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TFLIX] '결혼 이야기' 결혼을 쓰며 숨겨온 상처
[NETFLIX] '결혼 이야기' 결혼을 쓰며 숨겨온 상처
  • 배명현
  • 승인 2019.11.30 22: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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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결혼 이야기'(Marriage Story, 미국, 2019, 137분)
감독 '노아 바움벡'(Noah Baumbach)
사진 ⓒ판씨네마㈜
사진 ⓒ판씨네마㈜

니콜은 타인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여자이다. 경쟁심이 강하고 자기 일을 잘한다. 찰리는 자기 세계에 쉽게 빠져드는 남자이다. 경쟁심이 강한 사람인 동시에 집안일을 잘하며 잠을 자다가도 깨 아이와 잘 놀아준다. 각자의 장점을 적은 내용이다. 이를 서로가 읽어보는 시간임에도 분위기는 불편하고 껄끄럽다. 한때 너무나 사랑했지만 이제는 아니다. 둘은 이혼 과정을 밟고 있다. <결혼 이야기>는 이혼하는 과정에 대한 이야기이다.

니콜은 남편을 위해 자신을 희생했다. 영화와 티브이 스타가 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남편을 따라 연극판에 들어갔다. 결혼 생활에서 편의도 양보했다. 물론 결혼 생활 동안 찰리가 이기적으로만 니콜을 대한 건 아니다. 그의 입장에서 나름의 배려와 관계를 영위했다. 하지만 현재 둘은 이혼을 앞두고 있다. 둘에게 남은 건 아들 헨리뿐이다.

길지도 그렇다고 짧지도 않았던 그 시간이 허무하게 남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둘은 이혼을 멈출 수 없다. 처음엔 원만하게 해결될 것만 같던 이혼이 점점 진흙탕 싸움으로 번진다. 이혼을 위해 뉴욕과 LA를 오가는 찰리에게 법은 불리하게 작용하고 니콜은 이를 이용한다. 처음엔 깔끔하게 양육권 문제만 해결하려 했지만 이혼 과정에서 둘의 갈등은 깊어졌기 때문이다. 오히려 결혼 생활 중 느낀 감정보다 이혼 시기에 둘의 감정은 격해진다. 처음엔 니콜이 그동안 희생했던 삶을 보상받으려는 의도에서 시작되었다. 찰리는 그에 대응해 더 비싼 변호사를 대동하여 법정까지 가게 되고 둘은 법정에서 서로 상처를 받는다.

함께 살 동안은 숨기고 있던 서로에 대한 불편이 변호사의 입을 통해 나오게 된다. 둘의 표정은 미묘하게 변한다. 이젠 처음 목적이었던 양육권보다 자존심이 중요해지게 된다. 찰리 집에서 둘의 감정은 폭발하게 되고 말싸움은 격해진다. 러닝타임 내내 잔잔한 갈등의 고조는 이 지점에서 폭발하게 된다. 표면적으로는 잔잔한 물결 아래에도 용암은 끓고 있듯, 그동안 숨겨온 말들로 상대를 상처입힌다. 증오하는 부모와 닮았다고 하거나 네가 병에 걸려 죽었으면 하는 말들로 말이다. 이 때 찰리가 화를 참지 못하고 내려친 벽에 주먹 자국이 남는다. 영화에서 가장 갈등의 고조를 이루는 이 장면은 ‘이혼’이 끝이 아니라 ‘결혼’에서 이미 관계가 끝이 났음을 시사한다.

 

사진 ⓒ판씨네마㈜
사진 ⓒ판씨네마㈜

이후 법정에서 부모의 자격을 확인하기 위해 전문가를 파견한다. 전문가는 찰리와 헨리를 관찰하고 이 과정에서 찰리는 예상치 못한 일을 저지른다. 아들 헨리 앞에서 보여주던 칼 놀이를 재현하다 자신의 팔을 그어버린 것이다. 상처를 애써 감추려 하지만 피는 멈출 줄 모른다. 찰리는 당황한 전문가를 보내며 상처를 치료하려 한다. 이때 찰리의 대처는 인상 깊다. 싱크대로 달려가 물로 상처를 소독하고 키친타월로 상처를 덮는다. 30대의 대처라고는 놀랍도록 당황스러우며 우왕좌왕한다. 하지만 어린 아들이 주방으로 나오자 그는 상처를 숨긴다. 찰리도 우리도 삶이 처음이다. 자식 앞에서는 상처를 숨기지만 우린 모두 상처가 어색하다. 삶에 갑작스럽게 닥쳐오는 상처는  우리를 당황스럽게 할 뿐이다. 결혼 과정에서 입은 상처도 그렇고 이혼도 마찬가지이다.

상처는 흉터를 남긴다. 팔도 그렇고 벽에 남은 자국도 그렇다. 찰리와 니콜 둘 다 법정 밖에선 담담하게 서있다. 둘은 감정에 동요가 없는 듯하지만 가슴 속엔 흉터가 있을 것이다. 이 싸움판에서 상처를 남긴 건 오직 둘 뿐이다. 서로의 변호사는 법정 씬에서 나왔듯이 철저하게 ‘직업의식’에 의거해 분노한다. 법정 밖에서는 다정한 직장동료일 뿐이다. 이 과정에서 둘은 상처와 돈 모두를 잃는다.

 

사진 ⓒ판씨네마㈜
사진 ⓒ판씨네마㈜

<결혼이야기>가 시작되기 전을 상상해보자. 니콜과 찰리는 행복했을 것이다. 그러나 니콜이 자신을 희생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순간부터, 찰리가 자신의 성공을 온전히 누리고 있지 못하고 있다 생각하는 순간부터 생채기가 생기고있었다. 찰리가 가지고 있던 칼이 니콜의 ‘선물’이라는 것은 이 맥락에서 매우 중요해진다. 서로가 선물있었지만 동시에 날도 가지고 있었다. 상처는 운명이었다. 영화는 대부분 찰리의 입장에서 보이기 때문에 니콜이 가진 찰리의 선물과 날까지는 정확하게 나오지 않지만 분명 존재했을 것이다.

영화의 말미는 사건 이후 일 년이 흐른듯한 모습을 보여준다. 헨리를 보살필 차례가 된 찰리가 니콜의 집에 온다. 찰리는 니콜과 반갑게 인사하고 찰리는 니콜의 애인에게 인사한다(이 장면은 한국인으로 28년을 살아온 나로서 여러 가지 의미로 ‘쿨’해 보인다). 이후 찰리는 헨리가 무엇을 읽고 있는 모습을 마주한다. 이혼 과정에서 적었던 서로의 장단점 작성지였다. 그 종이엔 찰리가 전엔 미처 읽지 못한 내용들이 적혀있었다. 이 순간을 담는 씬은 가히 일품이라고 할 수 있다.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아담 드라이버의 연기와 이를 뒤에서 지켜보는 스칼렛 요한슨의 연기는 이 영화의 최고의 순간을 장식한다.

영화는 담담하게 엔딩을 장식한다. 양육권 싸움에서 6대4로 이긴 니콜이 아이를 하루 양보하는 모습을 보여주기까지 한다. 아름다운 음악이 깔리고 엔딩크레딧은 올라간다. 일견 해피엔딩이다. 그러나 이건 해피엔딩일까. 영화는 보여주지 않았지만 찰리의 전완엔 불룩 튀어나온 칼 흉터가 있을 것이다. 그의 집 벽에도 여전히 주먹 자국이 남아있을 것이다. 혹여나 액자로 그 자국을 가려놓는다 해도 그건 가린 것일 뿐 아닌가. 아무리 덮으려 해도 그 존재마저 부정할 수는 없다. 우리는 이 사건의 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 니콜과 찰리의 행복했던 순간은 이미 과거의 이야기이다. 지금은 과거의 기억으로 서로를 배려하고 온정의 눈길로 바라보고 있지만 정확히 거기까지다. 둘은 서로를 사랑했던 순간의 기억만 가지고 영원히 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

이혼하는 순간까지 서로의 감정을 숨기며 각자를 존중하는 것은 아름다운 일일까. 이들이 적극적으로 싸운 건 단 한 번뿐이지 않은가. 어쩌면 이 둘은 처음부터 헤어짐의 과정을 따라 걷던 커플이었는지 모르겠다. 인생을 한 번밖에 살지 못하는 우리는 결혼이 어렵다. 많은 이들이 결혼으로 이야기를 만들어가지만 아름답진 않다. 상처는 늘 우리를 힘들게 하고 아플 때마다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누군가 보는 게 무서워 등을 돌려버린다. 최소한 ‘결혼이야기’를 만들고 있는 둘이라면 서로의 상처를 보여주는 게 더 낫지 않을까. 그건 오직 두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니까.

[글 배명현, rhfemdnjf@ccoart.com]

 

사진 ⓒ판씨네마㈜
사진 ⓒ판씨네마㈜

 

배명현
배명현
 영화를 보며 밥을 먹었고 영화를 보다 잠에 들었다. 영화로 심정의 크기를 키웠고 살을 불렸다. 그렇기에 내 몸의 일부에는 영화가 속해있다. 이것은 체감되는 영화를 좋아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영화를 보다 문득 '아.' 하고 내뱉게 되는 영화. 나는 그런 영화를 사랑해왔고 앞으로도 그런 영화를 온몸으로 사랑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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