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타나카 세이지'(TANAKA Seiji)
영화 '멜랑콜릭'은 일본 출신 타나카 세이지(TANAKA Seiji) 감독의 작품이다. 이 영화는 2018 도쿄국제영화제에서 일본 영화 스플래쉬 최우수 감독상 받았으며, 올해 제23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월드 판타스틱 블루 섹션에 초청됐다.
도쿄대를 나왔지만, 아르바이트만 전전긍긍하는 카즈히코. 그는 자신에게 왜 도쿄대에 나왔음에도 대기업에 가지 않고 아르바이트만 하는 이유를 묻는 물음에 질렸다. 사실 당사자인 본인도 이유를 찾지 못한 듯하다. 목욕탕에서 우연히 마주친 동창 유키와 가까워지기 위해 그녀가 종종 가는 목욕탕에서 면접에서 만난 동료 마츠모토와 함께 일을 시작한다. 그런데 알고 보니 목욕탕은 낮에는 목욕을 하는 손님들을 위한 밤에는 킬러가 시체를 처리하는 곳이었다. 우연히 목욕탕 사장과 킬러가 시체를 처리하는 장면을 목격한 주인공은 시체를 처리하는 일에 가담하게 된다.
심지어 '마츠모토'는 전직 킬러였으며, 자신보다 먼저 시체 처리를 하고 있었다. 그러나 갑작스럽게 킬러가 임무를 수행하던 중 죽으면서 자신과 마츠모토가 킬러 대신 사람을 죽이는 일을 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 심지어 목욕탕 사장은 아쿠자의 명력으로 그들을 도와줄 힘이 없다. 심지어 그동안 자신이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심각성을 느끼지 못했던 카즈히코는 마피아 두목이 애인 '유키'를 미행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더 큰 혼란에 빠진다. 이 모든 상황을 벗어나는 방법은 오직 마피아 보스를 죽이는 일이다. 카즈히코와 마츠모토는 힘을 합쳐 보스를 죽이기 위해 그의 집으로 나선다.
'멜랑콜릭'은 기본적으로 '대비'가 반복적으로 드러나는 영화다. 이를테면 직업을 가진 자와 그렇지 못 한 자, 사랑하기 전과 후(주인공의 사랑), 시체를 목격하기 전과 후, 주인공과 동료의 관계와 야쿠자 보스와 목욕탕 사장의 관계, 살인이 벌어지는 일상과 그렇지 않은 평온한 일상 등 끊임없는 '대비'는 각각의 시퀀스를 충돌시켜 묘한 긴장감을 불러일으킨다. 특히, 이 긴장감을 또 웃음과 재치로 쉽게 해소시키며, 웃음을 유발하는 장면을 통해 이 영화가 스릴러, 야쿠자 영화임에 동시에 코미디라는 장르가 덮인 독특한 극영화라는 것을 보여준다. 이를테면 시체를 보고도 놀라지 않고 무덤덤한 카즈히코, 그는 또 무서워하지 않고 되려 매우 열심히 시체를 처리한다.
더 나아가 이 비밀스러운 일을 동료인 '마츠모토'보다 못한다는, 능숙하지 못하다는 말에 열등감까지 느낀다. 이런 전개가 목욕탕이라는 장소가 이미 여러 영화에서 시체를 처리하는 장소로 쓰여왔더라도 '정말 그럴 수 있을까'라는 의심을 허용하지 않는 '웃음'을 장치해 놓았다. 일종의 설득력이 모자란 개연성은 이 영화에서 딱히 중요하지 않다. 오프닝 시퀀스에서 마피아 보스와 롱 테이크로 대화를 나누다가 곧바로 죽임을 당하는 한 인물의 장면을 볼 때면 '분명히 이 영화는 꽤 잔인한 영화겠구나' 라고 생각이 들지만, 이후에 무기력한 카즈히코의 일상을 보여주는 시퀀스는 기대감이나 예상을 뒤집어 엎는, 즉 전복시켜버리는, 혹은 이 영화를 특정 장르로 접근하려는 태도!?를 무마시켜버리는 듯 느껴진다.
'대비'의 효과는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의 변화' 혹은 '관계 또는 사회적인 정서의 변화쯤'으로 볼 수 있는 일본이 처한 시대적인 분위기를 볼 수 있다. 도쿄대를 나온 '카즈히코'를 두고 꼭 대기업에 가야 행복할 수 있는지를 묻는 질문이나 살면서 낙이 꼭 있어야 하는지, 카즈히코와 마츠모토의 관계가 수직적인 혹은 경쟁적인 구도 이뤄진 것이 아닌 수평적인 친구나 진정한 동료로 발전하는 한편, 기성세대로 보이는 야쿠자 보스와 목욕탕 사장은 그들이 금전적인 관계로 엮여있으며, 수직적인 형태로 이뤄진 것을 비춰볼 때(결코 친구나 동료가 될 수 없는) 시대적인 변화를 읽고자 하는 감독의 생각을 엿볼 수 있다.
어쩌면 카즈히코가 마피아 보스를 죽이는 순간은 누군가를 밟고 올라가야하는 일본의 사회적 구조를 깨뜨리는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다. 이후에 모두 함께 목욕탕을 이끌어가는 결말은 금전적인 목적 혹은 성공을 이뤄야 하는 기조의 루트를 부정하는, 더는 경쟁이나 수직적 관계를 하지 않아도 되는 모습을 보여준다.
또 일종의 '강박'과 같은 꽤 강력한 관습적인 행동들이 포착된다. 대표적으로 피가 묻은 타일을 깨끗이 씻어내는 모습을 카메라에 꽤 집중적으로 담은 것이나 제때 꼬박꼬박 밥을 챙겨 먹는 모습도 반복적으로 나오며, 지속해서 학력과 직업에 대한 질문이 나오는데, 지극히 주관적인 생각이지만 일본 사회 속에 뿌리 박힌 것들을 자꾸 뽑아서 노골적으로 드러내고자 하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한 강박감이 영화 전체를 흔드는 것이 아닌 일상적인 흐름 안에 있기 때문에 더 사실적으로 다가온다.
영화를 보면서 들었던 조금 놀라면서 재밌었던 것이 '동창회'에서 이 이야기가 시작된다는 것이다.(물론, 오프닝 시퀀스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닌 주인공이 본격적으로 활동을 하게 되는 계기를 주는) 동창회는 오랜만에 모인 친구들이 쉽게 서로를 '비교'할 수 있는, 서로의 우위를 가릴 수 있는 활동인데, 어쩌면 감독은 이 동창회를 통해 본격적인 영화의 신호탄을 쏘아올린 것이 아닌지.
[코아르 CoAR 오세준 기자, yey12345@ccoart.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