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핑크 클라우드>는 제25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월드 판타스틱 블루' 초청작으로, 이울리 제르바지(luli GERBASE)가 연출했다. 브라질의 젊은 감독 이울리 제르바지는 영화와 문예창작을 공부했으며 20세 때부터 영화를 만들었다. 직접 각본을 쓴 여섯 편의 단편영화로 토론토, 아바나 등 여러 국제영화제에 초청받았는데, <핑크 클라우드>는 초현실주의적 SF영화로 첫 번째 장편 연출작이다.
<핑크 클라우드>는 어느 날 갑자기 분홍색 구름이 전 지구의 하늘을 뒤덮게 되면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원인을 알 수 없는 이 분홍색 구름은 인간에게 매우 치명적이어서 사람들은 실외로 나갈 수가 없다. 주인공 지오바나(레나타 지 렐리스)와 야구(에두아르도 멘돈사)도 마찬가지로 집 안에 갇히게 된다. 그런데 이들은 '핑크 클라우드'가 하늘을 뒤덮기 시작한 바로 전날 처음 만나 하룻밤을 보낸 사이다. 서로를 잘 알지 못하는 사이에서 한 공간에 갇힌 둘은 계속되는 격리를 겪으며 커플이 되고, 결혼을 하며 아이를 낳는다.
영화의 설정은 코로나19로 인한 팬데믹 상황을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하는데, 감독의 말에 따르면, 현 상황이 발생하기 몇 해 전인 2017년에 이미 대본을 썼고 모든 촬영은 팬데믹 이전에 이루어졌으며 2019년에 제작되었다고 한다. 또 감독은 영화에서의 '구름'이 우리에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생각해보라고 제안한다.
'구름'이 나에게 어떤 의미가 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으나, 영화 안에서 그것이 사람들의 삶에 변화를 유발한다는 것은 확실하다. 그리고 사람들은 어떻게든 적응하여 살아간다. '핑크 클라우드'는 자유롭게 밖을 돌아다니던 사람들이 실외로 나갈 수 없게 만들었다. 그러자 범죄율이 줄고 치안이 좋아졌다. 밖으로 나갈 수 없는 사람들은 구매하거나 배급받은 물건을 드론을 통해 받게 되었다. 밖으로 나갈 수 없더라도 생활을 해야 했기 때문에 사람들은 돈이 필요했다. 그들은 온라인상에서 경제활동을 하게 되었다. 지오바나와 야구는 '핑크 클라우드'로 인해 맞은 개인적인 문제에도 잘 적응한 편이다. 결혼을 결정할 수 있을 만큼 서로에 대해서 잘 아는 사이가 아니었지만 어쩔 수 없이 계속 함께 지내야 하는 상황이 되자 서로를 배우자로 받아들였고, 갈등을 겪기도 하지만 어쨌든 가족으로서 함께 살아간다.
'핑크 클라우드'로 인해서 발생한, 아직 해결되지 못한 문제들이 있지만, 미래 세대를 보면 큰 걱정을 할 필요는 없는 듯하다. 지오바나와 야구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 리노는 인터넷을 통해 학교에 가지 않고도 수업을 듣고 수학 과제를 하며 한 번도 오프라인상에서 만난 적 없는 친구를 온라인을 통해 사귀기도 한다. 태어났을 때부터 '핑크 클라우드'가 존재하는 세상에서 살아온 리노는 격리된 상태에 대해 불편함을 느끼지 않으며, '핑크 클라우드'가 오히려 좋다고 말하기도 한다. 리노는 지속되는 격리 상태에 지쳐가는 엄마 지오바나를 위해 그녀의 생일날 가상현실을 체험할 수 있는 VR기기를 선물한다.
그러나 모두가 이러한 환경의 변화에 잘 적응하는 것은 아니다. 지오바나와 영상 통화로 안부를 묻곤 하던 친구는 온라인상의 커뮤니케이션과 로봇 강아지로도 외로움을 해소해내지 못했고, 언젠가부터 연락이 닿지 않는 상태가 되었다. 지오바나 역시 야구와 리노의 도움에도 불구하고 변화된 환경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리노와 같이 '핑크 클라우드'가 존재하는 세계에서 나고 자란 아이들이 온라인에서 생활하는 모습은, 더는 SF영화에서만 볼 수 있는 공상적인 장면이 아니다. 우리가 사는 현실의 수많은 사람들도 이전에 오프라인에서 하던 일을 온라인에서 하고 있으며 로블록스, 제페토, 디센트럴랜드 등의 가상현실을 통해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있기도 하다.
<핑크 클라우드>는 변화에 적응하는 사람들의 모습, 그 과정에서 개인들이 겪는 감정의 변화를 담았다. 흥미로운 것은 같은 공간에 갇히지 않은 이상, 누군가와 오프라인에서 대면할 수 없는 격리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적응의 모습 중 다른 누군가와 관계를 맺지 않고 각자 살아나가는 장면은 없다는 것이다.
[글 선민혁, sunpool2@ccoart.com]