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LK ABOUT] 제76회 칸 영화제 : '올드보이'들의 칸 
[TALK ABOUT] 제76회 칸 영화제 : '올드보이'들의 칸 
  • 이상용
  • 승인 2023.04.15 11:45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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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6회 칸 영화제 '경쟁 부문'을 둘러싼 단상
ⓒ 칸영화제

지난 13일 제 76회 칸 영화제 경쟁 부문 상영작과 주요 상영작들이 발표가 되었다. 작품 리스트를 보고 놀란 것은 너무나 '익숙한 이름들'이 즐비하다는 사실이다. 그것이 '현재 영화의 어떤 기운을 담고 있는지' 생각해 보고자 한다(아래 한글 제목은 필자의 임의적 번역이다).

 

예시카 하우스너 - CLUB ZERO(클럽 제로)

조나단 글레이저 - THE ZONE OF INTEREST(흥미로움의 영역)

아키 카우리스마키 - FALLEN LEAVES(낙엽들)

카우타르 벤 하니야 - FOUR DAUGHTERS(네 명의 딸)

웨스 앤더슨 - ASTEROID CITY(애스터로이드 시티)

쥐스틴 트리에 - ANATOMIE D'UNE CHUTE(추락의 해부)

고레에다 히로카즈 - MONSTER(몬스터)

난니 모레티 - IL SOL DELL'AVVENIRE(미래의 태양)

알리체 로르와케르 - LA CHIMERA(키메라)

누리 빌게 제일란 - ABOUT DRY GRASSES(건초 더미에 관하여)

카트린느 브레야 - L'ÉTÉ DERNIER(지난 여름)

트란 안 홍 - LA PASSION DE DODIN BOUFFANT(도댕 부팡의 열정)

마르코 벨로키오 - RAPITO(납치)

토드 헤인즈 - MAY DECEMBER(5월 12월)

카림 아이노우즈 - FIREBRAND(파이어브랜드)

켄 로치 - THE OLD OAK(늙은 참나무)

빔 벤더스 - PERFECT DAYS(완벽한 나날들)

왕빙 - JEUNESSE(청년)

라마타 툴라예 사이 - BANEL ET ADAMA(바넬과 아다마, *장편데뷔작)

 

영화 <애스터로이드 시티> ⓒ 유니버설 픽처스

10년 전부터 작가영화나 예술영화를 보아온 관객이라면, 핀란드의 '아키 카우리스마키'(Aki Kaurismaki)가 보여줄 북유럽의 차가우면서도 인간적인 유머를 또다시 본다는 설렘을 갖게 될 것이고, <낙엽들>이라는 제목에서도 짐작할 수 있듯이 그의 최근작에 드리워진 나이 듦과 죽음에 대한 태도가 예상된다. '웨스 앤더슨'(Wes Anderson)의 신작은 언제나 세공화에 가까운 화면들이 가져오는 신기함이 있다. <애스터로이드 시티>는 1955년의 미국 사막 마을을 배경으로 주니어 스타게이저 대회에 참가한 학생과 부모들의 이야기라고 하니, 그의 전작인 <문라이즈 킹덤>(2012), <맥스군 사랑에 빠지다>(1998) 등의 영화가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또 하나의 공동체 혹은 가족에 대한 우화. 

'고레에다 히로카즈'(Koreeda Hirokazu)는 한국에서 <브로커>(2022)를 제작했을 뿐만 아니라 한국과 가장 친근한 일본 감독이라고 할 수 있다. 이번에 공개되는 <몬스터>라는 제목은 좀 세지만 어떤 인간적인 면모를 담아내려고 애썼을 것이라고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 그런데 이번 작품의 결이 좀 달라지는 부분이 있다. 히로카즈는 전작들에 있어 직접 각본을 써왔다. 이번에는 '사카모토 유지' 작가가 대본을 맡았다. 그래서일까. 예고편을 보면 일본의 사회성을 띤 스릴러 작가들의 작품에서 엿볼 수 있는 이미지들이 연상되는데,  괴물이 되어가는 아이들의 모습이 중심을 이룬다. 작고한 사카모토 류이치가 음악에도 참여했기 때문에 그의 유작이라는 점에서도 관심을 끈다. 아무튼 제목도 그러하고(‘어쩌면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과 같은 제목에서 한참 떨어져 있다), '최근에 보여진 고레에다와는 다른 느낌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가진다.

'난니 모레티'(Nanni Moretti)의 신작은 그의 전작들에서 자주 그랬듯이 그가 직접 출연한다. 공개된 트레일러에는 프랑스의 대표적인 배우 마티유 아말릭과 함께 전동 킥보드를 타고 밤거리를 주행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시간이 흘렀지만 <나의 즐거운 일기>(1993)에서 스쿠터를 타고 도심을 다니던 모레티는 변하지 않았다. 여전한 현실 풍자와 특유의 블랙 코미디가 수다스럽게 영화를 감싸고 있을 것이 분명하다. 영화에 대한 영화, 극장에 대한 영화로 알려져 있는데 영화와 현실의 간극을 특유의 낙관과 냉소를 뒤섞으며 어떻게 진행해 나갈지 궁금하다.

 

영화 <THE OLD OAK> ⓒ Sixteen Films
ⓒ 영화 <JEUNESSE>

칸에서 언제나 환영받는 튀르키에의 거장 '누리 빌게 제일란'(Nuri Bilge Ceylan)도 참전한다. 이번에는 어떤 '긴 화면'을 통해 인간의 마음에 도사리고 있는 죄의식을 건드려줄 것인지 궁금하다. 한동안 건강이 좋지 않았지만, 여러 영화제의 심사위원을 맡으며 새로운 영화를 준비했던 '카트린느 브레야'(Catherine Breillat)의 신작은 어김없이 여성의 욕망에 관한 다른 차원의 언어를 끄집어낼 것이다. 더 날카로워졌을지, 이번에는 많은 것을 품으며 여유로워졌을지. 어떤 방향일지 궁금하다. 

이탈리아의 거장 '마르코 벨로키오'(Marco Bellocchio)는 워낙 많은 작품들을 통해 다양한 인간 군상의 세계를 보여줘 왔기에 예측이 되면서도 어디로 튈지 모르는 대표적인 칸의 감독이다. 신작의 제목이 <납치>인만큼 강렬한 드라마가 펼쳐질 것으로 충분히 기대할 수 있다. 19세기 이탈리아를 배경으로 교황청에 납치된 유대인 소년이 세례를 받게 되고, 이 사실의 알게 된 유대인 가족은 청원해 보지만 교황청에서는 응대를 해주지 않는다. 종교적 갈등을 바탕으로 한 소년의 운명을 다룬 이 작품은 현재에도 이어지고 있는 종교와 현실 정치의 갈등을 함축한다.

'토드 헤인즈'(Todd Haynes)는 <캐롤>(2015) 이후 국내에 조금 더 알려졌지만, 그는 언제나 준수한 영화들을 만들어 왔다. 초기의 블랙코미디적인 영화들을 지난 이후 <벨벳 골드마인>(1998)부터 헤인즈의 인물영화라고 불릴만한 슈퍼스타나 아이들을 등장시키는 여러 캐릭터에 주목하면서 이들을 둘러싼 이야기를 흥미롭게 영화로 다뤄왔다. <다크 워터스>(2019)에서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 환경 문제까지 건드리고 있으니 <벨벳 골드마인>이나 <아임 낫 데어>(2007)와 같은 뮤지션들을 둘러싼 시선으로부터 이제 멀리 달아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번에는 '어떤 인물일까?' 신작 <5월 12월>에는 나탈리 포트만과 줄리앤 무어와 같은 배우들이 등장하는 멜로드라마를 제해석해내는 그의 장기가 기대된다.

쉽사리 세상과 타협하지 않는 '켄 로치'(Ken Loach)는 이번에는 어떤 깐깐한 태도로 또 한번의 불화의 세계를 흥미롭게 그려낼지 기대된다. 칸의 그랑프리 수상작 <나, 다니엘 블레이크>(2016)부터 노년의 주인공이 전면에 부각되었는데 이번 작품의 제목인 <늙은 참나무>에서도 이러한 모습은 이어질 것으로 예상이 된다. 공개된 스틸을 보면 ‘늙은 참나무’는 식당이나 펍정도로 보이는 데 이곳에 모여드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이 지역은 영국의 북부 탄광촌이며 영국 사람들이 떠나 버린 후 시리아 난민들이 대거 모여들기 시작한다. <나, 다니엘 블레이크>에서도 운동화를 팔던 이주민 젊은이가 떠오른다면 영국의 현실을 반영하면서도 특유의 따뜻함으로 연대하고 살아가는 방식을 찾는 이야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다만, 그 결과가 비극적일지 이번에는 낙관으로 돌파할 수 있을지는 직접 보아야 알 수 있다.

이와는 달리 최근 기운이 빠진 것처럼 보이는 '빔 벤더스'(Wim Wenders)의 신작이 경쟁 부문에 올랐다는 사실이 이상한 주목을 끈다. 알려진 정보가 거의 없어서 어떨지 짐작하기는 어렵지만 한동안 국제영화제의 경쟁 부문과 거리를 두고 있던 만큼 이번 신작이 그의 여전함을 보여줄지, 아니면 올드보이들을 대거 모은 이번 리스트의 구색을 위해 맞춘 것인지 호기심이 생긴다.

누가 뭐래도 중국의 현재를 대변하는 감독 중 하나는 '왕빙'(Wang Bing)일 것이다. 인민의 삶을 다큐와 극의 형식을 통해 넘나드는 그의 방식은 한마디로 삶에 대한 연민과 끈적함을 일으킨다. 이번 작품은 다큐멘터리인데 칸 영화제 이후에 소개되는 마르세이유 영화제에는 칸에 올라와 있는 <청년>이라는 제목이 아니라 <상하이의 청년>으로 나와 있다. 이 작품은 그의 대다수 영화처럼 소수민족이나 중국의 주변부를 보여준다. 원난성 사람들은 경제적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 상하이의 외부에 임시로 정착한다. 하지만 새해가 되면 2,500킬로미터나 떨어진 고향을 향해 간다. 상하이 변방의 공장에서 일하는 소수민족 젊은이들의 모습이 주를 이룰 것으로 보이는데, 인민의 삶에 대한 왕빙의 카메라가 중국의 어떤 현재를 보여줄지 어느 정도 예상이 된다. 하지만 이런 작품은 예상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부딪혀 오는 이미지의 강렬함과 삶의 진실함이 핵심일 것이다.  

리스트에 적힌 의외의 이름 중 하나는 '트란 안 홍'(Tran Anh Hung)이다. 초기작들은 베트남이 배경이었지만 이제 프랑스 감독이라고 부르는 것이 더 어울린다. 그의 작품이 꾸준히 선보여왔지만, 최근 들어 경쟁 부문에 소개된 적은 없던 터라 이 선택에 대한 기대감이 있다. <도댕 부팽의 열정>이라는 제목에서 눈치 빠른 독자들은 짐작할 수 있듯이 원작이 있다. 검색을 해보니 이 작품은 프랑스의 그래픽 노블(만화책)이다. 하긴 그는 하루키의 『노르웨이의 숲』을 영화로 옮기기도 했으니 이야기를 부지런히 찾는 모양이다. 배우 '줄리엣 비노쉬'가 출연한다는 사실도 반갑다.

 

영화 <CLUB ZERO> ⓒ Coop99 Filmproduktion

경쟁 부문 목록에는 국내에는 덜 알려졌지만, 여전히 중요한 이름들이 대거 포함되어 있다. '예시카 하우스너'(Jessica Hausner)는 과거 전주국제영화제에 심사위원으로 온 적이 있어서 가까이서 만난 기억이 난다. 처음에는 예민하고 까다로운 사람이라고 여겼는데 익숙하지 않은 한국 문화와 음식에 적응이 된 후에는 호기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녀의 영화도 비슷하다. 주인공들은 좀 까탈스럽고 이로 인한 예측불허의 상황이 전개된다. 스릴러나 공포의 분위기도 자연스럽게 깔린다. 이번에는 어떤 예측불허의 상황이 던져질지. 미하엘 하네케 이후 오스트리아를 대표하는 감독이라고 할 수 있는 하우스너의 세계는 우리에게 균열을 안겨주는 흥미로움을 선사한다. 신작의 제목은 <클럽 제로>다. 

'조나단 글레이저'(Jonathan Glazer)는 <언더 더 스킨>(2013)을 보았다면 잊기 어려운 이름이다. 이 작품 또한 과거 전주에서 처음으로 국내에 소개되었는데, 그의 영화는 제작 편수가 많지는 않지만 숨겨진 욕망을 끄집어내는 아름다운 화면들은 압도적이다. 튀니지 출신의 '카우타르 벤 하니야'(Kaouther Ben Hania) 역시 국내에 많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피부를 판 남자>(2020)는 충분히 인상적이었다. 중요한 것은 피부가 아니라 피부의 거래가 이뤄지는 세계다. 예술의 이면을 통해 인간의 이면을 구성하는데, 인간을 포기하면서 누군가 경탄하는 예술품이 되었다는 아이러니가 세계의 허구성을 폭로한다. 신작의 제목이 <네 명의 딸>이니 인물들끼리 엮이는 복잡한 관계의 드라마가 어떤 진실을 향해 달려갈지 궁금하다.

'쥐스틴 트리에'(Justine Triet)는 <시빌>(2018)로 칸의 경쟁에 소개된 적이 있는데 정신과 의사, 여주인공의 욕망 등이 뒤엉키는 과정이 아주 새롭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이번 작품인 <추락의 해부> 역시 인간의 욕망을 파헤치는 세계가 펼쳐질 것이라고 짐작되는데 새로운 지점이 있을까 궁금하긴 하다. 여기에 <행복한 라짜로>(2018)로 국내에 많은 관심을 끈 '알리체 로르와케르'(Alice Rohrwacher)까지 포함하면, 이들은 칸 혹은 유럽 영화의 허리를 이어가는 감독들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국내에 거의 소개된 적이 없는 브라질의 대표적인 감독 '카림 아이노우즈'(Karim Ainouz)는 다큐와 극영화를 오가며 브라질 사람들의 삶을 보여주는 데 1950년대 브라질 대도시에서 살아가는 여성의 삶을 보여주었던 <인비저블 라이프>(2019)을 보았다면, 차분히 인물의 심리와 고통을 묘사하는 그의 연출력에 어느 정도의 기대감이 생길 것이다. 

끝으로, '라마타 툴라예 사이에'(Ramata-Toulaye SY)는 첫 장편으로 칸의 경쟁에 입성하는 결과를 보여주었다. 그만큼 '주목받는 신예'라고 할 수 있는데, 튀니지의 카림 아이노우즈 역시 아프리카 감독으로 보일 수 있지만 마그렙 지역이라 불리는 튀니지, 알제리, 모로코는 지중해로 연결된 이탈리아와 프랑스의 영향 아래(식민지 경험과도 관련있다) 일찌감치 유럽 영화와 연결되어 있었다. 상대적으로 세네갈 출신인 라마타는 영화 제작 편수가 적은 아프리카의 어떤 면모를 보여줄지가 궁금하다. 아프리카 영화라는 프리미엄이 붙은 선정일 수도 있겠지만, 첫 장편으로 칸의 경쟁에 들어왔기에 은근한 기대를 보내본다.

칸의 경쟁 부문은 개막일이 다가오면 한두 편이 추가될 수도 있다. 꽤나 여러 차례 칸의 선정작을 이러한 방식으로 만들어 왔는데 뒤늦은 추가작은 일정한 화제를 모으기도 한다.

아무튼 올해의 칸은 '익숙한 작가들의 향연'이다. 다만, 이들이 포스트 코로나 이후 움츠러든 영화 세계에 어느 정도의 새로움을 이끌 수 있을지 기대할 뿐이다.

 

영화 <거미집> ⓒ 앤솔로지스튜디오

칸의 상영작 공개 이후 국내의 기사들은 한결같이 경쟁 부문에 한국 영화가 없음을 지적하는 수사학을 반복한다. 그런데 이는 어떤 표현 때문에 생긴 오해이기도 하다. 흔히 비경쟁 부문으로 번역되는 'out of competition'에는 텔레비전 시리즈물 <더 아이돌>과 심야영화를 제외하고 총 4편의 극영화가 상영된다. 마틴 스콜세지의 <킬러스 오브 더 플라워 문>, 제임스 맨골드가 만든 <인디애나 존스: 운명의 다이얼>, 올해 칸의 개막작이기도 한 마이 웬의 <잔 뒤 바리> 그리고 김지운 감독의 <거미집>이다.

'아웃 오브 컴페티션'(out of competition)을 비경쟁 부문이라고 번역하고 있지만, 이 작품들은 경쟁 부문 상영작과 함께 프로그램으로 구성된다. 칸의 주요한 감독 중 하나인 단골 마틴 스콜세지처럼 경쟁 부문에 포함시키지는 않았지만, 그에 상응하는 존경을 표하기 위해 이 섹션에 배치되는 셈이다. 그리하여 수상의 경합에서는 빠지지만, 같은 프로그램에 집어넣음으로써 존경과 성의를 표하는 섹션이다. <거미집>도 작년 칸의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송강호에 대한 예우가 가장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제임스 맨골드 역시 칸의 감독 중 하나였고, 이제 레전더리가 된 <인디애나 존스> 시리즈에 대한 영화적 예우가 포함된 선정이다.

아웃 오브 컴페티션은 비경쟁 부문이기보다는 '경쟁 부문으로부터 제외된' 정도가 적합하다. 무게감에 있어서는 경쟁 부문과 동일함을 보여주기 위해서다. 아녜스 바르다의 유작 <아녜스가 말하는 바르다>의 경우 베를린의 '아웃 오브 컴페티션'에 상영되었다는 것으로 이 섹션의 특징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거미집>의 각본은 <동주>의 각본가인 신연식 감독이 쓴 것이다. 영화를 보면 충분히 짐작할 것으로 예상되는 데 타계한 한국의 감독의 전기적 요소와 허구를 뒤섞는 내용이다. 이 작품의 시나리오는 애초에 한국을 대표하는 감독의 의뢰로 시작되었다. 하지만 신연식 감독이 직접 연출을 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고, 신연식 감독은 송강호 배우와 여러 작품을 진행하면서 김지운 감독에게 바통을 넘겨주었다. 제작사인 앤솔로지스튜디오는 최재원 대표 그리고 송강호 배우 그리고 김지운 감독이 함께 설립한 회사다. <거미집>은 창립작품인 셈이다. 이들의 행보가 작품을 통해 어떻게 이어질지 영화와는 다른 관전거리다.

 

영화 <화란> ⓒ  메가막스중앙 플러스엠

아무튼 한국 영화 상영작 중 개인적으로 궁금한 경우는 '주목할만한 시선'에서 상영되는 <화란>이다. 주목할만한 시선을 두고 어떤 기사들은 '비경쟁 부문'이라고 표현하는데 이것은 완전히 틀린 말이다. 경쟁 부문의 작품들은 메인 상영관인 뤼미에르 극장에서, 주목할만한 시선의 영화들은 그보다는 좀 작은 드뷔시 극장에서 상영된다. 하지만 이곳은 두 번째로 큰 칸의 극장이고, 경쟁 부문 못지않은 열기를 보여준다. 해당 부문의 심사위원들이 있고, 여러 부문에 걸쳐 시상을 한다. 주목할만한 시선 또한 칸의 경쟁 부문이다.

때로는 주목할만한 시선의 상영작들이 경쟁 부문보다 더 좋다고 느껴지는 때도 있었다. 개인적으로 주목할만한 시선 부문에 상영된 봉준호 감독의 <마더>(2009)를 드뷔시에서 보던 기억이 또렷하다. 칸의 집행 위원장인 티에리 프리모가 무대에 올라와 봉준호 감독과 김혜자 배우를 소개해 주었다. 위원장이 소개하는 영화라는 의미는 메인 경쟁 부문 못지않다는 뜻이며, 주목할만한 시선의 상영작 대다수를 경쟁과 동일하게 소개한다. 경쟁 부문에 비해 좀 더 신인 감독들이 포진되어 있기는 하지만 칸이 바라보는 또 다른 현재의 영화라고 보는 것이 적합하다.

현재 <화란>에 대한 국내의 칸 기사는 송중기 배우로 도배가 되어 있지만, 개인적으로 관심이 가는 것은 '김창훈' 감독이다. 그가 만든 영화의 영어 제목은 <hopeless>, 즉 희망없음이다. 우울한 누아르일 것임이 짐작이 된다. 영화 산업 현장에서 주로 편집을 해 온 김창훈 감독의 첫 장편이 어떤 공기를 담고 있을지, 그것이 한국영화의 새로운 활력이 될지 아니면 친숙한 한국형 누아르 패턴의 반복일지 궁금하다.

엄밀히 말해 한국영화는 아니었지만, 조만간 개봉할 작년 주목할만한 시선의 상영작 <리턴 투 서울>(2022)을 흥미롭게 보았다. 한국의 입양아 서사이지만 프랑스 자본으로 제작된 이 독립영화에서 한국의 배우들과 서울의 묘사에 새로운 에너지를 느꼈다. 한국의 골목들과 다락방의 풍경들이 최근 한국의 독립영화에서는 보기 힘든 질감을 느끼게 했다.

이러한 열기가 국제 영화제로 이어졌으면 하는 바램이다. 한국의 거장들만이 아니라 한국의 새로운 감독들이 국제적으로 주목받는 계기가 늘어나면서 한국의 감독뿐만 아니라 새로운 배우들, 새로운 공간들, 새로운 서울의 모습이 담겼으면 한다. 오늘날 넷플릭스와 같은 글로벌 OTT가 누구나 꿈꾸는 기회의 땅이 되어버렸지만, 독립영화나 작은 규모의 영화에 있어서 칸의 주목할만한 시선은 누가 뭐래도 최적화된 장소 중 하나다. 더 많은 칸의 다양한 섹션 속에 이러한 영화들이 포진되기를 기대한다.

[글 이상용 영화평론가, poema@ccoart.com]

이상용
이상용
 1997년 『씨네21』 2회 신인평론상을 수상하며 영화 비평을 시작했다. 부산국제영화제와 전주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를 역임했다. 지은 책으로 『봉준호의 영화 언어』, 『영화가 허락한 모든 것』, 공저로 『씨네쌍떼』 『30금 쌍담』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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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ㅇㅇ 2023-04-15 13:31:13
평론가님, 말씀대로 옛 감독들의 향연입니다. 이상하게 기대됩니다. 한국감독들이 없어서 아쉽습니다. 어떤 기사에는 경쟁에 유력한 작품도 있었다고 하는데, 떨어졌나 보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