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는 타인과 자신의 삶을 동시에 살아간다. 작품마다 새 인물이 되어 신선함을 뽐내면서도 고유의 매력까지 고수하기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때로는 본연의 모습을 구석 한편에 밀어두고, 때로는 철저히 혼자만의 삶을 견뎌야 하는 일. 바깥을 향해 자신을 활짝 열어두면서도 스스로를 지켜야 하는 역설. 이처럼 배우로서의 길은 매번 다른 고뇌, 다른 형태의 외로움과 맞닥뜨릴 숙명을 지닌다.
12월 4일, 단편 <8월의 크리스마스>(2023)와 장편 <더 납작 엎드릴게요>(2023)로 제49회 서울독립영화제를 찾은 배우 김연교를 만났다. 본명과 필명, 배우 활동명, 그간 맡아온 배역을 포함한다면 김연교는 적잖이 다양한 이름의 삶을 살아왔다. 하지만 그는 매번 새로운 '나'를 내세우는 배우이기 전에, 자신을 들여다보고 스스로 물음을 던지는 일에 충실한 사람이다. 그가 꺼내놓은 말과 글이 더없이 사려 깊은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영화로 만난 소중한 인연 덕에 고된 시간을 버텼다는 그이지만, 진정으로 김연교를 지켜온 힘은 그가 가진 섬세한 삶의 태도일지도 모른다. 선택의 갈림길마다 '아름다움'을 묻고 고민한다는 이 배우가 걸어갈 길은, 그래서 덜 외롭고 더 아름다우리라.
함윤정
올해 서울독립영화제에 <8월의 크리스마스>, <더 납작 엎드릴게요>로 초청되었다. 꾸준히 협업을 이어온 동료들과 함께 이곳을 찾아 더욱 뜻깊을 것 같다.
김연교
소식을 듣고 기뻤다. 독립영화는 영화제가 아니면 세상에 나오기가 어렵지 않나. 상영 기회가 있음에 감사했다. 특히 서울독립영화제는 연말을 장식하는 분위기가 있다. 여러 사람을 만나 인사를 나눌 수 있어 더욱 기쁘다.
함윤정
<8월의 크리스마스>를 보며 이가홍 감독의 전작 <광장>(2022)이 떠올랐다. 두 작품 모두에서 아버지의 흔적을 쫓는 인물을 연기했다. <광장>과는 어떤 차이를 두고 연기에 임했나.
김연교
관객 입장에서는 두 작품이 같은 세계관을 공유한다고 느낄 수 있지만, 내겐 서로 아예 다른 영화로 다가왔다. <광장>은 '새벽'이라는 인물이 긴 밤 동안 만나는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이 영화는 그리움을 품고 일상을 살아갈 때, 타인이 얼마나 버틸 힘이 되어줄 수 있는지를 환기한다. '새벽'을 포함한 극중 인물 모두가 서로가 서로에게 도움을 받으니까. 한편, <8월의 크리스마스>는 아버지와 딸, 오직 두 사람의 만남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꿈결 같은 하룻밤의 시간 동안 켜켜이 쌓이는 감정이 이리저리 부딪히고 또 고요히 헤엄치는 분위기가 있다. 어떤 차이를 의도적으로 두기보다, 각 작품에 맞는 연기에 충실하고자 했다.
함윤정
김은영 감독의 <더 납작 엎드릴게요>의 아이디어, 주인공 '혜인'의 직장이 '절'이라는 설정이 흥미롭다. 대한민국 직장인이 겪는 보편적 고충과 절이라는 특수한 공간이 만나 소소한 해학을 선사한다. 하루하루가 고뇌의 연속이고 참선이자 수행인 청년을 연기하며 어땠나.
김연교
나 또한 소재에서 오는 재미를 가장 먼저 느꼈다. 가끔 혼자 절에 가는데, 그곳에서 받은 감흥에서 출발해 절이 직장이 된다면 어떨지 상상하며 접근했다. 그런데 대본을 유심히 살펴보니 이 또한 보통 사람의 이야기더라. 청년 관객들의 반응을 보며 이 영화가 많은 공감대를 형성했다고 느꼈다. 물론 나는 회사원이 아니라서, '혜인'이 겪는 크고 작은 문제가 내 개인적인 삶에서 똑같이 일어나진 않는다. 하지만 어떤 문제 상황에서 느끼는 감정은 누구에게나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함윤정
혜인의 속마음이 나긋나긋한 내레이션으로 들려올 때, 마치 조곤조곤 불경을 읽는 듯한 뉘앙스를 느끼기도 했는데.
김연교
내레이션에 대해 생각을 많이 했다. 자칫하면 내레이션이란 것 자체가 느끼해질 것 같았거든. 그래서 이를 어떻게 표현하면 좋을지 고민됐는데, 어느 날 감독님이 듀레이션을 맞추기 위해 샘플을 보내주셨다. 그런데 감독님의 목소리를 얹은 이 영화가 너무 좋더라. 그 담백한 톤과 담담한 리듬을 참고해 내레이션을 녹음했다.
함윤정
<더 납작 엎드릴게요>는 김은영 감독이 운영하는 '고라니 북스'에서 발간한 동명의 에세이를 영화화한 작품이다. 김은영 감독 등 작품에 참여한 동료들과 함께 팟캐스트 '아늑한 세계'를 진행하고 있다. 팀을 꾸린 계기와 평소 협업 방식에 대한 이모저모를 듣고 싶다.
김연교
영화의 원작은 헤이송 작가님이 원고를 쓰고 김은영 감독님이 일러스트 작업을 맡은 에세이다. 책을 발간한 후에 이를 영상화해도 좋겠단 아이디어가 나왔다고 들었다. <더 납작 엎드릴게요>의 촬영장은 여느 현장처럼 저마다 역할을 가진 스태프들이 모인 곳이었다. 감독님이 대구분이시라 대구 지역 영화인들이 많이 참여하기도 했다. 당시 나는 독립출판을 마친 후 뉴스레터를 하고 있었는데, 감독님과 조감독님 그리고 PD님까지 독립출판 경험이 있거나 글에 대한 관심도가 높은 분들이었다. 그러다 보니 서로 마음이 잘 맞을 수밖에 없었다. 그들과 친해져 새해 목표를 공유하다 글쓰기와 책 발간, 팟캐스트 진행을 같이 해보자는 말이 나왔다. 그렇게 7개월 동안 각자 글을 쓰고, 한 달에 한 번 팟캐스트 녹음을 진행했다. 만날 때마다 거의 다섯 시간 동안 녹음을 했다.
함윤정
각자 써온 글을 토대로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놓는 방식이 무척 따뜻해 보였다. 대개의 영화가 집단 협업의 예술이지만, 그 정도로 마음이 잘 맞는 동료들을 만나기란 쉽지 않은데.
김연교
동료들이 아니었으면 못 해냈을 거다. 글쓰기가 힘들어 포기하고 싶었던 적도 있었다. 팟캐스트에서 내 목소리를 들을 때마다 “왜 이렇게 말을 못 할까” 하며 싫은 순간도 많았다. 모든 일이 그들과 함께여서 가능했다. 네 명의 구성원 모두가 타인에 대한 조심성과 배려심이 많은 성격이다. 각자 늘 혼자만의 세계에서 누군가를 살피는 입장이었다가, 서로에게 보살핌을 받으니 얼마나 아늑했겠는가. 곧 팟캐스트 원고를 묶어 단행본을 출간할 계획이다. 오늘도 회의가 있어 가제본한 책을 가져왔다.
함윤정
2021년에 에세이집 『조각난 마음이 나는 싫으니 내가 마음을 준다면 고스란히 다 주리』를 출간했다. 직접 언급했듯 꾸준히 뉴스레터를 발행하며 작가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데. 글로 세상과 소통하는 방식을 편하게 느끼는 것 같다.
김연교
뭔가를 표현하고픈 욕구가 쌓여있을 때 꿈꿔온 독립출판을 하게 됐다. 책을 많이 팔았고, 글이란 통로로 소통하는 느낌을 받았다. 이후 글 계정으로 인스타그램을 만들며 팔로워가 300명이 되면 뉴스레터에 도전하기로 했다. 결국 인원이 채워져서, 작년 3월부터 시작해 1년 반 넘게 메일링을 하고 있다. 그런데 매주 한 편의 글, 무엇보다 누군가가 읽을 글을 쓴다는 게 아예 다른 차원의 일이더라. 독립출판을 했을 때와도 달랐다. 즉각적으로 내 글을 받아볼 독자가 존재하는 상태에서 쓰는 작업이니까. 작년에 개인적으로 힘든 일이 많았다. 글 쓰는 일이 아니라면 내가 잡고 있을 것이 없었다. 돌이켜보니 이 일이 나를 살려준 것 같다. 매주 어떻게든 책상 앞에 앉아 마음을 정돈하고 써내려가야 했으니까. 올해는 개인적인 감정을 해소하는 작업이었던 당시와 다르게 글을 제대로 써보고 싶었다. 매번 연마하는 느낌으로 쓰고 있다.
함윤정
배우 김연교와 작가 김연교 사이에서 어떤 차이를 느끼나.
김연교
원래 잘하고 싶은 게 별로 없는 성격이다. 욕심이 없다. 뭔가를 열심히 해본들 다른 누구보다 안 된다고 해서 스트레스를 받진 않는다. 오히려 상대에게 진심으로 박수를 보낸다. 그런데 그게 안 되는 일이 딱 두 가지 있다. 연기와 글쓰기다. 어렸을 때 작가가 되고 싶었는데, 나보다 잘 쓰는 친구가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순간 “나 안 해.”란 말이 나오더라. 그만큼 나 자신에게 완벽성을 요구하고픈 일이 바로 연기와 글쓰기다. 그런 두 가지 일에도 차이가 있다면, 글은 언제나 쓸 수 있다. 그런데 연기는 하고 싶다 해서 매번 할 수가 없다. 글도 읽어줄 사람이 필요하지만, 독자가 없어도 언제든 쓸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연기는 관객이 없다면 완전히 무의미한 일이라 생각한다. 내 삶에서 중요한 두 가지 일에 우열을 둔다면, 연기로 표현하고 소통하기를 더 잘하는 사람이고 싶다.
함윤정
잘한다는 것의 척도가 뭘까.
김연교
인정받고 싶은 거지. 다른 일에서는 그다지 인정이 필요하지 않다. 그런데 연기에서만은 꼭 인정받고 싶다. 작가로서는 이 정도로 인정을 갈구하지 않는다. 연기를 잘 하려면 내 삶이 건강해야 하고, 삶이 건강하려면 어떤 통로가 필요하다. 그 해소법이 바로 글 쓰는 일이다. 말하면서 내면의 단계가 정리되는 것 같네.
함윤정
직접 영화 각본을 쓸 계획은 없나.
김연교
처음 연기를 시작했을 땐 무턱대고 썼다. 심지어 장편 시나리오도 있다. <핑크 스카이>라고, 분홍색 하늘에서 노을이 지는 장면을 상상하며 시작했다. 지금 읽어보면 아마 일반적인 구성의 영화 각본은 아닐 거다.
함윤정
그게 오히려 정말 영화일 수도 있다.
김연교
그럴 수도 있겠다. 한번 꺼내볼까? (웃음) 어쨌든 처음엔 그랬는데, 연기를 계속하면서 각본을 쓰고 영화를 만드는 일까지 넘볼 수는 없겠더라. 내 영역이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작품을 만든다는 건 정말 무에서 유를 창조해내는 일인 것 같다. 연기도 분명 창작의 영역에 있지만, 이는 주어진 베이스가 있는 상태에서 색깔과 모양을 만들어내는 일이다. 그리고 연기를 잘했다, 혹은 각본을 잘 썼다는 칭찬 중 하나를 고른다면 연기 잘하는 사람이 되고 싶더라. 이제 보니 연기를 잘하고 싶어서 각본을 썼던 것 같다. 내가 잘할 수 있는 걸 생각해보자는 차원에서. 너무 솔직한 말을 꺼내놓아 부끄럽네.
함윤정
서울독립영화제의 행사 중 '배우 프로젝트'가 유명하지 않나. 60초 동안 펼치는 연기의 기술적 완성도도 중요하지만, 한정된 시간 내 자신이 연기할 캐릭터와 상황을 얼마나 잘 만들어오는지가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더라. 이러한 고민의 과정이 배우에게 꼭 필요한 일이란 방증이라 여긴다. 그런 의미에서 도전하고픈 캐릭터가 있나.
김연교
이 질문을 받으면 항상 <화차>의 '경선'(김민희)과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의 '마츠코'(나카타니 미키)를 언급한다. 두 캐릭터의 행위를 옳고 그름의 기준으로 판단하는 걸 떠나, 이들 캐릭터에 큰 매력을 느낀다. 모두 '결핍'을 가졌다는 점에서 아름답다. 마츠코의 경우에는 아주 중독적인 사랑을 했다고 생각하는데, 결핍이 사람을 이렇게 극단으로 몰아갈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줘서 끌렸다. 그런 역할을 하고 싶다.
함윤정
첫 장편영화 조연으로 참여한 <파로호>(2022)에서 그간 주로 맡아온 캐릭터와는 사뭇 다른 배역을 맡았다. 독립영화에서 배우 김연교를 만나왔던 관객들에게는 새로운 발견이었으리라 생각한다. 역할 안에서 기존의 톤을 많이 깼다.
김연교
확실히 도전이긴 했다. 그런데 그 톤이 없는 톤은 아니다. 내가 가장 편안한 사람들과 있을 때 나오는 밝은 면모가 묻어있거든. 물론 촬영장에서 그 캐릭터를 끌어내기가 조금은 힘들었지. <파로호>의 '미리'가 앞서 말한, 결핍이 있는 인물에 해당한다. 내가 바라본 미리의 정서는 너무 외롭고 누가 나를 봐줬으면 좋겠지만, 결코 사랑받지 못하는 인물이다. 그 어여쁜 나이에 아무도 모르는 곳에 도망다니듯 살지 않나. 한 마디로 '뿌리'가 없는 인물이다. 그래서 내가 미리를 좋아한다. <파로호> 개봉 당시 마지막 GV가 끝나고 생각했다. 이제는 미리가 어딘가에 뿌리내려 살면 좋겠다고.
함윤정
2년 전 서울독립영화제 '뉴-쇼츠' 부문에 이가홍, 김서영 감독과 공동 연출한 단편 <네가 사랑한 것들을 기억할게>가 선정되었다. 낯선 환경, 낯선 이들의 출현 한가운데 펼친 짜증스러운 연기가 인상적이었다. 상황에 대한 사소한 설정만 둔 후 즉흥으로 연기했다고 들었는데, 유사한 작업을 또 시도할 생각이 있는지 궁금하다.
김연교
많이 하고 싶다. 그러나 쉽지 않다. 앞서 말했듯 연기라는 일이 하고 싶다고 다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니까. 기회가 주어진다면 더 하고 싶고, 또 하고 싶다.
함윤정
당시 코로나19로 침체된 영화인들의 창작 활동을 격려하기 위해 영화진흥위원회에서 제작을 지원했다고 들었다. 제약 속에서 이뤄진 제도적 지원 덕에 도전적인 작업이 가능했던 사례에 해당하는데, 최근 지원금 축소 관련 이슈로 독립영화계 전반에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김연교
창작자도 뭔가를 잃지만, 그들이 꺼내놓는 것이 없어지면 이를 누렸던 사람들의 몫도 사라진다. 세상에서 아름다움을 고민하는 파이가 점점 작아진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쉽고 빠르게 휘발되는 것들에 익숙해져서 진득하게 느끼고 머금는 능력치가 없어지는 것도 같다. 영화뿐 아니라 다른 매체에서도 마찬가지다.
함윤정
올해 청룡영화상에서 청정원 단편영화상을 받은 유재인 감독 <과화만사성>에 출연했다. 직접 작품을 소개한다면.
김연교
앞서 짜증을 내는 연기에 대한 말이 나왔는데, <과화만사성>에서도 적잖이 짜증을 내는 인물을 맡았다. 극의 설정은 이렇다. 대한민국에 마지막으로 남은 '과씨' 집안 네 남매가 아버지의 사망 후 한자리에 모인다. 대를 이어야 하지만 결혼하진 않겠다는 둥, 아버지의 돈은 어쩔 거냐는 둥 시종일관 티격태격이다. 나는 셋째 역할을 맡았다. 넷 중 가장 똑부러지고, 자기 앞가림도 잘하고, 짜증내면서도 나름대로 분위기를 챙기는 캐릭터다. <과화만사성>뿐 아니라 <8월의 크리스마스>와 <더 납작 엎드릴게요>까지, 최근 참여한 작품들이 수많은 영화제에 초청받았다. 배우로서 이렇게 많은 영화제를 찾은 건 올해가 처음이다. 영화가 훨훨 날아가는 걸 보니 감사하다.
함윤정
영화가 훨훨 날아갈수록 참여한 배우도 함께 잘될 수 있지 않겠나.
김연교
작품을 촬영한 지 1년 정도 시간이 흐른 뒤, 늘 조금은 기억이 희미해질 때쯤 관객 앞에 선다. 그래서 나보다는 내가 맡은 역할이 영화와 함께 간다고 느낀다. 나는 지금 여기 있을 뿐이고. 그래서 고마운 마음도 든다. 영화 속 인물은 영화가 지속되는 한 그 자리에 그대로 있지 않나. 과거의 내가 영화 속에 남아 잘 살아주고 있는 걸 확인하는 느낌이다. 작품이 완성됐단 사실만으로도 기쁜데, 영화제를 통해 많은 관객과 만날 기회가 생겨 감사하다.
항상 연기 활동이 꾸준하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을 때도 있다. 아르바이트를 하며 지내다 영화제에 가면 갑자기 배우가 되어버리는 느낌이다. 그럴 때 연기는 무엇이고 배우는 무엇일지 생각했다. 연기는 현장에서의 행위로 끝나고, 배우란 인식은 작품이 상영될 때 생기는 것 같다. 여태 배우의 정체성을 갖고 스스로 당당할 수 없었던 건, 연기란 행위를 하는 것과 별개로 누군가에게 이를 보여줄 기회가 좀처럼 없었기 때문일 테다. 그래서 내가 배우란 상태를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했는지도 모른다.
함윤정
관객의 입장에서는 영화 속 인물이 스크린 밖으로 튀어나온 듯 배우를 보게되는데, 배우에게는 제작 당시와 상영의 시간차에서 발생한 괴리감이 다른 차원의 생각을 야기하나 보다. 응원하는 마음으로 내년에는 더 많은 활동을 기대하겠다. 끝으로 김연교를 배우로서 살게 하는 오늘의 원동력을 묻고 싶다.
김연교
감사하다. 내년 목표는 무엇보다 '인정받는 것'이다. 사실 인정받고 싶다는 걸 인정하기 시작한 지 얼마 안 됐다. 연기를 계속하는 원동력에 대해 얼마 전에도 같은 질문을 받았는데, 내게 '동력'은 있어도 '원동력'은 없는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너무나 흔들리지만, 함께해주는 좋은 동료들 덕에 이 길 위에 버틸 수 있다고 답했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니 원동력이 없으면 언젠가 멈출 것 같더라. 그래도 그 가시밭길을 걸으며 지금까지 왔잖나. 그래서 자신에게 계속해서 물음을 던졌다. 그 끝에 '인정받는 순간'이 있었다. 참여한 작품이 영화제에서 상영된다는 게 그런 차원의 일인 것 같다. 이게 작품으로 인정받았구나, 우리가 만든 게 영화였구나, 내가 한 일이 연기였구나, 그걸 누군가가 인정해 주는구나. 이런 자각의 순간에 그렇게 기뻤던 것 같다.
처음 연기를 시작했을 땐 모든 시간을 혼자만의 의미로 가득 채웠다. 그 바람에 무언갈 원동력으로 삼을 시기를 어느 순간 지나버리고 말았다. 그래서 한동안 슬럼프였다. 안 하고 싶고, 그만둬도 괜찮을 것 같았다. 그런 나를 가만히 들여다보니 아직 하고 싶더라. 그 마음 밑바닥에는 조금이라도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있었던 거다. 엄청난 스타가 되길 꿈꾸기보다 그저 올해보다는 더 인정받고 싶다. 이뤄질지 모르겠지만, 그런 꿈을 꿔본다.
[인터뷰 함윤정 영화평론가, badasal2@ccoart.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