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BEST] 완전한 영화, 완전한 대중. 그 불가해함속에서
[2021 BEST] 완전한 영화, 완전한 대중. 그 불가해함속에서
  • 이현동
  • 승인 2021.12.13 1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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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아르CoAR 이현동 영화전문기자

2021년은 영화가 무엇인지를 치열하게 탐닉하던 한 해였다. 비평이란 무게를 껴안고 나의 텍스트가 코아르CoAR라는 무대로 수줍게 올라가는 그 민망함과 환희는 잊지 못할 순간으로 기억될 것 같다. 사실 2021년의 개봉작을 포함한 필자의 정신을 영화화했던 셀 수 없는 훌륭한 감독들의 작품들을 손가락 열 개로 순위까지 나열하는 것은 진실로 곤욕스러운 일이었다. 올해 나에게 이성과 감성을 곤두세우게 했던 영화들의 순위는 다음과 같다.

 

BEST FILMS of 2021

1. <길 La Strada> 페데리코 펠리니Federico Fellini|1954

ⓒ 영화 <길> 스틸컷

유럽 격동의 시기를 겪는 이들의 삶에서 해학을 찾아볼 수 있을까. 결국 가족의 안온함마저 강탈해가는 잔혹한 현실은 네오리얼리즘이라는 형식에 응답할 수밖에 없었던 것 같다. <길>에서 젤소미나(줄리에타 마시나)의 그 몸짓과 표정을 응시하고 있노라면 세상이 희망적일 수 있다는 믿음이 희미해지기도 한다. 비극적인 결말과는 별개로 그녀가 밝히는 순수성이 내면을 파고들어 대중들에게 표시하는 건 그녀로 인해 반성과 성찰로 명멸하는 누군가의 눈물들일 것이다. 실상 펠리니의 영화가 시대가 가면 갈수록 모더니즘으로 선회하기 때문에 그의 필모에서도 <길>은 독특하게 느껴진다.

 

2. <자마 Zama> 루크레시아 마르텔Lucrecia Martel|2017

ⓒ 엠엔엠인터내셔널

루크레시아 마르텔의 최초의 장편 영화였던 <늪>(2001)을 떠올려보면 애초부터 그녀는 형식을 저글링 하는 기묘한 시네아스트이다. 내면에서 나오는 힘을 더 이상 이해할 수 없을 때, 우리는 형식에 매료된다고 말한 데리다의 논구가, 전략적이며 기예적으로 발산되는 <자마>는 프레임을 의심하게 되는 형식들의 연쇄로 발현된다. 그 자체로 초현실적인 형상으로 침식되며 관측할 수 없는 공간에서 드러나는 불가해한 위계의 참호 속에서 발견할 수 있는 건 결국 인간의 공허한 신체와 실체뿐이다. 이미지로부터 서사를 발견하기 이전에 이 영화는 결국 감각을 의지할 수밖에 없는 반역의 영화가 된다.

 

3. <퍼스트 카우 First Cow> 켈리 라이카트Kelly Reichardt|2019

ⓒ 영화사 진진

켈리 라이카트 전 작품에서 향유하게 되는 '자연'은 인간의 명암과 그 궤를 같이한다. <퍼스트 카우>는 지정학적 조건과는 상관없이 우정의 작동 방식을 계보학적으로 구축한 빼어난 작품이다. 삶과 죽음을 끝까지 함께 했던 두 주연의 우정의 계보는 가시적인 외적 충동에 휩쓸리지 않고 끝끝내 인간 사이의 믿음을 연장한다. 특별히 비평가들이 입을 모아 칭찬했던 오프닝 장면의 고고함과 그 프레임의 위력은 자연(물)을 탑승하고 있는 인류라는 개체가 초연하게 흘러가고 있다는 절절한 암시 때문일 것이다.

 

4. <나그네는 길에서도 쉬지 않는다> 이장호|1988

ⓒ 판영화사

이장호 감독의 작품들은 전반적으로 훌륭하지만, <나그네는 길에서도 쉬지 않는다>는 실험적인 요소가 가득하여 보는 내내 매혹적으로 감상할 수 있었다. 유독 편집(Montage)이 두드러지는 장면들은 오성을 곤두세우게 되고, 이는 결과적으로 교란 상태에서 감상에 임하면서 무수한 담론들을 생성하게 되는 놀라운 작품이다. 만약 한국영화의 작품성에 대해 경시하거나 간과하고 있었던 분이라면, <나그네를 길에서도 쉬지 않는다>를 보라고 말하고 싶은 충동이 생긴다.

 

5. <돈 Money> 로베르 브레송Robert Bresson|1983

ⓒ 영화 <돈> 스틸컷

올해 영화를 보는 시선을 획득하게 된 주요한 계기는 단연 '로베르 브레송'이다. 누벨바그의 감독들은 내게 본격적으로 영화의 정의에 대한 질문을 하게 만들었다. 대표적으로 장 뤽 고다르와 로베르 브레송, 프랑수아 트뤼포, 알랭 레네 등과 같은 감독들이 그 예다. 그의 유작인 <돈>은 어떻게 물질이 인간의 삶을 파괴하게 되는지를 집요하게 드러낼 뿐만 아니라 영화적 기법들을 응축한 작품이다. 심지어 내가 체감하기론 그의 영화 중에 가장 대중적이기까지 하다. 미묘하고도 분절된 사물과 신체의 이미지들이 계속해서 비워지는 형국인 <돈>을 포함한 그의 영화는 작위적인 영화적 화법을 최대한 버리면서 '실제'로 도달하려는 의도를 가진다는 점에서 문학적이며 미학적인 영화가 된다.

 

6. <아네트 ANNETTE> 레오 카락스Leos Carax|2021

ⓒ 그린나래미디어(주)
ⓒ 그린나래미디어(주)

레오 까락스의 영화에서 인물들과 사건들이 함의하고 있는 환상성은 아이러니하게도 뮤지컬이라는 장르를 장착한 <아네트>로부터 실체가 구체화되고 도리어 현실성을 갖춘 작품으로 거듭난다고 보인다. <홀리 모터스>(2012)가 영화감독으로의 자신의 인생을 낭만적인 방식으로 구현했다면, <아네트>는 아빠라는 이름으로 자신의 경험을 온전하게 반영하면서 '딸'에게 바치는 자기반성적 고백이기도 하다. 나무 인형인 딸이 인간으로 변모하는 것은 조종당하는 삶에서 벗어나 스스로 자신의 존재 의의를 개진할 수 있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아네트>는 자가당착에 빠진 부모 혹은 인간들에게 경종을 울리는 혁명적인 영화가 된다.

 

7. <에마 Ema> 파블로 라라인Pablo Larrain|2019

ⓒ 부산국제영화제
ⓒ 부산국제영화제

<에마>는 '춤'을 소재로 한다. 정형화되어 있지 않은 현대 무용과 연출들은 의미 발화에 대한 아포리아를 생성하고, 뒤따르는 인물의 관계도 또한 가능성에 대한 무한한 논구로 탐사된다. 파격적인 미장센은 계속해서 증발되는 형식을 취하고, 그 자리에 가족이란 의미가 축조되어가는 과정이 흥미롭게 펼쳐진다.

 

8. <파워 오브 도그 The Power of the Dog> 제인 캠피온Jane Campion|2021

ⓒ 넷플릭스(Netflix)
ⓒ 넷플릭스(Netflix)

정갈한 시대극인 이 작품은 심리 스릴러이자 퀴어의 요소가 혼합되어 있으면서도 대중성까지 확보한 웰메이드 영화다. 두 인물의 외향적인 대비와 자연의 결합은 파멸적인 결말을 지속적으로 암시하면서 서스펜스적 줄다리기를 이어나간다. 빛이 인물들과 지형들을 조명할 때 바뀌는 인식 구조의 변화는 단순하게 영화가 상징하는 '개'가 개인적인 복수를 성취하는 것에 그 동기를 발견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보편적으로 작동했던 시대의 편견에 관한 공포가 그 근본적인 원인으로 지목되면서 <파워 오브 도그>는 명시적인 작법을 빗겨나가는 입체적인 영화로 흔적을 남긴다.

 

9. <그리고 삶은 계속된다 And Life Goes On...> 압바스 키아로스타미Abbas Kiarostami|1992

ⓒ 영화 <그리고 삶은 계속된다> 스틸컷

인류의 수많은 고난을 위로해 주는 영화다. 1990년 6월에 발생한 이란의 대지진을 모티브로 하여 제작되었다. 지진이란 자연재해를 겪은 생존자들이 그들의 삶을 비관하기보단 낙관하며 인내하는 모습이 시종일관 큰 희망으로 다가온다. 현재 코로나19와 내전 등으로 고통받고 있는 이들을 떠올릴 때 그분들에게 자그마한 위로가 될 수 있는 영화가 아닐까 싶은 마음에 순위에 올려보았다. 이 영화의 엔딩에서 익스트림 롱 숏으로 자동차가 서서히 지그재그로 펼쳐진 길을 올라가는 모습을 담을 때 프레임 너머에 존립하는 인생을 한눈에 보게 되는 진귀한 경험을 하게 된다.

 

10. <우연과 상상 Wheel of Fortune and Fantasy> 하마구치 류스케Hamaguchi Ryusuke |2021

ⓒ 부산국제영화제

서울독립영화제에서 본 이 영화는 오랜만에 북적이는 관객들과 함께 호흡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어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코로나로 인해 '영화관주의'(영화관을 선호하는 사람들)라는 말이 더욱 이색적으로 느껴지는 건 그만큼의 함께 영화를 향유하지 못했던 그 시간이 너무 길었던 탓일 테다. 3개의 단편으로 이뤄진 <우연과 상상>은 대화 사이에 축적되는 유머가 후반부에 폭발하면서 웃음을 유발한다. 하마구치 류스케의 성공적인 코미디 영화(?)로 기억될 것이며 그의 작품 중에 라이트하게 즐길 수 있는 영화를 추천하라면 이 영화를 먼저 추천할 것 같다.

[글 이현동, Horizonte@ccoart.com]

이현동
이현동
 영화는 무엇인가가 아닌 무엇이 아닌가를 질문하는 사람. 그 가운데서 영화의 종말의 조건을 찾는다. 이미지의 반역 가능성을 탐구하는 동시에 영화 안에서 매몰된 담론의 유적들을 발굴하는 작업을 한다. 매일 스크린 앞에 앉아 희망과 절망 사이를 배회하는 나그네 같은 삶을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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