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무서운 건 '싱크홀' 밖에도 있다
정말 무서운 건 '싱크홀' 밖에도 있다
  • 선민혁
  • 승인 2021.08.20 12: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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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영화에 기대했던 것 이외의 흥미로운 점이 있다"

동원(김성균)은 한 집안의 평범한 가장이다.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하는 그는 11년간 모은 돈에 최대한도의 대출을 더 해 서울의 한 빌라를 실거주 목적으로 취득한다. 덕분에 그는 아침을 먹고 출근을 할 수 있게 되며 아내 영이(권소현)와 어린 아들 수찬(김건우)도 '우리 집'이 생겼다는 것에 만족한다. 이 집을 취득하기 이전에 이들은 서울 근처의 위성도시에서 전세 혹은 월세로 살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동원은 주위로부터 시세차익을 위해 빌라 대신 아파트를 샀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듣기도 하지만, 가족과 함께 있을 수 있는 집이 있다는 것에 만족한다.

 

ⓒ (주)쇼박스
ⓒ (주)쇼박스

그런데 집에 하자가 있는 듯하다. 아들 수찬은 재미있는 것을 보여주겠다며 구슬을 굴리지 않고 바닥에 내려놓는데, 한 방향으로 계속 굴러간다. 건물이 기울어져 있는 것이다. 동원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구청에 전화하고 빌라 주민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등의 노력을 하지만 복잡한 행정 절차와 집값 하락을 우려하는 주민들의 반대에 부딪혀 어떤 조치도 취하지 못한다. 그리고 동원의 직장 동료들이 자가취득을 축하하기 위해 집들이를 온 다음 날, 싱크홀이 발생하며 빌라 건물은 무너져버린다. 다행히도 이날 빌라에 물이 나오지 않고 있어 집 안에 머물고 있는 사람은 적었지만, 동원과 만수(차승원)을 비롯한 몇몇 주민들은 싱크홀 속으로 건물과 함께 추락해버린다. 동원의 집들이에 왔다가 과음하여 동원의 집에서 하루 머물렀던 승현 대리(이광수)와 인턴 은주(김혜준)도 함께 싱크홀에 갇히고 만다. 이들은 무사히 탈출할 수 있을까?

라고 썼지만, 사실 '이들이 무사히 탈출할 수 있을 것인가 말 것인가'에 대한 긴장감을 영화를 보는 동안 가지지는 않았다. 여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첫 번째로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어마어마한 깊이의 싱크홀이 발생하고, 그 안으로 한순간에 건물 한 채가 통째로 추락하며 그런데도 건물 안에 있던 사람들 중 다수가 목숨을 잃거나 불구가 될 정도로 크게 다치지 않는다는 설정이 무리하게 느껴져 상황에 대한 몰입이 어렵다. 게다가 싱크홀 안에 갇힌 사람들이 크게 위기의식을 느끼는 것처럼 보이지가 않는다. 싱크홀이 발생한 이후, 영화에서는 싱크홀 안을 무대로 하여 유머러스한 분위기의 연극이 펼쳐지는 듯하다. 결정적으로 이들이 싱크홀 밖으로 무사히 탈출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문제가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는다. 그 때문에 생사를 오가는 고난과 역경을 헤쳐나가는 인물들의 모습을 보며 느끼는 스릴을 기대하고 <싱크홀>을 관람한 관객은 실망할 수 있을 것이다. <싱크홀>을 보며 일반적인 재난영화에서 느낄 수 있는 긴장감을 느낄 수는 없었다. 영화가 구사하는 유머도 그다지 웃기지 않았다.

 

ⓒ (주)쇼박스
ⓒ (주)쇼박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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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싱크홀>은 흥미롭다. 인물들이 '싱크홀'에서 탈출할 수 있을까에 대해서는 걱정되지 않지만, <싱크홀>에는 긴장감을 유발하는 무서운 재난이 분명히 존재한다. '이들은 탈출 후 세상을 무사히 살아나갈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것이다. 이들이 큰 무리 없이 싱크홀 안에서 탈출할 수 있을 것 같긴 한데, 복귀한 세상에서 잘 살아나갈 수 있을까? 영화에서 싱크홀에 갇힌 이들의 생명은 전혀 위태로워 보이지 않지만, 공교롭게도 싱크홀에서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주요한 다섯 인물의 가계 사정은 꽤나 불리한 상황이다. 동원은 11년간 모은 현금과 부채로 매입한 주택을 한순간에 잃었다. 무너진 빌라를 복구한다고 하더라도, 거대한 재난이 일어난 적이 있는 땅의 집값이 오르기는 어려울 것이며, 매도하기조차 쉽지 않을 것이다. 동원은 주위의 충고대로 '영끌'을 최대한 하여 아파트를 샀어야 했다. 승현은 후배가 아파트를 살 때 사지 않았다. 후배가 매입한 아파트의 시세는 상승했고, 승현은 아직 원룸에 산다. 집값은 계속 오르니, 언제 방이 여러 개인 내 집을 마련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동원은 원룸에서 시작해 쓰리룸까지 온 자신을 보라며 격려하지만, 11년이 걸렸다는 사실 때문에 전혀 위로가 되지 않는다. 은주 역시 이렇다 할 자산이 없으며 명절 선물 지급 대상에서 제외되는 인턴 생활을 하고 있다. 만수는 월세를 살고 있고 N잡을 해야 생계가 유지된다. 유튜브를 통해 지식을 습득하는 MZ세대인 만수의 아들 승태(남다름)는 생존 지식은 잘 알고 있지만, 재난 상황에서 종이통장을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챙길 정도로, 금융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지 않은 듯하다. '1억을 모은다'는 좋은 목표를 가지고 있으나, 그것으로 무엇을 할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이 없다. 갑작스럽게 발생한 싱크홀처럼, 아파트를 미리 매수한 정대리(이학주)와 같은 사람들의 자산 가치가 상승하는 동안 이들은 그와 같은 수혜를 누리지 못했고, 선량하고 평범한 이 인물들은 별다른 실수를 한 것 같지 않은데도 소위 '벼락거지'가 되었다.

 

ⓒ (주)쇼박스

아무도 이들을 싱크홀에서 꺼내 줄 수 없다. 구조대가 해줄 수 있는 것은 목숨을 유지하기 위한 구호물품을 떨어뜨려주는 것뿐이다. 정신을 똑바로 차리지 않으면, 홍수처럼 밀려오는 자본주의의 파도에 휩쓸린다. 통장에 현금을 열심히 모으는 승태는 금리 인하, 인플레이션 등으로 인해 현금가치하락을 겪을 수 있다. 충분한 조사 없이 자산을 매입한 동원은 어쩌면 다시 오기 어려운 최고가격에 매수한 것일지도 모른다. 이들이 물에 잠기지 않고 싱크홀을 탈출하기 위해선 방주에 탑승해야 한다. 행운이 따라 이들은 방주로 쓸만한 물탱크를 찾았지만, 안타깝게도 누군가는 방주 밖에 남아 문을 닫아주어야 한다. 자본주의는 모두가 잘 사는 것을 쉽게 허락하지 않는다.

영화의 결말부에서, 동원과 영이, 만수는 결혼한 승현과 은주의 집들이를 간다. 싱크홀에서 고난을 함께 겪은 승현과 은주는 서로 사랑하게 되어 결혼했지만, 청약에 당첨되거나 하지는 않았는지 주택을 매입하는 것을 포기하고, 캠핑카에서 살아가고 있었다. 이들이 함께 식사를 하는 도중 도시의 하늘에서는 누군가가 쏘아 올린 폭죽이 터지는데, 아름다운 불꽃 모양과 달리 폭죽의 소음은 이들을 괴롭게 할 뿐이다.

[글 선민혁, sunpool2@ccoart.com]

 

ⓒ (주)쇼박스

 

싱크홀
SINKHOLE
감독
김지훈

 

출연
차승원
김성균
이광수
김혜준
남다름
김홍파
고창석
권소현
이학주
김재화
한태린

 

제작 (주)더타워픽쳐스
배급 (주)쇼박스
제작연도 2021
상영시간 113분
등급 12세 관람가
개봉 2021.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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