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시차 보다 '약속'에 초점을 맞춘 로맨스"
[Interview] "시차 보다 '약속'에 초점을 맞춘 로맨스"
  • 홍상현
  • 승인 2023.11.13 11:0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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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국제영화제 초청작 <일초 앞, 일초 뒤> 야마시타 노부히로 감독
「일초 앞, 일초 뒤」는 국내에서도 개봉한 타이완영화 「마이 미씽 발렌타인」의 리메이크버전으로 야마시타 노부히로 감독 특유의 해석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C)2023 One Second Ahead, One Second Behind Film Partners
「일초 앞, 일초 뒤」는 국내에서도 개봉한 타이완영화 「마이 미씽 발렌타인」의 리메이크버전으로 야마시타 노부히로 감독 특유의 해석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C)2023 One Second Ahead, One Second Behind Film Partners

게스트로 초대된 파티에서 통역을 하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국제행사 등에서 통역을 맡아본 경험도 있다 보니 어려운 일은 아니다. 내용도 딱히 전문성을 요하지 않는 스몰토크가 주를 이루는 데다, 대화의 흐름이 끊기는 걸 보다 못해 하게 되는 상황이 대부분. 보통 한·일 통역을 하지만, 지난 10월 13일 저녁, 배급사 담당자의 바쁜 일정으로 혼자 참석할 수밖에 없게 된 유키사다 이사오 감독의 부탁으로 동행했던 부산국제영화제 폐막식 리셉션에서는 일·영 통역이 많았다. 재미있는 사실은 이럴 때마다 시간이 지나 주위를 둘러보면 애초의 동행은 간데없고, 초면인 사람들 틈에 끼어있는 사례가 적지 않다는 점. 이날도 마찬가지였다. 테라스 쪽 자리에서 더듬더듬 일본어로 이야기하다 '한계'에 부딪친 중화권 배급사 관계자들이 영어로 말하기 시작할 즈음 현장에 함께 있던 덥수룩한 수염에 안경을 쓴, '사람 좋아 보이는 인상'의 표본 같은 사내를 거들었다. 8회나 되는 부산국제영화제 초청 이력을 가진 오늘 인터뷰의 주인공, 야마시타 노부히로 감독이었다.

부산에서 처음 접한 그의 작품은 도시생활에 실패한 뒤 고향으로 돌아와 '적즙(녹즙이 아니라)'을 팔러 다니는 세일즈맨(야마모토 히로시 분)이 등장하는 <바보들의 배>(2002). 잔잔한 서사에 시시때때로 끼어드는 유머의 리듬감, 어딘가 언밸런스하고 우스꽝스럽지만, 정감 가는 캐릭터들이 필자를 사로잡았다. 이듬해 초청작으로 돗토리 현의 망해버린 여관에 함께 묵게 된 시나리오작가(나가츠카 케이시 분)와 영화감독(야마모토 히로시 분)의 파란만장한 하룻밤을 그린 <후나키를 기다리며>(2003)도 내내 미소를 짓다가 한껏 밝아진 기분으로 극장을 나서게 해 준 작품이라는 점에서 전작과 동일선상에 있었다.

 

야마시타 노부히로 감독의 데뷔년도는 1999년 그간 부산국제영화제에 8회나 초청되었던 이력을 가지고 있다. (C)BIFF
야마시타 노부히로 감독의 데뷔년도는 1999년 그간 부산국제영화제에 8회나 초청되었던 이력을 가지고 있다. (C)BIFF

뭔가 해 보려 애를 쓰지만 끝내 아무것도 이뤄내지 못하는 사람들, 그런 그들의 엇갈리는 대화나 독특한 행동이 자아내는 무해한 웃음. '코미디'라는 단어를 듣자마자 머릿속에 버스터 키튼의 슬랩스틱이나 W. C. 필즈의 다이내믹한 애드리브가 떠오르는 관객들에게 휴식 같은 유쾌함을 선사하는 야마시타 감독의 스타일은 2년 뒤 한국의 배두나 배우를 캐스팅해 화제가 된 <린다 린다 린다>(2005)로 정점에 도달했다.

이후 그의 필모그래피는 두 개의 범주로 나뉘었는데―2011년 작 <마이 백 페이지>처럼 예외도 있지만― 하나가 장르적 요소를 대폭 강화한 코미디요(2006년 작 <마츠가네 난사사건>, 2013년 작 <모라토리움기의 다마코>, 2015년 작 <미소노 유니버스>, 2016년 작 <우리 삼촌> 등), 다른 하나는 휴머니즘이 배어나는 서정적 드라마였다(2007년 작 <마을에 부는 산들바람>, 2011년과 2014년의 TV드라마 <심야식당> 시즌 2ㆍ3, 2016년 작 <오버 더 팬스> 등). 그리고 이 두 흐름은 다시 2020년 방영된 TV드라마 <코타키 형제와 사고팔고>에서 합쳐진다. 올해 부산국제영화제 초청된 <일초 앞, 일초 뒤>(2023)도 이와 궤를 같이하는 작품이다.

내용은 이렇다. 주인공 하지메(오카다 마사키 분)는 매사에 남들보다 한 템포 앞서가는 성격 때문에 손해를 본다. 자신의 단칸 셋방에 동생 커플(마이, 카타야마 유키 분ㆍ미츠루, 시미켄 분)을 같이 지내게 해 줄 만큼 상냥한 마음씨에도 불구하고, 일터(우체국)에서는 과속과 신호위반을 되풀이하다 집배원 업무로부터 배제되어 창구를 지키고 있다. 히로인인 레이카(키요하라 카야 분)는 그와 정반대. 뭐든 한 템포가 늦고 경제적으로도 어려워 스물다섯 나이에 대학도 졸업하지 못한 채 사진부 동아리방에 얹혀산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연애마저 지지부진. 어린 시절 병원에서 만나 사서함으로 연락을 주고받기로 했으나 약속을 지키지 못했던 첫사랑(하지메)을 어렵게 찾아내 근처를 맴돌지만 속만 끓이다 길거리 뮤지션(후쿠무라 리온 분)에게 빼앗길 판이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일까. 사쿠라코와 데이트 약속을 하고 설렘 속에 잠이 든 다음날 아침, 하지메는 소중한 24시간이 통째로 사라져 버린 것을 알게 되고, 동네 사진관에서 찍은 기억이 나지 않는 사진 한 장을 발견한다.

 

하지메 역의 오카다 마사키 배우가 처음 야마시타 감독과 함께했던 것은 16년 전. 역시 부산국제영화제 초청작이었던 「마을에 부는 산들바람」에서였다. (C)2023 One Second Ahead, One Second Behind Film Partners
하지메 역의 오카다 마사키 배우가 처음 야마시타 감독과 함께했던 것은 16년 전. 역시 부산국제영화제 초청작이었던 「마을에 부는 산들바람」에서였다. (C)2023 One Second Ahead, One Second Behind Film Partners

홍상현

전작인 <오버 더 펜스> 이후 7년 만에 부산에 오셨습니다.

야마시타 노부히로

부산국제영화제는 제 감독 인생에서 가장 많은 작품을 초청해 주신 영화제이기 때문에 항상 정겹고 특별합니다. 이번에 부산에 오면서도 '다녀왔습니다!'하는 마음이 들었어요. (웃음)

 

홍상현

처음 <바보들의 배>가 부산에 초청되신 게 2002년의 일이니까 벌써 21년 전이네요. 당시를 기점으로 '아시아영화의 창' 부문에만 무려 8번이나 초청되는 '기록'을 세우시는 동안 '기예의 신인'에서 일본영화를 대표하는 중진 감독으로 성장하셨어요. 이에 발맞추어 한국영화도 많은 발전을 거듭해 왔는데요. 최근의 한국영화를 보시면 어떤 생각이 드시는지요.

야마시타 노부히로

영화 자체의 퀄리티와 열량(heat)이 높다는 느낌입니다. 감독의 입장에서 보면 특히 배우들의 영화에 대한 의식이 상당한 수준에 있다는 생각이 들고요. 이건 2005년에 배두나 배우와 <린다 린다 린다>를 같이 만들면서 느낀 점이기도 한데요. 연기에 대한 열량이 엄청나게 높기 때문에 이런 에너지가 작품의 퀄리티까지 끌어올려 주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지 않나 합니다.

 

레이카는 뭐든 한 템포가 늦고 경제적으로도 어려워 스물다섯 나이에 대학도 졸업하지 못한 채 사진부 동아리방에 얹혀산다. (C)2023 One Second Ahead, One Second Behind Film Partners
레이카는 뭐든 한 템포가 늦고 경제적으로도 어려워 스물다섯 나이에 대학도 졸업하지 못한 채 사진부 동아리방에 얹혀산다. (C)2023 One Second Ahead, One Second Behind Film Partners

홍상현

<린다 린다 린다>는 아마 한국 관객들로서도 가장 많이 기억하고 있는 작품의 하나 아닐까 싶어요. (웃음)

그런데, 물론 <마이 백 페이지>처럼 무게감 있는 정통 사회파 드라마로도 높은 평가를 받으셨지만 역시 감독의 필모그래피는 <마츠가네 난사사건>처럼 장르적 재능을 뽐내는 코미디나 <마을에 부는 산들바람>처럼 휴머니즘의 향기가 배어나는 웰 메이드 드라마라는 두 개의 기둥이 떠받치고 있지 않나 싶습니다. 그리고 이 두 가지 특징이 조화된 <코타키 형제와 사고팔고> 같은 수작이 또한 큰 사랑을 받았는데요. 이처럼 유쾌하지만 캐릭터를 소모하지 않고, 궁극적으로는 관객에게 무해한 감동을 전해주는 스토리텔링의 힘은 어디에서 오는 걸까요.

야마시타 노부히로

글쎄요. (웃음) 제가 잘 설명을 드릴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만, 저는 하나의 작품을 만들 때마다 이야기 자체를 전개하기보다 늘 등장인물들이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움직일 것인지에 대해서 생각합니다. 그러니 말씀하신 '스토리텔링'과 관련한 감독의 역할 또한 영화 안에서 캐릭터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를 고민해 풀어내는데 초점이 맞춰지죠.

 

홍상현

그런데, 이번 작품은 이례적으로 타이완영화 <마이 미씽 발렌타인>(2020)의 리메이크 작품이었습니다. 제 경우, 보통 야마시타 노부히로 감독의 영화라면 오리지널의 느낌이 강했거든요. 어떤 계기로 이 기획이 실현될 수 있었는지요.

야마시타 노부히로

그간 만들어 온 영화중에 절반 이상이 원작이 있거나 이른바 '기획물'로 불리는 작품들이었어요. 그렇다 보니 딱히 오리지널이 아닌 것에 대한 거부감은 없었는데요. 그렇다 하더라도 기존에 나와 있는 영화를 리메이크를 하는 건 처음이었기 때문에 처음에는 살짝 긴장이 되더라고요. 그러다가 진옥훈 감독의 오리지널버전을 보게 되었는데, 재미도 있지만 무엇보다 영화를 바라보는 연출자의 순수함이 느껴져서 감동했습니다. 이 점이 고민을 정리하고 리메이크 제작에 본격적으로 뛰어드는 계기로 작용했죠.

 

길거리 뮤지션 사쿠라코. 어렵게 다시 만난 첫사랑에게 말 한 마디 건네보지 못하고 속을 끓이는 레이카의 연애기상도에 먹구름을 드리운다. (C)2023 One Second Ahead, One Second Behind Film Partners
길거리 뮤지션 사쿠라코. 어렵게 다시 만난 첫사랑에게 말 한 마디 건네보지 못하고 속을 끓이는 레이카의 연애기상도에 먹구름을 드리운다. (C)2023 One Second Ahead, One Second Behind Film Partners

홍상현

아울러, 지금껏 야마시타 노부히로 감독의 작품이라면 무카이 코스케 작가(<바보들의 배>, <후나키를 기다리며>, <린다 린다 린다>, <마츠가네 난사사건>, <마이 백 페이지>, <모라토리움 기의 다마코> 등의 작가)가 각본을 담당하는 경우가 많았는데요. 이번에는 이례적으로 '재주꾼' 쿠도 칸쿠로 씨가 <코타키 형제와 사고팔고> 이후 다시 한번 야마시타 감독 작품의 시나리오를 맡아 화제가 되었습니다.

야마시타 노부히로

평소 쿠도 칸쿠로 씨에 대해 "표현의 괴물"이라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는데요. 워낙 작업량이 엄청나고 영화, 드라마, 연극, 뿐만 아니라 연기자로도 활약하고 계신 분이라 시나리오 작업에도 시간이 걸릴 거라 예상했었습니다. 그런데 웬걸요. 전혀 아니더라고요. (웃음) 지금껏 같이 일해 온 작가 중에 가장 작업속도가 빨랐습니다. 당연히 수정까지 포함해서요. 게다가 그렇게 작업속도가 빠르면서 작품의 본질에 대해서도 너무 잘 파악하고 계시더라고요.

 

홍상현

작품의 본질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 김에 말씀드리면, 원작에서는 타이완 남부였던 이야기의 무대가 교토로 바뀌면서 (물론 내용 자체도 대단히 신선해졌습니다만) 전혀 새로운 분위기의 작품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야마시타 노부히로

스토리의 큰 흐름은 동일하지만, 확실히 말씀하시는 것처럼 주인공들의 성별을 뒤집고 무대도 교토로 바꾸면서 작품이 주는 인상이 무척 달라지기는 했다고 생각합니다. 아울러 또 다른 결정적 차이가 있는데요. 바로 진옥훈 감독과 같은 영화를 대하는 '천진함'이나 '순수함'이 제게는 없었다는 거예요. 그러니 영화 자체의 톤(tone)이 전혀 달라질 수밖에 없었죠. 따라서 리메이크버전은 오리지널버전에 비해 영화의 체온이 좀 낮은 것 같습니다. 허나, 그만큼 관객 여러분께서 감정을 이입할 여지도 많아지지 않았을까 해요.

 

야마시타 감독은 「일초 앞, 일초 뒤」에 대해 ‘어린 날의 약속을 지키려는 한 소녀의 이야기’라고 설명했다. (C)2023 One Second Ahead, One Second Behind Film Partners
야마시타 감독은 「일초 앞, 일초 뒤」에 대해 '어린 날의 약속을 지키려는 한 소녀의 이야기'라고 설명했다. (C)2023 One Second Ahead, One Second Behind Film Partners

홍상현

작품을 보기 전까지 코미디에 로맨스, 판타지까지 섞여 있는 이 복잡한 이야기를 어떻게 풀어 가실지 조금 불안하기도 했는데요. 엔딩크래디트가 올라가는 시점에는 역시 기우였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렇지만 한 편으로 이제까지의 작품과 다소 차이가 있는 <일초 앞, 일초 뒤>를 '야마시타 노부히로 풍 감동무비'로 완성하기 위해 어떤 부분에 힘을 기울이셨는지 궁금해지기도 합니다.

야마시타 노부히로

고백하자면, 저는 이 영화를 제가 만들었으면서도 솔직히 결말부가 관객 여러분께 어떤 카타르시스를 전해줄지 알지 못하는 채 촬영일정을 이어갔습니다. 어차피 오리지널버전과 같은 상황이 제시되는지라 결국 두 주인공이 다시 만나게 된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 시점에서의 감정을 현장에서 배우들을 보면서 구체화해 보고 싶었거든요. 다만, 한 가지 대전제는 설정해 놓았습니다. <일초 앞, 일초 뒤>라는 작품은 다름 아닌 '어린 날의 약속을 지키려는 한 소녀의 이야기'라는 거.

 

홍상현

한편, 감독께서는 캐스팅하신 배우들에게서 보통 관객이 인식하고 있었던 것과 전혀 다른 매력을 이끌어내서 작품의 참신성을 높이는 연출로 유명하신데요. 이번 오카다 마사키 씨의 경우도 그랬습니다. 촬영현장에서 어떤 디렉션을 하셨는지요.

야마시타 노부히로

오카다 마사키 군과는 16년 전 <마을에 부는 산들바람>에서 함께했습니다. 당시에는 둘 다 아직 젊은 나이였다 보니 상대적으로 부족한 '크리에이터의 서랍'을 뒤져가면서 필사적으로 작품을 만들어 냈지만 이번에는 서로의 경험치가 어느 정도 쌓여있는 상황인지라 차분하게 의견을 교환하면서 영화를 완성할 수 있었어요. 하지만 감독으로서 딱히 오카다 군의 새로운 일면을 끌어내야겠다는 생각은 별로 하지 않았던 까닭에 관객 여러분께서 직접 지금까지와는 다른 그의 모습을 찾아내 주시면 기쁠 것 같습니다.

 

첫 데이트를 전날 밤 설렘 속에 잠이 들었다가 눈을 뜬 하지메. 이게 무슨 일일까. 온 몸은 햇볕에 벌겋게 익은 상태에다 소중한 24시간이 통째로 사라졌다. 그런데 동네 사진관의 낯선 사진은 도대체 누가 찍었을까. (C)2023 One Second Ahead, One Second Behind Film Partners
첫 데이트를 전날 밤 설렘 속에 잠이 들었다가 눈을 뜬 하지메. 이게 무슨 일일까. 온 몸은 햇볕에 벌겋게 익은 상태에다 소중한 24시간이 통째로 사라졌다. 그런데 동네 사진관의 낯선 사진은 도대체 누가 찍었을까. (C)2023 One Second Ahead, One Second Behind Film Partners

홍상현

레이카 역의 키요하라 카야 배우가 캐릭터를 소화하는데 엄청나게 공을 들였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야마시타 노부히로

키요하라 카야 씨 자체가 워낙 개성적이고 심지가 굳은 배우이기 때문에 원작의 이미지를 조금씩 바꿔가면서 촬영을 진행했습니다. 각본에 키요하라 배우를 붙여가는 게 아니라 각본 속의 레이카를 키요하라 배우 본인에게 다가가게 하는 작업이었지요. 각본상의 레이카는 좀 더 푹신푹신하고 코믹한 인상이었거든요. 그런데 막상 키요하라 배우가 이런 느낌으로 연기하는 걸 보니까 별 감흥이 들지 않더라고요. 해서, 키요하라 배우 특유의 과묵하면서도 심지가 굳은 캐릭터를 살려 레이카라는 캐릭터를 연출해 나갔습니다.

 

홍상현

제가 감독의 작품들에 각별한 애정을 갖게 되는 건, 매번 유머와 함께 사람들에게 위로가 되는 메시지를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일초 앞, 일초 뒤>라는 영화를 통해 전해주시고 싶었던 메시지는 무엇이었는지요.

야마시타 노부히로

오히려 저로서는 그간 영화를 만들어 오면서 딱히 어떤 메시지를 의식했던 적이 없었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실지는 그저 관객 여러분의 몫으로 남겨두자는 의도에서였지요. 그런데 <일초 앞, 일초 뒤>의 경우는 조금 달랐다고 말씀드릴 수 있겠네요. 오리지널버전이 존재하니까. 오리지널버전을 보다 보면 인상적인 말이 나와요.

"스스로를 사랑하자. 당신을 사랑하는 사람이 있으니까."

 

홍상현

하지메의 여동생의 남자친구 '미치루'로 분한 시미켄 배우는 한국에서 구독자 73만 9천 명, 인기영상 한 편의 조회 수가 5만을 넘는 인기 유튜버이기도 합니다. 특정 장르가 아닌 정극에 출연한 시미켄 배우는 어떻던가요.

야마시타 노부히로

시미켄 배우는 대단히 겸손한 분이고, 연기에도 정말 진지한 태도로 임해주셨습니다. 물론 본업 쪽에서 상당한 커리어를 가지고 계시지만 <일초 앞, 일초 뒤>의 현장에서는 전혀 생소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극영화의 연기자'로서 참여해주셔야 했는데요. 정말 신인배우처럼 모든 것을 '제로 베이스'로 돌려놓고 촬영에 임하는 모습을 보여주셨습니다.

 

잔잔하고도 긴 여운을 남기는 무해한 웃음. 야마시타 감독의 희극적 재능은 「일초 앞, 일초 뒤」에서도 어김없이 발휘된다. (C)2023 One Second Ahead, One Second Behind Film Partners
잔잔하고도 긴 여운을 남기는 무해한 웃음. 야마시타 감독의 희극적 재능은 「일초 앞, 일초 뒤」에서도 어김없이 발휘된다. (C)2023 One Second Ahead, One Second Behind Film Partners

"<일초 앞, 일초 뒤>의 제작은 제게 가히 '실험'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의 의미를 갖는 새로운 도전이었습니다. 완성되는 순간까지 한마음으로 함께해 주신 모든 스태프ㆍ캐스트 한 분 한 분의 놀라운 능력에 힘입어 해낼 수 있었죠. 제가 제작한 리메이크버전도 그렇지만 진옥훈 감독의 오리지널버전도 놓치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비교하면서 즐기는 재미가 있지 않을까요? (웃음)

한국 관객 여러분께서도 코로나19 사태 3년 동안 무척 힘드셨을 거예요. 저도 그랬답니다. 영화를 만들 수도, 사람들과 어울릴 수도 없는 고독한 시간이었거든요. 이제 드디어 극장에서, 영화를 통해 한국 관객 여러분을 직접 만나 뵙고, 함께할 수가 있게 되어 너무 기쁩니다. 우리 극장에서 꼭 다시 만나요!"

 

부산국제영화제 일정을 마치고 일본으로 돌아간 뒤, 바쁜 스케줄을 쪼개어 인터뷰에 응해 준 야마시타 감독. 인터뷰일 직전까지 촬영현장에 있었다고 이야기하면서도 지쳐있기보다 도리어 즐거워하는 눈치다. 하긴, 1999년 데뷔 이래로 한 해도 쉬어본 적이 없는 그에게 팬데믹의 길고 어두운 터널을 벗어난 최근의 일상이 하루하루 얼마나 감격스러울까. 역시나 <일초 앞, 일초 뒤> 이후에만 네 편의 장편 촬영을 끝냈는데, 심지어 그중 한 편은 애니메이션 데뷔작이란다. 어쩌면 내년에는 부천국제애니메이션페스티벌에서도 그를 만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인터뷰 홍상현 영화평론가, krpopper@ccoart.com]

홍상현
홍상현
 《코아르》 운영위원, 고토부키홈빌더 영화영상사업부 프로듀서.
정치학과 영상예술학 두 분야의 학위를 소지. 인문사회과학과 영화이론을 넘나드는 전문적 식견으로 한일 양국 매체에 분석기사를 쓴다. 파리경제대 토마 피케티와 『21세기 자본』 프로젝트를 진행한 도쿄대 연구실 출신.
 프로듀서를 맡은 장편 다큐멘터리영화 <포 디 아일랜더스>는 2008년 제주영화제 개막작이었다.
 2013년부터 월간 《게이자이》에서 담당하는 경제평론지면이 에히메대 와다 제미나르의 교재로 쓰인다. 국제영화비평가연맹(FIPRESCI) 지부인 일본영화펜클럽 회원. 『마르크스는 처음입니다만』 등 다수의 스테디셀러를 소개해온 번역가로도 유명하다.
 일본국제교류기금이 선정하는 “세계의 영화인 7인” 중 1인이며 일본 TBS(채널 6) 주최 디지콘 6 아시아 심사위원, 《마이니치신문》 영화웹진 《히토시네마》 필진 및 마이니치영화콩쿠르 심사위원, 다카사키영화제 시니어 프로듀서,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전주국제영화제 어드바이저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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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지혜 2023-11-14 17:00:27
뭔가 해보려 애는 쓰지만
제대로 해내는게 없는 공감이네요.
늘 서둘러서 손해보는 사람도
늘 좀 늦는 사람도
적기, 라는 타이밍의 미스가 만든
운명의 실타래인 걸까요?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