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수의 싸구려 이미지 시대] '인터넷 밈'은 MCU보다 거대한 유니버스를 만든다
[김경수의 싸구려 이미지 시대] '인터넷 밈'은 MCU보다 거대한 유니버스를 만든다
  • 김경수
  • 승인 2023.10.19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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밈에시스Memesis #1 : 인터넷 밈의 조상

'인터넷 밈'을 딱 꼬집어 정의하기는 참으로 어렵다. 평소 우리가 인터넷 밈을 느낌적인 느낌으로 쓰기 때문이다. 사실 인터넷 밈의 정의를 몰라도 인터넷 밈을 쓰는 데에는 별 지장이 없다. 오히려 정의를 모르는 편이 인터넷 밈의 재미를 더욱 만끽할 수 있는 조건이기도 하다. "인터넷 밈의 정의를 아십니까?"는 "도를 아십니까?" 만큼 곤란하고도 어색한 질문인 셈이다. 인터넷 밈으로 석사 논문을 쓰고 단행본까지 쓰는 필자의 입장에서도 인터넷 밈을 한마디로 설명하기는 분명 어려운 일이다.

인터넷 밈의 정의부터가 그러하다. 리차드 도킨스는 『이기적 유전자』 11장에서 '밈meme'이라는 신조어를 제안했다. 원래는 모방하다라는 뜻을 지닌 mimeme라는 희랍어 동사를 유전자를 뜻하는 영어 Gene과 운율이 만들어지도록 임의로 비튼 것이다. 리차드 도킨스는 인간이나 생명체는 유전자를 전달하는 매개에 불과하다는 논쟁적인 주장으로 학계에 파란을 불러왔다. 인간 혹은 생명체가 진화의 주체라 생각한 근대적 사유를 깨뜨린 셈이다. 그는 문화에도 이 개념을 도입한다. 밈은 문화 유전자다. 정확히는 문화 전달의 단위 혹은 모방의 단위라 정의할 수 있다. 널리 퍼져서 문화를 형성하고 유지하면서 지탱하는 모든 것이 밈이다. 유전자와 마찬가지로 복제 정확도가 높고, 생존력이 강할수록 널리 퍼진다고 본 것이다. 춤, 음악, 언어 등 모든 것이 밈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게 된다. 이 개념으로 인터넷 밈을 설명하기는 불가능하다. 인터넷에 복제되거나 유행하는 모든 문화적인 요소를 인터넷 밈이라 부르는 순간에 인터넷 밈이 아우르는 대상이 순식간에 달라진다. 알고리즘을 타고 퍼져나가는 바이럴 광고를 인터넷 밈이라 지칭할 수 없는 법이다. "과연 인터넷 밈을 어디까지 아우를 수 있을까"가 우리가 안고 가야 할 고민이기도 하다. 언어이면서도 이미지, 기호이기도 한 복잡한 오브제이기 때문이다. 우선 인터넷 밈을 뜻하는 단어 중 하나인 짤방이 이미지를 지칭하는 것을 생각해보자. 보통 인터넷 밈을 흔히들 이미지로 생각한다는 증거다. 그러므로 이미지로의 밈을 주로 이 글에서 다루게 될 것이다.

 

한국 인터넷 밈의 기원은 웃긴 대학이나 디시인사이드 등 초창기 인터넷 커뮤니티다. 오랜 시간 독재 정권에 짓눌린 한국에서는 1990년대에 이르러서야 TV 등 대중매체에 방영되는 대중문화가 아니라 하위문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물론, 들국화 등 언더그라운드 문화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참여문학이냐 순수문학이냐 등으로 대표되는 정치적인 문제로 수렴되지 않는 새로운 문화가 있어야 했다. 신세대는 때마침 PC통신이라는 새 소통 공간을 발견했다. PC통신은 현실에 구속되지 않는 공간으로 진보와 보수 사이에서 드러나지 않는 성적 소수자, 문화적 소수자가 드러나는 공간이기도 했다. 김영하의 <피뢰침>과 윤대녕의 <은어낚시통신>은 낙뢰를 경험하러 다니는 동아리를 발견한다든지, "존재의 시원"을 향해서 떠난다든지 하는 식으로 PC통신이 숨겨진 진짜 나를 드러내리라는 기대 아래서 쓰인 소설이다. 인터넷은 진정성을 발견하는 공간으로 지목되었고, 이 감수성은 훗날 싸이월드로도 이어진다. PC통신과 초기 인터넷 문화는 최초의 사이버펑크 소설인 『뉴로맨서』의 세계관을 계승한 것이다. 무법지대이되 진정한 나가 존재하는 사이버 스페이스와 그 바깥의 평범한 시민으로의 나가 분리된 존재로 있어서다. 한국 인터넷 밈은 인터넷에서 무엇이라도 말하고 싶은 청년 세대의 발버둥인 셈이다. 흔히들 그때의 감성을 엽기라고들 한다. 이모티콘과 이모지 등으로는 도저히 엽기를 드러낼 수 없어서, 인터넷 밈이 등장해야만 했다. 인터넷 밈은 그간 대중매체에서 대중에게 각인시키려 한 유행어와는 다른 데에서 시작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인터넷 밈은 신조어가 아니다. 인터넷 밈은 보통 합성 소스가 발굴되어야 성립된다. 합성 소스는 훗날 인터넷 밈으로 발전할 수 있는 여지가 있는 이미지다. 인터넷 밈은 하나의 합성 소스를 쓴다는 규칙을 공유하는 한에서 상상된 공동체를 만든다. 합성 소스는 우연히 공급된 공공재인 셈이다. 인터넷 밈은 영화나 드라마, 사진 등에서 잘라낸 합성 소스로 제작된다. 때마침 포토샵이 널리 쓰이고 엽기 등 B급 문화가 유행했다. 합성 소스를 공유한 유저끼리는 합성 소스로 더 웃기고 저속한 사진을 만드는 경쟁인 드립이 이루어졌다. 거기서 밈이 탄생했다. 이를 바탕으로 인터넷 밈을 고전적으로 정의해보자. 우연히 발굴된 합성 소스가 밈화를 거쳐서 탄생한 이미지를 지칭한다. 문제는 합성 소스 발굴에 있다. 합성 소스를 발굴하는 이의 소비를 눈여겨보아야 인터넷 밈으로 발전할 여지가 있는 이미지를 발견할 수 있다.

 

ⓒ <모던타임즈>(1936)
ⓒ 유튜브 <치즈분수 치킨과 함께 먹방...!!>, 테이스트 훈 

합성 소스를 발굴하는 유저에게는 사진과 영화, 광고 등 장르의 경계가 모호해진다. 고전과 컬트, 신작의 위계마저도 사라진다. 합성 소스를 발굴하는 이에게 중요한 것은 언어로 훔쳐다가 쓸 이미지이기 때문이다. <시민 케인>(1941)이든, <피식대학>이든 그냥 훔칠 만한 이미지를 마련한다면 똑같다. 근대적 예술이 지적재산권의 성립과 함께 탄생한 예술이라면, 인터넷 밈은 정확히 그 경계에 도전하고 있다. 지적재산권이 사라진 불법의 경계에 위치한다. 한국의 초창기 인터넷 밈이 영화에서 발달한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용쟁호투>(1973)에서 비롯한 '싱하형'이 가장 유명할 것이다. 싱하형 캐릭터의 원본 이소룡은 원래부터 브루스플로테이션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이소룡스러움을 따라한 B급 영화가 양산될 정도로 컬트적인 이미지다. 영화연구자 이영재는 「원본없이 액션! 벽돌의 변증법 혹은 인용의 상품경제학」에서 브루스플로테이션이 "내셔날 시네마가, 내셔날 시네마를 이루어내는 감독, 배우, 제작자 등의 특정 이름들이, 한 편의 영화를 규정짓는 최저치의 조건"이 사라져 닫힌 체계로의 작품work의 개념이 사라진 작품이라고 본다. 작품도, 국적도 없는 이 브루스플로테이션 작품의 끝은 바로 싱하형이다. 브루스플로테이션마저 이소룡이라는 원본을, 아시안 마셜 아츠(1960년대에 한국과 홍콩을 중심으로 한 무협 영화)라 불리는 장르 영화를 기반으로 한 재생산에 그쳤다. 이때 모방된 것은 이소룡의 기예를 구현하는 육체적 이미지다. 싱하형은 이소룡을 완전히 사라지게끔 한다. <용쟁호투>에서 숙적을 죽이고 포효하는 이소룡의 표정을 캡처한 싱하라는 유저가 처음 쓴 이미지다. 이 이미지는 이소룡이 아닌데도 이소룡과 동등한 이미지가 된다.

인터넷 밈의 세계는 원저자의 존재감이 사라져 있다. <모던타임즈>(1936)의 찰리 채플린이 식사 기계의 오작동을 마주하는 장면과 게임 유튜버 테이스티 훈이 기계가 오작동해 모짜렐라 치즈가 휘날리는 장면은 인터넷 밈의 세계에서 별 차이가 없다. 뤼미에르는 영화의 조상이 아니라 <눈싸움>(1901)으로 볼 때는 최초의 릴스를 만든 사람이다. 영화사를 모독하려는 의도가 아니다. 영화가 영화관이라는 공간을 벗어나서 디지털 파일이 된 순간부터 예견된 것이다.

 

뉴미디어 이론가 레프 마노비치는 모든 것이 디지털화된 뉴미디어에 이르러서 모든 스크린이 회화가 되고, 스크린에서 등장하는 둘 이상의 대상이 물 흐르듯이 합성되면서 새로운 시대의 영화가 생길 것으로 생각했다. 그는 디지털 합성이 발달한 1990년대의 미학을 매끄러움과 연속성으로 정의한다. 단어 그대로다. CG가 그려지는 디지털 스크린에서는 어떤 요소가 더해지든지 간에 매끄럽게 합성된다. 이미지의 전환은 이제 컷이나 디졸브 등 고전적인 편집이 아니라 연속적인 전환을 통해서 가능해진다. 제임스 캐머런의<터미네이터>시리즈가 준 충격은 인간의 형상을 지닌 터미네이터가 녹아내리는 것을 롱테이크로 포착해서다. 이는 그 이미지를 그리는 디지털 정보의 본질이 이전의 숫자를 다른 숫자로 변환했기 때문이다. 레프 마노비치는 이를 키노 브러시라는 말로 드러낸다. 그에게 디지털 영화는 "라이브 액션 소재+그리기+이미지 프로세싱+합성+2차원 컴퓨터 애니메이션+3차원 컴퓨터 애니메이션"이다. 그는 <포레스트 검프>에서 JFK가 등장하는 순간이 디지털 영화 미학의 시작이라고 본다. JFK는 포토샵으로 그려진 존재고, 그는 실제 인물인 톰 행크스와 별 차이 없이 스크린에 등장한다.

인터넷 밈은 이 뉴미디어 미학을 정면으로 거스른다. 뉴미디어와 인터넷 밈은 모든 것이 비트화된 디지털 영화를 바탕으로 한다는 점에서는 공통점이 있다. 다만, 레프 마노비치가 스크린의 모든 것이 매끈히 연결될 예상한 것과 다르게 인터넷 밈은 이미지 사이의 과격한 충돌을 기반으로 한다. 뉴미디어의 미학에 따라서 매끈해지는 순간에 인터넷 밈은 더는 인터넷 밈으로 불리지 않게 된다. 인터넷 밈의 미학적 의의는 하나의 스크린 안에 둘 이상의 그림체가 공존할 수 있는 브리콜라주의 고전적 미학이 디지털 시대에 살아있다는 데에서 온다. 최근에 유행한 해피캣 밈을 예로 들면 해피캣은 속된 말로 영상에서 누끼를 딴 고양이다. 해피캣 밈의 다른 고양이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이 해피캣 속의 고양이는 다른 콘텐츠에서 유래된 것임에도 인터넷 밈 차원에서는 같은 세계에 속하게 된다. 인터넷 밈은 스크린에 있는 모든 것이 매끈하게 봉합되는 뉴미디어의 미학에 따르는 MCU에 저항하는 또 하나의 유니버스를 만든다.

 

ⓒ <몬티 파이튼의 성배>(1975)

인터넷 밈의 선조로 이야기할 수 있는 영화로는 <몬티 파이튼의 성배>(1975)가 있다. 이 영화는 코미디의 비틀즈라고도 불리는 몬티 파이튼의 극장판 영화다. 이 팀은 원래 BBC에서 1969년부터 1974년까지 <몬티 파이튼의 비행 서커스>라는 코미디 쇼를 진행한 것으로 유명하고 활동을 끝마친 다음부터 영화를 찍기 시작했다. 테리 길리엄 등 추후에 거장이 될 감독도 있고, 더글라스 애덤스처럼 전설적인 작가가 될 멤버도 있다. 나머지 멤버도 저마다의 발자취를 남겼다.

아서왕의 성배 전설을 괴상한 유머로 패러디한 이야기를 그린 <몬티 파이튼의 성배>는 50년 전에 영화인데도 병맛의 기원으로 불리면서 아직도 컬트적인 인기를 누리는 중이다. 물론, 이 영화는 비운의 걸작이 아니다. 개봉 당시에는 그 해 개봉한 <록키 호러 픽처쇼>와 함께 심야 극장에서 상영되며 컬트 영화로 불렸다. 이 영화의 인기는 지금도 이어지고 있으며, 인터넷 밈으로 가공되어서 여기저기에 퍼져나가고 있을 것이다. 이 영화에서 파생된 합성 소스가 가득해서다. 한국에는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에서 패러디한 만렙 토끼 에피소드가 유명하다. 아서왕과 원탁 기사단이 괴물 토끼를 조심하라는 멀린의 경고를 무시하고, 토끼를 죽이러 갔다가 몰살당하는 장면에서 비롯한 것이다. 토끼가 알고 보니까 가장 무서운 동물이었고, 토끼가 마치 만렙 보스와 같다고 만렙 토끼라는 별명이 붙은 것이다.

<몬티 파이튼의 성배>는 지금의 <SNL>과 <피식대학>의 원형으로 볼 수 있다. 코미디 영화의 거장인 찰리 채플린과 버스터 키튼, 그리고 자크 타티가 육체의 움직임을 기반으로 코미디를 구성한 데에 비해 몬티 파이튼은 스케치 코미디를 기반에 두었으며, 초현실주의 개그라는 장르를 개척했다. 초현실주의 개그는 초현실주의의 영향을 받아서 여러 괴상한 이미지를 스크린에 배치하고, 소통이 부재하는 부조리한 대화를 삽입하는 방식으로 구성된다. 멤버 전원이 옥스퍼드 대학교 등 고학력자이니만큼, 먹물 개그도 살짝쿵 섞여 있다. 바다 건너 스페인의 영화 감독인 루이스 부뉴엘 정도가 초현실주의 코미디를 구사했다. 다만 루이스 부뉴엘이 죽기 전에 찍은 초현실주의 코미디 3부작은 짤방이 되기에는 검소한 미장센을 지니고 있어서 짤방이 쓰인 적은 잘 없다. 몬티 파이튼은 이에 비해서 과장된 극적 연기를 선보이고, 둘 혹 셋 정도의 부조리한 이미지가 격렬히 충돌하는 순간을 자주 그려낸다. 아서왕은 왕권을 논하는데, 아서왕을 처음 본 농민은 코뮤니즘을 논한다든지 하는 식이다.

레프 마노비치는 20세기의 영화가 여러 시간을 매치컷으로 연결하는 시간적 몽타주에 몰두했으며, 뉴미디어가 이에 대한 대안으로 공간적 몽타주라는 개념을 드러낼 것이라 생각했다. 레프 마노비치는 스크린에 있는 오브제가 공존하는 공간적 상상력이 발달할 것으로 보았다. 이는 틀린 말은 아니다. 다만 레프 마노비치가 의도한 것은 화면 분할 컷이라든지, 스크린 크기 자체를 확장하는 아이맥스 등일 것이다. 인터넷 밈은 추가와 공존을 바탕으로 하는 공간적 몽타주이되, 모든 것이 정보가 되지 않고 충돌한다. 인터넷 밈, 혹은 인터넷 밈적인 것은 이 충돌을 무기로 삼는다. <몬티 파이튼의 성배>가 남긴 유산은 바로 인터넷 밈이 미학적으로 영화가 될 가능성이 있다는 데에 있다.

[글 김경수 영화평론가, rohmereric123@ccoart.com]

김경수
김경수
 어릴 적에는 영화와는 거리가 먼 싸구려 이미지를 접하고 살았다. 인터넷 밈부터 스타크래프트 유즈맵 등 이제는 흔적도 없이 사라진 모든 것을 기억하되 동시에 부끄러워하는 중이다. 코아르에 연재 중인 『싸구려 이미지의 시대』는 그 기록이다. 해로운 이미지를 탐하는 습성이 아직도 남아 있는지 영화와 인터넷 밈을 중심으로 매체를 횡단하는 비평을 쓰는 중이다. 어울리지 않게 소설도 사랑한 나머지 문학과 영화의 상호성을 탐구하기도 한다. 인터넷에서의 이미지가 하나하나의 생명이라는 생각에 따라 생태학과 인류세 관련된 공부도 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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