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LK ABOUT] 실사화 영화 #2 : "디즈니는 무엇을 제거했는가?"
[TALK ABOUT] 실사화 영화 #2 : "디즈니는 무엇을 제거했는가?"
  • 김경수
  • 승인 2023.07.20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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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메이션의 영화화가 아니라 영화의 애니메이션화로
ⓒ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실사화를 볼 때면 '왜 원작을 가만히 놔두지 못할까'하는 의문이 먼저 생긴다. 디즈니든, 넷플릭스든, 일본에서든 애니메이션을 실사로 찍는 데에 혈안인 지금 극장 상황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무엇보다도 그 실사화가 팬이든 비난당할 것이 뻔한 상황인데도, 이를 무릅쓰고 제작에 착수하는 제작사를 볼 때마다 뒤틀린 욕망에 사로잡혀 있다는 인상을 지우기가 힘들다. 어떤 관객을 대상으로 한 영화화인지 도저히 가늠되지 않는다. 특히, 최근에 넷플릭스에서 진행된 <카우보이 비밥>과 <원피스>의 실사화 프로젝트가 그러하다. 특히, <원피스>의 예고편은 여러모로 경악스럽다. 이 두 작품에서는 애니메이션에 대한 덕력과 그 애니메이션을 영상 문법으로 번역하겠다는 도전 정신이 보이지 않는다. 그 정신의 이면에는 애니메이션을 있는 그대로 영화로 그려내겠다는 야심이 불가능하다는 것에 대한 겸허한 인정이 있다.

최근 디즈니와 넷플릭스의 실사에서는 되려 영화를 애니메이션보다 우위로 두면서도 세계적인 애니메이션의 IP를 착취하고야 말겠다는 오만이 보일 뿐이다. 그 오만을 뒷받침하는 것은 인간이 자본으로 만화적 신체를 대신할 수 있다는 인간중심주의와 애니메이션 장르에 대한 몰이해다. 비주얼을 그대로 그려낸들 영화와 애니메이션의 경계는 절대 무너지지 않는다.

 

영화 <라이온 킹>  ⓒ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애니메이션 실사화의 큰 축을 담당하는 디즈니는 동화를 원작으로 하든, 그에 버금가는 오리지널 시나리오를 쓰든지 간에 오랜 세월 애니메이션을 제작한 명가다. 물론 중간에<정글북>(1994), <101마리의 달마시안>(1996) 등 간헐적으로 실사 영화를 시도한 적은 있다. 디즈니가 <포카혼타스>(1995) 등 걸작으로 평가되는 애니메이션을 계속 만든 시기이기에 실사화는 사실상 중단되었다. 오랜 세월이 지난 후에야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2010), <말레피센트>(2014) 시리즈로 실사화에 시동을 걸기 시작했다. 이윽고 디즈니가 자사의 애니메이션을 실사로 전환하려고 한 라이브 액션 시리즈가 제작됐다. <신데렐라>(2015)에서 시작해 <인어공주>(2023)에 이르기까지 8년간 이 시리즈는 온갖 잡음으로 가득했다. 언캐니 밸리 등 기술적인 문제부터, PC 등의 정치적인 문제까지 그야말로 뜨거운 감자다. 이 시리즈는 긍정적으로는 낡은 콘텐츠에 새겨져 있는 시대착오적인 가치관을 교정하는 작업이며, 부정적으로는 콘텐츠의 재탕으로도 보인다. 디즈니가 IP를 재탕하는 일은 하루 이틀이 아니다. 디즈니 역사상 이만큼 반발이 생긴 콘텐츠는 처음일 것이다.

디즈니 라이브 액션의 가장 문제적인 작품은 아마도 <라이온 킹 >(2019)일 것이다. 이 영화는 개봉하자마자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하다는 조롱이 섞인 악평에 시달렸다. 원작의 의인화된 사자와 달리 살아 움직이는 듯한 사자를 그리고 거기에다가 인간 성우의 목소리를 입힌 데에서 거부감을 느낀 것이다. 이 영화에서 느껴지는 거부감은 종종 '언캐니 밸리'(uncanny valley)라는 단어로 설명된다. 일본의 모리 마시히로가 만든 신조어로, 로봇이 인간과 비슷해질수록 호감도가 올라가지만, 어설픈 정도로만 비슷한 언캐니 밸리에 다다르면 그 호감이 기이함으로 반전되는 현상을 이야기한다. <라이온 킹 >에서 언캐니 밸리는 동물이 인간과 같은 자아를 지닐뿐더러 인간의 목소리로 말해서 생긴다. 무엇보다도 인간과 더없이 비슷한 영화 속 동물이 CG로만 제작된 데다가 그 동물의 감정을 짐작할 수 있는 표정을 지니지 않고 있어서다. 심지어 사자라기엔 그 움직임이 부자연스럽다. 로버트 저메키스의 <피노키오>(2022)에도 같은 문제가 반복된다. 로버트 저메키스는 원래 <폴라 익스프레스>(2004)와 <베오울프>(2007)등 작품에서 언캐니 밸리로 논란이 된 감독이기야 하다. 다만, 디즈니 라이브 액션에서는 인형이 살아 움직이는 듯한 비주얼로 충격을 준다. 이 뻣뻣함은 라이브 액션의 문제를 압축한다.

 

영화 <알라딘>  ⓒ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모에함의 부족

만화적 육체는 캐릭터의 성격을 직관적으로 드러내는 데에서 온다. 이 왜곡으로 인해서 탄생한 만화적인 육체는 부각되는 포인트가 생긴다. 우리가 만화적 육체에 매력을 느끼는 것은 그 포인트로 인해서다. 애니메이션 혹은 만화에서 최애캐를 정하고 고백하는 일은 (성적이지는 않더라도) 은밀한 패티시즘을 고백하는 일이기도 하다. 그 패티시즘은 일본 애니메이션에서는 '모에'(萌え)라는 이름으로도 불린다. 모에는 인물의 시그니처 포즈, 인물의 외양 등 다양한 지점에서 나온다. 원작자가 의도치 않더라도 모에 포인트가 생기기 마련이다. 이 모에에 대한 작가의 긍정과 재생산이야말로 애니메이션 장르의 고유성을 드러내기도 한다. 디즈니의 애니메이션도 마찬가지다. 원작에서 그려진 모든 캐릭터는 타원형의 얼굴에 큰 눈을 지니고 있다. (이 모에함은 <겨울왕국>에서 계승된다.) 애니메이션의 전개에서 드러나는 급전환되는 감정을 소화하고자 과장된 표정을 짓는다. 이 표정으로 인해서 디즈니 애니메이션 속 공주는 하나의 스타로 아직도 사랑받는 중이다. 반면 라이브 액션에서 공주를 연기한 배우 중 대중에게 아직도 사랑받는 배우는<알라딘>(2019)에 등장한 '나오미 스콧' 정도다.

실사로 번역하는 과정에서 인간이 과장된 표정의 모에를 연기하기가 힘들기 마련이므로 모에함이 사라지기 마련이다. <라이온 킹 >과 <정글북>은 특히 동물에다가 인간의 표정을 그려내기에 이런 차이가 더욱 크게 드러날 수밖에 없다.<라이온 킹 >의 무파사와 스카는 각자 모에를 지니고 있다. 무파사는 짙은 눈썹의 마초적인 분위기를, 스카는 퇴폐적인 분위기를 지니고 있다. 그러나 실사로 그려낸 영화에서는 모에가 드러나지 않는다. 이는 배우에게도 마찬가지다. 2015년 이후에 유행한 강한 여성 주체를 그려내겠다는 디즈니의 강박은 만화적 인물의 모에를 박탈했다. 만화 속 모에는 쿨하고 강하고, 주체적이지 않아서다. <알라딘>(2019)의 흥행은 이 모에를 되살려서다. 'Speachless'를 부르는 나오미 스콧의 과잉된 연기가 관객을 만족하게끔 한 이유다. 만화적이고 과장된 연기야말로 만화에서 막 튀어나온 듯한 매력을 안긴다. 이를 제대로 그려낸 경우는 에드가 라이트의 <스콧 필그림>(2014) 정도다. 이 영화 속 캐릭터는 너드라는 선명한 캐릭터에다가 그에 마땅한 과장된 연기로 그 캐릭터를 처음부터 드러낸다. 에드가 라이트는 온갖 그래픽을 동원해 영화에다가 선을 그리거나 만화를 삽입하는 등등 갖은 노력으로 매체의 경계를 허문다. 이는 로버트 저메키스의 <누가 로저 래빗을 모함했나>(1990)의 연장선이다. 완전 실사화의 허점을 보완하려고 애니메이션을 삽입한 경우로, 이는 차라리 솔직하다.

만화적 육체는 그 육체에 따라서 캐릭터의 성격이 결정되기 마련이다. <인어공주>에서의 에리얼이 긍정적인 성격이라 첫인상에 알아차릴 수 있는 것도 만화적 육체로 인해서다. 소설의 캐릭터는 그 대상이 그 성격을 지니기까지 어떤 삶을 살았는지가 중요한 데에 비해, 만화의 캐릭터는 그 성격이 곧장 외양으로 드러난다. 관객은 이 외양에 따라서 즉각 캐릭터의 성격을 파악하게 된다. <라이온 킹>의 원작에서 스카가 하이에나 떼를 통솔하는 장면 속 하이에나들의 외양이 그러하다. <의지의 승리>(1935)를 노골적으로 패러디한 이 장면이 납득될 수 있는 것은 하이에나가 멍청하게 스카를 따를 법하단 첫인상을 주어서다. 오타쿠의 정신분석의로 유명한 사이토 타마키는 이를 '캬라'라고 정의한다. 애니메이션에서는 서사가 생략되어도 괜찮은 이유다. 무파사는 왕처럼 생겨서 왕으로, 스카는 악인으로 생겨서 악인으로 정의된다. 애니메이션에서 작화에 재미를 느끼는 것도 이 작화가 캐릭터를 결정해서다. 이때 작화는 인간이 인간을 대하는 보통의 시선을 폐기한다. 애니메이션은 모두가 똑같은 종(種)이기에 누가 악인이고, 누가 영웅일지 모르는 일상 속 미스터리를 불식한다. 애니메이션에서의 해방감은 거기서부터 온다. 영영 횡단할 수 없는 타인과 타인 사이의 차이가 눈에 선명하게 드러나서다. 디즈니의 라이브 액션은 캬라를 캐릭터로 되돌리되 서사는 그대로 유지한다. 인물을 설명하지 않아도 될 뻔뻔함은 사라지고 거기에 1차원적인 캐릭터가 들어선다. 이 캐릭터의 공백을 서사 차원에서 그리려면 오랜 공을 들여야 해서다. 디즈니는 애니메이션의 IP를 빌려오되 그 IP를 정확한 영상 문법으로 가공할 생각은 전혀 없어 보인다.

성공적인 디즈니 라이브 액션은 이야기를 아예 재창조한<크루엘라>(2021)와<덤보>(2017)이다. 두 편은 실사 영화이기를 포기했으므로 되려 애니메이션의 문법을 그래도 살려내는 실사 영화가 되는 데에 더욱 성공했다. <크루엘라>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2006)와 <아이 토냐>(2018) 등 쟁쟁한 영화의 각본가가 <101마리 달마시안>의 빌런 크루엘라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재구성한 영화다. 원작을 그대로 그려내겠다는 의지를 버린 대신에 새 캐릭터를 발굴한 셈이다. 크루엘라는 빌런이 탄생하기까지를 다루는 피카레스크 서사다. 다만, 크루엘라는 처음부터 흰 머리와 검은 머리를 반씩 지닌 캐릭터라는 데에서 이미 캬랴적인 캐릭터다. 처음부터 관객은 이 인물이 이중적인 성격을 지니게 된다는 것을 알고 만화를 마주하듯이 영화를 따라간다. 팀 버튼의 <덤보>는 40분짜리 원작을 무리해 늘린 작품으로 허술한 서사를 지니고 있다. 이 영화는 덤보를 제외한 모든 캐릭터에 팀 버튼의 개성이 개입해 인물을 애니메이션에 가깝게 그려내고 있다. 특히, 에바 그린이 연기한 콜레트 마샹 캐릭터는 처음부터 애니메이션에 어울릴 법한 인물로 드러난다. 더욱이 높이뛰기 등으로 시그니처 포즈를 드러내는 데에서 더욱 그러하다. 이 둘은 아니메적 영화의 가능성을 언뜻 드러내지만 완전하지는 않다.

 

영화 <크루엘라> ⓒ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영화 <범죄도시3> ⓒ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아니메적 영화는 오히려 실사화를 겨냥하지 않을 때 가능하다. 애니메이션의 실사화가 아니라 영화의 애니메이션화가 오히려 애니메이션을 원작으로 하지 않더라도, 애니메이션으로 그려내기가 가능한 작품이 그러하다. 이는 캬라로 지정할 수 있는 배우로 인해서다. 과거에도 캬라로 볼 수 있는 여러 배우가 있다. '버스터 키튼', '찰리 채플린', '자크 타티' 등 코미디 배우가 그러하다. 과장된 슬랩스틱과 스턴트 연기로 기계와 상호작용하는 이들의 육체는 그야말로 만화적이다. 이는 주성치와 성룡 등으로 이어진다. 이처럼 캬라가 된 배우는 그 영화의 인상을 결정하는 데에 영향을 끼치기까지 한다.

최근 마동석은 캬라가 된 대표적인 배우다. 마동석은 근육질로 무장한 그의 육체가 문제시된다. 그의 육체는 섹슈얼리티에서 이탈되어 있다. 흔히 육체파 배우로 불리는 배우의 육체는 남성성의 상징인 식스팩 등으로 인해서 각인된다. 그러나 과잉된 육체는 되려 그 배우를 캬라로 만든다. 아놀드 슈왈제네거의 육체는 남성성이 과잉되어 있기에 미국 네오콘의 상징이 되었다. 이는 마동석의 육체에도 마찬가지다. 마요미로 그려지기도 하며, 마석도로도 그려지는 마동석의 육체는 텅 빈 캔버스처럼 만화적으로 그려질 수 있다. 마동석은 앞서 이야기한 만화적 신체가 그러하듯이 근육질이 과잉되어 있기에 반드시 강한 인물로 그려진다. 마동석의 시그니처 포즈는 맨손으로 상대방의 얼굴을 가격해서 상대방을 기절하게끔 하는 것이다. 이는 과장된 맨몸으로 인해서 개연성이 생긴다. 마동석이 주연인 영화가 애니메이션의 색채를 지니는 것은 이 때문이다. 《원펀맨》의 사이타마가 절대 이길 수 없는 존재로 상정되듯이 마동석도 마찬가지다. 그는 처음부터 절대 상대방이 이길 수 없는 슈퍼히어로로 지정된다. <미션 임파서블>시리즈 속 에단 헌트(톰 크루즈)의 스턴트가 반드시 성공하리라는 믿음이 생기듯이 말이다. 스크린에 등장하자마자 불길함이 맴도는 배리 키오건도 이와 비슷하게 캬라적인 배우다.

한편, 시그니처 포즈로 모에를 자극하는 영화도 있다. <헤어질 결심>(2021)의 서래(탕웨이), <킬링 로맨스>(2021)의 조나단(이선균)이 그러하다. "내가 그렇게 나쁩니까?" 등의 서래의 대사가 밈으로 소비된 데에는 탕웨이 배우의 서툰 한국어 억양과 문어체로 쓰인 대사가 있어서다. 해준씨를 해즌씨로 발음하는 등 배우의 서툰 연기는 되려 그 대사를 모에하게 소비하도록 한다. 또한, <킬링 로맨스>의 조나단은 "잇츠 뀻"이라는 시그니처 대사를 무한히 반복한다. 이는 인물을 만화적으로 가공해 애니메이션의 감각을 느끼게 한다. 또한 조나단의 육체는 처음에 바디 프로필로 드러나고, 그 육체로 인해서 뭐든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드러낸다. 또 중간중간에 과장된 성격은 조나단의 캐릭터를 선명히 드러낸다. 애니메이션을 영화로 그려내는 데에는 만화적 캐릭터가 절대 영화로 번역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고, 그 인위성에 집중해야 한다. 그러나 그러한 영화는 지금껏 없다시피 했다. 오히려 영화가 애니메이션보다 우위에 있다는 것을 인정하려는 파워게임만 있을 뿐이었다.

[글 김경수 영화평론가, rohmereric123@ccoart.com]

김경수
김경수
 어릴 적에는 영화와는 거리가 먼 싸구려 이미지를 접하고 살았다. 인터넷 밈부터 스타크래프트 유즈맵 등 이제는 흔적도 없이 사라진 모든 것을 기억하되 동시에 부끄러워하는 중이다. 코아르에 연재 중인 『싸구려 이미지의 시대』는 그 기록이다. 해로운 이미지를 탐하는 습성이 아직도 남아 있는지 영화와 인터넷 밈을 중심으로 매체를 횡단하는 비평을 쓰는 중이다. 어울리지 않게 소설도 사랑한 나머지 문학과 영화의 상호성을 탐구하기도 한다. 인터넷에서의 이미지가 하나하나의 생명이라는 생각에 따라 생태학과 인류세 관련된 공부도 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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