 내지 못한다. 옆에서 뛰는 상필 보다 느리다니. 또 그 순간 그들의 모습이 마냥 웃기기라도 한 듯, 한 오토바이 운전자가 택일의 오토바이 한쪽 백미러를 부수고 도망친다. 이 상황을 절대 참을 수 없는 두 사람. 재밌게도 그제야 택일의 오토바이가 제구실을 하려는 듯 앞으로 나아간다. 하지만 결과는 안타깝게도 경찰서, 심지어 경찰이 아닌 택일의 엄마 '정혜'(염정아)의 불꽃 싸다구가 날아온다. 이렇게 그의 파란만장한 하루가 끝이 나고, 영화는 시작된다.

<시동>은 조금산 작가의 동명 웹툰을 원작으로 만들어진 작품이다. <우리동네에 왜 왔니>, <노숙자 블루스>, <세상 밖으로> 등 그의 작품들은 언제나 일상과 비(比)일상이 교차하는 흥미로운 사건들이 가득 찬 세계관을 그려낸다. 그것이 우연히 사채업자, 조폭, 동네 주민들이 좁은 골목에서 한바탕 싸움을 벌이는 사건이나 사이비 종교 단체 안으로 잠입하는 동네 친구들의 이야기 등이 대표적이다. 그리고 <시동> 역시 이러한 작가의 세계관을 바탕으로 한 작품이며, 영화 역시 원작의 틀에서 벗어나지 않은, 충실히 잘 만들어진 작품이다. 영화에 등장하는 캐릭터들은 다 각자만의 '사정'을 가진 인물들이다. 배구선수였지만 지금은 홀로 아들 '택일'을 키우는 '정혜'나 아프신 할머니를 홀로 모시며 사는 '상필', 그리고 '장풍반점'의 '거석'(마동석), '구사장'(김종수), '배구만'(김경덕), '소경주'(최성은)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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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락 위에서 겉도는 캐릭터들

<시동>은 뛰어난 스토리텔링이 아닌 독특한 캐릭터들로 만들어진 영화다. 그래서인지 영화에는 그렇다 할 큰 사건이 존재하지 않는다. 영화는 '택일'이 집을 떠나 군산의 장풍반점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그려낸다. 중간중간 엄마의 상필의 이야기를 전달할 뿐. 영화 제목이 말해주듯 영화 속 인물들은 '삶'의 시작점에서 방황하는 중이다. 사춘기 '소년‧소녀', 홀로 자식을 키우는 '부모', 조직으로부터 도망친 '중국집 주방장', 딸을 잃은 슬픔을 견디는 '사장' 등. 재밌게도 이러한 사정을 가진 이들의 모습은 노란색, 빨간색의 누가 봐도 눈에 띄는 머리색과 독특한 스타일, 거기다 거대한 몸집을 가진 사내는 트와이스의 노래를 부르며 자신의 단발머리를 찰랑거리니, 영화가 추구하고자 하는 '재미'는 이미 이들의 존재만으로 충분히 채워진다.

'사건'이 아닌 '캐릭터'로써 이야기를 채워 넣는 <시동>의 방식은 꽤 매력적이다. 그렇지만 이 영화가 어떤 순간 모든 캐릭터들이 조우해야 하는 순간에 대한 접착이 다소 느슨하거나 작위적으로 다가온다. 왜일까. 관객과 <시동>의 거리가 이미 좁혀진 상태로 시작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원작에 대해 이미 알고 있는 관객을 뒤로 하더라도 영화가 초반에 보여주는 인물들의 모습, 이를테면 아들과 엄마의 갈등이나 가난으로 허덕이는 삶 등, 이것에 대한 설명을 굳이 하지 않더라도 어느 정도 관객이 수용할 수 있는 커다란 맥락 안에서 움직이고 있기 때문에, 그들이 어색하거나 멀게 느껴지지 않는다. 되려 그들의 모습이 신기할 뿐, 그들의 사정은 꽤 익숙하게 다가온다. 이렇다 보니. 밥을 먹거나 일을 하는 것과 같은 일상적인 이야기가 중반까지는 흥미롭게 다가오지만, 후반부부터는 다소 지루하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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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조금씩 '성장'을 하고자 하지만, 그 성장에 대한 이야기가 대다수 캐릭터를 조금씩 담아내고 있기 때문에 관객의 입장에서는 '시도' 정도의 그치는 모습을 볼 수 밖에 없다. 캐릭터는 살렸지만, 캐릭터의 시너지가 약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관객의 경험에 의존하는 큰 맥락 탓도 있지만, 극적인 순간까지도 다소 예측 가능한 상황 안에서 벌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분명 재밌지만, 그 재미에서 확장시킬 '무언가'는 조금 미흡하게 느껴진다. 이를테면 상필에게 사채 일을 가르치던 '동화'가 갑자기 치킨 배달부로 등장하는 것과 같이, 맥락적으로 사채업이 잘못됐고, 새로운 시작을 하려는 것을 알겠으나 그것이 영화가 구축한 큰 분위기 안에서 너무도 자연스럽게 움직이는 것이 다소 과잉처럼 느껴진다. 독특한 캐릭터들은 영화가 설정한 '관계'라는 틀 안에서 서로를 응시하기보다는 독립적으로 움직이는 듯하다.

 

'거석'은 자신을 찾아온 태성에게 짜장면을 만들어 준다. 동시에 그는 자신이 조직 보스가 아닌 중식집 요리사로 남고 싶다는 마음을 전달한다. 조직을 배신해서라도 더는 자신의 삶을 배신하고 싶지 않은 '진심'을 담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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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죽지 않는 택일의 태도

엄마에게, 거석에게, 경주에게, 처음 본 양아치들에게까지 꾸준히 맞고 다니는 '택일'. 희안하게도 그는 싸움을 잘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쫄거나 꿀리지 않고 되려 덤비려 든다. 이러한 그의 모습을 보면 바보 같다고 해야 할지, 깡다구가 있다고 해야 할지. 분명 '인간 오뚜기'임에 틀림없다. 이처럼 '택일'의 반항 아닌 반항은 본인조차 왜 하고 있는 건지 모른다. '만 원'으로 갈 수 있는 곳이라는 그의 여행 목적지처럼 그의 삶의 태도에는 이유나 고려할 사정 따위는 안중에도 없고 오로지 계속해서 나아가는 것뿐이다. 이 18살 사춘기 소년은 그렇게 자퇴를, 검정고시 학원비 대신 중고 오토바이를, 가출해서 중국집 배달 일을 시작한다.

혹시 택일의 삶이 불쌍해보이는가. 글쎄. 신기하게도 영화 속에서 가장 자유로운 인물은 '택일'뿐이다. 그는 오토바이를 타면서 자유를 느낀다. 살아있다는 느낌일지도. 물론 여전히 엄마의 연락이 신경 쓰이지만, 되려 자신만 바라보며 사는 엄마의 부담감에 지쳐 보인 듯하다. 아니면 언제가 걱정을 끼치기만 하는 엄마에게 미안한 마음이 더 클지도. 그를 통해서 관객인 우리가 바라보아야 하는 것은 '다시 일어나는 법'이다. 이 18살이 보여준 패기는 사춘기 소년의 반항쯤이 아닌 기필코 일어서겠다는 의지이다. 결국, 그가 자신을 때린 자들!?과 친한 관계를 지내며, 함께 지내는 모습만 보더라도 어떤 인물인지 감이 오는 것처럼.

아직 시작도 안 했다. 아! 이 글의 이야기가 아니다. <시동>의 인물들의 이야기다. “덜커덩!” 고장이라도 난 듯 울리는 엔진 소리. 시작이라는 것의 울림은 그렇게 나아가야 한다는 신호처럼 때로는 요란스럽게 울리기도 하는 법. 맞아도 가만있지 않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택일의 분노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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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아르CoAR 오세준 기자, yey12345@ccoart.com]

오세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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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아르》 영화전문기자 및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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