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디슨 카운티의 다리' 이야기가 된 사건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 이야기가 된 사건
  • 배명현
  • 승인 2019.08.16 20:1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야기는 우리 삶에 어떤 존재인가.
사진ⓒ ㈜영화사 오원
ⓒ ㈜영화사 오원

여기에 이야기 하나가 있다. 평범한 부인이 남편과 아이들이 집을 비운 사이, 한 남자와 우연히 만나게 된다. 이 둘은 가족이 집을 비운 며칠 동안 사랑에 빠진다. 그리고 부인은 죽을 때까지 이를 비밀로 유지하지만 유언장에 과오를 밝히며 이를 기록한 일기장을 자식에게 남긴다. 우리는 이것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 부정적인 감정들을 나열하자면 끝도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 이야기에 살이 붙고 디테일이 생긴다면 어떻게 될까.

우리의 삶과 이야기는 떼어낼 수 없는 관계에 있다. 우리는 늘 이야기와 함께 혹은 속에서 살고 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하루 동안 있었던 일을 반추하는 것도, 친구와 함께 나눈 험담도 모두 이야기이다. 그러나 이 이야기는 대개 '사고' 일 확률이 높다. 사고는 '어떤 일이 뜻밖에 벌어진 것'이다. 그런데 가끔 우리는 사고가 아닌 '사건'을 경험하고는 한다. 

사고와 사건, 이 둘은 비슷한 듯하지만, 별개로 존재하는 단어가 늘 그렇듯, 비슷한 뉘앙스를 풍기면서도 다른 의미를 가진다. 이 둘을 간단하게 구분해보자. 문학 평론가 신형철의 예문 하나를 인용해보겠다. '사고란 개가 사람을 문 것이다. 반면 사건이란 사람이 개를 문 것이다.' 전자는 뜻밖의 일이긴 하지만 충분히 그럴 수 있을 만하다. 반면 후자는 물음을 던지게 한다. 왜. 그는 대체 왜 개를 물었는가. 우리는 생각하게 된다.

 

사진ⓒ ㈜영화사 오원
ⓒ ㈜영화사 오원

영화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감독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이렇게 시작한다. 주인공 프란체스카는 남편과 아이들이 집을 비우게 되면서 홀로 남게 된다. 그 순간 우연히, 길을 묻는 내셔널 지오그래픽의 사진작가 로버트 킨케이드와 만나게 된다. 프란체스카는 로버트를 안내하게 되면서 호기심을 갖게 된다. 그녀는 자신과 달리 자유로운 삶을 살며 즉흥적인 성향의 그에게 점점 마음을 끌리게 된다. 그리고 둘은 사랑에 빠진다. 프란체스카와 로버트는 며칠 되지 않는 시간 동안 강렬한 느낌을 공유하면서 서로에 대한 확신을 나누게 되지만 그녀는 가정을 포기하지 않는다. 둘은 헤어진 이후에도 평생 서로를 그리워하면서 생을 마감한다. 영화는 그녀의 두 자식이 일기를 읽으면서 진행되는 이야기이다.

이 요약 또한 2시간이 넘는 영화의 함축이기에 프란체스카와 로버트의 모든 이야기를 담을 수는 없다. 하지만 135분이라는 이야기를 겪게 되면 그녀가 어떤 선택을 했는지, 어떤 고민과 고통 그리고 환희와 겪었는지 느낄 수 있다. 그녀에게 킨케이드라는 사고가 어떻게 다가왔고 둘이 겪은 사건이란 어떤 의미를 가지게 되는지 명확하게 알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영화는 이야기한다. '사건'을 겪은 후 다시는 전으로 돌아갈 수 없음을. 삶을 견디게 해주는 것은 평생 기억해야 할 '순간'이 있었기 때문임을. 물론 나는 이 영화를 통해 불륜의 정당화나 미화를 말하고 싶은 것이 아니다. 하지만 이 둘의 죄를 차치하고 나면 보이는 어떤 것들이 있다.

이야기에는 그런 힘이 있다. 인간이란 사건을 겪게 되면 다시는 사건을 겪기 전으로 돌아갈 수 없는 존재이다. 우리는 이처럼 사건과 사고가 만들어내는 이야기 속에서 살고 있다. 그리고 이 둘은 우리의 삶을 살아가는데 매우 큰 영향을 끼친다. 어떤 이가 겪은 일의 총합이 모여 '그' 사람이 된 것이다. 때문에 우리는 같은 사회 안과 비슷한 생활 방식 안에서도 각자의 삶을 만들어 갈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반대로 이 이야기를 통해서 타인을 본다면 어떨까. 이야기를 듣기 전에는 이해할 수 없었던 생각과 말과 행동을 이 조금은 이해될 수 있지는 않을까. 나는 이 허무맹랑하게 들릴 수도 있는 문장을 믿는다. 그리고 영화라는 이야기가 이 이해를 조금이라도 도울 수 있는 건 아닐까 생각한다.

[글 배명현, rhfemdnjf@ccoart.com]

 

사진ⓒ ㈜영화사 오원
ⓒ ㈜영화사 오원

 

배명현
배명현
 영화를 보며 밥을 먹었고 영화를 보다 잠에 들었다. 영화로 심정의 크기를 키웠고 살을 불렸다. 그렇기에 내 몸의 일부에는 영화가 속해있다. 이것은 체감되는 영화를 좋아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영화를 보다 문득 '아.' 하고 내뱉게 되는 영화. 나는 그런 영화를 사랑해왔고 앞으로도 그런 영화를 온몸으로 사랑할 것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