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저를 키워주신 한국"에 돌아와 관객을 만나는 기쁨
[interview] "저를 키워주신 한국"에 돌아와 관객을 만나는 기쁨
  • 홍상현
  • 승인 2022.06.20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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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국제영화제·전주국제영화제 초청작 <실종> 카타야마 신조 감독
「실종」은 제26회 부산국제영화제 뉴 커런츠 부문에 이어 제23회 전주국제영화제 J 스페셜: 올해의 프로그래머 부문에도 초청되면서 화제를 모은 작품이다. (C)NK Contents
「실종」은 제26회 부산국제영화제 뉴 커런츠 부문에 이어 제23회 전주국제영화제 J 스페셜: 올해의 프로그래머 부문에도 초청되면서 화제를 모은 작품이다. (C)NK Contents

영화를 보는 게 곧 학과 공부였던 시기가 <아름다운 시절>(1998)을 기점으로 하는 한국영화 해외국제영화제 수상 퍼레이드, <쉬리>(1999)를 기점으로 하는 한국영화 산업화와 맞물리지만 부끄럽게도 필자의 롤 모델은 아직 한국영화감독이 아니었다.

자료실 VHS 플레이어의 되감기 버튼을 몇 번이나 반복해 누르면서 구로공단의 야학에 다니던 김영호(설경구 분)가 야유회 날 철교 아래 누워 다가올 가혹한 운명을 예감하는 <박하사탕>(1999)의 라스트 신을 돌려보거나, 밤늦은 시간 도철(정우성 분)과 홍기(이정재 분)가 샘 더 샘 앤 더 파라오스의 노래에 맞춰 춤을 추는 <태양은 없다>(1998)의 체육관 신을 보며 기분전환을 하는 경우는 있었지만, 영화작가에 관한 이야기를 하면 줄줄이 등장했던 건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브라이언 드 팔마, 마틴 스코세이지, 혹은 <디어 헌터>(1978)의 마이클 치미노나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1984)의 세르지오 레오네 같은 이름. 구성에 차이만 있을 뿐 이는 과 친구들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랬던 상황이 대학원을 마치고 생활비를 벌기 위해 회사에 다닐 즈음 바뀌었다. 여전히 영화판 주변을 맴도는 친구들을 매달 급여일쯤에 불러 모아 영양보충을 시키던 '한턱모임'에 학번 차가 많이 나 학교에선 딱히 말을 섞을 기회가 없던 후배들이 합류하기 시작하면서였다. <올드보이>(2003)의 칸영화제 그랑프리 수상과 <괴물>(2006)의 역대 최단기간 천만 관객 돌파, <밀양>(2007)의 칸영화제 여우주연상 수상 등을 지켜보며 영화를 전공하리라는 결심을 굳힌 세대. 학창시절에도 자연스럽게 이창동, 박찬욱, 봉준호(연장자순) 같은 감독들을 동경하며 꿈을 키웠다. 세계영화사에서 독보적인 위상을 구축하고 있는 한국영화의 오늘을 예건했던 흐름이다.

 

‘일본유일의 봉준호 제자’는 독립장편영화 데뷔작으로 일본영화비평가대상 신인감독상을 거머쥔 ‘준비된 신인’ 카타야마 신조 감독이 가장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타이틀이다. (C)NK Contents
'일본유일의 봉준호 제자'는 독립장편영화 데뷔작으로 일본영화비평가대상 신인감독상을 거머쥔 '준비된 신인' 카타야마 신조 감독이 가장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타이틀이다. (C)NK Contents

나고 자란 곳은 다를망정 오늘 인터뷰의 주인공인 <실종>(6월 15일 개봉)의 카타야마 신조 감독 역시 그들과 다르지 않다. 오사카 출신으로 영화학교에 다니며 제작현장 연출부로 일하던 그는 어느 날 옴니버스영화 <도쿄!>(2008)의 촬영장으로 달려간다. 레오 카락스미셸 공드리 때문이 아니다. 애초부터 첫 번째 에피소드의 연출을 맡은 봉준호 감독의 조감독 자리를 원했다. '제자의 경애심'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작업이 마무리되자마자 '무급이라도 상관없다'면서 현해탄을 건너 봉 감독의 초기 대표작인 <마더>(2009)의 연출부로 충무로 생활을 시작한다.

감독데뷔 후에도 '일본유일의 봉준호 제자'(그 자신 가장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타이틀이라고 한다)라는 이름에 걸맞게 시대상을 반영하는 실제사건에서 얻은 영감을 독특한 컬러의 오리지널 시나리오에 풀어냈다. 리스크 최소화를 위해 검증된 원작(소설ㆍ만화)을 강조한 나머지 더러 상상력 부재라는 역효과도 심심찮게 불거지는 일본영화계의 풍토를 생각하면 지극히 이례적인 감독. 부산국제영화제전주국제영화제 복수초청이라는 화려한 타이틀을 내걸고 지난 6월 15일 개봉한 <실종>에 대해 한국 장르영화의 대표주자 연상호 감독은 다음과 같이 소개한다.

"단둘이 살고 있는 아버지(사토시, 사토 지로 분)와 딸(카에데, 이토 아오이 분). 어느 날 아버지는 우연히 연쇄 살인범(무명씨, 시미즈 히로야 분)을 봤다며 그를 잡아 현상금을 받겠다는 이야기를 하고 사라진다. 그리고 딸은 아버지를 찾기 시작한다. 전작 <곶의 남매>(2019) 이후 가타야마 신조 감독의 장르적인 야심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딸과 아버지 그리고 연쇄 살인범의 세 가지 관점으로 하나의 사건을 전개해 나가는 이야기 구성이 신선하며, 하나의 막이 끝나고 다른 막이 시작될 때마다 점점 장르적인 어두움이 짙어지는 작품이다. 단순한 해프닝으로 시작되는 이야기는 극이 진행돼 갈수록 차츰 가족에 대한 딜레마, 윤리에 대한 딜레마까지 사유의 깊이를 더해간다. 단지 구성적 미학이나 장르적인 연출 외에도 가족과 진실에 대한 고찰이 진한 작품으로 스릴러 장르의 명작의 반열에 오를 만하다."

 

한국에서도 개봉한 「은혼」시리즈 등에 출연하면서 ‘개그맨보다 웃기는 배우’로 자리매김했던 사토 지로 배우는 「실종」의 주인공으로 캐스팅되어 실로 놀랄만한 연기변신을 보여준다. (C)NK Contents
한국에서도 개봉한 「은혼」시리즈 등에 출연하면서 '개그맨보다 웃기는 배우'로 자리매김했던 사토 지로 배우는 「실종」의 주인공으로 캐스팅되어 실로 놀랄만한 연기변신을 보여준다. (C)NK Contents

홍상현

장편독립영화 데뷔작부터 일본영화비평가대상 신인감독상을 수상하는 등 연출력을 인정받아 오셨습니다. 게다가 장편상업영화 데뷔작 <실종>으로 부산국제영화제와 전주국제영화제를 거쳐 대망의 한국 개봉까지 달성하셨는데요.

카타야마 신조

먼저 한국을 대표하는 부산영화제, 그리고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차례로 초청해주셨던 것에 대해 진심 어린 감사를 드립니다.

아직 많이 부족하지만 힘을 내서 앞으로도 열심히 활동하고 싶어요. 저를 키워주신 한국에서 장편상업영화 데뷔작이 개봉해서 얼마나 기쁜지 모르겠습니다. 관객 여러분의 반응도 무척 기대되고요.

 

홍상현

한국영화의 거장 봉준호 감독의 제자로 유명하신데요. 옴니버스 영화 <도쿄!>를 통해 만나, 대표작 <마더>에서도 함께하셨습니다. 봉 감독과의 잊지 못할 에피소드도 많이 있을 것 같은데요.

카타야마 신조

이미 많은 분들이 알고 계실 거로 생각하지만, 촬영에 유난히 많은 시간과 공을 들이시던 모습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예컨대 <마더> 촬영 당시 김혜자 배우가 소리를 지르시는 신을 예순 번이나 반복해서 찍었어요. 온종일 똑같은 연기를 반복시키는 봉 감독도 대단하지만, 그에 부응해 조금도 힘든 내색을 하지 않으시던 김혜자 배우를 보면서 역시 대배우다운 프로의식이라는 생각에 감탄에 감탄을 거듭했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사적인 에피소드도 소개해드리고 싶은데요. <도쿄!>를 촬영한 게 스물여섯 살 때거든요. 언덕길에서 보조연기자가 등장하는 컷을 찍어야 하는데 온종일 오르락내리락 하다 보니까 너무 힘들더라고요. 결국 한참 만에 OK 사인이 낫는데 갑자기 봉 감독께서 제 쪽을 보시더니 영어로 "This shot is your shot!"이라고 말씀하시는 거예요.

영화촬영 현장 생활을 해 오면서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이야기였습니다. 뭐라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기분이 들었어요. 어찌나 기쁘고 감격스럽던지.

 

「실종」은 카타야마 신조 감독의 실제체험으로부터 영감을 얻어 세상에 나온 작품이다. (C)NK Contents
「실종」은 카타야마 신조 감독의 실제체험으로부터 영감을 얻어 세상에 나온 작품이다. (C)NK Contents

홍상현

인터뷰나 관객과의 대화에서 종종 접하는 봉 감독의 스타일이 그대로 드러나는 에피소드네요. 듣는 저까지 흐뭇해집니다.

카타야마 신조

말이 나온 김에 한 가지만 더 소개해드려도 될까요? (웃음) 촬영현장에서 많이들 입는 노스페이스라는 아웃도어 브랜드의 점퍼가 있는데요. 그걸 감독님이 저를 포함한 연출부 스태프 일곱 명 전원에게 사주신 적이 있었습니다.

처음에 저는 그냥 그게 어떤 상황인지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는데요. 퍼스트 조감독 선배가 저한테 장난스러운 말투로 "신조, 메가폰으로 감독님한테 '노스페이스 점퍼 일곱 벌만 사주세요'라고 말씀드려봐"하는 거예요. (웃음) 그래서 시키는대로 말씀을 전하니까 봉 감독께서 아주 잠깐 생각을 하시는 것 같더니 그 자리에서 "OK!"라고 답해주셨습니다.

그리고는 정말 곧장 점퍼를 사러 갔죠. 그런데 막상 가게에 가보니까 옷이 너무 비싼 거예요. 한참을 망설이다 '또 언제 이런 옷을 입어보겠나 싶어' 살짝 가격이 있는 옷을 골랐는데, 그런 저를 보더니 다른 연출부 동료들도 동일하거나 비슷한 가격대의 점퍼를 골랐습니다. 나중에 감독님이 계산하실 때 보니까 모두 합쳐서 일본 돈으로 60만 엔 정도나 하는 거예요. 어찌나 송구하고 감사하던지.

덧붙여서 그때 감독님이 사 주신 점퍼는 지금도 소중하게 입고 있습니다.

 

홍상현

영화의 설정이 워낙 독특하다 보니 구상의 계기가 궁금해지는데요.

카타야마 신조

<실종>은 제가 직접 겪은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사건의 당사자라는 건 아니고요. 어느 날 제 부친께서 우연히 지명수배범을 목격했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셨거든요. 처음에는 반신반의했는데 나중에 TV 보도에서 정말 부친과 같은 전철에 타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죠. 순간 아버지가 달라 보이더라고요. 제게는 대단히 인상적인 사건이었습니다.

 

「실종」은 감정이입이 쉬운 단일시점의 서사를 과감하게 포기하고 세 사람의 중심인물을 설정한 뒤, 그들 각자의 시점에서 이야기를 전개한다. (C)NK Contents
「실종」은 감정이입이 쉬운 단일시점의 서사를 과감하게 포기하고 세 사람의 중심인물을 설정한 뒤, 그들 각자의 시점에서 이야기를 전개한다. (C)NK Contents

홍상현

일상에서 그런 극적인 사건을 간접적으로나마 접해보실 수 있었다는 게 놀랍네요. (웃음) <실종>을 보면서 장애를 이유로 정리해고된 오빠와 자폐증 여동생의 이야기를 다룬 데뷔작 <곶의 남매>와도 유사점을 가지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선인도 악인도 아닌, 즉 도덕적으로 그레이존에 서 있는 캐릭터를 이끌어내는 데 탁월한 재능을 보이신다는 점에서요.

카타야마 신조

요즈음 우리가 작품을 통해 만나게 되는 관객들 중에는 권선징악의 서사, 혹은 인물에 공감하기보다 그렇지 않은 분들이 더 많이 계시는 것 같아요. 예컨대 정의의 편이라도 완전히 스테레오타이프라면 그다지 큰 호소력을 갖지 못한다는 이야기죠. 해서, 어떤 캐릭터를 한 가지 패턴으로만 그릴 게 아니라 때로는 부정적인 모습 또한 보여줌으로써 보다 다면적이고 생각의 여지를 주는 인물을 그려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이런 주인공이 사람들이 아무런 의심 없이 지극히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상식, 혹은 선입견을 흔들어주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홍상현

이제 <실종>에 관한 좀 더 깊은 이야기로 들어가 보죠.

탁구가 굉장히 중요한 영화적 장치로 기능하고 있는데 그 함의에 대해 설명해주시겠습니까?

카타야마 신조

탁구를 하면 두 사람이 마주 보면서 라켓으로 공을 주고받는 랠리(Rally)라는 액션이 이어지잖아요. 이 움직임이 일단 카에데와 사토시 사이의 대화처럼 보이도록 연출했습니다. 한편 두 사람 사이를 오가는 공은 탁구대 한가운데 있는 네트, 즉 '경계'를 계속 넘나들지요. 바로 이 부분을 통해 상징적으로 표현해보고 싶었던 게, 이를테면 선악의 경계선처럼 우리가 평범한 일상에서 결코 넘어서는 안 되는 '선'이었고요.

정리하면 저는 <실종>에서 탁구를 선함과 악함 사이를 오가는 지혜, 그리고 시종일관 이어지는 두 부녀의 상호작용. 이 두 가지를 시각화하는 장치로 활용했던 겁니다.

 

“요즈음 우리가 작품을 통해 만나게 되는 관객들 중에는 권선징악의 서사, 혹은 인물에 공감하기보다 그렇지 않은 분들이 더 많이 계시는 것 같아요. 예컨대 정의의 편이라도 완전히 스테레오타이프라면 그다지 큰 호소력을 갖지 못한다는 이야기죠. 해서, 어떤 캐릭터를 한 가지 패턴으로만 그릴 게 아니라 때로는 부정적인 모습 또한 보여줌으로써 보다 다면적이고 생각의 여지를 주는 인물을 그려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카타야마 신조 감독의 말이다. (C)NK Contents
"요즈음 우리가 작품을 통해 만나게 되는 관객들 중에는 권선징악의 서사, 혹은 인물에 공감하기보다 그렇지 않은 분들이 더 많이 계시는 것 같아요. 예컨대 정의의 편이라도 완전히 스테레오타이프라면 그다지 큰 호소력을 갖지 못한다는 이야기죠. 해서, 어떤 캐릭터를 한 가지 패턴으로만 그릴 게 아니라 때로는 부정적인 모습 또한 보여줌으로써 보다 다면적이고 생각의 여지를 주는 인물을 그려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카타야마 신조 감독의 말이다. (C)NK Contents

홍상현

스승이신 봉준호 감독도 그런 면이 있으시지만, 실제사건을 모티브로 기발한 이야기를 만들어내는데 재능이 있으신 것 같습니다. 좀 전에 잠시 언급하시기도 했지만, <실종>의 빌런인 무명씨도 따로 실존모델이 존재할 것 같은데요.

카타야마 신조

무명씨는 일본에서 실제 일어난 세 건의 살인사건 범인들을 조합해 만든 인물입니다.

그중 가장 크게 알려진 게 범인이 SNS를 통해 극단적 선택을 원하는 피해자들을 모집한 사건이었어요. 작품을 위한 리서치를 진행하면서 범인을 직접 만나보기도 했는데 당시 대회에서 그가 한 말을 대사로 가져다 쓰기도 했지요.

이 대목에서 다시 봉 감독에 관한 이야기를 하게 되는데요. 제가 범인을 직접 만난 건 봉 감독의 조언 덕분이었어요. 당신께서 "만약에 범인을 만날 수 있다면 만나보는 게 좋을 거 같아. 나는 <살인의 추억>(2003)을 만들 때 범인을 만나보지 못했거든"이라고 말씀하셨거든요.

 

홍상현

부산국제영화제와 전주국제영화제 상영 당시 "시점의 변환이 절묘하다"고 감탄하는 관객이 많았습니다.

카타야마 신조

일본영화는 단일시점에서 그려지는 작품이 많은 까닭에 그만큼 감정이입이 쉽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하지만 <실종>의 경우 세 사람의 중심인물을 설정하고 그들 각자의 시점에서 이야기를 전개하지요. 서사를 좀 더 다각적인 측면에서 보여드리고 싶었거든요.

 

「행복 목욕탕」의 아역으로 한국 관객들에게 사랑받았던 이토 아우이 배우는 감독의 의도를 빠르고 정확하게 파악하는 영민함과 더불어 고도의 집중력을 갖춘 뛰어난 연기자다. (C)NK Contents
「행복 목욕탕」의 아역으로 한국 관객들에게 사랑받았던 이토 아우이 배우는 감독의 의도를 빠르고 정확하게 파악하는 영민함과 더불어 고도의 집중력을 갖춘 뛰어난 연기자다. (C)NK Contents

홍상현

한국에서도 개봉한 <은혼> 시리즈 등에 출연하면서 '개그맨보다 웃기는 배우'로 자리매김했던 사토 지로 배우의 연기 변신이 실로 소름 끼칠 정도입니다.

카타야마 신조

바로 그런 이미지를 가진 배우이기 때문에 이런 엽기적인 설정의 작품의 주인공을 맡으면 관객들이 더 신선하게 받아들여 주시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저 스스로 가장 기대했던 효과인 동시에 실제로 관객들이 <실종>에 가장 큰 흥미를 느끼시는 지점이기도 할 것 같아요.

 

홍상현

<행복 목욕탕>(2016)의 아역으로 한국 관객들에게 사랑받았던 이토 아우이 배우가 사춘기의 주인공 카에데로 분해 눈부신 연기를 보여주고 있는 것도 인상적인데요. 촬영현장에서 어떤 디렉션을 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카타야마 신조

이토 배우는 구체적으로 액션이나 감정표현을 요구하면 그 즉시 수정해 줄뿐더러, 가령 "좀 더 억제된 모습을 보여주실 수 없을까요?"같은 추상적인 코멘트를 던졌을 때조차 제 심중을 잘 이해해서 멋진 연기를 보여줬어요. 이런 기억에 비춰볼 때 <실종>에서 저는 무슨 디렉션을 했다기보다 이토 배우의 잠재력을 어떻게 제대로 살려낼 수 있는지에 관한 아이디어를 제시했다고 표현하는 게 더 적절할 듯싶습니다.

게다가 이토 배우는 워낙 집중력이 강하고 매사에 군더더기가 없어요. 그렇다고 미묘한 감정의 디테일에 있어서 뒤지는 것도 아니고요. 함께 할 수 있어 즐거웠고, 앞으로의 활동도 기대하고 있습니다.

 

시미즈 히로야 배우가 분한 ‘무명씨’는 일본에서 실제 일어난 세 건의 살인사건 범인들을 조합해 만든 인물이라고 한다. (C)NK Contents
시미즈 히로야 배우가 분한 '무명씨'는 일본에서 실제 일어난 세 건의 살인사건 범인들을 조합해 만든 인물이라고 한다. (C)NK Contents

홍상현

<노루귀꽃>(2017), <도쿄 리벤저스>(2020) 등의 개봉작으로 한국 관객들에게 익숙한 시미즈 히로야 배우가 혹시나 '꿈에 나오지 않을까' 걱정될 만큼 섬뜩한 악역으로 등장하는데요. 촬영현장에서 힘든 점은 없으셨나요?

카타야마 신조

복지시설에서 일하면서 좋은 사람으로 가장인 척하던 때 모습과 본색을 드러냈을 때의 모습을 어느 정도의 차이를 둬서 그려낼 것인지가 관건이었습니다. 눈을 멀뚱멀뚱하게 뜬다든가, 엽기적인 이미지 가운데서도 지나치게 정형화된 이미지로 비치지 않도록 평범한 청년의 모습도 보여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캐릭터를 구축해갔어요. 그런데 그게 참 쉽지 않더라고요.

 

홍상현

그밖에 영화를 보신 분들이 가장 많이 언급한 것이 모리타 미사토 배우였습니다.

실은 저도 엔딩크레디트가 올라갈 때까지 극단적 선택을 희망하는 '찌르레기'를 연기한 사람이 모리타 배우라는 걸 전혀 눈치채지 못할 정도였어요.

카타야마 신조

모리타 배우는 이른바 '가련한 미소녀' 같은 캐릭터로 보이기 쉬운 스타일이죠. 하지만 저는 이 배우한테서 좀 다른 이미지를 끌어내 보고 싶었어요. 그래서 가발이나 안경 같은 소품을 가지고 좀 다른 캐릭터로 연출을 시도해봤는데, 그렇게 데포르메(déformer)를 해 가다 보니까 이번엔 또 개연성이 반감되는 부작용이 나타나더라고요. 상당히 고민스러운 지점이었죠.

그래서 저 나름의 상상력을 발휘해봤습니다. 예컨대 별로 권해드릴 만한 콘텐츠는 아니지만 유튜브에 더러 정신적인 고통에 시달리시는 분이나 극단적 선택을 갈망하시는 분들이 내보내는 영상이 있거든요. 여기 등장하시는 분들의 말투 등을 참고해가면서 제 오리지널 캐릭터를 만들어 본 거죠.

극단적인 선택을 갈망하는 여성에 대한 스테레오타이프로서 또 한 가지 대표적인 게, 내성적인 성격 때문에 의사 표현이 서툴다는 이미지인데요. 여기에도 좀 변화를 줘 봤어요. 그래서 태어난 게 입이 걸지만, 감수성 또한 예민하기 때문에 나쁜 일이 생기거나 하면 바로 자신을 원망하게 되어버리는 '찌르레기'라는 인물입니다. 이 영화에서 찌르레기는 아이가 부모에게 혼나는 장면을 보거나, 단지 그런 소리를 듣는 것만으로 온종일 기분이 나빠지거나 '혹시 나 때문에 그러는 거 아닐까?'하는 자책에 사로잡히고는 해요. 이런, '최대한 발을 땅 위에 디디고 있는 것 같은' 인간형을 그려내고 싶었습니다.

 

‘찌르레기’역을 맡아 열연을 펼친 모리타 미사토 배우는 부산국제영화제와 아시아필름마켓이 주최하는 아시아콘텐츠어워즈 신인상 수상자이기도 하다. (C)NK Contents
'찌르레기' 역으로 열연을 펼친 모리타 미사토 배우는 부산국제영화제와 아시아필름마켓이 주최하는 아시아콘텐츠어워즈 신인상 수상자이기도 하다. (C)NK Contents

홍상현

슬슬 이야기를 마무리해야 될 시간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가장 애착을 가지고 촬영한 장면이 있으시다면 소개해주시겠어요?

카타야마 신조

오사카 산가쿠공원에서 무료급식을 받는 홈리스들이 등장하는 장면입니다. 카메라가 하늘 위에서 내려와 사람들 사이를 지나고, 다시 어디선가 사토시가 나타나 이 광경을 바라보는데요. 이 신에 등장하는 분들은 보조출연자가 아니라 평소에도 그곳에 생활하고 계세요. 이 장소는 제게 무척 익숙하면서도 무서워서 좀처럼 접근할 수 없었던 특별한 기억의 무대이기도 한데요. 거기서 제 장편상업영화 데뷔작을 찍으니 감회가 새롭더라고요.

그리고 또 하나, 앞서 언급하신 탁구가 등장하는 마지막 장면도 무척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습니다.

 

홍상현

라스트 신. 네, 왜 그런 생각을 하시는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럼 이제 마지막 질문이 되겠는데요. 한국에서 공개되는 본인의 신작, <실종>을 어떤 분들께 추천해드리고 싶으신가요.

카타야마 신조

우선 자신의 힘이 가진 한계가 드러나는 지점에서 고통을 강요받고 계신 분들이 보고 공감해주신다면 정말 기쁠 것 같고요. 꼭 그렇지 않다고 하더라도 무척 다양한 소재를 다루는 작품이니까 다양한 분들이 보시고 여러 가지를 생각해주실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아울러, 한국 관객 여러분께서 보신다면 아무래도 영화 자체에 좀 더 집중해 주시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어요. 일본에서라면 실제로 피해자가 존재하는 사건을 상기시킬 지도 모르기 때문에 아무래도 부정적인 측면에 집중을 하시게 될 것 같거든요. 그러나 환경이 다르다면 그런 부분에는 감정이입이 조금은 덜 하면서 작품을 보아주시지 않을까 합니다. 예컨대 최근 극단적 선택을 주제로 하는 동호회 사이트 같은 게 단지 일본에서만 문제가 되는 게 아닌 것처럼.

 

「실종」의 포스터는 한국을 대표하는 디자인 스튜디오인 프로파간다에서 제작을 맡아 화제가 되었다. (C)NK Contents
「실종」의 포스터는 한국을 대표하는 디자인 스튜디오인 프로파간다에서 제작을 맡아 화제가 되었다. (C)NK Contents

"<실종>은 저 자신의 실제체험으로부터 영감을 얻어 세상에 나왔습니다. 제 장편상업영화 데뷔작이기도 한데 오리지널 시나리오로 첫 작품을 찍게 된 것을 영광으로 생각하고 있고요.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하는 작품이지만 아슬아슬한 느낌을 주는 엔터테인먼트성 또한 갖춘 작품입니다. 시사성과 엔터테인먼트성의 조화 같은 경우 한국영화들이 워낙 높은 완성도를 보여주고 있기 때문에 제 작품이 한국 관객 여러분께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한편으로는 걱정이 되고, 또 한편으로는 기대가 되기도 해요. 보시고 혹시 마음에 드신다면 주변에 추천해주셔서 한 분이라도 더 많은 분들이 보실 수 있게 되면 더 바랄 게 없겠습니다."

길었던 인터뷰를 마무리하며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묻자 예의 진지한 표정으로 잠시 생각에 잠겼던 그는 이내 "앞으로는 아예 한국에서 영화나 드라마를 찍을 기회를 얻을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는 답을 내놓았다. 하긴. 그에게 이번 작품의 한국개봉은 '새로운 시장에서의 도전'이 아니라 '홈커밍(homecoming)'의 느낌이 더 클 수도 있으리라. 게다가 전혀 터무니없는 꿈도 아니다. 실제로 엔딩크레디트의 곳곳에서 한국인 스태프와 투자자, 심지어 투자사의 이름까지 눈에 띄고, 포스터도 아예 한국의 디자인 스튜디오인 프로파간다에서 제작하지 않았나.

부디 머잖은 장래에 그의 바람이 현실화되기를. 그날을 기다리며 일단은 두 군데의 영화제에서 정신없이 몰입하며 보았던 <실종>을, 이번엔 서울의 영화관에서 조금 느긋하게, 작품 어디에 스승을 위한 오마주가 숨어있는지 꼼꼼히 살피며 다시 한번 봐야겠다.

[인터뷰 코아르CoAR 홍상현, krpopper@ccoart.com]

홍상현
홍상현
《코아르》 운영위원, 다카사키영화제 시니어 프로듀서.
 정치학과 영상예술학 두 분야의 학위를 소지. 인문사회과학과 영화이론을 넘나드는 전문적 식견으로 한ㆍ일 양국 매체에 분석 기사를 쓴다. 파리경제대 토마 피케티와 『21세기 자본』 프로젝트를 진행한 도쿄대 시미즈 연구실 출신.
 프로듀서를 맡은 장편다큐멘터리영화 <포 디 아일랜더스>는 2008년 제주영화제 개막작이었다. 2013년부터 월간 《게이자이》에서 담당하는 경제평론 지면이 에히메대 와다 제미나르의 교재로 쓰인다. 『마르크스는 처음입니다만』 등 다수의 스테디셀러를 소개해 온 번역가로도 유명하다.
  일본국제교류기금이 선정하는 "세계의 영화인 7인" 중 1인이며 일본 TBS(채널 6)주최 디지콘6 아시아 심사위원, 《마이니치신문》 영화웹진 《히토시네마》 필진,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전주국제영화제 어드바이저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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