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수의 싸구려 이미지 시대] 3초의 무법자에게 바치는 송가
[김경수의 싸구려 이미지 시대] 3초의 무법자에게 바치는 송가
  • 김경수
  • 승인 2023.08.06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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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C와 AVGN, 그리고 영화 유튜버"

처음 극장에서 <D-War>를 본 날에 하염없이 눈물이 흘렀다. 영화가 끝나니까 밀린 숙제가 생각났고, 그날 가야만 하는 학원이 생각났다. 영화에 처음으로 실망한 날이었다. 영화를 잘못 고르는 까닭에, 인생이 한 번뿐이라는 실존적인 깨달음을 얻기에 이르렀다. 이 영화를 고른 자신이 싫어서, 싫존存주의자가 되었다. 오죽하면 영화가 무서워져서 한 달 가까이 영화관에 안 가고 지냈다. 당시 '영화가 왜 별로인지'는 생각나지 않는데, 영화를 보려고 바친 시간을 생각하니 영화를 한 번 보는 데에 드는 수고를 느끼게 되었다. 인터넷에 접속해 반응을 뒤졌다. 포털 사이트에는 한국 영화의 진일보라느니 하는 등 호평 일색이었다. 그때는 몰랐다. <D-War>가 먼 훗날 내 삶의 발목을 붙잡으리라는 것을...

 

영화비평을 제대로 쓰기 시작할 시점에야 <D-War>의 파괴력을 알게 되었다. <D-War>는 영화비평이라는 장르의 뿌리를 뽑아버리다시피 한 영화다. 비평이 처음 마케팅에 완패한 사례다. <D-War>가 개봉했을 때 진중권은 이 영화를 둘러싼 애국 마케팅을 비판한 적 있다. 당시 대중은 이 영화가 영화의 완성도와 상관없이 한국인이 할리우드에 버금가는 CG를 구현했고, 미국에 진출한 것만으로 이 영화를 찬양했다. '할리우드에 버금가는 CG라니...' 그마저 허접하기 그지없는 수준이었지만, 십 년 가까이 되는 세월이 지나고 진중권이 일당백으로 싸우고 있는 것을 보니 애잔함이 들었다. 지금은 제아무리 영화비평을 잘 쓴다 한들 《100분 토론》에 비평가가 영화를 두고 왈가왈부하는 일은 없다. 『씨네21』 정도를 제외한 영화잡지는 잇따라 폐간되었다. 영화비평가는 서서히 대중에게 딴지를 거는 일을 업으로 삼는 먹물이 되어버렸다. 아마 그때 진중권 사태를 제대로 보았더라면 영화비평가라는 꿈을 일찍이 접었을 것이 뻔했다.

그때 나는 정성일은커녕 이동진조차 몰랐다. 인생 처음으로 본 영화비평은 NC와 AVGN의 유튜브 영화비평이었다. NC와 AVGN은 해외 1세대 영화 유튜버다. 한국에서도 UCC열풍을 타고 막 유튜브가 도입되었고, 판도라TV 등 동영상을 올릴 수 있는 국산 플랫폼도 생겼다. 온갖 해외 UCC가 번역되었으며, NC와 AVGN도 이즈음 인터넷 곳곳에 뿌려졌다. 지금 NC와 AVGN을 기억하는 이는 드물 것이다. 딱히 주류도 아니었을뿐더러, 이 두 유투버의 상스러움은 지금 그 어떤 유튜버도 따라잡지 못할 정도다. 이 둘을 볼 만한 이는 영화비평가로 살아갈 만큼의 시네필이 아니다. 그저 영화는 거들 뿐이다. 오히려 영화를 파괴하는 데에 더 재미를 두는 너드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사우스파크>나 <해피 트리 프렌즈> 등 엽기 감수성이 유행하는 시기에 이만한 엽기적인 영상은 드물었다. 사실 <심슨네 가족>과 <네모바지 스폰지밥>이라는 경량화된 엽기 콘텐츠가 있기는 했다. 거기에 성이 차지 않는 이는 인터넷에 몰려들었다.

또한 이 둘이 유행을 이끈 것은 이 둘의 감수성이 당시에 유행하기 시작한 개드립 유머와 맞닿아 있어서다. 개드립은 개와 애드립의 합성이다. 우선 애드립은 배우가 맥락에 따라 추가한 대사나 설정 등을 이야기한다. 애드립은 그만큼이나 상황 이해력과 순발력, 즉흥성이 중요하다. 즉 유머로 드립을 하는 이는 모든 순간이 진지하지 않다. 그 틈을 파고들어서 농담을 할 수 있는 것에 불과하다. 개드립은 DC인사이드 악기 갤러리에서 유래한 말로 원래는 망한 드립을 뜻했다. 실패해서 오히려 더 소비되는 드립인 셈이다. 이는 개그+드립의 축약어가 되어서, 웃긴 드립을 이야기하게 되었다. 즉 실패하더라도 괜찮다는 약간의 관용이 단어에 담긴 셈이다. 일베와 남성성을 중심으로 연구하는 일부 연구자는 이를 즉흥성에 의해서 나오는 농담 뒤에 숨어서 혐오 발화의 책임을 면피하는 남성성이 담긴 것이라고도 이야기한다. 물론, 타당한 분석이라고도 생각한다. 또 AVGN과 NC의 영상은 지금 보기에는 꺼려질 수 있는 영상이기도 하다.

 

ⓒ The Angry Video Game Nerd

처음으로 본 영상은 AVGN의 <전자오락의 마법사>(1989) 리뷰 영상이었다. 닌텐도에서 처음 '슈퍼마리오'를 실사화에 개입한 영화다. 내용은 뻔하다. 비디오 아마겟돈이라는 게임 대회에 참석하러 가는 세 아이의 이야기다. 닌텐도에서는 이 영화에 투자해 《슈퍼마리오3》를 최초로 공개했다. 주인공은 최종 라운드에서 《슈퍼마리오3》 게임을 플레이하며 난관을 헤쳐 나가려 한다. AVGN의 영상은 느닷없는 데에서 영화를 헐뜯기 시작한다. 비디오 아마겟돈의 마지막 스테이지가 왜인지 지옥의 문을 여는 듯하다는 연상을 하더니 이윽고 아무말이 흘러나온다. 그는 게임 속 세계관을 관통하는 666, 사탄의 메시지 등 음모론을 이야기한다. 그러더니 닌텐도가 제 정체를 알아냈다면서 급작스레 AVGN을 공격한다. 그때 AVGN을 도우러 온몸에 개틀링건을 두른 예수가 등장해 퇴마 의식을 시작한다. 온갖 상스러운 욕설이 오가기 시작한다. AVGN의 영상은 비평이 아닌 비난이며, 해석이 아닌 해체다. 자유로운 연상, 막 쏟아져 나오는 인터넷 B급 문화 코드, 개드립, 전문성은 없되 오타쿠 팬으로의 애정 담긴 불평은 절대 바깥에 공개해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AVGN을 접한 뒤로 그의 친구이자 라이벌인 NC도 자연스레 접하게 됐다.

처음으로 NC를 본 영상은 조엘 슈마허의 <배트맨 앤 로빈>(1997) 비평 영상이다. 오프닝부터 NC는 이 작품을 비평하느니 죽겠다는 의지를 드러낸다. 이 영화가 중국의 어느 부족에서 처형 도구로 쓰인다느니, 연쇄살인마를 변호할 때 적어도 이 사람은 이 영화의 감독은 아니라느니 하는 온갖 비난이 쏟아진다. 이 영화가 물론 최악의 배트맨 영화라는 데에는 동의한다. NC는 어두워야 하는 배트맨 시리즈의 프랜차이즈화를 비난하며, 팀 버튼의 배트맨을 극찬한다. 또 조지 클루니의 배트맨 캐스팅이 얼마나 허무맹랑한지를 이야기한다. 그에 따르면 조엘 슈마허에 이르러서 배트맨은 굿즈가 되어버렸다. NC는 배트맨의 배트 슈트가 얼마나 우스꽝스러운지를 비난한다. 배트 슈트에 엉덩이와 젖꼭지가 두드러져 있으며, 심지어 배트맨이 배트 신용카드를 쓴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빌런 디자인은 어떠한가. 발연기로 인해서 분위기를 꽁꽁 얼리는 아이스맨(아놀드 슈왈제네거)의 캐릭터는 그야말로 최악이다. 이처럼 NC는 슈퍼히어로물에 대한 애정으로 무장하되, 그 작품을 한껏 욕한다. 물론 온갖 혐오 표현의 혐의를 벗기는 불가능하다. 둘의 유산은 지금도 몇몇 영화 유튜버로부터 이어지고 있다. 특히, '9bul'과 '거의없다'의 영상은 이 둘의 정수를 정제해 드러내고 있다.

물론 AVGN과 NC의 유산은 영화비평을 더는 시네필의 성역에 둘 수 없게끔 했다. 김지운 감독의<인랑>(2018)은 과할 정도의 혹평을 들었다. 왓챠 리뷰창과 네이버 영화 댓글창은 '누가누가 더 영화를 잘 모독하는가'를 두고 싸우는 듯했다. <자전차왕 엄복동>(2018)과 <리얼>(2017) 등에 달린 악플은 기념비적이기까지 하다. 이처럼 잘 망하는 데에도 실패한 영화는 관객 수를 측정하는 수치인 1UBD로 전락한다. 영화를 맘껏 모독하는 흐름을 타고 유행한 비평가가 한 명 있다. 박평식 평론가다. 그는 거침없는 독설로 유명세를 치렀다. 박평식 평론가는 개드립을 드러내는 세대가 아닌데도 개드립을 영화비평(20자 단평)으로 구사하는 몇 안 되는 비평가가 되었다. 박평식 이후로 영화비평에서 개드립을 분리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박평식과 이동진이라는 두 비평가로 드러나는 20자 평의 경향은 개드립이거나 아예 정치한 문장을 구사하는 두 갈래로 나뉘었다. 잇따라 거의 없다 등 유투버는 타성에 물든 충무로 상업 영화를 거침없이 비판하면서 이를 전문적으로 드러낸다. 영화비평은 개드립에 오염되어서 성역에 있지 않게끔 되었다. 어쩌면 영화를 가볍게 보는 이에게 최고의 비평은 개드립일지도 모른다.

 

영화 <킬링 로맨스> ⓒ 롯데컬처웍스(주)롯데엔터테인먼트

9bul과 그의 영향에 있는 유튜버는 영화비평이 서둘러서 묻은 괴작을 발견한다. 호감이 뒤섞인 짜증을 이야기하는 킹받음을 최고의 미학으로 삼기에, 그 소재가 어떻게 흥미롭고 그만큼 실패했는지를 개드립으로 설명한다. 망작 영화를 농담의 소재로만 소비한다는 비판도 이해할 만하다. 이는 되려 영화를 소개하는 창구가 될 수도 있다. 또 영화비평에서 사라진 한 차원을 보완한다. 소재주의의 허점을 비판하되 그 개연성 없음을 영화의 재미로 발견하는 작업이기도 해서다. 개연성 없고, 저속하고, 의미도 모르겠을 뿐더러 황당하기만 한 것이 오히려 작품을 판단하는 척도가 된다. 이는 괴작을 즐기는 미학이기도 하다. 마이크 저지의 <이디오크러시>(2006), 그렉 티어난의<소세지 파티>(2016) 같은 영화는 유튜버가 앞서서 발굴해낸 B급 작품이다. 타성에 물들지 않은 소재주의 영화는 마땅한 웃긴 비평이 필요하다. 저작권법에 위반되기에 모든 영상의 길이를 3초가 넘게 삽입할 수 없다. 편법을 통해서 3초를 경계로 합법과 불법의 경계를 넘나드는 3초의 무법자는 영화비평의 길을 개척했다. 토렌트가 합법의 사각지대에서 국내에는 수입되지 않거나 정식으로 접하기가 힘든 영화를 보게끔 하는 창구가 되듯이, 또 시네스트가 그를 돕듯이 영화 유튜버도 마찬가지다. 조회수를 노리는 낚시성 제목과 포르노적인 썸네일을 거는 일부 유튜버의 윤리성은 물론 지적할 만하지만.

개드립을 미학으로 삼은 이응일 감독의 <불청객>(2010) 같은 영화는 유튜버가 있어야 비평이 가능한 영화다. 잉여와 88만 원 세대 사이에 유행한 루저 감성을 가장 날것으로 드러낸 영화다. 이를 진지하게 응하는 비평으로 대해야 하는 것은 실례에 가깝다. 양병간 감독의 <무서운 집>(2015)이라든지 이원석 감독의ㅡ<킬링 로맨스>(2022)는 그 맥락의 킹받음을 이해해야 한다. 괴작 비평은 결국 감독의 사랑을 발견하는 작업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이 영화를 찍었는지를 이야기해야 해서다. 에밀 시오랑은 그럼에도 불구하고는 영원한 사랑을 안에다 담고 있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그 영원한 사랑이 작품에 담겨 있는 셈이다. 영화를 성전에 두려는 시네필과 마찬가지로 이들도 영화를 사랑한다. 나는 거기서부터 영화비평을, 세계를 보는 방식을 배우기로 했다. 이해할 수가 없는 것을 이해할 수 없는 모습으로 두고 그 엉망진창을 아름다움으로 보기로. 완성도라기보다는 그 작품이 얼마나 가지고 놀 만한 것인지 이야기하는 것이 더 익숙해졌다. OTT, 극장의 위기, ChatGPT, MCU와 시네마, 영화를 빨리 감기로 보는 세대 등... 이제는 식상하기도 한 말이다. 그런데도 우리에게 사랑할 영화는 아직도 온 세상에 가득하다. 아직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글 김경수 영화평론가, rohmereric123@ccoart.com]

김경수
김경수
 어릴 적에는 영화와는 거리가 먼 싸구려 이미지를 접하고 살았다. 인터넷 밈부터 스타크래프트 유즈맵 등 이제는 흔적도 없이 사라진 모든 것을 기억하되 동시에 부끄러워하는 중이다. 코아르에 연재 중인 『싸구려 이미지의 시대』는 그 기록이다. 해로운 이미지를 탐하는 습성이 아직도 남아 있는지 영화와 인터넷 밈을 중심으로 매체를 횡단하는 비평을 쓰는 중이다. 어울리지 않게 소설도 사랑한 나머지 문학과 영화의 상호성을 탐구하기도 한다. 인터넷에서의 이미지가 하나하나의 생명이라는 생각에 따라 생태학과 인류세 관련된 공부도 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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