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무심코 지나쳐온 모든 것들을 위하여
[Interview] 무심코 지나쳐온 모든 것들을 위하여
  • 홍상현
  • 승인 2023.06.26 11: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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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초청작 <링 원더링> 카네코 마사카즈 감독 인터뷰
「링 원더링」은 2021년 신작 「수호」가 NAFF 잇 프로젝트로 선정된 카네코 마사카즈 감독의 두 번째 장편이다. (C)2021 Ring Wandering Film Partners
「링 원더링」은 2021년 신작 「수호」가 NAFF 잇 프로젝트로 선정된 카네코 마사카즈 감독의 두 번째 장편이다. (C)2021 Ring Wandering Film Partners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되었지만 일본에서는 오랫동안 연재해 온 인터뷰 지면이나 영화제에 관련된 일이 아니라 평론가로 이름이 알려져 있는 편이다.

그런 이유로 신작을 발표할 때마다 거의 '전속'의 느낌으로 글을 쓰게 되는 감독이 몇 있다. 대표적인 이가 '만화의 신'이라 불리던 선친(데즈카 오사무) 때문에 종종 그 자신의 이력이 가려지는데, 실은 17세 때 8미리 페스티벌에서 오시마 나기사의 극찬을 받으며 학생영화의 총아로 부상한 이래 현재까지 실사와 애니메이션으로 국제영화제를 누비며, J호러, 록뮤지컬, V시네마, 하이비전 다큐멘터리, 가상 반려동물 소프트웨어, 동영상 플랫폼 영화ㆍ영화제, AI와의 만화제작 협업 등 시각과 관련된 일본의 거의 모든 분야에서 스타트를 끊었던 '비주얼리스트' 데즈카 마코토.

멜리에스의 후예를 자처하는 데즈카 마코토의 크리에이터 집단 네온테트라는 지난해 창조적 파괴를 거듭하며 장르의 새로운 스타일과 문법을 개척해 온 그의 궤적을 돌아보는 특별전(<비주얼리즘>)을 개최했다. 여기서 특히 주목받은 것이 춤, 영상, 음악을 융합, 다큐멘터리도, 드라마도 아닌 접근법으로 도쿄의 '토지'를 그려낸 '지령(Erdgeist)의 춤' 시리즈. 올해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BIFAN) 마스터클래스에서 공개될 예정인 <쓰노하즈>(2021)도 그중 한 편이다.

 

장편 데뷔작인 「디 알비노즈 트리즈」부터 일관되게 자연과 인간의 관계성에 집중하고 있는 카네코 마사카즈 감독. (C)UNIJAPAN
장편 데뷔작인 「디 알비노즈 트리즈」부터 일관되게 자연과 인간의 관계성에 집중하고 있는 카네코 마사카즈 감독. (C)UNIJAPAN

<쓰노하즈>에서 테즈카 마코토는 무용가이자 행위예술가인 이즈미 카이를 캐스팅, 지하에서 도심을 가로질러 마천루 위까지 솟아오르는 역동적인 퍼포먼스로 자신만의 '피지컬 코스모폴리스론'을 시각화한다. 어떤 대사도 없이 오로지 영상만으로 토지에 대한 범신론적 스토리텔링을 완성한 것이다. 헌데 놀라운 것은 아시아 최대의 국제실험영화제인 이미지포럼페스티벌에서 극찬을 받은 이 작품과 오늘 인터뷰의 주인공 카네코 마사카즈 감독의 두 번째 장편으로, 역시 2021년 작이자 BIFAN 초청작이기도 했던 <링 원더링>이 '한 핏줄 영화'라는 사실. 다만, 카네코 감독은 실험영화가 아닌 정극의 형태에 토지에 대한 민담, 타임슬립(time slip) 판타지, 멜로 등을 뒤섞어 장르적으로 풍성한 웰메이드 영화를 만들어냈다.

BIFAN 외에도 인도국제영화제(최우수작품상), 바르샤바국제영화제(경쟁부문 초청), 도쿄필름엑스영화제 등에서 호평받았던 영화의 내용은 이렇다.

멸종된 일본늑대와 사냥꾼의 이야기를 만화로 그리는 소스케(카사마츠 쇼)를 따라 우리는 시공을 넘나들고, 이야기 속 이야기는 흰 도화지 위의 연필 그림에서 일순간에 채색 영상으로 살아난다. 본 적이 없어서인지 소스케는 도무지 일본늑대를 그릴 수 없다. 건설 현장에서 일하던 중 늑대 두개골처럼 보이는 뼈를 발견한 그는 밤에 다시 거기에 갔다가 신비스런 소녀 미도리(아베 준코)를 만나 그녀의 집에 가게 된다. 마치 오래 알았던 사이처럼 말대꾸를 하는 아름다운 그녀. 어쩐지 자신의 작품 속 사냥꾼의 딸이 바로 그녀의 모습일 거란 확신이 든다.

 

일본늑대에 관한 이야기를 만화로 그리는 주인공 소스케는 감독의 페르소나인 동시에 동세대 젊은이들의 모습이 반영된 캐릭터다. (C)2021 Ring Wandering Film Partners
일본늑대에 관한 이야기를 만화로 그리는 주인공 소스케는 감독의 페르소나인 동시에 동세대 젊은이들의 모습이 반영된 캐릭터다. (C)2021 Ring Wandering Film Partners

홍상현

장편 데뷔작 <디 알비노즈 트리즈>로 20개 이상의 국제영화제에 초청되신 바 있지만 정작 가장 가까운 나라인 한국의 국제영화제에 오신 건 이번에 처음인데요.

카네코 마사카즈

늘 참가하고 싶었지만, 인연이 닿지 않았어요. 실은 막 영화에 손을 대기 시작했던 스무 살 시절 8밀리 필름으로 만든 실험영화 중 하나가 한국의 영화제에서 상영된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딱히 감독 초청이 이루어지지 않았던 영화제인 데다, 저도 가난한 학생 신분이라 여비를 마련할 수 없었어요. 그밖에 지난해 BIFAN의 산업 프로그램인 NAFF 잇(IT) 프로젝트에 현재 프리프로덕션을 진행 중인 <수호(The Water Sprite)>가 선정되었는데 코로나19 때문에 비대면으로 개최돼서 역시 올 수 없었고요. 그러던 중에 드디어 <링 원더링>을 불러주셔서 한국 땅을 밟게 되었습니다. 정말 기쁘네요.

 

홍상현

홍상현의 인터뷰를 통해 뵙는 분들께 매번 드리는 질문인데요. 한국영화, 즐겨보시나요? 좋아하는 작품이나 감독, 배우가 있다면 소개 부탁드리겠습니다.

카네코 마사카즈

많은 분들이 그러하듯이 저도 거장 이창동 감독의 영화를 좋아합니다. 글을 쓰시는 분 특유의, 마음의 결을 그려내는 스토리와 연출에 끌려요. 이창동 감독과 여러 번 작업을 함께했던 설경구 배우도 좋아합니다. 히로시마국제영화제 참석차 일본에 오셨을 때 무대인사도 보러 갔었죠. 또, 오래전 작품입니다만 배용균 감독의 <달마가 동쪽으로 간 이유>(1989)의 명상적인 영상세계에 매료되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극중극의 이야기에서 사냥꾼은 이미 멸종되었다는 소문이 들려오는 일본늑대를 찾아내기 위해 모든 것을 건다. 마치 모든 것들이 사라져버린 현실에 대해 결코 인정할 수 없다는 듯이. (C)2021 Ring Wandering Film Partners
극중극의 이야기에서 사냥꾼은 이미 멸종되었다는 소문이 들려오는 일본늑대를 찾아내기 위해 모든 것을 건다. 마치 모든 것들이 사라져버린 현실에 대해 결코 인정할 수 없다는 듯이. (C)2021 Ring Wandering Film Partners

홍상현

전작도 그렇지만 자연과 인간의 관계성에 많은 관심을 보이고 계십니다. 특별한 계가가 있었나요?

카네코 마사카즈

원래 그 관계성을 그림으로 그리고 싶어 했습니다. 어렸을 때 <링 원더링>의 주인공처럼 만화가나 일러스트레이터, 혹은 화가 같은 직업을 갖고 싶었거든요. 한 장의 그림으로 사람들에게 토지와 그 역사, 인간의 감정, 자연의 변화 등 다양한 것을 느끼게 해줄 수 있으니까요. 그러다가 10대 말 타르콥스키 감독의 작품을 접하면서 그림처럼 단 한 컷의 힘으로 관객들에게 여러 가지를 느끼게 해 줄 수 있는 영화가 있다는 걸 깨닫고 몰입하게 되었습니다.

처음엔 어쨌든 제가 찍고 싶은 것을 찍어보자는 생각으로 주로 물가에 서 있는 사람의 모습을 촬영했어요. 어릴 적부터 물에 이끌렸던 경험이 있거든요. 딱히 서사를 개입시키는 건 아니고 단순한 이미지로서 말이죠. 그러다 영화학교에 다니고, 시나리오를 쓰게 되면서 일본영화(에 국한되는 게 아니라 극영화가 대개 그럴지도 모르겠지만)가 주로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이야기에만 집중하고 있다는데 답답함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홍상현

답답함이라. 좀 더 자세하게 설명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카네코 마사카즈

예컨대 공원에서 배우를 촬영할 경우, 화면에는 사람뿐만 아니라 그 주변의 나무나 돌, 바람이나 땅의 흙, 공기 등의 다양한 것들이 동시에 담기게 되잖아요. 그런 것들의 존재를 무시하고 영화를 만든다는 데 위화감을 느꼈고, 따라서 촬영을 하면서 그 장소의 모든 에너지를 카메라에 담고 싶다고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같은 맥락에서 우리들 인간이 각자의 인생드라마의 배경일 뿐이라고 생각하기 쉬운 자연, 그 양자의 관계를 영화의 주제로 삼게 된 거고요.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의 시간이 쌓여있는 공간을 무참히 뒤덮어버리는 빌딩숲은 「링 원더링」을 태어나게 한 상상력의 불씨가 되었다. (C)2021 Ring Wandering Film Partners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의 시간이 쌓여있는 공간을 무참히 뒤덮어버리는 빌딩숲은 「링 원더링」을 태어나게 한 상상력의 불씨가 되었다. (C)2021 Ring Wandering Film Partners

홍상현

그럼 이제 좀 더 작품에 대한 이야기로 좀 더 들어가 볼까요? 타이틀이 어떤 의미인지 알고 싶은데요.

카네코 마사카즈

'링 원더링(Ring Wandering)'이란 원래 등산용어로 사용되는 일본식 영어인데요. 산속을 걷고 있을 때 안개 등으로 방향감각을 잃고 같은 장소를 맴도는 현상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주인공 소스케가 일본늑대를 그리고 싶어 하지만 뜻을 이루리 못하고 방황하는 모습을 보여주듯이 말이죠. 아울러 오프닝과 엔딩이 원을 그리듯이 연결되면서(Ring), 주인공이 과거로 빠져든다(Wandering)는 의미도 있습니다.

 

홍상현

<링 원더링>으로 <철도원>(1999)이래 20년 만에 인도국제영화제에서 최우수작품상을 수상하는가 하면, 바르샤바국제영화제 경쟁부문과 도쿄필름엑스영화제에 초청되는 등 늪은 평가를 받으셨는데요.

카네코 마사카즈

<디 알비노즈 트리즈>(2016)에서 다루었던 '인간에게만 국한되지 않는 다양한 생명'이라는 주제에 좀 더 깊이 파고들어 가 보고 싶었습니다. 2017년 무렵이었는데, 2020년 도쿄올림픽 개최라는 목표를 행해서 정권이 나라를 반강제적으로 이끌어가는 모습이 왠지 태평양전쟁 당시와 겹치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두려운 한편, 재재발이 진행되면서 낡은 것들이 철거돼 사라지고, 그 위를 다시 콘크리트가 뒤덮는 광경을 목도하면서 그 아래 묻혀있는 옛사람들의 기억과 생명에 대해 이야기해보고 싶어졌죠. 아울러 <링 원더링>이 도쿄를 기반으로 하는 강한 지역성을 가진 작품이기는 하나, 전쟁에 의한 생명의 상실은 지금, 이 순간에도 세계 각지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기에 보편성 또한 담보해 낼 수 있을 거라 생각했고요.

 

「링 원더링」은 현재와 과거를 뒤섞지 않는 타임슬림 판타지의 금기를 깨는 시도로도 화제를 낳았다. (C)2021 Ring Wandering Film Partners
「링 원더링」은 현재와 과거를 뒤섞지 않는 타임슬림 판타지의 금기를 깨는 시도로도 화제를 낳았다. (C)2021 Ring Wandering Film Partners

홍상현

말씀하신 부분 외에도 <링 원더링>에서 한 가지 더 돋보이는 요소가 있습니다. 바로 시간에 대한 관점인데요. 타임슬립에 관한 작품은 많았지만 언제나 현재와 과거가 뒤섞일 수 없다는 일종의 금기가 존재하고 있었거든요. 하지만 이 작품은 그 경계선을 무너뜨리고 과거와 현재를 뒤섞는 파격을 보여줍니다.

카네코 마사카즈

시간을 그리는 방법은 제가 이 작품을 통해 가장 도전하고 싶었던 분야입니다. 일반적인 시간여행 영화에서는 과거나 미래가 현재로부터 먼 곳에 있고, 거기 어떤 장치를 통해 워프(warp)하는 형태의 묘사가 많이 등장하죠. 하지만 저는 시간이라는 것도 결국 토지(예컨대 도쿄라면 도쿄, 부천이면 부천)에 지층처럼 쌓여 있는 거 아닐까 생각했어요. 현재의 지층 아래 과거의 지층이 있고, 그 위에 다시 미래의 지층이 있는 거죠. 근대 이전 세계 각지의 많은 사람들이 가지고 있던 시간개념이기도 한데요. 이런 걸 보면 원래 인간이라는 존재 자체가 시간보다 토지에 무게를 두고 살아온 거 아닐까 싶기도 해요.

 

홍상현

사진관이나 고목에 대한 묘사 등 작품의 여러 곳에서 과거의 시간이나 사물에 대한 감독의 애정이 묻어납니다.

카네코 마사카즈

주인공이 어딘가에서 누군가를 만나는 경험을 변용하는 것은 민담, 신화 등 고전 설화의 정형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변용에서 공포를 강조하면 괴담이 되고 기적으로 마무리하면 신화가 되는 거죠. 저는 이런 고전적인 이야기의 형태를 대단히 좋아해요. 신기한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잘 살펴보면 이야기가 만들어졌을 당시의 상황이나 자연환경, 화자의 삶과 경험, 세계관이 담겨있다는 걸 알 수 있지요. 저도 극영화를 통해 현대의 민담이나 신화를 만들어보고 싶었습니다.

아울러 <링 원더링>이 과거에 있었던 일을 그리지만, 저는 그것을 단지 향수어린 시선으로만 바라보고 있진 않아요. 사람들은 오래된 일, 또는 사물에 대해 종종'예전엔 있었지만 이제는 잃어버린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제 생각은 다릅니다. 오히려 지금도 엄연히 존재하지만, 우리의 가치관이나 삶의 방식이 바뀌면서 대부분 '보이지 않게 되었거나 굳이 보지 않게 된 것' 아닐까요? 그런 까닭에 소스케게 경험하는 과거와의 조우는 그가 노스탤지아에 빠져드는 게 아니라 '바로 그때, 그 자리에 존재했던 것들과 만나는 일'에 다름 아니라 하겠습니다. 따라서 신선할 수밖에 없고요.

 

「링 원더링」에서 일본늑대는 작품을 구성하는 두 가지 이야기를 연결하는 한편, 그 자체 주제를 상징하는 존재다. (C)2021 Alien Artist Film Partners
「링 원더링」에서 일본늑대는 작품을 구성하는 두 가지 이야기를 연결하는 한편, 그 자체 주제를 상징하는 존재다. (C)2021 Alien Artist Film Partners

홍상현

다음으로는 늑대에 대한 이야기를 해 볼까요? 늑대는 <링 원더링>을 구성하는 두 가지 이야기(주인공이 그리는 만화와 주인공의 일상)를 연결하는 역할 외에도 작품의 주제를 상징하는 대단히 중요한 존재로 묘사되는데요.

카네코 마사카즈

1905년의 목격정보를 끝으로 다들 멸종했다고 믿어왔던 일본의 늑대는 앞서 말씀드린 '과거에 있었지만 이제는 잃어버린 것'을 상징합니다. 늑대는 주인공이 그리는 만화에서 북방과의 전쟁이 벌어짐에 따라 군수물자로 대량의 모피가 필요해지게 되면서 멸종위기에 직면하게 되죠. 실제로도 일본에서 늑대가 멸종하게 된 큰 원인 중 하나가 러일전쟁이었다는 견해가 있고요. 그런 맥락에서 보면 <링 원더링>의 늑대는 전쟁의 어리석음을 함의하는 존재라고도 할 수 있을 겁니다.

 

홍상현

카시마츠 쇼 씨가 연기하는 주인공 소스케를 보면서 감독의 페르소나인 동시에 동세대 젊은이들의 모습을 반영하는 캐릭터라는 느낌이 들었어요. 게다가 연기자체도 무척 훌륭했는데요.

카네코 마사카즈

소스케는 한 가지 목표에 몰두하는, 그것도 늑대라는 다소 특이한 대상에 집착한다는 면이 저와 닮았습니다. (웃음) 그리고 카시마츠 배우의 연기와 관련해서 이야기해보자면, <링 원더링>은 태평양전쟁이라는 역사적 사실을 전혀 모르는 젊은이들에게 그 참상과 평화의 소중함을 일깨워주려는 목적에서 만든 영화이기도 해요. 이러한 목적을 위해 그들의 공감대를 이끌어내기 쉬운 주인공을 설정하는 게 중요했죠. 다만, 저 자신 상대적으로 이런 경험이 부족한 편이라 걱정이었는데 카사마츠 배우가 애초에 예상했던 최대치를 가뿐하게 뛰어넘는 멋진 연기를 보여주셨습니다.

 

카네코 감독은 사냥꾼의 딸인 코즈에가 등장하는 장면을 모두 촬영 첫날 찍었다고 한다. (C)2021 Ring Wandering Film Partners
카네코 감독은 사냥꾼의 딸인 코즈에가 등장하는 장면을 모두 촬영 첫날 찍었다고 한다. (C)2021 Ring Wandering Film Partners

홍상현

사진사의 딸 미도리와 포수의 딸 코즈에의 1인 2역을 맡은 아베 준코 씨의 연기도 깊은 여운을 남깁니다. 한 사람이 두 가지의 배역을 연기하는 게 아니라 정말 전혀 다른 인물로 느껴질 정도였는데요.

카네코 마사카즈

애초에 아베 준코 배우를 캐스팅한 이유가 한 작품에서 전혀 다른 인물을 동시에 연기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배우 중 하나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아베 배우는 마치 '무당 = 샤먼'처럼 맡은 배역을 내면으로 받아들이는 분이라는 인상이 있었어요. 덧붙여서 코즈에가 등장하는 신은 모두 촬영 첫날 찍었는데요. 덕분에 아베 배우가 <링 원더링>의 세계관이나 미도리와의 차이를 지나치게 의식하지 않는 '순백의 상태'에서 벼랑 끝에 서 있는 모습을 찍을 수 있었습니다. 만약 미도리를 연기한 뒤에 그 장면을 찍었다면 역 만들기가 복잡해져서 여러분께서 보신 것처럼 인물과 자연이 조화를 이루면서 나타나는 신비한 표정을 카메라에 담아내기 어려웠을지도 몰라요.

 

홍상현

또한 언급하고 싶은 것은, 코즈에와 소스케 사이의 애틋한 깊은 울림을 남긴다는 점이었는데요. 두 사람의 케미스트리를 끌어내기 위해서 어떤 디렉션을 하셨는지요.

카네코 마사카즈

케미스트리! 두 배우의 공연을 표현하는데 정말 적확한 표현이네요! (웃음)

말씀하시는 부분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이 프리프로덕션 단계부터 두 배우의 조합을 고려해 캐스팅을 진행했다는 점 아닐까 하는데요. 일단 아베 배우의 캐스팅을 정해놓은 상태에서 소스케 역으로 어떤 분을 섭외할지 몇 달 동안 고민하면서 정말 많은 배우들의 자료나 영상을 검토하거나 직접 무대에서 연기하는 모습을 직접 지켜보는 과정을 거쳤어요. 그러던 어느 날 카시마츠 배우가 출연하는 영화의 예고편을 보는 순간 '이 사람이다!'싶더라고요. 두 배우가 제 영화에 출연하는 모습이 머릿속에 그려지면서 가슴이 두근거렸습니다.

촬영을 하면서는 두 배우와 신뢰관계를 구축하고 깊이 소통하는 가운데 소스케와 미도리, 두 사람이 살고 있는 세계가 서로 다르다는 점을 각자 인지하면서도 의지와 무관하게 서로에게 가까워지는 모습을 끌어내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카네코 마사카즈 감독은 말한다. “사람들은 오래된 일, 또는 사물에 대해 종종‘예전엔 있었지만 이제는 잃어버린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제 생각은 다릅니다. 오히려 지금도 엄연히 존재하지만 우리의 가치관이나 삶의 방식이 바뀌면서 대부분‘보이지 않게 되었거나 굳이 보지 않게 된 것’ 아닐까요?” (C)2021 Ring Wandering Film Partners
카네코 마사카즈 감독은 말한다. “사람들은 오래된 일, 또는 사물에 대해 종종'예전엔 있었지만 이제는 잃어버린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제 생각은 다릅니다. 오히려 지금도 엄연히 존재하지만 우리의 가치관이나 삶의 방식이 바뀌면서 대부분'보이지 않게 되었거나 굳이 보지 않게 된 것' 아닐까요?” (C)2021 Ring Wandering Film Partners

"<링 원더링>은 생명에 대한 사색이 담겨있는 작품입니다.

주인공과 함께 예기치 못한 여행을 하다 보면 평소 아무렇지 않게 지나치던 풍경이 점점 다른 모습을 띠게 될 거예요. 아울러 그 과정에서 관객 여러분의 마음이 채워지는 느낌 또한 받으실 수 있으리라 믿고요. 바쁘고 지치는 일상에서 휴식을 갈망하는 분들께 폭포수 앞에 선 것 같은 자연의 힘을 전해드리고 싶습니다.

특히 한국 관객 여러분과는 이 작품을 통해 다툼 없는 평화로운 시간,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시간의 의미를 생각하면서 밝은 미래에 대한 상상을 공유하고 싶어요."

BIFAN에서의 공개 이후 정확히 만 1년이 되어가는 지금. <링 원더링>과 관련해서도 이런저런 새소식이 있었다. 히로시마국제영화제 초청과 더반국제영화제 각본상 수상, 티이완과 싱가포르 개봉, 아울러 지금 이 순간에도 전국 50개 다양성영화관에서 (산발적이지만) 계속되고 있는 상영. 더욱이 기쁜 것은 근면하기로 유명한 가네코 감독이 세 번째 작편인 <수호>의 촬영 준비를 이어가고 있다는 사실. 넉넉잡아 내년쯤 제작이 완료되면 부천에서 마스크를 벗은 그의 얼굴을 볼 수 있으려나. 우선은 서울의 영화관에서 다시 한번 <링 원더링>의 라스트 신의 바람 불던 갈대밭 풍경을 보고 싶다. 카메라가 소스케로부터 멀어질 때, 입가에서 저절로 탄성이 흘러나오게 만들었던.

[인터뷰 홍상현, krpopper@ccoart.com]

홍상현
홍상현
 《코아르》 운영위원, 고토부키홈빌더 영화영상사업부 프로듀서.
정치학과 영상예술학 두 분야의 학위를 소지. 인문사회과학과 영화이론을 넘나드는 전문적 식견으로 한일 양국 매체에 분석기사를 쓴다. 파리경제대 토마 피케티와 『21세기 자본』 프로젝트를 진행한 도쿄대 연구실 출신.
 프로듀서를 맡은 장편 다큐멘터리영화 <포 디 아일랜더스>는 2008년 제주영화제 개막작이었다.
 2013년부터 월간 《게이자이》에서 담당하는 경제평론지면이 에히메대 와다 제미나르의 교재로 쓰인다. 국제영화비평가연맹(FIPRESCI) 지부인 일본영화펜클럽 회원. 『마르크스는 처음입니다만』 등 다수의 스테디셀러를 소개해온 번역가로도 유명하다.
 일본국제교류기금이 선정하는 “세계의 영화인 7인” 중 1인이며 일본 TBS(채널 6) 주최 디지콘 6 아시아 심사위원, 《마이니치신문》 영화웹진 《히토시네마》 필진 및 마이니치영화콩쿠르 심사위원, 다카사키영화제 시니어 프로듀서,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전주국제영화제 어드바이저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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