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드 90' 소년의 뜨거운 여름
'미드 90' 소년의 뜨거운 여름
  • 오세준
  • 승인 2019.09.26 16: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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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미드 90'(mid90s, 미국, 2018, 85분)
감도 '조나 힐'(Jonah Hill)
사진 ⓒ 오드 AUD
사진 ⓒ 오드 AUD

 

Intro

비슷한 시기에 개봉한 데이비드 로버트 미첼 감독의 <언더 더 실버레이크>가 LA를 배경으로 팝컬처, 즉 대중문화를 활용한 영화였다면 조나 힐 감독의 첫 번째 장편 영화인 <미드 90>은 시간을 뒤로 돌려 CD, 스케이드보드, 에어조단, 우탱클랜 포스터 등 1990년대 LA의 서브컬쳐로 가득 채웠다. 두 작품을 통해 뜨거운 여름 햇살 아래 펼쳐지는 감독들의 LA에 대한 애정을 느껴보시길.

사진 ⓒ 오드 AUD
사진 ⓒ 오드 AUD

스티비(서니 설직)는 형 이안(루카스 헤지스)이 나가자 몰래 형 방으로 들어간다. 여러 아티스트의 포스터, CD, 테이프 등 형의 방은 온갖 멋스러움으로 가득차 있다. 그러나 결국 자신의 것이 아니기에 스티비는 또 다른 멋을 찾아 거리로 향한다. 그리고 스케이트 장에서 레이, Fxxkshit(별명), 4학년(별명), 루벤을 만나 함께 어울리게 된다. 그들의 일상은 땀나게 보드를 타는 일을 제외하면 보드 비디오, 실없는 농담, 담배, 술, 파티 등으로 채워진다. 스티비는 그들이 가진 멋을 쫓아 성인 흉내를 내며, 엄마나 형에게 큰소리치거나 대들고, 처음 만난 여자에게 허세도 부린다. <미드 90>은 스티비의 평범한 듯 보이지만 특별한 성장 과정을 담은 작품이다.

 

사진 ⓒ 오드 AUD
사진 ⓒ 오드 AUD

기억이 '추억'이 되는 순간

'스케이트보드'는 영화에서 단순히 시대를 재현하는 상징이나 놀이 정도로 치부되지 않는다. 스티비나 루벤에게는 형들의 멋을 따라 하는 동시에 자신들도 멋있어 질 수 있는 것이다. 반대로 레이에게는 구체적인 목표가 설정된 자신의 꿈이며 이 거리를 뜰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다. 영화는 분명 스티비의 성장을 다루고 있지만, 서브 플롯으로 레이와 같이 거리 위에 놓인 인물들의 이야기도 함께 담아낸다. 다양한 인종으로 이뤄진 스티비의 친구들의 구성이 그러하 듯, 영화는 4:3 화면 비율에 16mm 필름 영상이라는 질감 속에 음악, 스타일, 태도나 삶 등 당시의 문화를 집어넣어 더욱 구체화 시켜 보여준다.

사진 ⓒ 오드 AUD
사진 ⓒ 오드 AUD

제목이 그렇듯 90년대 어느 한 여름의 나날을 그리는 <미드 90>. 명확하지 않은, 불분명한 시간 속에서 스티비는 불안해하거나 방황하지 않는다. 지붕과 지붕 사이를 멋지게 넘어서는 레이와 다르게 자신의 실력으로는 결코 뛰어넘어설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도전을 하는 스티비는 결국 떨어져 머리에서 피가 나는 상처를 입는다. 이 작은 꼬마는 울기는커녕 친구들과 함께 웃어넘긴다. 어려운 기술을 익히기 위해 밤새도록 연습을 하며, 마침내 성공했을 때 소리를 지르는 그의 모습은 순수 그 자체다. 어른이 되고 싶은, 멋있어지고 싶은 소년 스티비는 식을 줄 모르고 아스팔트 거리 위를 내리쬐는 태양 볕 그 자체다. (스티비의 별명은 '땡볕'이다)

영화의 갈등은 그들의 자유분방함이나 미숙한 모습들이 드러나는 순간들이다. 늦은 저녁 술에 잔뜩 취해 들어온 스티비는 형과 싸우며 큰 소란을 피운다. 다음날 스티비의 엄마 '데브니'는 곧바로 친구들에게 찾아가 앞으로 어울리지 말라고 으름장을 놓는다. 아직 스티비가 엄마의 품을 못떠났다는 사실은 아직 어른이 될 수 없는, 또 아빠 없이 자란 그만의 사정까지 불러일으킨다. 그런 스티비에게 레이는 가난하거나 부모님이 늘 술에 취해 있는 등 다른 친구들의 사정을 이야기한다. 물론 <미드 90>은 그런 아이들의 삶을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지 않지만, 이 아이들의 놀이, 즉 논다는 것이 한편으로 어떤 식으로 존중받아 마땅한지 보여준다.

 

사진 ⓒ 오드 AUD
사진 ⓒ 오드 AUD

결국 이들의 균형이 무너질 때, 서로의 사이가 틀어지고, 누군가 나서서 말리지 않은 그런 순간. 술에 취한 Fxxkshit의 차를 탄 스티브와 친구들은 결국 사고가 난다. 그리고 병원, '데브니'는 스티브의 병실 밖에서 기다리다 지쳐 잠을 자고 있는 친구들을 발견한다. 그녀는 “스티브 보러 갈래?”라는 말과 함께 스티브와 친구들이 다시 마주한다. 그 순간 영화감독이 꿈이었던 '4학년'은 그동안 자신이 찍은 영상을 보지 않겠냐며 TV를 연결한다. 이 때 스티브와 친구들은 관객과 나란히 마주한다. 마치 그들이 관객이라는 TV를 보는 듯. 이어 현란한 스케이트보드 기술과 웃고 떠드는 모두의 모습이 가득 담긴 영상이 시작되면서 영화는 끝이 난다.

 

영화감독이 되고 싶던 '4학년'의 영상이 결국 스크린 위로 펼쳐진다.

'그'는 어렸던 조나 힐 감독의 모습이지 않을까

영화의 결말은 모두가 웃고 떠들고 보드를 타는 모습들로 가득 차 있다. 사고 직후 다친 스티비와 함께 병실에서 그 영상을 본다는 것은 어떤 의미를 지닐까. 웃고 떠드는 것, 놀고 싸우고 가끔은 이탈하기도 하는 영화 속 주인공들. 추억이 된다는 것, 어쩌면 함께 기억될 수 있는 순간이 다가왔을 때 비로소 불러볼 수 있는, 다시 한번 기억해 볼 수 있는 게 아닐까. 여전히 차들 사이로 아슬아슬하게 보드를 타고 내려가는 그들의 모습은 보라빛으로 물들어가는 노을빛과 함께 진한 여운을 남긴다.

 

사진 ⓒ 오드 AU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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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아르CoAR 오세준 기자, yey12345@ccoart.com]

오세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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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아르》 영화전문기자 및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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