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연기의 장인이 되고 싶어요"
[Interview] "연기의 장인이 되고 싶어요"
  • 홍상현
  • 승인 2024.01.08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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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국제영화제 마리끌레르 아시아스타어워즈 수상자 <1923년 9월> 유카 코우리 배우
다소 놀라운 이야기일지 모르지만 앳되어 보이는 외모와 달리 코우리 유카 배우는 데뷔 10년 차의 커리어를 자랑하는 베테랑이다. (C)Office MUGI
다소 놀라운 이야기일지 모르지만 앳되어 보이는 외모와 달리 코우리 유카 배우는 데뷔 10년 차의 커리어를 자랑하는 베테랑이다. ⓒ Office MUGI

영화제의 연회에서 인맥 만들기가 가능할 거라 기대하지 않는다. 필자의 경우 아는 사람보다 모르는 사람이 더 많고, 자기소개와 스몰토크에 대부분의 시간이 소요되는 자리 뒤에 남는 건 대개 취기, 피로감뿐이었으니까. 그래서 터득한 지혜가 지인이 얼마나 참석해있나 살펴보고, 그 언저리의 사람들과 대화를 이어가는 것.

결론부터 말하면 활동 거점이 한국이 아닌 특정국가에 집중되어 있는 편인데다, 어디나 그렇듯 '업계 사람들'은 거기서 거기, 개중에 해외(한국)의 국제영화제에 참석하는 사람들은 더 소수이다 보니 집중도가 꽤 높은 소통이 가능해져 매번 성공적인 네트워킹을 할 수 있었다.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식 리셉션도 그랬다. 프로듀서, 감독 등 제작진 대부분이 막역한 지인이라 2022년 아시아프로젝트마켓에 참가, 뉴트리라이트 어워드를 수상할 당시부터 간단한 통역 등 소소한 일을 거들었고, 현지 개봉 시기와 부산국제영화제 뉴커런츠 부문 초청 등 제작 전후의 모든 스케줄을 알고 있던 <1923년 9월>(2023)의 관계자들을 찾아보니 부산국제영화제 초청작 <아무것도 우리를 멈출 수 없다>(2018) 시나리오작가이자 전주국제영화제 초청작 <전쟁과 한 여자>(2012)의 감독으로 이번 작품에서는 프로듀서를 맡았던 이노우에 준이치가 눈에 띤다. 《키네마준보》에 연재하던 별점 코멘트가 워낙 신랄하고 직선적이라 오해도 받았지만 정작 만나보면 인사를 사람 좋아하고 꾸밈없는 성품으로 누구와도 금방 친해지는 인물. 수인사를 하니 다가와서는 소개할 사람이 있단다. 그리고 옆에 서 있던 훤칠한 신장에 서글서글한 용모의 여배우가 놀랄 만큼 예의바른 태도로 인사했다.

 

한 지인 감독은 필자에게 코우리 배우가 ‘상당한 시나리오 독해력을 가진 배우’라고 귀띔했다. 그야, 범상치 않은 필모그래피만 봐도 충분히 예상되는바 아닐까. (C)Office MUGI
한 지인 감독은 필자에게 코우리 배우가 '상당한 시나리오 독해력을 가진 배우'라고 귀띔했다. 그야, 범상치 않은 필모그래피만 봐도 충분히 예상되는바 아닐까. ⓒ Office MUGI

공포가 지배하던 시대, 대지진이 뇌관이 되어 터져버린 역사적 비극을 그린 <1923년 9월>에서 <키리에의 노래>(2023)의 베테랑 마츠우라 유야, <간장선생>(1998)의 대배우 에모토 아키라 같은 선배들에게 조금도 밀리지 않는 연기력을 보여준 코우리 유카였다.

여기에 결코 가볍게 지나칠 수 없는 특징이 하나 더 있다. 혹시 교포인가 싶어 이름을 다시 물어보게 될 정도의 한국어구사력. 발음과 억양에서 이미 일본의 수많은 연기자들이 영화제에 참석할 때 준비해 오는 "안녕하세요" 레벨을 아늑하게 넘어서는 수준. 애초 특기일뿐더러 한국을 중심으로 한 해외에서의 연기활동을 위해 요즘 더욱 필사적으로 공부하는 중이란다. 그리고 보니 앳된 이미지와 달리 드라마ㆍ영화 데뷔 10년째인 그녀의 필모그래피가 최근 부산국제영화제 뉴커런츠상 수상에 빛나는 <1923년 9월> 말고도 도쿄국제영화제 조조 히데오 특별전을 위해 100편 넘는 그의 작품 가운데서 선정되어 화제를 모은 <러브 논들레스>(2022), 장르영화의 거장 마이클 만이 제작에 참여해 눈길을 끈 HBO 시리즈 <도쿄 바이스>(2022), 그리고 애플TV 플러스 오리지널 시리즈인 <인베이션>(2021) 등에서 나타나듯 '글로벌'이라는 키워드에 집중돼 있었다. 결국 코우리 배우가 필자와 만난 다음날 "2023' 마리끌레르 아시아스타어워즈" 시상식에서 페이스 오브 아시아상을 수여받은 건 당연한 귀결이었다는 이야기다.

 

코우리 배우의 특기에 대해 언급할 때 결코 피해갈 수 없는 것이 하나 있다. 바로 일본의 동료배우들 가운데 톱클래스라 할 만한 한국어실력. 공부를 시작한 게 무려 10여 년 전에다 최근에는 한국에서의 연기활동을 위해 집중강좌까지 듣고 있다. (C)Office MUGI
코우리 배우의 특기에 대해 언급할 때 결코 피해갈 수 없는 것이 하나 있다. 바로 일본의 동료배우들 가운데 톱클래스라 할 만한 한국어실력. 공부를 시작한 게 무려 10여 년 전에다 최근에는 한국에서의 연기활동을 위해 집중강좌까지 듣고 있다. ⓒ Office MUGI

홍상현

앳된 외모와 달리 드라마ㆍ영화 데뷔가 무려 10년 차. 그동안 CM, MV, TV드라마와 영화는 물론 연극에 이르기까지 문자 그대로 종횡무진 활약해오셨습니다. 그리고 열 번째 출연작인 <1923년 9월>로 아시아최대의 국제영화제인 부산국제영화제에 오셨는데요.

코우리 유카

영화제에 초대를 받아 참여하는 게 처음인 데다, 심지어 그 영화제가 꼭 가보고 싶었던 부산국제영화제라 두 가지 꿈이 단번에 이뤄졌습니다. 아니, 여배우로서 상을 타는 것도 꿈이었으니 세 가지네요. (웃음) 부산국제영화제는 아시아 최대라는 규모에 걸맞게 정말 화려하고 눈부시며 설레는, 말 그대로 '축제의 공간(festival area)'이었습니다.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이 한데 모임으로써 느껴지는 열량이 감동적이었고요. 아울러 저 또한 그런 곳에 있음을 온몸으로 실감하는 시간이었습니다.

 

홍상현

방금 말씀하셨다시피 이번에 아시아의 라이징 스타에게 주어지는 마리끌레르 아시아스타어워즈 페이스 오브 아시아상을 수상하셨는데요. 그 의미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계신지요?

코우리 유카

영화제에 참가하고, 수상을 하는 게 제가 세워놓은 목표의 하나이기도 했던 까닭에 정말 기뻤는데요. 막상 시상식이 끝나고 나니 큰 책임감이 느껴지더라고요. 여러분께서 페이스 오브 아시아상 수상자라는 것을 납득할 수 있을 만 한 배우가 되기 위해 더욱 성장해야겠구나 하는. 저 자신을 한 단 계 더 업그레이드시키기 위한 분기점이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코우리 배우는 주로 ‘청순가련한 이미지에 아담한 몸집’으로 특징되는 일본 여배우의 스테레오타입을 극복하는 스타일의 소유자. 그렇다 보니 필모그래피 또한 다양하고도 강렬한 작품과 캐릭터로 채워져 있다. (C)Office MUGI
코우리 배우는 주로 '청순가련한 이미지에 아담한 몸집'으로 특징되는 일본 여배우의 스테레오타입을 극복하는 스타일의 소유자. 그렇다 보니 필모그래피 또한 다양하고도 강렬한 작품과 캐릭터로 채워져 있다. ⓒ Office MUGI

홍상현

수상소감에서 완벽한 발음의 한국어를 구사해서 사회를 맡은 최수영 씨가 극찬을 할 정도였습니다. 현장에 있던 저도 무척 놀랐는데요. 원래 한국어가 특기이기도 하시지요? 도대체 어떤 계기로 전문 한국어인터뷰도 가능할 정도의 실력을 갖추게 되셨는지 알고 싶습니다.

코우리 유카

아직도 공부하는 중인데요. (웃음) 계기부터 말씀드리면 10여 년 전 한국인 친구가 생겼는데 제가 한국말을 전혀 못 해서 의사소통이 안 되니까 너무 속상하더라고요. 그래서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특히 최근 들어서는 한국에서 일하고 싶다는 마음이 강해져서 온라인 집중강좌도 듣고 있고요.

 

홍상현

그럼, 이쯤에서 앞으로 자주 만나게 될 한국 관객 여러분을 위한 자기소개를 부탁드려도 될까요? (웃음) 코우리 유카는 어떤 배우인가요?

코우리 유카

어떤 작품을 통해 저를 만나게 되시는지에 따라 다르겠지만, 기본적으로 연기의 장인(artisan)이 되고 싶어요. 그릇을 예로 들면 공장에서 대량으로 쏟아져 나와 소비돼 사라지는 게 아니라 한 사람의 도예가가 그때그때 혼을 담아 정성스레 만들어내는 그릇 같은, 그런 배우가 되고 싶어요.

 

홍상현

다음은 "홍상현의 인터뷰"를 통해 뵙는 분들께 항상 드리는 질문인데요. 혹시 좋아하는 한국영화나 감독, 또는 작품이 있으신가요? 있다면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코우리 유카

아, 너무 많아서 좀 고민되는데요. (웃음)

좋아하는 감독으로는 봉준호, 박찬욱, 이창동, 홍상수, 김보라 감독을 들고 싶고요. 좋아하는 작품은 엄청나게 많은 중에 딱 세 편만 꼽아 보자면 김기영 감독의 1960년 작 <하녀>, 박찬욱 감독의 <아가씨>(2015), 그리고 <올드보이>(2003)가 있습니다. 막상 고르고 보니까 좀 어두운 취향의 작품들이네요. (웃음)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뉴커런츠상을 수상한 「1923년 9월」은 다큐멘터리영화의 거장인 모리 타츠야 감독의 극영화 데뷔작. 하지만 코우리 배우는 이미 그가 만든 다큐멘터리영화의 팬이었다. (C)Office MUGI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뉴커런츠상을 수상한 「1923년 9월」은 다큐멘터리영화의 거장인 모리 타츠야 감독의 극영화 데뷔작. 하지만 코우리 배우는 이미 그가 만든 다큐멘터리영화의 팬이었다. ⓒ Office MUGI

홍상현

아무래도 롤 모델로 삼고 싶은 한국 연기자도 있으실 것 같은데요.

코우리 유카

한ㆍ일 두 나라를 오가면서 드라마와 영화에서 활약하고 계신 심은경 배우를 들고 싶습니다. 저도 심은경 배우처럼 일본에서는 물론 한국에서도 못지않게 활약하는 배우가 되고 싶어서요.

 

홍상현

자, 그럼 이제 좀 더 구체적으로 들어가 보죠. (웃음) 한국의 영화나 드라마, 혹은 OTT 시리즈를 예로 들면 어떤 작품의 어떤 배역에 도전해보고 싶으세요?

코우리 유카

이건 전부터 자주 이야기했던 건데, 박찬욱 감독의 <친절한 금자씨>(2005)가 리메이크 된다면 꼭 타이틀 롤을 맡고 싶어요. 금자는 서늘한 표정 속에 끓어오르는 복수심을 숨긴 채 차곡차곡 계획을 실행해 나가죠. 그 한편으로 슬픔에 지배되는 내면을 가지고 있고요. 그런 연기를 해 보고 싶습니다.

그리고 이건 다른 이야긴데요. 만약 제가 남성이었다면 홍상수 감독님 작품에 등장할 법한, 술꾼으로 여성들에게 끊임없이 추파를 던지지만 어떤 결실(?)도 거두지 못하는 다소 칠칠맞은 캐릭터를 연기해 보고 싶어요. (웃음)

 

홍상현

대단히 구체적이고도 신선한 아이디어네요. (웃음)

이미지만 보면 청순하고 앳된 외모를 최대한 활용하는 쪽으로 방향을 설정하기 쉬우실 것 같은데, 정작 지금까지의 필모그래피를 보면 정말 이게 한 사람의 이력일까 싶을 정도로 다양한 캐릭터를 연기하셨습니다. 특히 출연작이 많은 편은 아니지만 영화에서의 이미지는 대단히 강렬했는데요. 영화가 갖는 매력이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코우리 유카

조금 추상적인 이야기일 지도 모르겠지만 영화에는 작품 마다 오직 그것을 봤을 때만 흡수할 수 있는 감정ㆍ체험이 담겨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다만, 여기서 '감정'이란 언어만으로 표현하기 힘든 특징을 가지고 있죠. 이렇듯 영화는 제게 인생의 색체를 전해주는 한편 마음의 밀도를 높여줍니다.

 

배우로서 그녀가 추구하는 목표는 연기의 장인(artisan)이 되는 것. 대량으로 쏟아져 나와 소비돼 사라지는 게 아니라 한 사람의 도예가가 그때그때 혼을 담아 정성스레 만들어내는 그릇 같은 연기자를 지향하고 있다. (C)Office MUGI
배우로서 그녀가 추구하는 목표는 연기의 장인(artisan)이 되는 것. 대량으로 쏟아져 나와 소비돼 사라지는 게 아니라 한 사람의 도예가가 그때그때 혼을 담아 정성스레 만들어내는 그릇 같은 연기자를 지향하고 있다. ⓒ Office MUGI

홍상현

<1923년 9월>은 기획 단계부터 화제가 된 작품이라 오디션도 대단히 높은 경쟁률을 기록했습니다. 그런데 거기서 관계자들을 깜짝 놀라게 할 만큼의 실력을 보여주셨다고 들었는데요.

코우리 유카

원래부터 모리 감독의 다큐멘터리를 너무 좋아했어요. 그런데 다큐멘터리의 등장하는 건 실존인물들이잖아요. 그래서 아쉽게도 작품을 같이 해 볼 기회가 전혀 없었죠. 그런데 그런 모리 다츠야 감독이 극영화를 만드신다는 거예요! (웃음) 오디션장에 도착했을 즈음에는 '작품을 꼭 같이 해 보고 싶다,''기회를 얻지 못한다면 내내 후회할 거다'라는 마음뿐이었습니다. 말씀처럼 제가 제작진에게 뭔가를 어필할 수 있었다면, 아마도 이런 절실한 마음이 강력한 뭔가를 끌어내 주었기 때문 아닐까 싶어요.

 

홍상현

<1923년 9월>은 사극이면서 실제 벌어졌던 비극을 그리는 작품이죠. 게다가 이구사 마스라는 인물은 그 비극의 중심에 있다 보니 역할창조의 난이도가 무척 높았을 것 같은데요.

코우리 유카

지역 방언이나 당대의 역사에 관한 공부가 필수였지만 이에 앞서 기본적으로 한 세기 전이나 지금이나 인간의 본질은 달라지지 않았다는 생각을 중심에 위치시켜 뒀습니다. 이 작품에서 끔찍한 일을 저지르는 사람들은 흉악범이 아니라 우리가 평소에 아무렇지 않게 마주치는 보통사람들이죠. 이구사 마스도 마찬가지고요. 드라마틱하게 보다 땅에 발을 딛고 서있는 인물로 그러내고 싶었습니다. 그밖에 시나리오를 읽으면서 인간미가 있고 강한 생명력을 가진 여성이라는 인상도 받았는데, 이런 부분 또한 반영하려고 노력했고요.

 

코우리 배우가 베스트로 꼽는 세 편의 한국영화 가운데 두 편이 박찬욱 감독의 작품들. 만약 리메이크가 이루어져 기회가 주어진다면 반드시 「친절한 금자씨」의 타이틀 롤에 도전해보고 싶다고. (C)Office MUGI
코우리 배우가 베스트로 꼽는 세 편의 한국영화 가운데 두 편이 박찬욱 감독의 작품들. 만약 리메이크가 이루어져 기회가 주어진다면 반드시 「친절한 금자씨」의 타이틀 롤에 도전해보고 싶다고. ⓒ Office MUGI

홍상현

촬영을 하시면서 가장 힘들었던 일과 가장 좋았던 일을 한 가지씩만 말해주실 수 있을까요?

코우리 유카

사람이 참살당하는 장면을 목도하는데 아무리 연기라지만 몸도 마음도 너무 힘들었어요. 사건이 벌어질 당시의 음험한 공기까지 실감나게 재현되다 보니 정말 100년 전의 현장에 있는 것 같더라고요.

좋았던 일은 대선배인 에모 아키라 배우와 연기를 통해 소통할 수 있었다는 겁니다. 평소 존경하던 연기자이다 보니까 촬영하는데 무척 흥분이 되더라고요.

 

홍상현

모리 감독은 다큐멘터리의 거장이시지만 극영화에선 완전한 신인감독이셨습니다. 그런 면에서 연출 스타일도 무척 신선했을 것 같은데요.

코우리 유카

아무래도 다큐멘터리의 거장이시다 보니까 연출의 방향을 정해놓고 거기 배우를 맞춰가기보다 우선 충분히 배우를 관찰한 후에 디렉션을 주시는 점이 달랐어요. 또, 배우를 대단히 신뢰하셔서 최대한 자율성을 보장해주셨다는 점이 좋았고요. 그리고 혹시 영화를 보면서 혹시 느끼실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장면에 따라서는 현장에서 다함께 감상, 의견 등을 공유하면서 만들어 나간 것들도 있었습니다.

 

홍상현

극중에서 남편(시게지)으로 분한 마츠우라 유야 배우, 시아버지(사다츠구)를 연기한 에모토 아키라 배우, 모두 발군의 연기력을 가진 대선배들이신데요. 이 두 분과도 완벽하게 조화될 만큼 뛰어난 역량을 보여주셔서 놀라웠어요.

코우리 유카

일본에 '연기싸움'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공연자들이 각자 뿜어내는 에너지로 맞서는 걸 의미하는데요. 저는 이것과는 좀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어요. 연기란 각자의 역량을 뽐내거나 힘겨루기를 하는 게 아니라 주어진 어떤 순간의 공기 속에서 서로에게 녹아드는 것이라는. <1923년 9월>의 촬영장이 바로 대표적인 예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겠는데요. 장면 자체로는 음침한 분위기에서 비극적인 사건이 전개되는 설정이 적지 않았지만 정작 캐스트들로서는 서로의 연기에 녹아들어 가면서 균형을 이루거나 농밀한 에너지를 주고받을 수 있는 작업이 많이 이루어져 대단히 즐거웠습니다.

 

코우리 배우는 말한다. “막상 시상식이 끝나고 나니 큰 책임감이 느껴지더라고요. 여러분께서 페이스 오브 아시아상 수상자라는 것을 납득할 수 있을 만 한 배우가 되기 위해 더욱 성장해야겠구나 하는. 저 자신을 한 단 계 더 업그레이드시키기 위한 분기점이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C)MCK Publishing Co. Ltd.
코우리 배우는 말한다. "막상 시상식이 끝나고 나니 큰 책임감이 느껴지더라고요. 여러분께서 페이스 오브 아시아상 수상자라는 것을 납득할 수 있을 만 한 배우가 되기 위해 더욱 성장해야겠구나 하는. 저 자신을 한 단 계 더 업그레이드시키기 위한 분기점이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 MCK Publishing Co. Ltd.

"연기에 대해 타협하지 않는다, 영화에 대해 거짓말하지 않는다는 저만의 원칙을 지키면서 부단하게 노력하고 싶습니다. 또, 기회만 주어진다면 꼭 한국 작품에서 연기를 해 보고 싶고요.

앞으로 한국 관객 여러분께도 여배우로서의 제 보다 다양한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도록 항상 노력하면서 성장해 나가겠습니다. 멋진 작품으로 찾아뵐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게요. 한국의 스크린에서 만나요!"

 

매 질문마다 성심성의껏 답하며 흥미진진한 대화를 만들어준 인터뷰이에 뒤질세라 블랙 & 화이트 색조에 맞춰 대조적 이미지를 선보이는 컨셉포토까지 준비해준 그녀의 소속사가 유창한 영어로 작성된 신년인사와 함께 2024년 공개가 예정돼있는 차기작 소식을 전해주었다.

<트레인스포팅>(1996)을 비롯해 <러브 액츄얼리>(2013) 같은 멜로드라마, 심지어 <28주 후>(2007), <엑스마키나>(2014) 등의 판타지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장르를 아우르는 작품으로 사랑받아온 영국 제작사 DNA필름이 <탑건: 매버릭>(2022)의 스토리작가 저스틱 막스 등을 크리에이터로 영입해 제작한 새 시리즈 <쇼군>이 디즈니플러스에서 스트리밍 될 예정이란다. 페이스 오브 아시아상 수상을 모두가 납득할 만 한 배우가 되고 싶다는 포부에 어울리는 행보. 역시나 하는 느낌과 함께 기대가 생긴다. 처음 만난 순간부터 본인이 몇 번이나 피력했듯 한국 작품에서, 한국어로 연기하는 그녀의 모습을 조만간 보게 될지도 모르겠다.

[인터뷰 홍상현 영화평론가, krpopper@ccoart.com]

홍상현
홍상현
 《코아르》 운영위원, 고토부키홈빌더 영화영상사업부 프로듀서.
정치학과 영상예술학 두 분야의 학위를 소지. 인문사회과학과 영화이론을 넘나드는 전문적 식견으로 한일 양국 매체에 분석기사를 쓴다. 파리경제대 토마 피케티와 『21세기 자본』 프로젝트를 진행한 도쿄대 연구실 출신.
 프로듀서를 맡은 장편 다큐멘터리영화 <포 디 아일랜더스>는 2008년 제주영화제 개막작이었다.
 2013년부터 월간 《게이자이》에서 담당하는 경제평론지면이 에히메대 와다 제미나르의 교재로 쓰인다. 국제영화비평가연맹(FIPRESCI) 지부인 일본영화펜클럽 회원. 『마르크스는 처음입니다만』 등 다수의 스테디셀러를 소개해온 번역가로도 유명하다.
 일본국제교류기금이 선정하는 “세계의 영화인 7인” 중 1인이며 일본 TBS(채널 6) 주최 디지콘 6 아시아 심사위원, 《마이니치신문》 영화웹진 《히토시네마》 필진 및 마이니치영화콩쿠르 심사위원, 다카사키영화제 시니어 프로듀서,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전주국제영화제 어드바이저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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