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O] 두 번의 고백
[편집자O] 두 번의 고백
  • 오세준
  • 승인 2023.02.27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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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프터썬>의 성인이 된 소피를 바라보며"

서촌 어느 골목에 위치한 작은 바에서 그와 간단히 술을 마시던 중이었다. 우린 그날 저녁 명동에서 함께 본 <애프터썬>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영화 매체 편집장 정도씩이나 하고 있다 보니, 상대방은 내게 영화에 대한 대단한 해석을 기대하는 눈치였다. '특별한 해석이 필요한 영화인가' 하는 속마음을 숨긴 채, 그가 궁금해하는 것들을 물어보며 나름대로 충실히 설명해 주었다. 그러다 '마지막 장면'을 이야기를 하는 순간, 목이 메어왔다. "그러니깐……." 상대는 미간을 찌푸리며 말을 채 이어가지 못한 내 모습을 보고는 적잖게 당황한 듯싶었다.

"그 장면에서…. 정말이지 난 우리 할머니가 너무나 보고 싶었어. 너무……."

그 순간 꺼내놓은 말은, 영화에 대한 극찬이나 뛰어난 해석이 아닌 돌아가신 할머니를 향한 '고백'이었다. 적어도 BPM 100 이상인 트렌디한 디스코 음악이 흘러나오는 바, 심지어 어느 나라 사람들인지 짐작조차 가지 않는 다양한 언어로 채워지는 그 공간에서, 상대를 붙잡고 차오르는 감정을 애써 참아가며 슬픔을 토해내는 이는, 나 하나였다. 무슨 청승인지 싶어 서둘러 눈을 비비고는, 한 두 모금 정도 마신 위스키를 상대에게 조심스레 건넸다. 그 술의 지독함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더 마셨다가는 참았던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아서였는지 지금에선 기억나지 않는다.

 

ⓒ TMDB

자정을 한참 넘어 우린 바에서 나왔다. 바람이 조금 찼지만 걸을 만하였다. 텅 빈 광화문 거리와 컴컴한 어둠 아래 놓인 경복궁은 왠지 고요해 보였다. 우린 별다른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큰길을 따라 안국역을 지나 인사동까지 꽤 긴 침묵이 이어졌다. 그는 빠른 내 발걸음에 묵묵히 따라올 뿐이었다. 내가 많이 취했다고 생각했을지 혹은 울컥 터져버린 감정을 정리할 시간을 주는 것인지 알 수 없는 노릇이지만, 마치 나를 배려하는 듯했다. 그리고 우리가 머물 숙소에 다다를 때쯤 침묵을 깨뜨린 건, 다름 아닌 나였다.

"지금껏 내가 지은 가장 큰 죄가 있다면, 그건 우리 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그보다 더 전에 오랫동안 병상 생활을 하셨을 때, 단 한 번도 눈물을 흘리지 못한 일이야. 단 한 번도. 너무 어렸어. 누군가를 떠나보낸다는 게 이토록 슬픈 일인지 그때는 알지 못했어. 치매로 오랜 병상 생활을 하면서 언젠가 '얘가 누구야'라는 엄마의 물음에 '세준이'라고 말하며 나를 보던 그 순간에도, 난 어떠한 반응도 하지 못했어. '할머니' 딱 이 말뿐. 잔인하게도 너무 어렸어."

"있잖아. 성인이 된 소피가 캠코더로 녹음된 어린 자신과 아빠의 모습을 보는 장면에 이어 그런 자신을 찍고 있는 아빠 모습으로 이어지는 마지막에서, 어릴 적 할머니가 밭에서 나를 내려다보던 기억이, 손을 잡고 문방구에 갔던 기억이 떠올랐어. 그런데 이게 그저 기억뿐이야. 나와 할머니가 모습이 담긴 사진 하나 없어. 그래서…. 그래서… 소피를 보면서 너무 부러우면서도 슬펐어. 아빠를 그리워하는 그 모습이 마치 할머니를 그리워하는 내 모습 같아서."

그는 여전히 침묵을 유지했다. 마치 숨죽여 영화를 보는 듯했다. 우린 편의점에서 맥주를 사서 숙소에 들어갔다. 긴 시간 술잔을 기울이며 언제 잠에 들었는지 모를 만큼 밤을 지새웠다.

 

ⓒ 그린나래미디어
ⓒ 그린나래미디어

<애프터썬>은 튀르키예로 떠한 어느 부녀의 여행을 그리는 영화일 수도 있고, 어릴 적 헤어진 아빠를 그리워하는 딸 소피의 영화일 수 있다. 또 아빠가 딸을 기록하는 영화이거나 딸이 아빠를 기억하는 영화일 수 있다. 심지어 띄어쓰기를 집어넣어 제목을 비추어 볼 때, 'After sun'으로 읽는다면(원래 제목인 aftersun은 해에 탄 피부에 바른 크림을 일컫는다), '해가 진후에'라는 뜻으로, 해가 떠 있는 '낮의 영화'와 해가 진후인 '밤의 영화'로도 볼 수 있겠다. 실제로 영화에서 보여주는 낮은 '부녀가 애틋한 나날을 보내는 시간', 밤은 '부녀가 각각 떨어져 보내는 시간'이다.

결국, 영화가 보여주고자 하는 것은 '그리움'이다. 소피는 캠코더에 기록된 영상을 통해서 아빠를 기억한다. 빛이 점멸하는 클럽 속에서 성인이 된 소피가 마주하고 끌어안는 어릴 적 자신의 기억 속 그대로인 아빠는 그 기록과 기억이 투영한 그리움의 형상이다. 영화는 기록된 과거, 꿈 그리고 기억을 떠올리는 현재 속에서의 소피를 보여준다. 대표적인 장면이 다양한 질감의 이미지가 섞인 오프닝 시퀀스일 것이다. 이를 통해 그녀의 그리움이 현재에서 과거로 향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영화에는 또 다른 그리움이 존재하는 데, 딸 소피를 향한 아빠 캘럼의 그리움이다. 소피가 수영장에서 노는 모습, 길을 걷는 모습 등을 캠코더에 담거나 사진을 찍는 그의 행위는 '지금'이 지나 '이후'에 가질 그리움을 나타낸다. 심지어 딸을 향한 그의 시선(눈)은 조금이라도 더 딸을 담고자 하는 애틋함이 느껴지기까지 한다. 소피가 사람들을 모아 자신에게 생일 축하한다 말 할 때, 소피를 내려다보는 장면과 방에서 홀로 울음을 터트리는 장면의 오버랩은, 소피와의 이별뿐만 아니라 기억과 기록으로 의존해야 할 미래의 그리움의 슬픔을 나타내기도 한다.

 

ⓒ 그린나래미디어
ⓒ 그린나래미디어

그러니 영화의 마지막, 여행지에서의 소피와 캘럼이 춤을 추는 장면과 꿈속에서 성인이 된 소피와 그녀가 어릴 적 봐온 변치않은 모습의 캘럼이 춤을 추는 장면이 교차하는 것은, 현재에서 과거로 향하는 그리움(딸)과 과거에서 현재(아빠)로 향하는 그리움의 만남이라 볼법하다. 빠르게 여러 장면이 교차하는 영화의 움직임과 춤을 추는 소피와 캘럼의 움직임은 격렬히도 '사랑과 그리움'이라는 감정을 스크린 밖으로 발산해낸다. 영화가 보여준 가장 아름답고 슬픈 순간이다.

영화의 마지막, 카메라는 공항에서 아빠를 향해 손을 흔드는 어린 소피의 모습을 시작으로 좌에서 우로 향하며, 그런 어릴 적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는 성인이 된 소피의 모습을 지나, 다시 공항에서 소피를 캠코더로 소피를 찍고 있는 캘럼의 모습으로 향한다. 이는 기록(어린 자신의 모습)과 기억(어릴 적 아빠의 모습)의 만남 더 나아가 그리움과 그리움이 다시 마주하고 이어지는 순간으로, 다시 한번 시간을 초월한 만남이 그려지는 장면이다.

 

ⓒ TMDB

오래전, 사촌형과 함께 길을 걸으며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할머니집 부엌에 소쿠리 채 담겨 있던 식혜 기억나? 난 식혜를 먹을 때마다, 그때 한 컵 가득 할머니 식혜를 퍼먹었던 기억이 떠올라. 컵에 붙어 있던 쌀 알갱이까지 입에 탈탈 털어 마시곤 했는데. 그때 먹던 그 맛이 지금도 선명한데, 아무리 맛있는 식혜를 먹어도 그 맛이 안나. 그래서인지 언제부터 식혜를 잘 먹지 않아."

어떤 기억은 이토록 또렷하다. 살을 태울 듯 뜨겁고 강렬한 햇빛처럼, 온몸을 덮어 가득 적시듯 세차게 밀려오는 파도처럼. 중요한 건 이런 기억들이 우리의 무엇을 어루만지는지 일 것이다. 어쩌면 누군가를 떠올린다는 것은 이처럼 기억 속에서 누군가를 어루만지는 일이 아닐까. 소피를 보면서, 어린 나를 지긋이 바라보시던 할머니의 눈과 창문 밖을 향해 손을 흔들던 내게 꼬깃꼬깃 구겨진 지폐 몇 장을 전해주던 손길, 20대 중반이 돼서야 그녀가 없다는 사실이 괴로워 그리움에 눈물을 쏟아냈던 날까지 마음속 깊은 곳에서 떠밀려와 한참이나 마음이 젖었다.

<애프터썬>은 해석을 요하는 영화가 아니다. 소피가 아빠를 그리워하는 과정에서 내가 할머니를 그리워했던 것과 같이 머릿속에서, 마음속에서 기록된 기억을 더듬고 어루만지며 그것이 무엇인지를 느끼게 해주는 영화이다. 소피를 보며, 캘럼을 보며, 당신은 무엇이 떠올랐는가. 누구를 그리워하였는가. 그 기억에 대한 당신의 이야기가 무척이나 궁금하다.

[글 오세준 편집장, yey12345@ccoart.com]

오세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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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아르》 영화전문기자 및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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