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프레임 밖에서 꿈을 꾸는, 평범한 나와 당신을 위하여
[interview] 프레임 밖에서 꿈을 꾸는, 평범한 나와 당신을 위하여
  • 홍상현
  • 승인 2022.06.04 13: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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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전주국제영화제 초청작 <대결! 애니메이션> 요시노 고헤이 감독
5월 20일 현지개봉을 앞두고 있는 「대결! 애니메이션」은 올해 전주국제영화제에서 가장 폭넓은 관객에게 사랑받았던 작품 중 하나다. (C)2022 ANIME SUPREMACY! Film Partners
5월 20일 현지개봉을 앞두고 있는 「대결! 애니메이션」은 올해 전주국제영화제에서 가장 폭넓은 관객에게 사랑받았던 작품 중 하나다. (C)2022 ANIME SUPREMACY! Film Partners

몇 군데의 대학과 대학원을 전전하며 손에 쥔 '증서' 가운데 최근의 생업과 가장 밀접한 관련이 있는 영화학과 영상예술학 전공 학위가 있다는 걸 밝히기 꺼렸었다.

혹여 백 만 광년 정도의 거리가 있는 '재능'이라는 단어를 필자와 결부시킬까 두려워서. 원래부터 그랬던 건 아니다. 가족의 뜻을 거스르며 늦깎이로 연극영화과에 진학할 때만 해도 '불세출의 영화작가가 될지 모른다'는 망상이 심각했다. 증세(?)는 개론 수준의 이론 강의를 들을 때까지 이어졌다. 인문사회과학을 대학원 과정까지 공부하며 주워들은 지식이나, 무슨 내용인지 몰라도 어금니를 깨물고 집중한 끝에 엔딩크레디트가 올라가는 순간을 맞으면 뭔가 해냈다는 성취감이 느껴지는 아트필름의 고전을 최대한 봐두었던 경험으로 버틸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단편영화 제작 워크숍에 들어가자 상황이 달라졌다.

교문을 걸어 들어갈 때 머릿속을 가득 메우던 웅장한 이미지들은 사라지고 불안과 조바심만 남았다. 칸이나 할리우드의 레드카펫을 향한 야무진 꿈은 길어야 고작 열 페이지 남짓의 단편영화 시나리오를 쓰면서 산산이 조각났다. 머릿속 영상과 스태프ㆍ캐스트에게 공유시켜야 할 내용이 서로 엇갈리며 삐걱거렸고, 미로를 헤매다 '일단 완성하고 보자'며 끊임없이 자기합리화를 하고 있는 내 모습과 마주쳤다. 시나리오를 완성하고 나서도 산 넘어 산. 스토리보드 작화, 로케이션 헌팅, 카메라ㆍ조명 세팅, 배우섭외와 협의, 설득, 무엇 하나 쉽지 않거니와 애초에 혼자 해낼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2011년 단편영화 「스스로 해보세요」가 부산국제영화제에 초청 선재상에 특별언급되면서 한국의 국제영화제와 처음 인연을 맺은 요시노 고헤이 감독. 광고기획자, 뮤직비디오 연출은 물론 「너의 이름은」 제작팀에서는 애니메이터로 CG 및 공간디자인을 맡아 활약했던 전천후 크리에이터다. (C)EPOCH Inc.
2011년 단편영화 「스스로 해보세요」가 부산국제영화제에 초청 선재상에 특별언급되면서 한국의 국제영화제와 처음 인연을 맺은 요시노 고헤이 감독. 광고기획자, 뮤직비디오 연출은 물론 「너의 이름은」 제작팀에서는 애니메이터로 CG 및 공간디자인을 맡아 활약했던 전천후 크리에이터다. (C)EPOCH Inc.

자신의 비범함보다 평범함을 인정하고, 역시 가장 평범해 보이는 모두와 손을 맞잡고 가지 않는 이상. 명작은 고사하고 타임 10분 남짓의 단편영화 하나 완성할 수 없다는 영화제작의, 아니, 세상사의 순리를 깨달은 순간.

생물학 연구자의 길을 걷다 돌연 학계를 등지고 단편영화 <스스로 해보세요>(2011)를 만들어 부산국제영화제 선재상에 특별언급 되는가 하면, 광고와 뮤직비디오 감독으로 데뷔하고 심지어 애니메이터가 되어 세계적인 히트를 기록한 <너의 이름은>(2016)의 회상 부분 CG 및 공간디자인을 담당했던 전천후 크리에이터, 요시노 고헤이의 두 번째 장편 <대결! 애니메이션>은 역설적으로 모두에서 언급한 '범인(ordinary person)' 필자의 경험을 떠올리게 한다. 올해 전주국제영화제 월드시네마 부문에 초청된 이 영화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공무원 생활을 하다 대기업 애니메이션 회사에서 일하고 있는 히토미(요시오카 리호 분)는 대망의 첫 작품 <사운드백. 연주의 돌> 제작이 결정되어 감독 데뷔를 준비 중이지만 현장에는 먹구름이 가득하다. 특히 거슬리는 인물은 업계에서 히트 제조기로 추앙받는 프로듀서 요키요사(에모토 타스쿠 분). 창작의 산물을 단지 제품으로만 생각하는 그는 창작자로서의 자의식이 강한 히토미와 내내 실랑이를 벌인다. 한편 이 와중에 두 사람의 앞을 막아서는 사람이 있었으니, 한때 히토미의 롤 모델이었던 천재 감독 오지 지하루(나카무라 토모야 분)다. 하지만 오지는 큰 인기를 얻으며 사회 현상으로까지 불렸던 데뷔작 이후 별다른 활동 없이 '잊힌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다. 프로듀서 아라시나(오노 마치코 분)는 그런 오지를 북돋우며 8년 만의 신작을 만들어간다. 그렇게 시작된 숙명의 애니메이션 대결. 다만, 작품은 스토리가 전개될수록 서사의 방향을 대결구도가 아니라 뭔가를 창조하며 살아가는 모든 이들을 위한 찬사에 초점을 맞추며 매력을 더한다.

 

공무원 생활을 하다 대기업 애니메이션 회사에서 일하고 있는 히토미는 대망의 첫 작품 「사운드백. 연주의 돌」 제작이 결정되어 감독 데뷔를 준비 중이지만 현장에는 먹구름이 가득하다. (C)2022 ANIME SUPREMACY! Film Partners
공무원 생활을 하다 대기업 애니메이션 회사에서 일하고 있는 히토미는 대망의 첫 작품 「사운드백. 연주의 돌」 제작이 결정되어 감독 데뷔를 준비 중이지만 현장에는 먹구름이 가득하다. (C)2022 ANIME SUPREMACY! Film Partners

홍상현

일주일 동안 매일 다른 인격으로 살아가는 주인공을 등장시킨 장편상업영화 데뷔작 <수요일이 사라졌다>로 주목받으시고, 두 번째 작품으로 전주국제영화제에 오셨습니다. 단편으로 부산국제영화제에 오신 적도 있으셔서 감회가 더욱 남다르실 것 같은데요.

요시노 고헤이

예전에 단편으로 부산국제영화제에 참가하면서 한국 분들의 영화에 대한 열정과 따뜻함을 느꼈는데요. 이번에 바로 그 한국의 여러분과 다시 한번 제 새로운 작품으로 만날 기회를 주셔서 너무나 기쁩니다. 제작진 모두를 대표해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어요.

 

홍상현

다음은 "홍상현의 인터뷰"를 통해 뵙는 분들께 늘 드리는 질문인데요.

한국영화, 자주 보시나요? 좋아하시는 작품이나 감독, 배우 등이 있다면 소개 부탁드립니다.

요시노 고헤이

워낙 뛰어나신 분들이 많지만, 특히 봉준호 감독과 나홍진 감독의 작품을 좋아해서 자주 보고 있어요. 그리고 올해 전주국제영화제에서 특별전을 마련한 이창동 감독의 작품 중에서는 <밀양>을 꼭 언급하고 싶습니다. 처음 볼 때 받았던 충격이 지금도 생생할 정도라서요.

 

「운명전선 리델라이트」의 감독 오지 지하루는 한때 히토미의 롤 모델. 하지만 큰 인기를 얻으며 사회 현상으로까지 불렸던 데뷔작 이후 별다른 활동 없이 ‘잊힌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다. (C)2022 ANIME SUPREMACY! Film Partners
「운명전선 리델라이트」의 감독 오지 지하루는 한때 히토미의 롤 모델. 하지만 큰 인기를 얻으며 사회 현상으로까지 불렸던 데뷔작 이후 별다른 활동 없이 '잊힌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다. (C)2022 ANIME SUPREMACY! Film Partners

홍상현

단언컨대, 누구라도 감독의 프로필을 읽어본다면 흥미를 느끼지 않을 수 없을 거로 생각합니다.

생물학 연구자의 길을 걷다가 돌연 CG 애니메이터가 되셔서 히트작 <너의 이름은> 제작팀에서 활약하셨어요. 심지어 여기서 그치지 않고 다시 실사영화의 감독으로까지 데뷔하셨는데요. 어떤 특별한 계기가 있었는지요.

요시노 고헤이

학창 시절부터 줄곧 영화를 찍고 싶었지만 어떻게 하면 그 길을 갈 수 있을지 몰랐어요. 그래서 일단 CG나 광고영상을 만드는 업계에 뛰어들어 우여곡절을 겪은 후 장편상업영화를 찍게 되었죠. 생물학 연구자였던 이력을 말씀하셨는데, 실은 그것도 생물학연구의 영상적인 특성에 이끌려 전공으로 택했던 겁니다.

여기서 잠시 제 필모그래피를 더듬어 보면 일단 혼자 10초 정도의 아주 짧은 단편작품을 한참 헤매면서 만들어낸 게 시작이었고 그로부터 20년을 투자해서 겨우 120분짜리 극장용 장편영화를 완성하는 수준에 다다른 거죠.

여기까지 오는데 또 하나의 중요한 변곡점이 존재했는데요. 바로 부산국제영화제에서 15분짜리 제 단편, <스스로 해보세요>를 초청해 선재상 특별언급까지 해 주신 일입니다. 이 경험이 서툴지만 제 나름 스토리라인 등을 그려보기 위해 부단히 노력할 수 있는 에너지를 주었거든요.

 

홍상현

방금 해 주신 말씀 중에 아주 중요한 포인트가 하나 나왔는데요.

생물학에서까지 영상적인 요소를 찾아내시는 분이라 그런지 발상의 영역이 실사와 애니메이션을 자유롭게 오가는 등, 실로 무한하다는 인상을 받습니다.

요시노 고헤이

저는 영상 분야 일을 시작할 때부터 실사와 애니메이션을 동시에 만들어왔기 때문에 딱히 두 세계를 구분하는 의식이 별로 없었습니다. 아울러 세대적으로도 CG나 편집용 소프트웨어를 누구라도 쉽게 손에 넣을 수 있는 환경이었고 광고나 뮤직비디오의 경우, 일상적으로 실사와 애니메이션이 혼용되고 있잖아요. 따라서 저 개인적으로는 이런 방식 자체가 아주 평범하게 느껴져요.

앞으로 저와 같은 감각이나 발상체계를 가진 감독이 점점 더 늘어날 거로 생각합니다.

 

홍상현

겸손하시군요. (웃음)

여하튼 이렇듯 감독께서는 확실히 소프트웨어, 즉, 상상력과 하드웨어인 기술적 전문성에 발 디딘 크리에이터들이 새로운 영상문화를 주도해 갈 것이라는 암시를 주시는 인물임과 동시에, 다른 중요한 특성도 갖고 계십니다. 이번 <대결! 애니메이션>이 보여주듯 '인간력'이야말로 모든 창조의 핵심이라는 강한 믿음을 갖고 계신다는 점인데요.

요시노 고헤이

애니메이션이든 실사든 결국 '사람의 손'을 통해 만들어지고, 그 원천이 열정, 혹은 충동이라는 점도 변함이 없죠. 특히 감독은 이 '사람의 손'을 엄청나게 빌려나 하는 입장에 있습니다.

100년 전과 비교하면 테크놀로지 자체는 변화했겠지만 사람과 사람이 만나 힘을 합쳐 작품을 만들어내는 이상 영화현장에서 감독에게 요구되는 조건은 기본적으로 바뀌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해요. 이는 방금 전에 "'인간력'이야말로 모든 창조의 핵심"이라고 말씀하신 지점과도 맞물리는 내용인데요. 비단 영화나 애니메이션 제작에만 국한된 이야기도 아닌 것 같아요.

 

최근 넷플릭스를 통해 한국 관객에게 선보인 「야쿠자와 가족」에서도 주연을 맡기도 했던 오노 마치코 배우. 카리스마 넘치는 프로듀서 ‘아라시나’를 연기해 ‘팬심’을 자극한다. (C)2022 ANIME SUPREMACY! Film Partners
최근 넷플릭스를 통해 한국 관객에게 선보인 「야쿠자와 가족」에서도 주연을 맡기도 했던 오노 마치코 배우. 카리스마 넘치는 프로듀서 '아라시나'를 연기해 '팬심'을 자극한다. (C)2022 ANIME SUPREMACY! Film Partners

홍상현

다음으로 원작에 관한 이야기를 해볼까요.

동명 원작인 소설 『대결! 애니메이션』이 특유의 대결구도와 다채로운 캐릭터가 지닌 매력으로 독자들에게 사랑받기는 했지만, 실사영화로 제작하는 것은 실로 '모험'이라 할 만큼 난이도가 높았을 거로 생각합니다.

프리프로덕션 과정에서 어떤 방향을 설정하셨는지 궁금한데요.

요시노 고헤이

두 감독의 '애니메이션 대결'이 스토리의 중심을 이루고 있는 까닭에 무엇보다 애니메이션 캐릭터와 실사 캐릭터가 모두 매력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두 요소가 상호보완작용을 하면서 서로를 끌어당길 수 있도록 극 중 애니메이션에 두 감독의 성격이나 팀의 사고방식을 반영했죠. 그리고 이런 모든 것들이 스크린을 통해 관객들에게 자연스럽게 전해질 수 있도록 실제로 높은 완성도를 유지하는 한편, 실사팀과 소통하며 애니메이션을 만들어주실 수 있는 스튜디오를 찾느라 무척 애를 먹었습니다.

 

홍상현

<대결! 애니메이션은> 이미 동명 타이틀 연극으로도 공연되어 호평받았는데요. 영화도 연극 못지않게 배우들의 연기를 보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매체연기의 특성을 부각시키기 위해 어떤 연출 플랜을 세우셨나요.

요시노 고헤이

일단 촬영현장에서 배우의 힘을 최대한 자연스럽게 끌어낼 수 있도록 카메라와 조명의 운용에 관한 계획을 사전에 철저하게 세워두었습니다. 현장에서 커트 분할 때문에 고민하거나 주춤하거나 혹은 다른 이유로 해서 리듬이 끊어지면 안 되겠다 싶었거든요. 하지만 무엇보다 캐스트를 신뢰했기 때문에 각자의 연기를 세세하게 연출하기보다 배우가 최대한 자연스럽게 행동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대결! 애니메이션」 최고의 반전캐릭터로 분한 에모토 타스쿠 배우. 그가 홀로 등장하는 쿠키영상은 전주에서 관객들의 큰 환호와 박수를 이끌어냈다. (C)2022 ANIME SUPREMACY! Film Partners
「대결! 애니메이션」 최고의 반전캐릭터로 분한 에모토 타스쿠 배우. 그가 홀로 등장하는 쿠키영상은 전주에서 관객들의 큰 환호와 박수를 이끌어냈다. (C)2022 ANIME SUPREMACY! Film Partners

홍상현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대결! 애니메이션>에는 서로 다른 두 편의 극중극 애니메이션이 등장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필자가 매우 놀란 것은 이 두 작품이 <대결! 애니메이션>이라는 한 편의 영화를 위해 말씀처럼 각기 다른 감독이 참여하는 독립된 작품의 형태로 만들어졌다는 사실 때문이었습니다.

요컨대 세 사람의 감독 중 '총감독'이라는 입장에서 작품을 제작하신 건데요. 다른 두 사람의 애니메이션 감독과 어떤 협업의 과정을 거치셨는지 알고 싶습니다.

요시노 고헤이

일단은 원작자인 츠지무라 미즈키 작가에게 각 애니메이션의 12화 분량의 플롯을 써 주십사 부탁드리고, 이를 영화의 타임라인 안에 어떤 식으로 짜 넣을지, 두 작품의 영향으로 인해 어떤 세계관 차이가 나타나는지를 고민하며 서사를 조립해 갔습니다. 나머지 두 감독이 본격적으로 제작에 합류하게 된 건 이런 사전 작업의 틀과 목표가 어느 정도 세워진 뒤의 일이었죠.

또한 언급해두고 싶은 것이 두 감독이 각각 실사 파트의 캐릭터인 사이토 히토미와 오지 치하루, 두 감독의 성격이나 작품의 이미지, 그리고 작풍 등을 가능한 한 세세하게 공유하면서 콘티 작업을 진행해주셨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재미있는 건 이 극중극 애니메이션의 감독들이 시나리오에 등장하는 감독들과 대단히 유사한 성격의 소유자들이었다는 사실이에요. 다행이었죠. 그 덕분에 따로 신경 쓰지 않아도 저절로 두 애니메이션의 컬러가 차별화될 수 있었으니까요.(웃음)

 

홍상현

주연인 요시오카 리호 배우는 전부터 영화나 드라마 등에서 활약을 보여주었지만, 이번 <대결! 애니메이션>의 주인공을 맡으면서 바야흐로 연기인생의 새로운 단계로 진입한 느낌입니다.

요시노 고헤이

요시오카 배우는 무엇이든 진지하게, 어느 것 하나도 놓치지 않고 받아들이는 흡인력을 가진 분입니다. 예컨대 이 시나리오가 어떤 톤을 가지고 있고, 본인은 작품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하나하나 치밀하게 계산해 가면서 작업을 진행하는.

히토미 역을 소화하면서도 바로 요시오카 배우의 이런 기질이 발휘되면서 진지하고 강건한 모습 뒤에 불타는 열정을 숨기고, 다른 한편으로는 힘겨운 성장기를 버텨온 경험이 삶에 녹아들어 상당한 매력을 풍기는 인물을 표현해낼 수 있지 않았나 싶어요. 말씀처럼 이 작품으로 그의 새로운 매력이 전해져 활약의 장 또한 넓어진다면 감독으로서 더 바랄 게 없겠습니다.

 

극중극 형태로 등장하는 「사운드백. 연주의 돌」의 한 장면. 극중 오지 지하루의 작품과 더불어 원작자가 12부까지의 플롯을 준비해두었다고 한다. (C)2022 ANIME SUPREMACY! Film Partners
극중극 형태로 등장하는 「사운드백. 연주의 돌」의 한 장면. 극중 오지 지하루의 작품과 더불어 원작자가 12부까지의 플롯을 준비해두었다고 한다. (C)2022 ANIME SUPREMACY! Film Partners

홍상현

특히 '그저 한 사람의 크리에이터'에서 '진정한 리더'로 거듭나는 과정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뛰어난 연기가 훌륭했습니다.

요시노 고헤이

전반부의 완고하고 닫힌 캐릭터로서의 인물묘사에는 실제의 요시오카 배우보다는 제 성격이 살짝 반영되어 있는데요. 인간적인 성장을 거듭한 후반부의 모습은 요시오카 배우의 사람됨이 여유롭게 나타나고 있는 느낌입니다.

실제로 후반부에서 보여주는 히토미의 행동 중에는 현장에서 요시오카 배우가 했던 제안에 따라 촬영된 부분이 많아요. 그렇다 보니 스태프들로서도 마치 현실에 존재하는 신인 애니메이션 감독의 성장을 지켜보는 것 같은 즐겁고 자극적이며, 소중한 체험을 공유할 수 있었습니다.

 

홍상현

<수요일이 사라졌다>에 이어 <대결! 애니메이션>에서도 나카무라 토모야 배우와 감독의 궁합은, 실로 최고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은데요. 감독에게 나카무라 배우는 어떤 분인가요. 또, 이번 작품에서는 감독으로서 어떤 것을 요구하셨는지요?

요시노 고헤이

나카무라 배우는 전작의 주인공으로서 '관객과 함께 새로운 세계를 여행해 가는 청년'이라는 캐릭터를 연기해주었는데요. 아시다시피 이번에는 주인공인 히토미를 가로막는 '라이벌'이자 한때 그의 롤 모델이었던 인물로 분했습니다.

저로서는 <수요일이 사라졌다>를 통해 알게 되었던 나라무라 배우의, 일견 표표하면서도 내면적으로는 실로 다양한 것을 고민하는 퍼스낼리티를 최대한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감사하게도 이런 제 의도를 백퍼센트 이해해서 잘 답해주셨고요.

 

별도의 감독을 섭외해 따로 제작한 두 편의 극중극 애니메이션은 ‘각각의 전체 에피소드를 보고싶다’는 평이 매체에 실릴 만큼 관심을 모았다. 사진은 오지 지하루의 극중 연출작(실제의 감독은 따로 있다) 「운명전선 리델라이트」의 한 장면. (C)2022 ANIME SUPREMACY! Film Partners
별도의 감독을 섭외해 따로 제작한 두 편의 극중극 애니메이션은 '각각의 전체 에피소드를 보고싶다'는 평이 매체에 실릴 만큼 관심을 모았다. 사진은 오지 지하루의 극중 연출작(실제의 감독은 따로 있다) 「운명전선 리델라이트」의 한 장면. (C)2022 ANIME SUPREMACY! Film Partners

홍상현

<대결! 애니메이션>에는 관객들의 예상을 뒤엎고 드라마의 재미를 배가시켜주는 또 한 사람의 히어로가 등장합니다. 바로 <사운드 백>의 프로듀서 역으로 분한 에모토 타스쿠 배우인데요.

요시노 고헤이

에모토 배우가 연기한 요시요사는 촬영 전에 제가 예상했던 방향과 좀 달랐어요. 저는 원래 좀 더 성실하면서도 냉정한 캐릭터를 상정했거든요. (웃음)

그런데 에모토 배우는 여기에 차밍함, 즉, 좋은 의미에서의 '얄미움'을 풍겨내는 모습을 촬영 과정에서 덧붙여 굉장히 성공적인 역할창조를 해냈습니다. 야, 정말 어찌나 신선하던지 매번 촬영이 진행될 때마다 에모토 배우가 이번엔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저조차도 기대가 되더라고요.

 

홍상현

하긴,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에모토 배우가 홀로 등장하는 쿠키영상을 보고 환호하면서 박수를 치는 관객까지 있었으니까 충분히 그럴 만하네요. (웃음)

어느새 인터뷰가 종반을 향하고 있는데요. 이번엔 감독께서 <대결! 애니메이션>이라는 작품을 통해 관객들에게 무엇을 전하고 싶으셨는지 들어보도록 할까요?

요시노 고헤이

아주 당연한 이야기인지 모르겠지만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결국 '누군가'의 손을 통해 만들어진 창조물입니다.

하지만 그 '누군가'도 처음부터 어떤 정답을 알고 있거나, 뭐든 잘 해내는 사람은 아니었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저 평범한 인간으로서 헤메다 때로는 쓰러지고, 힘내서 다시 일어나는 과정을 거치면서 우리 눈앞에 있는 것들을 만들어 왔을 겁니다. 여기서 제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포인트는 우리 모두, 저마다 이런 일들을 해낼 힘을 가지고 있다는 거예요.

이런 생각을 중심에 두고 <수요일이 사라졌다>의 촬영을 막 끝마쳤을 때 신인감독으로서 느꼈던 생생한 아픔과 여러 가지 감정, 그리고 희망 등을 <대결! 애니메이션>을 통해 담아낼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애니메이션이든 실사든 결국 ‘사람의 손’을 통해 만들어지고, 그 원천이 열정, 혹은 충동이라는 점도 변함이 없죠. 특히 감독은 이 ‘사람의 손’을 엄청나게 빌려나 하는 입장에 있습니다. 100년 전과 비교하면 테크놀로지 자체는 변화했겠지만 사람과 사람이 만나 힘을 합쳐 작품을 만들어내는 이상 영화현장에서 감독에게 요구되는 조건은 기본적으로 바뀌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해요.” 요시노 고헤이 감독의 말이다. (C)2022 ANIME SUPREMACY! Film Partners
"애니메이션이든 실사든 결국 '사람의 손'을 통해 만들어지고, 그 원천이 열정, 혹은 충동이라는 점도 변함이 없죠. 특히 감독은 이 '사람의 손'을 엄청나게 빌려나 하는 입장에 있습니다. 100년 전과 비교하면 테크놀로지 자체는 변화했겠지만 사람과 사람이 만나 힘을 합쳐 작품을 만들어내는 이상 영화현장에서 감독에게 요구되는 조건은 기본적으로 바뀌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해요." 요시노 고헤이 감독의 말이다. (C)2022 ANIME SUPREMACY! Film Partners

"<대결! 애니메이션>은 지금 이 순간에도 쉴 새 없이 이뤄지고 있는 애니메이션 제작현장에서의 창작활동을 그린 작품입니다.

영화에 등장하는 무대나 화면은 최대한 진짜 현장에 가까운 모습을 보여드리기 위해 많은 스테프들과 머리를 짜내 만들었어요. 아울러, 내러티브와 관련해서는 한국 관객 여러분께서 엔터테인먼트로서도 즐길 수 있도록 각색되어 있는 부분이 있지만 그 중심에서 느껴지는 열기는 실제 애니메이션 제작현장, 아니, 모든 장르의 창조물을 만들어내는 어떤 분야의 현장과도 다르지 않을 거라 믿습니다. 기회가 주어진다면 부디 제 작품을 즐겨주시기 바라겠습니다. 또한 그리고 나서는 여러분 각자에게 소중했던 애니메이션, 혹은 다른 장르의 작품들을 생각하면서 앞으로 좀 더 기쁜 마음으로 영화를 즐기게 되셨으면 좋겠어요."

높은 영화적 완성도는 물론 원작이 보여주는 여성캐릭터들에 대한 애정과 연대의 희망을 성공적으로 담아내어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최고의 인기작으로 부상한 <대결! 애니메이션>에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 넣어서일까. 인터뷰를 마무리하며 향후 계획을 묻자 이 겸손한 전천후 크리에이터는 수줍은 웃음과 함께 '아직 차기작 계획이 분명히 정하지는 않았지만. 새로운 가족과 함께 지내며 영화로 만들고 싶은 것을 찾고, 주의 깊게 응시해 본 뒤 새로운 프로젝트를 구상하고 싶다'고 답해주었다.

어느새 필자의 입가에도 미소가 번진다. 물론 언제까지라도 기다릴 수 있지, 당신의 작품이라면. 왜 아니겠는가.

홍상현
홍상현
 《코아르》 운영위원, 고토부키홈빌더 영화영상사업부 프로듀서.
정치학과 영상예술학 두 분야의 학위를 소지. 인문사회과학과 영화이론을 넘나드는 전문적 식견으로 한일 양국 매체에 분석기사를 쓴다. 파리경제대 토마 피케티와 『21세기 자본』 프로젝트를 진행한 도쿄대 연구실 출신.
 프로듀서를 맡은 장편 다큐멘터리영화 <포 디 아일랜더스>는 2008년 제주영화제 개막작이었다.
 2013년부터 월간 《게이자이》에서 담당하는 경제평론지면이 에히메대 와다 제미나르의 교재로 쓰인다. 국제영화비평가연맹(FIPRESCI) 지부인 일본영화펜클럽 회원. 『마르크스는 처음입니다만』 등 다수의 스테디셀러를 소개해온 번역가로도 유명하다.
 일본국제교류기금이 선정하는 “세계의 영화인 7인” 중 1인이며 일본 TBS(채널 6) 주최 디지콘 6 아시아 심사위원, 《마이니치신문》 영화웹진 《히토시네마》 필진 및 마이니치영화콩쿠르 심사위원, 다카사키영화제 시니어 프로듀서,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전주국제영화제 어드바이저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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