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독립영화 편지] 이 시대에 영화를 기억하는 방법
[한국독립영화 편지] 이 시대에 영화를 기억하는 방법
  • 김민세
  • 승인 2022.12.16 11: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언젠가 영화와 함께 세상을 말할 날이 오길 바란다."

우리는 영화를 기억할 필요가 없는 시대를 살고 있다. 보고 싶은 장면이 있으면 유튜브 클립을 검색하면 되고 넷플릭스를 켜면 된다. 팬데믹의 영향으로 극장 개봉과 VOD 공개는 발을 맞추기 시작했다. 영화를 소유한다는 개념은 극장에서의 기억을 마음속에 되새기는 것 또는 사놓은 디브이디를 꺼내거나 외장하드의 파일을 관리하는 것이 아니라, 터치와 리모컨 조작 몇 번으로 언제든 볼 수 있는 영화를 재생시키는 것이 되어버렸다. 그러다 보니 쇼트 하나하나를 기억하고 간직하겠다는 마음으로 극장 스크린을 뚫어져라 응시하던 열정도 점점 식어만 간다. 물론, 이런 소회는 영화 내외를 둘러싼 동시대의 풍경을 묘사한 것이기도 하지만 스스로에 대한 반성이기도 하다.

어쩌면 영화가 끝난다는 것은 영화를 기억하려는 마음이 사라진다는 말이 아닐까. 동시대에 넘쳐나는 유튜브를 기반으로 한 패스트 무비, 리뷰, 그리고 해석 영상들. (따져 보면 오디오 비주얼 필름크리틱이라는 비평이자 에세이로서의 영상 분야 또한 존재한다. 그러나 대중들을 비롯한 많은 영화팬들이 즐기는 유튜브 콘텐츠는 이와 거리가 있으며 결과적으로는 '비평'으로 불릴 수 없다고 생각한다.) 이들은 우리의 기억과 (글을 쓰는) 손을 대체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 시대의 비평이 조금의 학문적 배경지식과 약간의 창의성으로 가능해질 수 있는 해석, 또는 기술(記述)에만 그치는 것은 의미가 없다. 생각보다 우리의 손은 믿을 것이 되지 못한다.

그렇다면 '우리의 눈'은 무엇을 보고 어떻게 보아야 할까. 우리의 손은 무엇을 남기고 어떻게 기록해야 할까.

여기서 잠깐 멈추어 보자. 무언갈 오해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소위 말해 시네마라고 말할 수 있는 영화를 운운하고, 별점을 매기고 한줄평을 남기고 SNS에 그럴싸하게 인증을 남긴다면. 거기서 한 사람의 영화는 끝나는 것일까. 나아가 추가적인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 해석 영상을 보고, 이름 있는 평론가의 글을 읽는다면. 영화는 온전히 보이고 말해진 것일까. 이렇게 생각해보니 비평을 쓰기 시작한 이유는 단 한 가지 의심에서 시작되었다. 나를 포함한 모두가 우리 앞에 놓인 영화들을 오해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나에게 있어서 비평은 거대한 포부나 야망 이전에 지극히 개인적인 것에서부터 시작되었다. 과감함을 넘어 무모할 수도 있는 그 개인적인 질문과 대답이 오해받는 영화들을 변호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 생각했다.

 

영화 <한여름의 판타지아>(2014, 장건재) ⓒ 인디스토리

한 사람의 비평이 이 시대에 유효하기 위해서는 영화에 대한 사랑이 담긴 개인적인 편지, 즉 러브레터로부터 시작할 수밖에 없다. 나는 나의 눈으로 영화가 나에게 보내는 편지를 읽어내고 나의 손으로 답신한다. 그러나 엄밀히 말해 영화는 나에게 편지를 보내고 있지 않다. 나는 영화를 보고 있지만 영화는 나를 보고 있지 않다. 그래서 내가 쓰는 글에는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영화가 나에게 이렇게 말해주었으면' 하는 이기적인 바람이 섞여 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나는 이것이 한 사람이 영화와 세상을 기억할 수 있는 방법이라 간절히 믿는다. 내가 서 있는 시대 위에서 영화를 보고 세상을 살아나갈 뿐이다. 결국 영화를 쓴다는 것은 이렇게 세상을 보고 있다는 고백과 살아나가겠다는 다짐임을 알게 해 준 영화들이 있다. 기억해야 할 동시대 한국 독립영화의 감독들. 가장 오해받고 있으며 지금보다 더 이야기될 필요성을 느끼는 작가들. 그리고 동시대의 영화로서 지금 여기의 시대를 새롭게 아카이브하고 있는 작품들까지. 애정해 마지않는 한국 독립영화감독들의 이름을 따라감과 동시에 언젠가 다시 돌아보고 기억하게 될 동시대의 영화들을 다루는 것이 이 연재의 가장 큰 목표가 되지 않을까 싶다.

마음속에서 몇 번이나 되뇌었던 그들의 이름과 영화들을 글로 옮기는 작업은 그 애정만큼이나 쉽지 않았다. 그러므로 이 글들은 영화와 세상을 두고 수없이 질문하고 대답했음에도 서투른 마음에 아직 보내길 망설이는 부치지 못한 편지일 수도 있다. 이 편지의 수신인이 누구일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만약 당신이 나의 편지들을 읽고 무언가를 사랑하겠다는 마음으로 글을 쓰고 세상을 살아나가기 시작한다면, 나는 더할 나위 없이 기뻐할 것이다. 어쩌면 나도 그렇게 시작하였기 때문이다. 나의 영화가 되어준 작가들과 나의 세상이 되어준 주변인들에게 무한히 감사하다. 스스로 이런 말을 할 자격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언젠가 영화와 함께 세상을 말할 날이 오길 바란다.

[글 김민세, minsemunji@ccoart.com]

김민세
김민세
 고등학생 시절, 장건재, 박정범 등의 한국영화를 보며 영화를 시작했다. 한양대학교 연극영화학과 영화부에 재학하며 한 편의 단편 영화를 연출했고, 종종 학생영화에 참여하곤 한다.
 평론은 경기씨네 영화관 공모전 영화평론 부문에 수상하며 시작했다. 현재, 한국 독립영화 작가들에 대한 작업을 이어가고 있으며, 그와 관련한 단행본을 준비 중이다. 비평가의 자아와 창작자의 자아 사이를 부단하게 진동하며 영화를 보려 노력한다. 그럴 때마다 누벨바그를 이끌던 작가들의 이름을 하염없이 떠올리곤 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